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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의 욕망, 역시 어렵구나!
"중립의 욕망, 역시 어렵구나!" 내용보기
이 책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1978년 2월 18일부터 6월 3일까지 13주 동안 이루어진 '중립'에 대한 강의록이다. 이 해에는 세미나 없이 13주동안 2시간씩 강의가 이어진다. 바르트는 '중립의 욕망'이라는 강의 주제 아래 총 23개의 '그림 수수께끼'와 같은 단상들을 추적한다. 이들 단상은 상호텍스트, 호의, 피로, 침묵, 섬세함, 수면, 단언, 색깔, 형용사, 분노, 의식, 갈등, 흔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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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1978년 2월 18일부터 6월 3일까지 13주 동안 이루어진 '중립'에 대한 강의록이다. 이 해에는 세미나 없이 13주동안 2시간씩 강의가 이어진다. 바르트는 '중립의 욕망'이라는 강의 주제 아래 총 23개의 '그림 수수께끼'와 같은 단상들을 추적한다. 이들 단상은 상호텍스트, 호의, 피로, 침묵, 섬세함, 수면, 단언, 색깔, 형용사, 분노, 의식, 갈등, 흔들림, 은거, 오만, 파노라마, 무위, 결별하기, 두려움 등이다. 역자 김웅권은 [사랑의 단상]의 국역자인 김희영을 따라 '문형(figure)'이라는 무척 어리석은 역어를 강박적으로 유지한다. 그리고 번역 자체가 무척 생경한 것이 흠이다.

 

바르트는 문법, 논리학, 철학, 회화, 국제법 등 분과 학문들의 통섭에 해당하는 '상호기호학'을 출범시킨다. 그리고 상호텍스트로 블랑쇼와 존 케이지, 들뢰즈와 라캉, 파스칼과 보들레르, 그리스 회의주의 철학자 피론(365-275)과 프랑스 철학자 조셉 드 메스트르(1753-1821)가 결합되어 나타난다. 참고로 바르트는 자신의 독서취향에 대해서 자신은 '비미학적인 책들'은 읽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토로한다. 가령 정신분석학에서 프로이트나 라캉은 읽어도 카렌 호니나 라이히는 읽지 않는다고 한다.

 

바르트가 말하는 중립이란 "패러다임을 좌절시키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패러다임이란 잠재적 두 항의 대립을 말한다. 가령 의미론적 대립인 백과 흑이 그러하다. 따라서 중립이란 제3항에 의지하여 패러다임의 냉혹한 이원주의를 해체하거나 취소하거나 방해하는 구조적 창조의 사유에 해당한다. 일찍이 바르트는 '글쓰기의 영도'에서 '영도'를 '중립'의 의미로 사용한 바 있다. 바르트는 "내가 사는 시대의 투쟁에서 나 나름의 존재양식을 찾는 자유로운 방식"이 바로 중립이라고 강조한다. 바르트의 중립은 후설의 '판단중지'와 같은 현상학적 중립이 아니다. 오히려 바르트의 중립은  "명령, 법, 위협, 오만, 테러리즘, 독촉, 요구의 중지이고, 장악의지의 중지"이고 "환원할 수 없는 부정(Non)"이다. 중립을 강조하는 바르트의 정치적 노선은 어떠할까? 앙리 레비와의 대화를 참조한다면, 바르트는 정치적으로 노골적인 좌파라기보다는 고상한 무정부주의자라고 평할 수 있겠다.  

 

모든 개념은 확장되고 굴절하며 변화하기 마련이다. 바르트 사후 탈바르트적 담론에서 중립의 의미는 외연과 내연 양 측면에서 어떤 변화를 거쳤을 것이다. 바르트 사후 다른 학자들은 바르트의 이 중립 개념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전용했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역자는 중립의 의미론적 변화에 대해 함구한다. 아무튼 바르트의 '중립'은 '권력'이나 '몸'과 같은 '신통용어'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 작가의 어휘 속에는 항상 하나의 신통 용어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이 용어의 강렬하고 다형적이며, 포착 불가능하고 신성한 것 같은 의미는 이 낱말을 통해 작가가 모든 것에 대답하고 있다는 환상을 준다."(40쪽)

z***a 2012.09.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