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함마드 깐수로 알려진 정수일 교수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습니다. 한동안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수일 교수는 이미 알려진 대로, 만주 북간도(현재의 옌볜(延邊)) 출신으로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평양외국어대학, 말레이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다 북한 공작원 신분이면서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아랍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국내에 들어와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다 1996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5년간 옥살이를 하고 2000년 광복절 특사로 세상에 다시 나왔습니다. 복역중에 <이븐 바투타 여행기1,2>, <중국으로 가는 길> 등을 완역했고, 출옥 후에도 <고대문명교류사>, <이슬람 문명>, <문명교류사 연구> 등의 저서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의 역주서를 펴냈습니다. 비록 간첩 혐의로 복역하고 나왔지만, 그 사상의 좌우를 떠나 ‘동서문명교류사’와 ‘아랍 이슬람학’의 개척자임은 누구나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가 5년간의 옥살이를 하는 동안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펴낸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당국에 붙잡히는 그 순간까지도 그를 외국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5년 간의 옥중 편지 시작을 그의 소설같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엽니다. 그러나 5년 간의 지리한 옥살이임에도 그의 편지 어디에도 유약한 표현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40년을 학자로서 매진해온 그의 학문적 열정과 집념이 그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저에게 채찍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문명교류학을 통해 민족사를 복원하겠다는 '순수한' 그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빌게 되었습니다. 제 표현의 한계로 인해 그의 열정과 바람, 학문적 깊이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입발린 소리가 아니라 정말 '순수한' 민족에 대한 그의 애정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는 편지 곳곳에서 자신의 의지를 가다듬고, 옥중에서 그의 염원인 민족사 복원을 위한 문명교류학 관련 저술에 매진합니다. 그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가고(牛步千里)', '소가 밟아도 깨지지 않게(牛踏不破)', '언 붓을 입김으로 녹이며', '새끼줄을 톱 삼아 나무를 베는' 과 같은 표현이 있는데, 한 번 눈으로 들어온 문장이 머릿속을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참으로 두고두고 나를 단련하기 위해 되새겨야 할 문장들입니다. 이 외에도 동서고금의 고전과 다양한 문헌들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의 편지를 보노라면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433일 동안 국어대사전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단어 한단어 빠짐없이 보고 익혔다는 그의 말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참 많이 반성했고, 더불어 많은 어휘를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1996년 9월 14일자 편지를 시작으로 출옥하기 하루 전인 2000년 8월 14일자 편지로 끝이 납니다. 400 여 페이지의 짧지 않은 글을 읽으면서 저는 시종일관 그의 학문적 열정과 지식의 깊이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국어를 포함해 동양어 7종과 서양어 5종, 모두 12종의 언어를 익힌 이야기, 때마다 반복되는 한·중간의 역사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민족사를 복원하겠다는 이야기, 그리하여 학문의 총림(叢林)에서 무위(無爲)의 낙과(落果)가 되지 않으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학문과 더불어 살겠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어줍잖게 책 좀 읽고 어룽더룽 아는 바를 글로 쓰는 제가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저 저의 게으름이나 느즈러짐을 새삼 경계하기 위해 천협(淺狹)하게 아는 바라도 애써 쓰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할 뿐입니다. 잊지 말아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5년의 옥살이를 우보천리(牛步千里)하면서 호보(虎步)로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은, 한결같이 그를 옥바라지한 그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인지, 아니 실정법상 간첩인지도 모르고 지냈던 그의 아내의 절대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던들 이 모든 것이 불가했을 것입니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인고의 쓰라림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나를 잊어주오'라고 단장(斷腸)의 절규를 한 바 있었지. 그러나 당신은 '기다림'으로 '잊음'을 멀리하겠다고, 정녕 기담(奇譚)같은 큰 사랑으로 화답해왔소." 가슴이 아프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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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일의 문체는 강건하다. 북방에서 자란 탓일까? 그 기세와 필력이 여타 사람들과 참 다르다. 아무래도 학자들의 문체는 아무래도 유약하고 섬세하다는 인상을 피할 수가 없는데 정수일의 문체는 호방하고, 강골의 기운의 넘친다. 그의 인생 굴곡이 그 기운을 더욱 강하고 깊게 한 탓이 크다고 느껴진다. 이 책에서는 그의 인생 굴곡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새삼 이해할 수 있다.
무하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간첩 교수의 인생 굴곡은 인터넷으로 신문을 정리하면 잘 알 수 있기에 여기에서 별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출판 다음 날 읽게 된 것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사건의 사슬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명교류사라는 새학문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학자 정수일을 알기 위해서 이었다. 옥중에서 품어낸 25000매의 원고지와 12개 국어로 사고하고 글을 쓸 수 있는 학자. 그의 인생 역정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내 속에서 부끄러움과 부러움, 찬사와 열정이 꿈틀댔다. 이런 나만의 소회가 쏟아지는 것은 비단 학자의 길을 열망하는 나만이 하는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수일의 탁월한 능력과 열정은 적어도 정수일과 반대의 위치에서 사유하는 이들도. 학자의 길을 걷지 않는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리뷰를 쓰면서 사람의 어느 이념에 서 있든지 설령 죄를 짓더라도 그 사람의 능력은 제대로 평가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끊임없이 걱정하고 토로하는 민족은 한반도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고민하는 문제가 아닌가? 단지 민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방법이 달랐다고 나는 생각한다. 끝으로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학자를 꿈꾸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 세계를 무대로 자랑스럽게 살아가고 싶은 청소년에게, 시간의 낭비를 안타까워하고 하루하루 힘써 분발하는 모든 젊은이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세계는 학문에 의해 지배되고,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바로 학문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는 그 시절의 소박한 판단에서였지. |
| 단국대 사학과 아랍인 교수 '무함마드 깐수', 북한 공작원, 주 모로코 중국대사관 외교관, 12개 국어 구사...정수일씨의 이력을 살펴보면 흡사 첩보영화의 주인공처럼 파란만장하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정수일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서 지낸 5년 동안 부인에게 띄운 옥중서신을 엮어낸 책이다. 시대, 학문, 겨레. 이 세 단어는 정씨가 스스로의 삶을 규정하는 단어들이다. 그는 '시대의 소명을 받들어 학문으로써 겨례에 봉사하는 것'이 분단시대 지성인으로서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옥중서신의 미덕은 한정된 좁은 공간에서 외부와의 접촉없이 자신을 반추하고 사색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사상 뿐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까지도 섬세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편지 곳곳에는 공안당국에게 체포되기 전까지도 자신의 정체를 몰랐던 부인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도 진하게 묻어난다. 아울러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에 대해 스승으로서 미안한 심정도 절절히 느껴진다. 또한 '문명교류사'를 개척하는 학자가 감옥 창살을 통해 내다본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도 읽을 수 있다. 위장간첩이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를 쓰고 옥살이를 했지만, 정수일씨는 겨레를 사랑하는 학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그의 편지들은 보여준다. 북경대를 졸업하고 중국 외교부의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던 기회를 스스로 박차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스스로의 처지를 빗대어 '수의환향(囚衣還鄕)'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옥중서신집을 읽다보면 여러 번 놀라게 된다. 우선 12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그의 놀라운 우리말 솜씨는 읽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다. 동서양 고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맛깔나는 우리말로 풀어놓은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정씨는 그런 글솜씨에도 모자라 감옥에서 국어사전 하나를 통째로 독파했다고 하니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그 뿐 아니다. 정수일씨는 책상 하나 변변히 없는 감옥에서 적지않은 나이에도 불구,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국내 최초로 번역하고 '씰크로드학'을 집필하는 등 엄청난 지적활동을 쉬지 않고 계속했다. 학문에 대한 그의 그치지 않는 열정은 무릇 학문하는 사람들은 깊이 본받아 마땅한 모범을 보여준다.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세를 얻고, 서구의 것이면 언어든 문화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오늘의 세태에 정수일씨는 경종을 울린다. 문화의 미덕은 다양성에 있으며, 우리 겨레가 세계문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문화를 잃지 말고 잘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기에 우리 것을 지키자는 것이 수구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세계화를 위한 방법이란 것이다. 이 편지들을 통해 떠올려지는 정씨의 모습은 지조있는 선비의 모습이다. 평생을 통해 자신이 뜻한 학문을 강직하게 추진하는 그의 '우보천리(牛步千里)' 정신은 제대로 된 목표 하나 없이 방황하는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들이 본보기로 삼기에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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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대학교수 간첩사건으로 시사에 오르내리던 무하마드깐수를 아는가? 무슬림의 복장을 하고 대학에 위장취업하여 간첩행위로 옥살이를 한 사람말이다. 통일보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던 나라에서 간첩은 늑대의 이빨을 가진 잔인한 포스터다. 나는 군대에서 포상금과 휴가등 갖가지 특혜를 준다는 ''간첩을 잡자!''라는 표찰앞에서 행운을 꿈꾼적이 있다. 반드시 잡아서 팔자를 고치리라고... 하지만,무하마드 깐수라는 사람은 잡아야 할 존재가 아닌 키워야할 존재였다. 그가 학문적 지대를 높인 문명교류사는 우리나라 어느 학자도 엄두도 못낼 업적이다. 서역 교역로에 찍힌 선조들의 족적을 좇아 현현했다는 것은 가히 당대 최고의 노작이라 칭송할 만하다. 어디 그뿐인가, 미국 어느 잡지(셀프라던가)에서 마르코 폴로 보다 더 세상을 빛낸 사람의 앞자리에 놓였다는 ''이븐바투타의 여행기''를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완역했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영어의 몸으로 이루어 낸 것이다. 끊임없는 학문적 열정하나로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써내려간 저작들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이다. 물론 몇몇 세계위인들이 보여준 옥중저작물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출중하다. 가령 인도 초대 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다의 ''세계사 편력''과 제2의 마르크스라고 칭송되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와 비견되는 역작들이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감옥에서 정수일교수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물이다. 우리나라는 반공만 내세우면, 모든 사람을 가둘 수 있는 막강한 보안법의 위력 때문인지 유능한 사람들이 사상의 피력만으로 영어의 몸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유일하게 세상과 교통할 수 있는 수단인 편지글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예가 너무 많다. 내가 읽은 편지글을 묶은 책으로는 ''그렇소 나는 사회주의자요''라고 당차게 외쳤던 주인공인 윤철호의''나는 겨울잠을 자러 온 곰이로소이다''와 신영복의 ''감옥으로 부터 사색'' 근래의 황대권 의 ''야생초 편지'' 와 올해에 읽은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가다(牛步千里)''이다. 모두 문장의 결이 곱고, 애국과 애족정신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수일 교수가 부인에게 쓴 글속에는 그를 일러 법정에서 판사가 말했다는 ''영화같은 인생유전''이 잔잔히 펼쳐져 있다. 일제수탈을 피해 연변으로 이주한 유랑민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의 국비유학생 1호로 카이로에 유학하여 중국의 외교관으로 잘나갈 때 중국인민의 우상인 주은래수상이 조카딸을 소개하며 붙잡으려 해도 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며, 북한으로 들어가 활동한 이야기와 통일에 대한 열정을 학문으로 풀고자 들어 온 남한행은 그가 세계를 주유한 거리보다 더 멀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소걸음으로 수천리 길을 온 그에게 맞닥뜨린 것은 쇠창살의 감옥이다. 감옥은 행동을 억압하는 공간이지만, 사유의 공간이기도 하나보다.선조들이 세계로 발길을 넓혔던 원시안을 저버리고 동족가족끼리 등을 돌리고 사는 근시안으로 아무것도 바라보지 못하고 있을 때 학문의 열정의 불빛을 밝혀들고 찾아온 그의 정신은 ''牛公移山''의 우직함이 배어있다.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의 행간에서 조국사랑과 학자다운 인식의 기틀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는 아마도 문명교류사를 통하여 세계로 기세를 떨치는 조국의 위용을 꿈꾸는지 모른다. 내가 그를 존경해 마지않는 이유도 그 기류 때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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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법 공부를 제대로 한것이 아닌 탓에 잘못된 문장과 잘된 문장을 정확히 파악하는것이 어렵다. 꼬집어 설명할만한 지식이 부족해서 근거를 들어 자세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책을 읽다보면 문학적 표현이라는 범주안에서 야량을 가지고 봐주기에는 좀 심한 경우들이 종종 있다. 김우창 교수의 명성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내가 그의 문장을 읽는것은 마치 돌부리가 삐죽삐죽 솟아 있는 산비탈을 걸어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채이고 채여서 결국 지쳐 내가 오르는 산이 어떤 산인지 관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얼마전에 '이병주의 동서양 고전탐사'를 읽으며 본 일제시대 교육받은 이의 문장은 또한 내용의 좋고 그름을 떠나 어쩐지 불편하다. 문장이란 그 사람의 뼈대가 아닌가 싶다. 살이 붙고 , 피부가 감싸고 거기다 옷을 입혀 장신구를 달면 그의 뼈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사람의 뼈대는 키를 결정하고 덩치를 결정하며 강건한 이미지와 냐약한 이미지를 결정한다. 뼈대가 부실한 사람이 근육만 멋있게 붙인다고 과연 강한 이미지를 낼 수 있을까 ? 아마도 부담스런 살덩어리로 느껴질것이다. 정수일교수의 옥중편지를 읽다보면 그의 문장앞에 경건해진다. 문장을 이토록 반듯하게 쓰는 사람을 일찌기 보지 못한 듯 싶다. 더군다나 그는 황해도에서 태어나 연변에서 자란 사람이다. 일제시대 태어나 일본말을 쓰고, 중국에서 살며 중국말을 쓰고 아랍을 비롯해 이곳저곳을 떠돌며 공부하다 북한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그야말로 우리말을 정확하고 반듯하게 쓰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개국의 언어를 구사하는 언어천재가 쓰는 우리말은 세계속에 우리의 학문적 입지를 굳혀 보겠다고 동분서주하던 그 열정과 사랑이 그대로 녹아들어 반듯하고 강하며 아름답다. 무하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아랍인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스스로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오던 그가 실은 정수일이라는 조선족 출신으로 북한에서 활동하던 교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영어의 몸이 되고만다. 역사의 거울로 비춰볼때 조국의 통일을 위해 상아탑에서 걸어나와 스스로 행동하는 지성인이 되고자 자처했던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를일이다. 단지 현실에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간첩일뿐이었다. 그리고 파란만장했던 인생의 후반부 몇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다. 사마천은 사기를 쓰면서 한비자와 손자를 거론하며 이런 시기에 원래 대작이 나오는것이라고 했다. 그후로 많은 사람들이 절망의 유배지나 감옥에서 사마천을 생각하며 글을 쓰곤했다. 정약용선생이 엉덩이가 짓무르던 고통을 감수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쓴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저자 또한 감옥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 나는 결코 세월을 허망하게 소일할 수 없소. 일각을 천금으로 여기고 더욱 분발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내 운명이고 내가 치뤄야할 몫이오. 지난 몇달 동안 나는 이러한 신념과 실천으로 줄기차게 나 자신의 재발견을 시도했소. 그 과정에서 그래야 했고, 또 그럴 수 있다는 귀중한 경험과 교훈을 얻었소. ' 이렇게 소걸음으로 뚜벅뚜벅 천리를 가겠다 마음먹은 이가 감옥에서 그동안 아내에게조차 밝히지 못했던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편지를 통해 전하고 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에 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향과 학문적편력에 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던 탓에 편지는 사뭇 공개적인 지면상에 씌여지는 에세이처럼 느껴진다. 옥중 편지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노출빈도가 높은 경향이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아무래도 저자는 문장을 쓰는것 자체에 대단히 엄격한 사람이라는 느낌이든다. 본인이 선택해서 이리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고자 했던 문명교류학 분야가 좌초된것하며 여러가지로 그의 학문적 성취가 무너져내린것은 참으로 안타까운일이다. 인재가 정치적 격랑에 휘말려 사장 된것이 어디 그 하나 뿐이랴마는 그래도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안타까움이 이기적 목적을 가지지 않은 나라사랑에 기인함을 알 수 있어 아쉽기 그지 없었다. 글을 읽다보면 접신한것처럼 예민하게 사물 또는 장소와 교류하는사람이 있다. 김훈의 문장이 때때로 그러하며 외진 골목길 뒤쪽에 헐벗은 이들을 향한 애뜻함에 눈물짓는 공선옥의 문장이 그러하고, 유럽과 아시아 핏자국 얼룩진곳에서 몸을 떨던 신영복이 또한 그러하다. 이런 이들이 접신의 순간 느끼던 그 예민한 아픔도 때론 인상적이지만 꼿꼿한 선비의 기상이 느껴지는 학문의 정진속에 토해내는 그 진한 사유의 아픔은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느껴지며 진실로 공감하게 만든다. 서평을 쓰긴 하지만 누구한테 쉽게 권하고 싶지 않은 책들이 많다. 그렇지만 이 책 우보천리 -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자신있게 권해줄만한 책이다. 고국 신라에 돌아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고 싶었으나 그 뜻을 펴지 못한채 전설속으로 사라져간 최치원에게서 진한 동질감을 느끼는 정수일교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현대사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개인사의 드라마틱함에 눈길을 뗄 수 없게 된다. |
|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지식인이고 어떤 사람이 지성인인가? 민족은 무엇이고 조국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들에 대해 시원하게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 있으니 정수일 선생이 쓴 이 책이다. 우보천리, 그렇다! 이 세상을 소처럼 살면 될 것이다. 우리에게 모자라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지식은 너무 넘치는 세상이 이미 되고 말았다. 우리에게 모자라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고 실천이다. 지식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성인이 없다고 선생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민족을 살리고 조국 미래를 밝히기 위해 서울로 왔단다. 하루에 54미터씩 전진했다니 ........... 이것이 바로 소걸음이 아닌가? 시대 소명에 따라 지성인의 양식으로 민족을 위해 희생한다. 이런 시대의 지성인들이 많이 나와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실 타개를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씩 노력하고 고쳐 가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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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씩 읽으려던 독서 계획을 어느 순간 무너뜨리고 몰아쳐서 읽어버리게 만든 책. 옥중서간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깊은 성찰과 높은 집중력으로 쓰인 글일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나의 상상을 넘어서는 글이 담겨 있는 책.
어렸을 때 지구를 집어 삼키려는 빨갱이 문어를 포스터로 그렸는데, 공산당의 침략을 잘 표현했다며 게시판에 내 그림이 붙었을때도, 간간이 터지는 간첩 얘기를 들었을 때까지만해도 난 뿔달린 간첩이 무서웠었다. 그때 내게 있어 간첩은 우리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빼앗고 우리나라를 없애려는 나쁜놈,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그런 악당일뿐이었다. 아무런 기억도 없지만, 우리 학문의 발전을 위해 그의 한문적 연구를 계속 하게 해야한다는 성명이 발표되고...어쩌구. 그것 하나만 남아있었다.
리뷰를 쓰려고 할 때마다 컴이 멈춰버려 기를쓰고 덤비고 또 덤비는 몇번의 재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쓸 수 없었던 책. 그럼에도 꼭 리뷰를 적고 싶어 며칠 후 다시 시도를 했으나 그 전까지 말짱하던 컴퓨터가 이 책 리뷰를 쓰려고 하니 재부팅조차 안되어버려 화가 나게 만드는 원인이 된 책. 가장 중요한 것은 정작 책에 대한 리뷰가 아니라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까지의 에피소드만 나열하게 된 글이라도 부득부득 올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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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하마드 깐수. 어렴풋한 기억 저편의 이름이다. 꽤 오래전의 일인 것 같다. 십여년 동안 대학교수 행세를 하던 한 간첩이 붙잡혔다는 뉴스를 접한 것이. 정확히 하자면 96년 이었다. 그리고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그후 5년을 옥중에서 보내게 된다. 당시에는 그저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십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도 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간첩' 혹은 '공작원'이라는 신분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 공작원 무하마드 깐수의 진짜 죄는 민족을 너무 사랑한 죄, 이것이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정수일 선생님의 인생은 한마디로 '드라마' 그 자체였다. 중국에서 태어나 북한을 거쳐 남한으로 오기까지. 비행기를 타면 몇시간 걸릴 거리를 오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그것도 '공작원'이라는 신분으로 아랍계 필리핀 인으로 위장을 한 채. 그는 수십년동안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결혼을 했고, 학위를 받고, '실크로드'를 따라 자신의 원대한 꿈을 펼쳐나갔다. 그에게 남과 북이란 없었다. 그에게는 '우리'만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동서문명교류사'의 연구를 통해 세계속의 우리민족의 역사를 낱낱이 밝혀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인생을 걸었다.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음에도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더더욱 불타오르기만한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는(牛步千里)' 매진 정신과 '소가 밟아도 깨지지 않는(牛踏不破)' 반석같은 의지로 황소처럼 묵직하고 침착하게 앞만 내다보면서 걸어나가야 할 것을 다짐하는 대목은 정말 읽는 이의 마음을 동하게 한다. 실제로 그는 옥중서의 수감생활 동안 원고지 수만장에 이르는 집필을 하여 동서문명교류사에 이름을 남기고, '실크로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정립하였던 것이다. 그는 편지 곳곳에서마다 분발, 분발, 또 분발을 다짐한다. 정수일 선생님의 이 글로 나는 '민족국가(nation-state)', '지성인', 그리고 '학문'이라는 세가지 개념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첫째, 21세기가 세계화의 시대이고 문명교류의 시대이지만 -특히 우리의 '특수한' 상황에서- 민족은 절대적 가치인가? 이에대한 현재 내 생각은 어느정도 긍정적이다. 둘째, 단순한 '지식인'이 아닌 시대를 앞서가는 '지성인'이 되어야 할텐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의 시대가 나에게 주는 사명을 무엇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에대한 대답은 아마도 첫번째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즉, 대략이나마 한반도의 통일과 동북아 평화구축을 세기의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것도 앞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이지만 나는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이것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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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가 간첩이라고 하여 크게 보도되었던 사건의 주인공, 무함마드 깐수. 그이는 아랍계 필리핀인이 아니라 실제 우리 민족이고 북한공작원이었다. 다만 우리 민족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일가를 이룬 학자였다. 정수일 선생은 일제 강점기 고국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연변 유민의 아들로 태어난다. 중국 북경대학에 입학하고, 중국 국비장학생 제1호로 카이로대학에 유학하기도 한다. 12개 언어를 구사하는 탁월한 능력 덕분에 중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며 부와 명예를 다 거머쥘 수 있는 여건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단념하고 고국을 선택한다. 평양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한 뒤, 10년 동안 튀니지,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지의 대학에서 이슬람을 전공한 교수로 활동한다. 1984년 아랍계 외국인의 신분으로 남한에 돌아와 ‘무하마드 깐수’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이국스러운 외모와 완벽한 아랍어 구사로 한국에서 만난 아내조차 그를 아랍인으로 믿었다. 아랍 출신의 대학교수라고 알고 결혼한 아내는 얼마나 놀랐을까. 남편이 간첩이라고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으리라. 배신감도 컸을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모르지 않는 선생은 “당신에게 인고의 쓰라림을 더 이상 안겨주지 않기 위해 “나를 잊어 주오”라고 단장(斷腸)의 절규”를 한다. 아내를 속인 것도 속인 것이지만 언제 석방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내에게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기다림’으로 ‘잊음’을 멀리하겠다고, 정녕 기담(奇譚) 같은 큰 사랑으로 화답”한다. 아내에게는 남편이 간첩이어도, 언제 석방될지 모르는 범죄자라도 그것들을 뛰어넘는 믿음과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일방의 것만은 아니다. 선생 또한 아내에 대한 깊은 믿음과 사랑을 편지 곳곳에서 표현한다. 글로만 하는 수사가 아닌 진정한 믿음과 사랑이다. 1996년 7월에 체포된 선생은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고 구속된다. 책은 그해 9월부터 쓰기 시작하여 석방되기 직전인 2000년 8월 14일까지의 편지글 모임이다. 선생은 편지를 통해 비로소 아내와 남한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았는지 밝히는 것은 물론 학자로서의 포부와 인생관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한다. 여전히 특수한 처지에 놓인 터라 말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터이지만 선생의 진면목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하다. 그러한 자기 드러남을 통해 선생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고 고마워하는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엄격하게 채찍질하는지, 민족의 자긍심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학문에 정진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난주(11월 28일)에 나는 법정에서 사형이란 극형을 구형받았소. 물론 생에 대한 인간본연의 애착으로 보면, 불운이라고나 할까 비명이라고나 할까 하는 이런 식의 운명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인과율(因果律)로 따지면 항변의 여지가 없는 귀결일 수도 있는 것이오. 물론 나도 보통인간으로서, 더욱이 이 싯점에 이르러서까지도 못한 일을 너무나 많이 남겨두어 아쉬워하는 미련의 인간으로서, 또 이 시대, 이 겨레를 위해 무언가 더 남기고 싶은 의욕이 간절한 대망(待望)의 인간으로서, 생을 더 연장하고 싶은 마음, 아니 그 이상의 절규마저 어찌 없겠소. 그러나 인생의 도리 앞에서는 스스로가 수긍하고 대범해져야 하는 법이오. (57 – 58쪽) 사형이라는 극형을 구형받고서도 선생은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최종 선고가 아니기에 감형될 여지가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세상사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수행자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선생은 당시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우리 겨레의 대외교류사 연구를 통해 우리 선현들의 진취적인 ‘세계정신’을 밝히고 그 맥을 짚어보려고 한 것이다. 흔히 서양인들의 무지나 비하로 인해 우리나라가 ‘은든국’으로 세계에 비쳐지고, 우리 자신도 그런 것쯤으로 스스로 비하하고 있는데, 선생은 그 부당성을 학문을 통해 밝혀내려고 한 것이다. 그때 감옥에 갇히고 마는데 감옥도 선생의 학문을 막지 못한다. 선생은 0.75평밖에 안 되는 비좁은 방에서 학문에 정진하여 출감할 때까지 200자 원고지 2만 5,000장 분량의 연구 초고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가히 초인적인 학자의 열정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선생은 아내와의 사랑, 자기 자신에 대한 수행, 그리고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한 학문에서 골고루 뛰어난 성취를 이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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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이 책을 보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습니다.
저자의 이야기와 더불어 저자가 인용한 다른 이들의 삶을 엿보면서
다른 이들의 시선도 잊고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저자의 애국애족의 마음을 드러냄에 과장이 있다싶었으나
책장을 넘길수록 너무나도 지고지순한 마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런 지성이 또 있을까?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가 이곳 대한민국에 와서 우리의 뿌리를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입니다.
또 하나, 학문하는 자의 자세에 대해 줄곧 논하였습니다. 내 일의 필요에 의하여 가벼이 대학원에 진학한 나로서는 절로 고개가 떨구어지는 대목입니다. 만난적은 없지만 이 책을 통해 그분은 제 스승이 되었습니다. 새해 도서관에서의 우연한 선택이었으나 참으로 값진 만남이었습니다.
한 번 읽고 말기에는 아쉬움이 허용치 않기에 한 권 구입하여 수시로 펼칠 계획입니다. [인상깊은구절] 시간에는 궁전과 감옥이 따로 없고, 얻음과 잃음이 아예 예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고, 누구나가 욕심껏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는 것이오. 다만 그 씀씀이에 따라 시간이 남겨놓은 그림자(흔적)가 다를 뿐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