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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종교답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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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종교답게 하십시오 ㆍ벽 허물어야 할 종교가 벽 만들고 ㆍ통합으로 가야 할 종교가 갈라 놓고 ㆍ소통해야 할 종교가 꽉 막히고 ㆍ만남으로 가야 할 종교가 적대 한다 안녕하십니까? 한국 사회를 종교 천국, 종교 백화점, 다종교 사회라고 합니다. 실제 여러 종교들이 다양하게 활동하고 종교 인구가 대단히 많고 영향력도 엄청납니다. 최근에는 종교 갈등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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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종교답게 하십시오


ㆍ벽 허물어야 할 종교가 벽 만들고


ㆍ통합으로 가야 할 종교가 갈라 놓고


ㆍ소통해야 할 종교가 꽉 막히고


ㆍ만남으로 가야 할 종교가 적대 한다



안녕하십니까? 한국 사회를 종교 천국, 종교 백화점, 다종교 사회라고 합니다. 실제 여러 종교들이 다양하게 활동하고 종교 인구가 대단히 많고 영향력도 엄청납니다. 최근에는 종교 갈등이 사회문제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전쟁의 70%가 종교 때문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종교문제가 잘 풀리기보다는 악화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영향력이 큰 만큼 폭발력과 위험성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갈라지고 찢어져서 걱정인데 종교마저 그런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가 어디에서 기인할까요. 한 두가지가 아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종교인들이 겉모양과 말에 눈이 멀어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인 보편적 진리를 보지 않고 자기 종교의 형식과 말만 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종교가 싸움판으로, 세속화로 치닫게 된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종교 문제가 한국 사회의 심각한 현안으로 나타났습니다. 종교 스스로와 한국 사회를 위해 종교가 성역으로 남아있어선 안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갈라지고 찢어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종교가 오히려 문제의 주범이 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한 불신과 회의에 더하여 종교 무용론이 확대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저절로 종교란 무엇인가, 왜 필요한가 하는 근원적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먼저 종교란 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서양 종교학에서 정의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종교란 말의 본래 의미를 글자 그대로 보면 근본의 가르침, 최고의 가르침, 참된 가르침, 보편적 가르침이란 뜻입니다.

근본의 가르침, 최고의 가르침이 두 개일 수 없습니다. 참된 가르침, 보편적 가르침은 필연적으로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가르침을 종교들은 제 나름대로 여호와, 알라, 한울림, 법신불, 우주의 존재 법칙, 무위자연의 도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종교가 태어난 사회적 배경에 따라 드러난 모양과 표현된 언어가 다르지만 내용으로는 근본은 같고 지엽만 다릅니다. 진리가 하나인데 종교가 다양한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여기 진리의 황금이 있습니다. 그 황금으로 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천도교를 만들었습니다. 분명 모양도 다르고, 이름도 다르고, 역할도 다릅니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황금입니다. 같은 문제의식의 내용이 화엄경에도 나옵니다. 신부, 목사, 정치인, 사업가, 뱃사공, 기생, 아이, 어른, 스님, 선생,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등 얼굴 모양도, 사용하는 말도, 하는 일도 천차만별입니다. 하지만 보편적 진리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누구도 예외없이 가장 멋진 사람인 부처님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보편적 진리인 종교 본연의 실상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종교는 겉모양과 말이 다르다는 이유로 편갈라 싸우고 있으니 얼마나 비종교적입니까. 종교란 본래 보편적 진리의 정신으로 낱낱 존재들을 모두 빛나게 함과 동시에 서로를 잘 어울리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편적 진리인 종교는 본래 공평 무사함으로 막힌 벽을 허물고 차별을 넘어서게 합니다. 삶을 자유롭고 풍부하게 합니다.

종교의 본래 모습과 역할로 보면 오늘의 종교 현실은 기가 막힙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비밀을 버리고 투명으로, 막힘을 버리고 소통으로, 적대를 버리고 만남으로, 따로를 버리고 함께로, 권위를 버리고 평범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는 오히려 그 반대로 투명을, 만남을, 소통을, 함께를, 평범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온갖 이유를 내세워 성역으로 남으려고 합니다. 종교 때문에 차별이 생기고, 막힘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종교 본연의 멋진 모습과 역할을 보기 어렵습니다. 종교를 명분으로 이익을 쫓는 세력만 있습니다.

농촌문제를 예로 생각해 봅시다. 지금 농촌이 무너지고 있는데는 종교의 책임이 큽니다. 종교가 자신만을 위해 사람들을 종교 기관으로 오게 하고, 종교를 위해 헌신하게 하는 데에만 골몰했습니다. 그 결과 종교인도 늘어나고 세력도 대단해졌지만 지역 농촌 사회는 뿌리 뽑혔습니다.

사회문제의 근저에는 많은 부분들이 종교의 무책임으로 인한 경우가 허다함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종교를 가늠하는 척도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 명료합니다. 어떤 거짓도 사심도 발 붙일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진리의 세계는 본래부터 공평 무사합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종교를 명분으로 자기 세력화와 이익을 추구한다면 바로 그 순간 스스로 종교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종교는 어떻습니까. 모양과 말만 종교입니다. 내용은 전혀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를 명분으로 한 이익집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미 종교의 정신을 잃었습니다. 종교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직하게 보면 종교야말로 성역이 없어야 하고 허심탄회해야 합니다. 종교도 사회현상의 하나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회적 필요와 합의에 의해 사회 질서가 만들어지듯이 종교도 사회적 합의에 따라야 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종교 질서를 확립해야 합니다. 보편적 진리의 세계가 공평무사하듯이 종교도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물이 논에 들어가서 벼를 빛나게 하고,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빛나게 하듯이 종교도 언제나 사랑과 헌신의 정신으로 함께하는 서로서로를 빛나게 해야 합니다. 종교계 구석구석에 민주주의의 생활화가 이루어지고 종교인 개개인들이 단순 소박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종교가 종교다워집니다. 참된 길, 구원의 길이 됩니다.

여러가지 의미로 볼 때 종교는 자율적으로 자기 혁명을 해야 마땅하지만 불행하게도 자기 혁명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차피 종교도 사회 안의 종교이므로 국민이 나서서 자기 혁명을 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참회의 마음으로, 빚 갚는 마음으로, 참된 종교로 거듭나기 위한 몸짓으로 제일 먼저 해야 할 대표적인 것이 우리 삶의 어버이요, 고향인 농촌, 농업, 농민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합니다. 하루빨리 서울을 떠나 농촌, 농업, 농민을 빛나게 하는 데 헌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저절로 종교가 종교다워집니다. 종교의 미래가 환해집니다. 분명 이 길이 바람직한 길이라고 여겨지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청안청락 하십시오.

<생명평화결사 탁발순례단장> 

l***w 2009.01.24.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