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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데에는 작가 이인휘 님을 페친으로 직접 만난 사정이 있다.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이라는 시집을 리뷰한 일을 기억하는가? 팟캐스트에서 어떤 시인이 추천해준 책이라서 아무 생각없이 집어 읽고 시가 너무 좋아서 글을 썼다. 그랬더니 이인휘 소설가님께서 상당한 동요를 보이셨다. 문자는 차갑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가 느끼는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 일생 공장에서 일만 하다가 어머니가 병들어 돌아가시고 자신도 암이 생겨 시 한 권만 남긴 채 죽은 그 시인의 생애를 느꼈고, 나아가 작가의 생애도 얼추 짐작해볼 수 있었다. 원래는 옛날에 그가 처음 쓴 소설을 읽을 생각이었지만 왠지 도서관에서 책이 보이지 않아서 이 책을 집어 읽었다. 페이스북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특히 군대 이야기를 할 때 무지하게 타오른 것 같기도 하다 (...) 내 페친 중에 70%는 남자이긴 하지만 젊건 늙건 간에 모두들 군대에 대한 두려움과 군대에서 겪은 설움을 댓글로 한없이 늘어놓는 통에 내가 나중에 따로 '폭력은 군대에 있던 아니던 간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글을 올려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하기사 우리나라가 군대 사회란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반은 가상이지만 반은 실제 인물이라는 소설가의 댓글과 같이 이 책은 그가 살아온 삶과 많이 겹치는 데가 있다. 처음에 작가 소개란을 볼 땐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사실 반드시 불가능한 게 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꿈을 이루려는 수단이 직업이라서 직업을 꿈꿀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선생님이 되어서 주도적으로 왕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뭐 이런 식의 꿈을 꾼다면 말이다.
내가 꿈이 있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니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겠다 이런 마음가짐까지도 상관없다고 본다. 문제는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서
아무 생각없이 돈 벌 수 있는데를 가고 싶다고 할 때이다. 직장을 얻기 위해서 뭔가 마구 외워대는 게 공부인지도 의문을 제기해야 될 판인데,
우리나라는 특히 남성들이 출세해서 권력으로 날 비웃는 인간들을 찍어버리자고 생각하는 심각한 케이스가 많아서 그 의견조차도 눌린다. 마치 돼지를
죽여버렸는데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냐'하고 안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정말 선생님 되려 하거나 공무원 되려는 인간들
마음가짐부터 철저히 심리학적으로 테스트하지 않으면 이 이분법적인 사회를 벗어나기 어려울 듯하다. 당장 사립 어린이집이 늘어나면 어찌 될까
부모들이 걱정하는 이유는 근본으로 따지고 들어갈 때 선생님이 저질이라서가 아니라 저질들을 사전에 걸러내지 못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또한 그
시스템을 분석해보면 사방 도처에 폭력이 깔려있다. 힘들겠지만 폭력을 저지르는 계기가 되는 위부터 뜯어내야 희망이 있다. 그 위에는 가부장제에
찌든 아버지, 국가보안법을 들먹이는 군인, 지독한 사장, 외면하는 선생님이 있다.
오랜만에 데로드 앤 데블랑이라는 판타지 소설 생각난다.
1권인가 2권에서 난데없이 주인공 여친 죽었을 때 펑펑 울면서 아직도 살아있는 주인공을 욕했었다. 그쪽도 주인공인가 여친인가가 장애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목숨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하니 주인공도 거기서 삶을 끝낼 줄 알았는데 그 인간이 계속 살아있어서 미웠다고 해야 할까. 자살하라는 소리가 아니라, 난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옆에 있는 사람도 너무 괴로워서 같이 죽는 줄 알았다. 정말 진지하게 그랬다. 근데 나같이 찝찝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았는지 마지막권에선 끝내 주인공을 죽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주인공도 생명 있는 사람인지라 좀 머쓱했다. 머리가 크니 작가의 존재가 인식되면서 '작가가 주인공을 너무 굴려먹네' 이런 생각도 들고..
살다보면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거나 정말로 좋아했던 사람보다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인연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
죄와 벌에서 왠 지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에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 무작정 술집을 간 라스콜리니코프는, 삶의 밑바닥에서 어떤 사람이라도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마르멜라도프를 만나고 그의 딸 소냐와 인연을 맺는다. 이인휘 소설가가 지은 소설 내 생의 적들에서는 상현이 야심한 밤에 학생회로 주인공을 무작정 끌고 가면서 시작된다. 그의 첫사랑 연희와의 만남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다. 낭만적이라기보다는 되려 여러모로 심신이 불편하고 불쾌했던 그 만남들이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주인공 김광훈의 삶을 바꾼다. 소설가의 일생을 잘 아는 사람들은 소설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소설이 맞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는다. 전광석화같은 그 스침이 세상을 바꾼다. 소설가는 원고지 360매를 일 주일 만에 썼다고 하는데, 그만큼 놀라운 가독성을 보이면서 재미도 있다. 형사가 등장하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무협을 읽는 듯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특히 강제 징집된 군대에서 제대하고 나오는 길에 검은 자동차가 서 있을 때... ㅋㅋㅋ 그러나 스토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게 놀라울 따름이다.
어디 계십니까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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