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배우 스티브 매퀸이 열연한 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자유를 찾아 숱한 탈옥과 재수감을 반복하던 빠삐용, 그가 어느 날 감옥 안에서 악몽을 꾼다.
사막 한가운데서 죄수복을 입은 그가 여러 배심원들 앞에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는 씬이다. 그러나 결국 '유죄' 판결을 받는다. 죄목은 '인생을 낭비한 죄'였다.
결국 빠삐용은 고개를 떨군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i'm guilty."
...
"사흘만 걸을 수 있다면?"
아, 이런 제목이...
제목이 주는 절실함과 진정성에 이끌려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리고 제목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몸이 '매우' 불편한 희귀난치병과 투병중인 어느 청년의 이야기였다.
처음엔 그저 의지가 굳고 대견한 생각을 가진 전신장애 청년의 육필수기 정도로 여겼고, 그런 류의 여느 책에서 느낄 법한 감동만 받으면 되리라고 생각했다.
20개월짜리 아들 하나와 아내를 둔 신체건강한 평범한 대한민국 가장은 그 정도만 해줘도 '장애청년의 육필수기'에 대한 예의와 찬사를, 그리고 건강해서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표하기에 충분하다고 말이다. 게다가 나는 그의 책을 사준 독자이니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집안에서 늘 골칫거리로 27세가 되는 지금까지 어른들의 혀를 차게 만들어 온 사촌동생에게 "너 임마, 이거 한 번 읽어봐라."면서 던져줄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뭔가 단단히 착각을 했었다. 이 책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는 장애인과 그들의 삶, 마비된 그들의 육신 속에서 뜨겁게 불타오르는 건강한 영혼의 에너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건강하다고, 행복하다고, 지금까지 썩 잘 살아왔다고 여겼던 내 삶에 대해서 난 잘 모르고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운 그가 무려 17만자에 이르는 원고를 썼다는 것, 자기 생애의 4분의 1이나 할애하면서 이 책을 써야만 했던 이유와 그 절실하고도 뜨거운 열정을 보면서 나는 머리를 숙여 부끄러운 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막연한 미래를 내려다 보았다.
책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주인공 청년은 28살을 전후로 저승사람이 된다. 나라면 '실질적 사형선고'를 받은 그날 이후로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이 청년만큼 뜨겁게 그리고 가치와 희망으로 가득찬 생을 꾸려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주인공 청년은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좌절과 고통'이 무거운 '먹'이라면, '집념과 도전'은 날랜 '붓'이다. 이 둘이 어우러져 그려나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화가 날 지경이다. 난 언제나 내 인생의 후회스러운 대목에서 남의 탓만 하고 있었으니까... 난 내게 주어진 처지와 삶의 불운함과 타고난 운명을 탓하며 정작 내가 무엇을, 왜 해야하는 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못했기 때문에...
배우 김혜자 씨 말대로 나도 이 청년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미안하다고..
당신의 염원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고...
내게 주어진 자유와 건강한 육신, 그 시간들을 결코 헛되이 써버리지 않겠노라고.... [인상깊은구절] 만약 내가 3일만 걸을 수 있다면 스스로 옷을 입고, 세수를 하고, 밤을 꼬박 새는 한이 있더라도 어머니 대신 셋째형의 몸을 돌려줄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려 편안한 잠을 주무시게 해드리겠다. 내가 3일만 걸을 수 있다면 어머니의 얄팍한 어깨에서 무거운 물통을 내려 내 어깨에 지겠다. 더 이상 어머니가 피곤하지 않게 해드리겠다. 내가 3일만 걸을 수 있다면 어머니 대신 남의 집 일을 할 것이다. 어머니가 다른 집에서 품앗이를 하거나 그 작은 몸으로 끝도 보이지 않는 밭에서 일하시지 않게 하겠다. 어머니의 손에서 호미를 넘겨받고 시원한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게 해드리겠다. 내가 3일만 걸을 수 있다면 어머니가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을 때 분연히 일어설 것이다. 어머니를 건장한 내 몸 뒤에 세우고 그 악인에게 호통을 칠 것이다. 그래도 그 악인이 막무가내로 모욕적인 말을 하면 두 주먹을 날릴 것이다. 그래서 타인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깨우쳐주고, 어머니가 또 눈물 흘리는 일이 없게 할 것이다. 내가 3일만 걸을 수 있다면 전력을 다해 일하고 돈을 벌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장 드시고 싶어하면서도 차마 못 사시는 바나나를 사드리고 행복하게 모실 것이다. 내가 3일만 걸을 수 있다면 그 동안 부모님과 다른 가족에게 진 모든 빚을 돌려드리고 싶다. 내가 3일만 걸을 수 있다면….빠삐용> |
| 우보천리(牛步千里) -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라는 뜻입니다. 이와 어울리는 두 권의 책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제목 그대로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라는 (무함마드 깐수 교수로 알려진) 정수일씨의 옥중 편지 모음이고, 또 하나는 《사흘만 걸을 수 있다면》이라는 중국의 근육병 환자의 수필을 번역한 책입니다.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감옥에서 우보천리하듯 학문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매진하는 모습을 보며 참 많이 반성합니다. 선천적인 근육병으로 20여년을 방안에서만 지내고 있는, 그리하여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를 넘기지 못할 것을 스스로 아는 청년의 피땀으로 쓴 수필을 보면서 숙연한 마음으로 나를 반성합니다. 조금 전《사흘만 걸을 수 있다면》을 다 보았습니다. 아~ 서평을 어찌 써야할지 막막합니다. 점점 마비되어가는 손으로 매일매일 한 자 한 자 힘겹게 써나간, 그 정성으로 6년 간의 처절한 인내로 완성한 이 책을 어떻게 評할 수 있을지, 그럴 자격이나 있는지... 저자 장윈청(張雲成)은 3살 때부터 ‘진행성 근이영양증’이라는 불치병에 맞서 22년간 투병 중입니다. 진행성 근이영양증은 본래 근육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유전성 질병입니다. 선천적인 유전적 결함으로 인한 세포막의 기능 이상으로 근원섬유가 파열, 괴사됨으로써 발생하는 근육질병인데,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인류 5대 불치병 가운데 하나입니다. 형제가 같이 걸리기도 하며 몸 전체 근육이 점점 괴사되다가 폐 부위 근육의 위축으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급기야 죽음에 이르고 맙니다. 대개의 환자는 청소년기를 넘기지 못합니다. 저자 장윈청은 스스로 28살을 넘기지 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문판 책이 완성된 것이 2002년이니, 올해로 정확하게 24년간 투병중입니다. 그의 셋째 형도 동일한 병으로 27년간 투병중입니다. 지금쯤 살아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책 속의 내용으로 미루어짐작컨데 아마 지금쯤 살아있다고 해도 상당히 힘겨운 상태일 것입니다. 눈앞에서 생을 마감해가는 형을 보면서 - 그것이 자신의 미래이기도 한 이 청년은, 그래도 "난 반드시 현실과 맞서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병은 이미 걸린 것이니 울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남은 생을 허송세월하느니 차라리 힘껏 싸우리라! 내 이 싸움이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할지라도 난 진심으로 그것을 원한다. 왜냐하면 그건 어쨌든 헛되이 시간을 내버리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환자에 대한 동정심을 넘어, 숙연함을 넘어, 고귀함과 존경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알량한 동정심은 이 책 중반을 넘어서면서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1996년 6월, 헤이룽쟝 방송국 신문(黑龍江廣播電視報)의 편집자 장다눠(張大諾)가 장윈청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습니다. 장다눠는 곧 답장을 보냈고, 이 편지가 장윈청으로 하여금 운명을 바꾸리만치 강력한 힘을 줍니다. 책 중반쯤 장윈청은 장다눠의 고마움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겐가 인생의 항로를 바꿀만큼의 큰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장윈청은 비록 스스로 삶의 종착역으로 다가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몇 번을 말합니다. 누구에겐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가장 가슴아파합니다. 누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장윈청은 절망에 절망을 거듭합니다. 언제부턴가 그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 됩니다. 작가가 되어 누구에겐가 그의 글이 도움이 되고, 그 글로 인해 수입도 생겨 가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것 - 장윈청이 이런 '상상'을 하는 장면이 책 곳곳에 나옵니다. 그만큼 그는 간절했으며 결국 그는 그 꿈을 이룹니다. 6년 여의 시간 동안 - 저 같으면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든 그 순간들을 처절하리만치 강한 집념으로 17만자에 달하는 육필 원고를 작성합니다. 책 속에서는 상상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그 장면 - 책을 출간하고 인세를 받는, 그 꿈의 결실을 저는 읽었습니다. 제가 본 것은 그의 수필이 아니라 그의 삶 그 자체였으며, 그것은 곧 세상에 대한 일갈(一喝)이자 언중유언(言中有言)이었습니다. 장윈청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윈청 - 당신은 정말로 큰 일을 해냈습니다. |
|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을 찾아 의미있는 인생을 남기겠다는 결심을, 오랜 동안 이어간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줄 안다.
어린 나이에 불치병을 얻어 스스로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고, 그가 할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삶의 의미인 글쓰기조차 마비되어 가는 손가락에 의해 언제 그만둘 수 밖에 없을지 모른다. 도대체 이 청년은 어떤 삶에 대한 시각을 갖고 있길래,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건강한 영혼을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
10분에 한 글자, 하루에 77자를 써서 6년 동안 17만자에 달하는 육필원고를 써낸 그의 글들에 압축되어 있을 인생의 깨달음이 참으로 무겁게 느껴진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든 뭐든, 부디 놀라운 무언가의 힘으로 그가 장애를 극복하고 단 사흘이 아니라, 남은 평생을 남들처럼 걸어다닐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를 바란다. |
| 나는 왜 책만 읽으면 우는 것일까? 가끔 펑펑 울고 싶을 때는 이런 책이 참 마음에 든다. 세살 때 부터 근이영양증이라는 아주 희귀한 병에 걸린 중국의 청년이 쓴 수필 형식의 일기이다. 중국의 이 청년을 몇 년 전에 텔레비젼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장윈청의 셋째 형도 같은 병을 앓고 있는데 셋째 형은 더 심각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장윈청의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상과 세상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생각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의 나이가 올해로 27살이다. 장윈청은 28세 까지만 살 수 있다고 한다. 1자 쓰는데 6분, 하루에 77자를 써서 6년 동안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장윈청은 작가가 되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혼자서 독학으로 공부를 했으며 학교에는 단 하루만 다녔다. 그리고 10년 동안이나 방에 갇혀 지내는 신세이다 보니 세상에 대한 동경은 떨쳐버릴 수 없는 장윈청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냥 단지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싶고, 하늘을 보고 싶으며, 넓은 들을 걷고 싶은 일인것 같다. 남들 처럼 열심히 땀 흘리는 댓가를 맛보고 싶은 것이다. 휴일이라고 뒹굴며 책을 읽다가 작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