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로에 비하면 그래도 나는 꽤 부지런한 편이다. 적어도 하루종일 소파에 누워 오늘 해야 했을 일들의 목록을 작성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아침이 오면 나의 부지런함은 더욱 빛을 발한다. 하로처럼 일어나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면 자는 속도를 늦추는 일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게는 직장이 있기 때문이며 게다가 아주 가끔씩은 술과 담배에 찌든 몸을 불쌍히 여겨 뒷산에 오르는 정도의 수고는 마다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을 갖기 전에도 내게는 거의 항상 아침에 일어나 가야 할 곳이 있곤 했다. 그 곳은 꽤 오래 학교였으며, 때론 휴식을 갖기 위한 곳이었다. 이처럼 난 쉬기 위해서도 쉼을 중단해 왔다. 그러나 하로에게는 지금의 쉼이 중요하며 그 쉼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게 먼저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하로에게 ‘백수’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심지어 이 책을 번역해 출간한 출판사조차도 ‘폐인’이라고 하로를 명명한다. 하로는 그들에게 일갈한다. “아무 것도 안 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 위안한다. “지금으로선 제대로 된 계획이 없어. 하지만 지금 이대로 백 퍼센트 추진해야 해.” 그리고 깨닫는다. “나 자신에게서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은…나의 불확실성이야.” 그런 하로에게도 물론 후회가 없을 리 없다. “모든 일이 최고로 나쁘다.”면서 권태를 털어 놓는다. “벌써 오랫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점차 견디기 힘들다….” 때론 자신을 무능아로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일침도 빼놓지 않는다. “나에겐 고도의 상업적 에너지가 없어.” 그럼에도 하로는 ‘빈둥거림’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는다. 꿋꿋이 자신의 게으름을 즐긴다. 같이 살고 있는 주지(스님이 아니다. 사람 이름, 그것도 멀쩡한 여자 이름이다)가 아무리 구박하고 내쫓아도 하로는 빈틈없이 자신의 신념을 사수한다. 왜냐면 아무 것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앞만 보고 걷다가 자신이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 지 잊어버리는 신세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로가 걸어갔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어쩌면 하로는 왜 걸어야 하는 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을 게다. 솔직히 난 하로처럼 살 자신이 없다. 이미 난 십수십년 전부터 고도의 경쟁시스템을 거쳐오며 혹독하게 단련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가공할 가치체계는 이미 내 무의식까지 넓게 뿌리 내리고 있으며, 어쩌면 그 무의식을 들추어 뒤엎는 일은 내 삶의 장대한 비극 서사시의 서막을 여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지막지한 경쟁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몸과 마음에 뿌리 박힌 ‘근로 (勤勞) ’에 대한 외경심은 나를 하로처럼 살게 놔두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같잖은 ‘공명심’도 내 몸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열매가 있나니.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질문은 해야겠다. 나는 왜 일을 할까? 왜 아침마다 수고로이 일어나 숙취를 털어내고 지옥철에서 부딪끼며 회사까지 굴러 오는가. 그 회사에선 어떤가. 거의 매일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 물론 확실한 답은 하나 있다. (돈). 그러나 이 대답을 하려고 저 질문을 하는 건 아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나는 왜 일을 하는가? 모르지, 어쩌면 그 답을 찾기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러나 적어도 ‘일 하지 않기 위해’ 일 하는 것이라면 그건 좀 슬픈 사태일 것 같다. 마치 쉬기 위해 쉼을 중단하는 것처럼. 이런 나를 위해 하로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일을 하면 시간이 흘러가도 그걸 느끼지 못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시간은 흐르지만 그걸 아프게 느끼게 된다. 돈이 아니라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일을 더 많이 할 텐데….” |
| 기발하고, 너무나도 어이없는, 그러나 한번 읽기 시작하면 단숨에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는 정말로 폐인을 만들어 버릴 것같은 그런 책이다. 주인공의 기지와 재치 넘치는 한마디 한마디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책에는 철학이 있다. 이책에는 해학이 있다. 이책에는 인생이 있다. 이책에는 자아가 있다. 그리고 이책에는 희망이 있다. 낙서같은 그림에 어린애같은 말풍선들이 오히려 신선한 재미를 준다.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쉴 수 있는 여유를, 쉬고 있는 사람에게는 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주는 책. 책꽂이 한쪽에 끼워놓고, 힘들거나 심심할때 꺼내 읽으면 새로운 활력이 생길 것 같은 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 가까와 오면 자는 속도를 늦춘다." "무슨 일하니? 피할 수 있는 한 피하지"..... 나머지는 직접 행복한 폐인을 만나 확인해 보자 |
| 서점 가서 열린책들 출판사 책이 전시되어 있는 곳에 가면 항상 이 책이 보였다.. 만화책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훓터보고 말았는데... 주말에 약속 장소에 가니 바로 옆이 서점이였다.. 그래서 후다닥 서점에 들어가서 책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신나게 구경하다가 이 책을 떨러보게 되었는데.. 마침 시간도 남고.. 책 살 여유는 없어서 서서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말 나의 그림의 수준과 비슷한(사람만.. 그러나 절대 비유할 수 없는...) 동그라마 하나에 선 다섯개에 사람의 형상을 한 주인공이 친숙했다... 그 외의 인물들은 거기서 조금 조미료가 가미된(?) 사람들이 였다.. 그렇게 폐인의 세게가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부담이 없었고.. 재치가 있었고..솔직하고...정서가 조금 다를뿐 친숙했다.. 그렇게 읽고 있는데 약속시간이 되어서 읽다가 후다닥 서점을 나왔다.. 그런데 집에 가서도 그 세계를 끝까지 보고 싶어졌다.. 마침 그날 문화상품권이 생겨서 그 책도 읽을겸.. 책도 살겸해서 그 서점을 갔다.. 가자마자 마저 읽다 만 부분처럼 읽었는데.. 순식간에 .. 어제의 느낌 그대로 다 읽어버렸다. 폐인의 하루가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읽고 나니 폐인의 하루 앞에 왜 ''행복한''이 붙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폐인은 폐인이지만.. 솔직하게 자기 방식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주인공이 였기 때문에 ''행복한''이 붙지 않았나 싶다.. 내가 폐인이라면 폐인이라는.. 그 단어에서의 경각심 때문에 우울증에 빠졌을 것이다... 주인공이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보다는 솔직했던 것 같다... 잠시 다른 세계에 들어갔다 온 느낌이였지만 좋았다.. 좋아하는 책..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서점에서 서서 보거나 다른 공간에서 머무르면서 보기보단.. 사서... 빌려서 보는 편인데 그나마 가벼웠던 책의 형식 때문에 서점에서 서서 본 최초의 책이 되었다.. 서서봐서 내내 다리가 아파서 아동서적 코너의 쭈구리고 앉아 책을 보는 수많은 아이들 틈에 끼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다음부턴 그들 틈에 껴서 봐야겠다... 정말 다리 아팠다... ^^ |
| 도서관에서 박완서의 책을 찾다가 발견한 녀석. 주황색 표지에 왠지 귀여운 그림 때문에 선택했는데, 나한테는 그다지 맞지 않은 책이었던 듯 싶다. 그림 알아보는 것도 힘들었고, 말 이해하는 것도 힘들었고, 그렇다고 특별히 재미있지도 않고, 뭐랄까, 그냥 끝을 보기 위해서 읽고 있는 느낌으로 끝까지 읽었다. 중간중간에 한번씩 아차 싶은 대사들이 맘에 들기는 했는데… 빈둥거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그 아이러니가 참 헷갈리더라. 사실은 이 책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책인지 나는 전혀 모르겠다. 오늘 하루종일 정신이 나가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방금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쓰여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여하튼, 중요한 건, 나한테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는 점이겠지. 근데 예스24에서 리뷰를 보니, 좋았다는 반응이 많다. 좋았을까나, 그 사람들에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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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엔케의 카툰집... 카툰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성의가 없는 그림인 것 같은데 그래도 글 보다는 그림이 많으니 카툰집이라고 불러야 하는건지... 그것 이외에도 읽다보면 힘이 빠진다... 과연 이런 폐인이 행복한 것인지도 의문이고.... 뭐, 이런 책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