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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노예]영웅이자 존재의 의미였던 아버지를 찾아서!
"[밤의 노예]영웅이자 존재의 의미였던 아버지를 찾아서!" 내용보기
[밤의 노예]영웅이자 존재의 의미였던 아버지를 찾아서!     1986년에 프랑스 최대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최대 문학상에 걸맞은 표현과 묘사가 소설 내내 소용들이 치듯 역동적으로 굽이쳐 흐른다.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현실과 대상을 감각적으로 꼼꼼히 묘사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자의식과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데…….
"[밤의 노예]영웅이자 존재의 의미였던 아버지를 찾아서!" 내용보기

[밤의 노예]영웅이자 존재의 의미였던 아버지를 찾아서!

 

 

1986년에 프랑스 최대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최대 문학상에 걸맞은 표현과 묘사가 소설 내내 소용들이 치듯 역동적으로 굽이쳐 흐른다.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현실과 대상을 감각적으로 꼼꼼히 묘사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자의식과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데…….

읽을수록 놀랍다. 그리고 편안하고 아름답게 읽힌다.

 

 

노트르담 사원은 향수를, 생-샤벨 성당은 마음의 상처를, 루브르 박물관은 헛되이 끝난 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

느릿느릿 흐르는 강, 물기 어린 피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햇살, 강을 가르며 지나가는 물새들, 덧없음에 놀라는 인간 존재와 인간 행동의 발자취, 이것들만 보면 내 가슴속에서는 기계적 시간이 내면의 시간으로 바뀌고 만다. (책에서)

 

외부 세계와 자아의식의 충돌을 시적 문체로 소화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는데 프랑스어로 읽을 수 있다면 더욱 감동적이지 않을까.

 

지극히 평범한 소년 필립 아르쉐는 엄마를 제외하면 자신의 영역에 들어 있는 사람이 없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고 폴라 로첸을 2년 째 만나는 정도다.

 

필립은 가끔씩 신경질적이고 충동적이며 난폭해지는 증세가 있다. 분노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영웅의 탈을 쓰고 있는 아버지가 마치 똥을 싸버리듯 떠나자 모자의 삶은 엉망이 되어 버린다. 미군이 파리에 입성하기 전, 편지 한 장과 넥타이공장을 엄마에게 넘기며 떠나버린 아빠. 그가 숨어 버린 곳은 어디일까.

 

수줍고 얌전하던 성격에서 점차 심약하고 무능해지는 필립.

엄마도 다정다감하지도 않고 씩씩하고 거침없는 성격이 아니다. 그녀는 아들인 필립보다 더 심약하고 무능하거나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예민한 성격이다.

어둡고 우울하고 칙칙한 분위기 속에서 자란 필립에게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은 애시당초 무리였다. 비정은 아니지만 늘 무정한 엄마였으니까.

 

필립이 갖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신중함과 멋을 동시에 지닌 어둠의 투사였고 자기 목숨까지 걸고 싸우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모두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우수한 정보원이자 영웅적인 레지스탕스였다. 도대체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 걸까.

 

우연히 들른 폴라 로첸의 집에서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고, 로첸의 부모에게서 아버지의 주소를 받게 된다.

아버지의 옛 친구 딸이 폴라 로첸이라니!

 

필립은 폴라 로첸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 나서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찾게 된 아버지는 변태적이고 음탕한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무엇이 그를 빛나는 레지스탕스 영웅에서 초라하고 비열한 노인으로 바꿔 버린 걸까.

필립은 아버지의 비밀스런 추태를 보며 뿌리가 뽑히는 나무처럼 절규하며 쓰러진다.

 

처참하고 지긋한 전쟁과 유형 같은 떠돌이 신세가 그를 두려움과 증오와 타락의 세계로 인도해서 일까.

필립은 상상불가의 모습으로 추락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삶의 허무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로첸과도 헤어지게 된다.

 

 

뿌리 깊던 나무가 광풍에 쓰러지는 것처럼 희망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기 존재 조차 허무해짐을 느끼게 된다.

남자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근원일 터.

누구에게나 아버지의 존재는 든든한 버팀목일 텐데, 존재의 근원에 찾아 헤매는 필립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거친 강물 같고 허무한 물줄기였다.

 

모두가 전쟁 탓 인걸까.

하긴, 전쟁은 육체적으로도 폐허를 만들지만 정신적으로도 피폐하게 흔적을 남기니까.

전쟁은 가족이란 울타리를 철저히 파괴하며 우리의 운명을 좌우함을 생각하게 한다.

전쟁 없는 세상이 되길 빌며.....

 

 

**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a******7 2013.10.23.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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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과거에 살던 이의 현재, 밤의 노예
"무기력한 과거에 살던 이의 현재, 밤의 노예" 내용보기
밤의 노예 프랑스 최대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의 1986년도 수상작. 외부 세계와 자아의식의 충돌을 시적 문체로 소화해냄으로써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밤의 노예]는 언뜻 아리아드네의 미궁 신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심약하고 무능한 주인공 필립 아르쉐는 아리아드네를 연상시키는 폴라 로첸의 인도에 따라 C 라는 도시에 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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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노예 

 

 

 

밤의 노예

프랑스 최대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의 1986년도 수상작. 외부 세계와 자아의식의 충돌을 시적 문체로 소화해냄으로써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
밤의 노예]는 언뜻 아리아드네의 미궁 신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심약하고 무능한 주인공 필립 아르쉐는 아리아드네를 연상시키는 폴라 로첸의 인도에 따라 C 라는 도시에 머무르게 되며, 거기서 아버지를 찾아갈 결심을 한다. 그러나 결국 그가 찾아낸 아버지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음탕한 노인으로 변해 있고 여기서 그의 탐색은 허무하게 끝이 난다. 그가 영웅이라고 상상했던 아버지에게로 이어졌던 실타래의 흔적은 사라져버리고 애인 역시 바닷가에 버려진다.

이 작품 전체의 공간적 배경을 이루고 있는 센 강은 바슐라르의 물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주인공의 무의식의 세계는 바슐라르가 말한부드러운 물로 이어진다. 모성적 상상력속에는 증오하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잠재해 있어서 주인공의 물에 대한 무의식적 갈망을 지배한다. 한편 주인공은 베르그송이 역설한 순수 지속의 시간, 즉 자기 자신을 자신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자신을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시간 속에서 살려고 하지만, 그는 구체적이고 수학적인 시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주인공의 탐색은 출구 없는 방에 갇힌 채 끊임없이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아내야 하는 인간의 보편적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

 

[YES24 제공]

 

아르's Review

 

표지를 보는 순간 뭉크의 절규가 떠올랐다. 참을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그려 놓은 것이 뭉크의 절규였다면 이 표지 속 주인공은 절규를 하고 난 후 그림 속 주인공이 처연하게 남아 있는 듯한 모습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이 소설 속의 필립이 과거 속에만 얽매여 있던 자신의 현재를 인지하고 난 바로 직후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에 덤덤한, 아니 무심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필립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저 무엇 하나 특이한 것 없는, 자신과는 상관 없는 또 다른 세계일 뿐이다. 현재 그의 눈앞에 비쳐지는 것들은 그저 타인의 것들일 뿐이며 자신의 삶마저도 타인의 것인 냥 일관된 무관심으로 방치하는 그를 보면서 필립의 곁에 다가서기만 해도 그 자욱한 무기력증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저런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과 에펠탑의 철 구조물을 기듯 올라갔다가 굴러떨어지듯 내려오는 여행객들은 단 1분도 허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제멋대로인 듯한 무기력한 걸음걸이란 사실 다른 사람들 눈을 속이려는 것에 불과하다. 아니다, 곧장 다리 끝까지 걸어가서 지하 철로가 파놓은 시멘트와 돌과 추철의 거무스름한 낭떠러지에 닿아야 한다. –본문

 그의 무심하면서도 신경질적인 이 성격은 아마도 그의 어머니와의 서먹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모자 사이라고 하기에는 그 관계의 끈은 너무나도 헐거웠으며 그 둘간에는 그 어떠한 유대관계도 살펴볼 수가 없다. 어머니를 제외하면 필립의 삶에 공존하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 단정짓지만 그 유일한 자신의 삶 속에 드리운 어머니와의 시간들은 타인과의 시간보다도 버겁기만 하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자신의 아들을 보듬어 줄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아닌 심리적인 여유에서 말이다. 혹자는 모성애라는 것은 한 아이의 엄마라면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모성애라는 것이 부성애로부터 유전된다는 과학의 근거에 비추어 보았을 때, 필립의 어머니는 그의 부모에게서 사랑 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 조차도 누리지 못하였기에 그녀는 어디에서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렇기에 필립은 자신의 어머니의 말마따나 마치 똥을 싸 지르듯 떠나 버린아버지에 대해서 원망 보다는 오히려 이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자를 위해서 넥타이 공장을 남겨 놓고 독신으로서 성품이 올바르다고 생각되는토니 소앙을 남기고 떠난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과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떠난 것이라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정상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예술가나 학자, 창작가가 그들의 허약한 신경조직 때문에 고통을 받고 미치광이나 기괴한 인물로 통한다면 예술이나 창작이란 그들에게 알리바이로 쓰인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한다. (중략) 나로 말하자면 뭘 상상하거나 내 생각에 어떤 형태를 부여하는 데는 전혀 무능하기 때문에 감정 또한 어쩔 수 없이 메마르게 되었다. 그림 하나 감상하는 데도 무지막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으니 그 결과가 어떠했겠는가? –본문

 어찌되었건 그의 아버지의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아버지가 남기고 간 방직 공장 때문에 그들은 별 걱정 없이 살 수는 있었지만 그들의 삶이 별 걱정 없이 영위 될수록 오히려 필립의 삶은 좀먹고 있었다. 열정적으로,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지 않더라고 그의 삶은 그런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늘, 과거의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현재 마흔 살이 된 남자이지만, 그의 자아는 여전히 어린 아이의 모습 그대로인 듯 했다.

 그러한 그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은 바로 폴라를 만나서부터이다. 모든 것이 예전의 고착상태 그대로 있는 그에게 있어 2년 째 만남을 이어온 폴라와의 관계는 그에게 새로운 통로가 되어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에게 덩그러니 남겨진 방직 공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물음을, 모든 사람이 칭찬해 맞이 않던 전쟁 속 영웅이자 레지스탕스였던 그의 아버지에게 이제 묻고자 하는 것이다.

 주변 이들의 이야기도 있었겠지만, 누구나 그러지 않았을까? 오랫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해서, 최악의 상황에 대해 상상하기 보다는 어디선가 편안하면서도 안정된, 자신의 기억 속의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현재도 살고 계실 거란 바람. 그리하여 때론 내가 재벌 가의 잃어버린 자손일 지도 모른다는 얼토당토않은 공상의 나래에 빠져보았을 것이다.

마흔이라는 세월 속에서 그는 이러한 공상 속에 살고 있었을 게다. 모든 것이 완벽할 것만 같은 그의 지지기반이 있기에 필립은 더 이상 진보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도 별 문제 없이 지내왔다. 그가 굳건히 믿었던 그의 과거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아버지를 마주하는, 아니 엄청난 비용을 주고서 그가 마주한 것은 초라하다 못해 남루하고 추한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은 예상했던 대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 속 소설이 아니다. 그야말로 어른들을 위한 잔혹한 이야기인데, 필립이 마주했던 그 현재의 모습에서 덜컥하니 머물러 있는 것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에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었던 폴리의 말처럼, 과거가 아닌 현재를 마주하고 오늘을 살아야 할 것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필립이 그의 아버지를 본 그 자리에 멈춰 있다면, 또 다시 그는 그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할 테니 말이다

아르's 추천목록

 

미국의 1920년대를 대표하는 문학으로 꼽히는 위대한 개츠비는 제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미국의 사회상을 실감나게 묘사한 수작이다.

미국 중서부 노스다코다 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개츠비는 대단한 야심가로 입신 출세를 꿈꾼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대위로 임관되어 참전하였고, 테일러 기지에 주둔하던 중 교양 있는 상류층 여인 데이지 페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그는 해외로 파병되었고, 종전 후 한시라도 빨리 귀향하려고 했으나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옥스퍼드로 파견된다. 개츠비가 돌아오지 않아 초조해하던 데이지는 한시바삐 생활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카고 출신의 부호와 결혼하는데.

기존의 소설에서 위대한 개츠비가 단순히 '낭만적 러브 스토리'에 그치지 않고 세대와 지역을 뛰어넘은 고전이 된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으며 작품의 배경과 저자의 의도를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자세한 해설과 다양한 주석을 덧붙여 60여년간 반복된 수많은 오류들을 바로 잡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 

 

 

 

독서 기간 : 2013.10.26~10.29

by 아르

 

 



p********1 2013.10.30.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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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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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된 생각이란 있을 수 없다.  1억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1억개의 인생, 일억개의 사상 , 일억개의 욕망이 있을테니까."   이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이, 흔히 입버릇 처럼 말하는 그의 인생철학?(믿음) 중 하나다.  이 말은 물론, 단어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교훈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를 조금만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면, 의외로 무궁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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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된 생각이란 있을 수 없다.  1억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1억개의 인생, 일억개의 사상

, 일억개의 욕망이 있을테니까."

 

이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이, 흔히 입버릇 처럼 말하는 그의 인생철학?(믿음)

중 하나다.  이 말은 물론, 단어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교훈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를 조금만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면, 의외로 무궁무진한 추론거리를 가져다 준다.  자... 그럼 이

책을 중심으로, 그 가치를 적용시켜 보면 아떠할까?  내가 생각으로는 이러한 추론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인생은 언듯 일관성 있고 '단순'해 보이지만, 의외로 수 많은 갈림길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고요하게 안정된 '평화로운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언듯 단순하고 일관성있는 인생을 살

아간다.  내가 속한 한국의 사회상 역시, 인간의 최대의 관심사란 '건강' '취업' '고임금' '복지' 

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표현이 가능 할 정도이다.   그러나 그 '단순해 보이는 사회' 속에서도, 인

간은 아둥바둥 죽을 힘을 대하서 살아가고, 때로는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절망하기도

한다.   괜히 사람이 살면서 "어찌 하고싶은 것만 하면서 살랴.." 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때와 장

소에 따라서, 또 주어진 환경에 의해서, 사람은 보이지 않는 '운명'이라는 존재에 의해서 무거운

시련과, 또 행복한 행운을 부여 받는다. 

 

느닫없이 교통사고로 양 부모를 모두 잃은 사람, 길을 걷다가 우연히 고액의 지폐를 주운사람...

이 모두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의 운명에 의해서, 각자 절망과, 기쁨을 맛보는 순간을 맞

이한다.    이렇듯 사람의 인생은 착실하게 노력만으로 구어지는 존재가 아니며, 이러

한 사실은 당연히 '인생의 베테랑'인 우리들의 뇌리에 깊숙히 박힌 상식중 하나다.  그렇기에, 우

리는 사람의 삶을 각색한 '소설'의 세상속에서, 이와같은 비정한 세상사에서 조금이나마 떨어져

'휴식'을 취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해피앤딩' '훈훈한 이야기' '감성의 이야기'

등등 우리는 이러한 '힐링'의 이야기들을 현실성이 없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읽고 접하고 있

지 않은가?

 

그러나 불과 20~30년전만 해도, '읽히는 문학' 이란 그러한 부류의 것이 아니였던 모양이다.  예

를 들어'프랑스 콩쿠르상'을 수상한 이 책의 내용을 보자, 이 책의 내용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전쟁후의 프랑스'의 모습을 다룬다.  때문에 소설에 등장하는 소년 아르쉐는 본질적으로 우리와

는 다른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한다.   그는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젊은인생을 희생한

어머니와, 가족보다 프랑스라는 국가의 내일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한 레지스탕스 영웅의 아버

지를 두었다.    때문에 그는 우리들이 평범하다고 믿는 안정된 나날을 보내지 못했고, 오히려 어

머니의 무심함과, 집을 나가 살아있는지도 모를 기억없는 아버지를 문득 떠올리는 비운한 성장

기를 보냈다.

 

그 때문인가? 덕분에 아르쉐는 친 가족인 어머니와도, 가족의 정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이 없고,

또 어머니도 '의무의 틀'에 머무르며,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다가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아르쉐에게 어머니는 모성과 사랑의 상징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증오와 미움의 대상도 아

니다.  그에게 어머니란 어머니라는 명찰을 단 '중년의 여인' 그리고 전쟁에 의해서 인간성이무

너진 '동정받아 마땅한 자아'에 불과하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를 비꼬고, 동정하고, 무시하며

살아가지만, 의외로 그들도 '가족이라' (어떠한 '여행'의 상승효과로 인해서) 드물게 서로의 마음

을 교환하는 작은 이벤트도 벌이는 인간다움을 보여주기도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은 이벤트' 일 뿐, 그들의 일생은 언제나 무감각과 무관심의 연속

이다.  그러나 그러던중 소년 아르쉐는 점차 '여인'이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그녀들을 통해서, 인

간의 내면의 아름다움과, 지금껏 잊었던 그리움 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자유를 누린다.  그는

그 해방된 자유행동중 하나로 '자신의 아버지'를 찾으려는 시도를 한다.  그 당시 그에게 있어서

, 노력없이 상속받은 '상당한 규모의 공장' 의 존재, '아버지를 찾기위해 어떤 윤락녀에게 건낸

'일만 프랑'의 가치란, 어디까지나 아버지를 찾기위서라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용하는 부

수적인 가치에 불과하다.

 

비록 가족을 버렸지만, 그 때문에 불운하고 무미건조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그는 아버지를 미

워한 적이 없다.   프랑스의 영웅, 레지스탕스의 영웅, 그렇게 아버지를 기억하는 무수한 사람들

을 만나면서, 아르쉐는 이미 아버지의 무심함을 용서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의 눈앞

에 드러난 아버지의 모습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였다.  아니..정확하게 말하

자면, 그는 전쟁에 의해서 망가진 불쌍한 모습이 아니였다.    그가 만난 아버지의 모습은 이미

명성과, 재물, 그리고 변태적인 성행위에 취한 타락한 영혼 그 자체였다.

 

그동안 간직해온 마지막 인간의 감정... 그것이 철저하게 배반당하는 순간.   그 순간을 접하기

위해서, 주인공은 일만 프랑이라는 값비싼 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해피앤딩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인공인 그가 철처하게 망가지는 배드 앤딩도 없다.    그는 분명 아버지의 존재

에 실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당신의 아들입니다.' 라고 앞으로 나서지도 않았을 것

이다.   그는 그저 실망의 마음을 가슴에 안고, 무미전조한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그 어느일

이 일어나도,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내일이라는 삶이 찾아온다.

q*******a 2013.10.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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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노예 [Valet de Nuit (1986)] - 미셸 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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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 1. 전쟁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 전쟁과 아버지라는 두 가지 키워드는 지난달 고블린에서 읽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과 겹친다. 하지만 두 작품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다르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박경리 선생이 말씀하신 삶(열림)과 죽음(닫힘)이라는 기준으로 정확하게 분류된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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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

 

1. 전쟁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

 

전쟁과 아버지라는 두 가지 키워드는 지난달 고블린에서 읽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과 겹친다. 하지만 두 작품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다르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박경리 선생이 말씀하신 삶(열림)과 죽음(닫힘)이라는 기준으로 정확하게 분류된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열려있다. 이 소설에서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는 전쟁의 상처로 인해 자식을 두고 떠나갔다. 주인공의 가족에게는 아버지로서 책임지지 못한 후회가. 아들로서 아버지를 부르지 못했다는 후회가 남아있다. 그리곤 그들은 깨닫는다. 엄청나게 시끄러운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것은 믿을 수 없게 가까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이 깨달음에서 중요한 것은 후회를 더는 후회로 남기지 않으려는 그들의 의지였다. 

  

반면. 미셸 오스트의 <밤의 노예>는 닫혀있다. 이 작품의 아버지 역시 자식을 떠나간다. 하지만 그들에게 후회라는 감정은 보이질 않는다. 프랑스의 독립을 위해 레지스탕스로 전쟁에 참여했던 아르쉐의 훌륭한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후. 가족에게 자신의 재산을 모두 넘겨주고, 그것을 관리할 대리인까지 보내주었으니 이제 더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159. "당신들은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거요.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결과가 결국 어떤 불행으로 나타났는지를 보게 되었지만!" 

 

어머니는 전쟁 동안 자유를 쫓아 스페인으로 가는 도중에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런 아픔을 가진 어머니의 보호막 아래에서 자란 아르쉐는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강요당한다. 그런 상황(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의 과보호. 그리고 관리인과 어머니와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저항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밤의 노예>는 아르쉐를 둘러싸고 있는 불합리한 세계를 사물처럼 딱딱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 세계와 말랑말랑한 내면이 서로 충돌하는 모습을 격렬하게 보여준다. 남들에게 비쳐지는 겉모습만 보면 아르쉐는 무기력한 인간의 전형 그대로였지만, 그의 글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2. 밤의 노예

 

이 소설의 제목은 밤의 노예다. 제목의 의미에 관해서 생각해봤다. 밤 그리고 노예. 밤은 아마도 전쟁 후. 피폐해진 파리의 모습을 표현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그와 더불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기억까지 포함하는 의미인 듯 느껴졌다.

 

그리고 노예라는 단어. 이것은 세상을 경멸하지만, 세상이 주는 쾌락의 유혹을 끊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자조1의 의미가 담겨있지 않나 생각해봤다. 띠지의 의미심장한 내용처럼 아르쉐의 아버지는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레지스탕스를 주도한 영웅으로 기억되었었고, 실제로도 그런 기상을 간직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타락한 늙은이가 된 것이다. 한 마디로 노예같은 삶이었다. 

 

3. 전쟁 비판서

 

근접해서 보면 이 소설은 사회의 기준과 자신을 이끄는 기준이 팽팽하게 줄다리기 하는 주인공이 타락한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줄다리기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어버리는 씁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시야를 확장해보면 이 모든 씁쓸함의 원인을 전쟁이 제공했다는 것에 이르게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가. 아니 주인공 아르쉐는 그의 아버지 샤를르 에바리스트의 전쟁 때의 기억을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점은 사진 몇장으로서는 에바트리스가 겪었던 전쟁 동안의 기억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 트라우마. 이것을 어떻게 말로. 글로 설명할 수 있을까? 트라우마라고 하니 떠오르는 몇 가지 잔상은 <제노사이드>의 학도병을 사살해야만 하는 군인들. 그리고 <황색인>에서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던 군인들 정도다. 아마 샤를르 에바리스트는 독일군에게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이 저질렀던 행위에 동참했거나 아니면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인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타락하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동정을 건네본다. 

 

106 : 지네트 : "필립, 너도 알겠지만 전쟁이랑 온 도시와 나라만을 잿더미로 만드는 건 아니란다.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산 사람들까지도 파괴했지. 난 그걸 알아, 난... 

전쟁은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사람들을 만들어냈지. 샘에는 독이 흘러들었지. 톱니바퀴들은 깨졌고. 물론 아직도 기계는 움직이고 있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씩 잡음이 일어."


107 : 지네트 : "결국 우린 모두 올가미에 걸린 거야. 전쟁의 올가미에, 거짓의 올가미에. 우리 인생은 일종의 뜯어 맞추기가 된 거야. 그래, 기묘한 뜯어 맞추기가 된 거라고" 


101. 지네트 : "남자들은 천박해. 남자들은 새털처럼 가벼워. 그저 지식이나 돈, 정치 그리고 음... 그런 것만을 생각하지. (중략) 그들은 전혀 무게가 나가질 않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지. 바람과도 같아. (중략) 남 난자들이란 조그만 어려움에도 위축되는 약한 존재라고 믿고 있단다."


103. 지네트 : "넌 고약한 성격은 아냐. 약한 사람들이 그렇듯 성미가 급할 뿐이지. 내가 널 경멸한다고는 생각 마라, (중략) 난 널 꿰뚫어볼 수 있어. 자기 약점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은 불행한 거란다. 네가 날 모욕하고 위협할 때면 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 너도 마찬가지라는 걸 난 알아. 넌 어린애처럼, 갓난애처럼 약해." 


200.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나 또한 거대한 주사위의 한 칸 한 칸을 영원히 옮겨 다니는 존재다. (중략)이상하고 터무니없는 게임에서는 사람들이 더 잘 당신을 속여먹으려고 당신 손에 올려놓은 주사위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271. 인간이 바닷가에 흩어져 있었다. 매일 두 번씩, 성실한 바다는 그 쓰레기들을 핥고, 침식하고, 마멸시키고, 삼키고, 제거하지만 플라스틱과 합성수지 제품은 이겨낼 수가 없다. 바다는 그것들을 모래언덕 발치로 밀어내는데, 여기서 그 쓰레기들은 썩지 않는 얼룩덜룩한 환형을 그려내게 된다. 


348. 나는 자극을 받아야만 행동한다. 나의 행동은 솜 같은 것이다. 그 행동에는 일관성이 없고, 뚜렷한 결과도 없다. 깨어 있을 때의 내 생활과 밤에 꾸는 꿈은 거의 구분하기가 힘들다. 그런 생활이 해결책도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계속된다. 


371. 희망을 가지지 않는 인간은 이미 존재가 아니며 또한 용납될 수 없는 존재다. 희망은 존재의 심층 깊숙한 곳에 박혀 있다. 희망이라는 내밀한 존재는 한순간 환상을 품게 만들고 그러고 난 후에는 분리되어 잘게 부수어져 결국 파괴되고 만다. 거기에는 목적이 없다. 어떤 희망을 결명하게 되면 자신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k*******7 2013.11.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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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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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최대 문학상인 공쿠르상 수상작인 미셸 오스트의 밤의 노예 외부세계와 자아의식의 충돌을 시적 문체로 소화시켰다는 작품 작가의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면서 작가만의 톡특한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었어요. 이책의 주인공인 필립 아르쉐 가끔씩 신경질적인 발작을 보이면서 심약하고 무능한 모습으로 존재감없이 살아가는데 엄마와 둘이 살고 있지만 서로 침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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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최대 문학상인 공쿠르상 수상작인 미셸 오스트의 밤의 노예

외부세계와 자아의식의 충돌을 시적 문체로 소화시켰다는 작품 작가의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면서 작가만의 톡특한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었어요. 이책의 주인공인 필립 아르쉐 가끔씩 신경질적인 발작을 보이면서 심약하고 무능한 모습으로 존재감없이 살아가는데 엄마와 둘이 살고 있지만 서로 침묵으로 일관하며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해요.

영웅의 탈을 쓴 아버지는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고 넥타이공장을 남기고 대신 토니 소앙이라는 믿을만한 독심남자를 보내서 그가 공장을 관리해나가면서 힘이 되어 주네요. 아르쉐는 여공의 딸 시몬느와 사랑에 빠지지만 엄마의 심한 반대로 헤어지게 되고 그러면서 갈등을 겪게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졌어요. 그동안 공장을 관리하던 토니 소앙이 떠나게 되면서 필립 아르쉐가 경영을 맡게 될 상황이 되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폴라 로첸과 연인관계를 유지하면서 우연히 그녀의 아버지를 통해서 자신의 아버지가 있는곳을 알게 되요. 전쟁 영웅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존재를 찾기위해 간곳에서 큰 금액을 지불하고 아버지를 만나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충격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정신적 충격과 함께 삶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요.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어둡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내면의 갈등과 섬세한 묘사가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면서 흥미롭게 볼수 있었어요.

l*******7 2013.10.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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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노예 / 문예출판사] 특별한 작품세계속으로 들어가는 작품
"[밤의 노예 / 문예출판사] 특별한 작품세계속으로 들어가는 작품" 내용보기
심리적인 묘사나 표현자체가 시적이고 한 그러한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랍니다. 그러다가 우연치않게 본 책이 바로 이 '밤의노예'라는 작품이랍니다.   솔직히 책 제목만 보면은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저희신랑도 제가 읽고 있는데 옆에서 책 제목을 보더니만 뜨악하더라구요 --;; 이작품은 콩쿠르상을 수상한 특별한 작품이랍니다. 저는 일반적인 소설이나 에세이도 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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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인 묘사나 표현자체가 시적이고 한 그러한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랍니다.

그러다가 우연치않게 본 책이 바로 이 '밤의노예'라는 작품이랍니다.

 

솔직히 책 제목만 보면은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저희신랑도 제가 읽고 있는데 옆에서 책 제목을 보더니만 뜨악하더라구요 --;;

이작품은 콩쿠르상을 수상한 특별한 작품이랍니다.

저는 일반적인 소설이나 에세이도 상당히 좋아하지만

제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맘 편하게 술술 책장을 넘길 수 있기때문이구요~^^

 

또 한편으로 이러한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의 특별한 세계관이나 심리적인 묘사가 묻어나는 문체들이

특별한 세상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랍니다~~~^^

 

 

 

 

 

 

이번에 읽은 '밤의 노예'도 저는 이 작가가 표현하는 이 글들이 넘 신비스럽고도

정말 섬세하면서도 직설적으로 넘 잘표현을 하는 문구에 마음이 와 닿았답니다.

읽으면서 혼자서 자꾸만 중얼되는 문구들이 넘 많았답니다.

옆에서 저희신랑이 하는 말이

'너 도대체 누구랑 이야기하니?'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열심히 책속으로 들어갔답니다~~^^

 

 

 

 

'아니다. 나 혼자가 아니다. 저기 저 도시는 혼자 돌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물방아가 돌아가듯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똑같은 식으로 도시에서 나온다. 경박한 커다란 몸통이 숨을 쉰다. 빨펌프와 밀펌프처럼. 사람들은 갈수록 도시에서 도망친다고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는 혼자 있지 않을려고, 따뜻하게 잘 지내려고, 일하며 즐기는 그리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열정적인 수많은 멋쟁이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려고 그곳에 묘지와 납골당이 있는 집을 마련해둔다'

저는 이러한 표현들이 넘 좋답니다.

물론 밝고 유쾌하고 환한그러한걸 원하는 독자라면은 싫을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읽으면서도 계속 다시 되뇌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러한 표현들이 넘 좋답니다.

 

 

 

이 책이 좀 어둡기는 하지만 그런한 모든것을 커버할 만큼 매력있는 책이자 작품이랍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르쉐는 심약하고 무능한 의식세계를 가지고 있답니다.

그러한 의식세계를 몽환적인분위기의 시적인문체로서 이 주인공의 자기탐구적인 부부을 담아낸 작품이랍니다.

센강이라는 이 책의 공간적인 배경도 이 작품과 넘 어울리고

아버지가 영웅이기를 바라였으나 결국은 가장 비참한 모습의 아버지의 모습을 알게되어버린것도

이 모든것이 이 작가가 표현한 특별한 작품세계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물론, 읽으면서 쉬운작품은 아니었으나...

자꾸만 자꾸만 책장을 들추게되고 자꾸만 되뇌이게되는 특별한 책이었답니다...

 

 

 

 

b*****a 2013.10.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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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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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쿠르 수상작이라는 문구가 이 책을 만나게 했다.  공쿠르 상은 프랑스 최고 문학상이라고 한다.이 책의 내용은 단순한 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은 스토리보다는 간결한 시적 문체에 있다. 처음 읽을 때 보다는 두번째 읽을 때가 더 좋은 [밤의 노예] 변화를 싫어하며,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몽상가이자, 대단한 인간도 아니며, 대단한 존재가 되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 뒤죽박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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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쿠르 수상작이라는 문구가 이 책을 만나게 했다.  공쿠르 상은 프랑스 최고 문학상이라고 한다.

이 책의 내용은 단순한 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은 스토리보다는 간결한 시적 문체에 있다. 처음 읽을 때 보다는 두번째 읽을 때가 더 좋은 [밤의 노예]

 

변화를 싫어하며,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몽상가이자, 대단한 인간도 아니며, 대단한 존재가 되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데는 천부적인 소실을 가진,이제 곧 마흔이 되는 남자인 필립. 

 

그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엄마를 제외 하면 자신의 삶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그 . 그러나 엄마와의 사이는 좋지 못하다.  아빠는 2차 대전에 참가 했으니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대신 자신을 대신할 남자 토니 소앙을 보낸다. 그는 때론 남편의 역활 아빠의 역활을 하며 사업을 더욱 키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은퇴를 한다며 떠난다. 회사는 필립에게 맡기지만, 평생 아무 일도 안했고 하고 싶지도 않았던 필립은 고민에 빠진다. 

 

전쟁 이후 돌아 오지 않는 아버지를 만나 자신이 어떡해 해야 할지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필립. 그에겐 2년전에 만난 삶의 원천인 시를 쓰는 폴라가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시에 정신이 팔린 사람이 어디 있냐며 엄마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를 통해 아버지가 있었다는 주소를 알게 된다. 

 

필립은 회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를 만나기로 결심을 한다. 그러면서 전쟁 영웅인 아버지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생각하며, 아버지가 있는 주소를 찾아간다. 전쟁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때문에 집에 돌아 오지 않았는지, 오랫동안 자신에게 낮선 존재였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비밀 스러움이 가득한 건물에 들어선다.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그건 불가능 한 일이라고 한다. "그 남자가 이 집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아선 안 돼요.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 조차도" 많은 비용을 치루고 멀리서 그를 보는 걸로 합의 하고 그는 금지구역인 2층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아버지를 보게 되지만 충격을 받는 필립.

 

 

그는 과거라는 진흙투성이에 늪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 폴라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1*******3 2013.10.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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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지속되고 각성은 두렵다 [밤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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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공쿠르상 수상작입니다. 과연 듣던 대로 미셸 오스트의 개성과 깊이가 물씬 묻어나는, 페이지를 쉬이 넘기기가 삼가지는, 축축하면서도 속이 꽉 찬 내러티브네요. 이름만 보고 착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이분은 이 작품을 쓸 때 44세였고, 지금은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할아버지입니다. 최근에는 작품 활동이 뜸해진 걸로 압니다. 내용은 다들 아시는 대로입니다. 주인공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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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공쿠르상 수상작입니다. 과연 듣던 대로 미셸 오스트의 개성과 깊이가 물씬 묻어나는, 페이지를 쉬이 넘기기가 삼가지는, 축축하면서도 속이 꽉 찬 내러티브네요. 이름만 보고 착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이분은 이 작품을 쓸 때 44세였고, 지금은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할아버지입니다. 최근에는 작품 활동이 뜸해진 걸로 압니다.


내용은 다들 아시는 대로입니다. 주인공은 자신도 여러 차례 강조하듯, 유한 계급 출신의 사실상 기생 생활자입니다. 스스로에 대해 확신이 결여되었고, 가족과 친지들과의 관계도 원만치 못합니다. 비전도 희망도 먼 과거에 버려둔지 오래이며, 다만 자신이 보유한 다양한 종류의 결핍에 대한 모호한 보상심리, 혹은 모친과의 껄끄러운 관계에 대한 일종의 타협안으로, 폴라라는 여인(시를 쓴다고는 하나 재능도 충분치 않고 대외적으로 확고히 인정 받은 직업이 못 됩니다)과 교제하는 게 유일한 타인과의 소통 창구입니다. 거리의 지나가는 여인들을 두고, 마치 자신의 의지가 작용이라도 해서 거리가 멀어지는 양 자발적 착각을 통해 모종의 쾌감을 느낄 만큼, 염세적이고 퇴행적인 자아의 소유자죠.


주인공은 유년기의 교육, 정서의 건전한 발달, 성취감정, 자아통합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장애성 결핍에 시달리는 유형이지만, 이에는 중요한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 바 있습니다. 1) 부친 상실(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엔요) 2) 모친으로부터의 애정 거부 경험 3) 별 가치 없는 불장난으로서 맞이한 첫사랑의 (그나마) 좌절, 이 세 가지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자기중심적인 말투만 들어서 청소년이나 미숙한 청년 정도인가 했으나, 어느 자리에서건 경칭을 들을 만한 장년의 나이입니다. 외부에서 보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며, 다행인 것은 그 자신도 이걸 잘 안다는 점입니다.


그가 아버지의 소식을 알고, 상봉을 원한 건 딱히 현실 타개의 의욕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듯, 모든 문제가 거기서부터 잘못되었겠거니 하는 막연한 치유 욕구에서이죠. 주인공의 자아는 그만큼 병든 상태이며, 우리 독자는 이런 매력 없는 캐릭터로부터 멀찌감치 거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동정할 건 없습니다. 그도 그걸 원할 테니까요. 아무튼 이 점에서, 저는 역자의 이른바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그리고 미궁에의 유비"에는 격하게 반대하는 편입니다(역자 후기 참조). 테세우스는 이 필립과 정반대의 스탠스라고 봐야죠. 신화에서의 그 demigod는, 고귀한 출생이었으나 나면서부터 그 모든 세속의 혜택을 상실했고, 모든 것을 회복하는 그 순간 죽음으로부터의 도전장을 받았으며,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가망없는 모험에 모든 것을 건 말 그대로의 영웅이었습니다. 반면 필립은 뭡니까.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이 테세우스의 사항별 대척형이라고 봐도 되죠. 그가 아버지를 찾아 떠난 건 자아의 환골 탈태나 주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게 아니라, 그저 찌질하게 응석을 부리고 싶은 이유밖에 없었습니다. 부친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그 가망이 없었던 게, 이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원초적 장애가 있는 유형이니까요. 대상이 친부라고 해서 결과가 크게 다르지도 않았을 테며 그 결말도 과연, 끝까지 읽은 우리가 아는 대로입니다.


과연 이 소설에서 폴라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리아드네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영웅 테세우스의 자아 완결, 세상의 구원 오디세이에 동참한 순교자였습니다. 저는 이 소설에서 폴라가 맡은 역할은, 유혹적이지도 않으면서 안온한 중독으로 사람을 꾀어서는, 결국 극한의 회의와 환멸을 부르는 현실 절충적 키르케에 가깝다고 봅니다. 아니, 필립에게는 오뒷세우스를 억류했던 바로 그 고혹적 마녀로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치 키하나 노인의 눈에 푸줏간 딸 둘시네아가 공주처럼 보였듯이요. 가망 없는 난관을 타개하게 도와주는 마돈나는커녕, 그나마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던 낙오자의 삶에 최종의 관 뚜껑을 덮어 못질해 주는 악질의 마녀라고나 해야 합당하겠습니다.


아무런 생기도 존재 이유도 없는 잉여의 인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소설의 주인공 필립은 과연 뭘 상징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2차 대전 이후 자존감의 근원, 재생의 활기, 하다못해 유구한 역사의 상속자로서의 긍지, 이 모든 걸 상실한 프랑스 자체라고 봅니다. 이런 소설에 왜 그토록 자주, "게르만"에 대한 적대감이 등장하며, 또 "유태인"이라는 민감한 코드와 "배경"이 자주 제시되어야 했던 걸까요? 제가 생각하는 답은, 2차 대전 이후 외부의 도움을 받아 침략자의 점령으로부터 벗어나긴 했으나, "위대한 조국"의 이상상에 걸맞는 정체감을 여전히 회복 못 하고 표류하는, 프랑스 자체를 표상하는 캐릭터가 바로 이 필립이라고 봅니다. 소설에서 우울한 나르시즘의 보조관념으로 자주 쓰이는 여성화된 도시 파리의 무게가 바로 그 예증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Grand Nation의 심장 노릇을 했던 그 고색창연한 수도, 그 사소한 풍경이나 개성 하나도 거주자, 시민, 국민인 그(필립보다는 차라리 작가 오스트라고 하겠습니다. 이 소설에서 화자는 분명 "나", 즉 필립이지만, 그 자학적이고 음울한 말투는 제 3의 전지적 존재로부터 일종의 필터링을 거치는 듯만 합니다)의 눈에 허투루 지나칠 수 없습니다. 파리가 당하는 굴욕은 프랑스의 굴욕이고, 그녀의 조신하지 못한 거동은 곧 육각형 조국이 내비치는 부정함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짙은 우수와 비관으로 묘사되는 파리의 정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만, 바로 그 점 역시 작품의 전 설정이 프랑스 역사의 대유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기도 하죠. 본디 프랑스어에서 valet은, "노예"같은 강한 뜻이 아닙니다(호텔 등에서의 "발렛 파킹"이 뭐라고 생각하세요?).그저 "시종"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이 작품에서는, 말 그대로 "노예"의 의미가 실감납니다. "밤la nuit"이란 무엇인가. 치욕과 모멸을 원인으로 한 자폐의 대유겠죠.


현실이 못마땅하고, 먹고 살 만한 여유는 있으나 왠지 수치심이 느껴집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없고, 바로 응보의 파멸이 자신의 운명을 방문할 것만 같은 불안을 못 떨칩니다. 내가 지금은 이처럼 초라한 존재지만, 나의 부친은 멋지고 존경 받을 만한 위인이 아니었을까? 못난 후손은 과거의 (가상적) 영광에 기대며 힘들고 지친 자아을 지탱합니다. 그냥 그대로 덮어도 좋은데, 현실이 못 견딜 만큼 괴로운지라 막판에 몰린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 안 보느니만도 못한 환멸입니다. 나의 근원, 나의 과거 역시, 현재의 자아와 하나 다를 바 없이 초라하고 추악했습니다. 폴라의 부친은 파티 석상에서, 서로 속이고 불신하는 모세와 아브라함의 농담을 들려 주죠. 폴라의 부친이 필립에게 들려 주는 그 자랑스러운 (부친의)무용담에는, 이미 사기와 과장의 복선이 깔려 있었던 겁니다. 그는 말 중에 이런 의미심장한 한 자락을 깔아 둡니다. "저항도 좋지만,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지나 정확히 알고 살았어야 했는데,..." 레지스탕스의 신화는, 샤를 에바리스테라는 거창한 이름(수학자 갈로아의 이름에서 땄다고 하죠?)을 단 아버지의 그 처참한 몰골에서 역력히 붕괴하고 맙니다. 레지스탕스는 무슨. 처음부터 우세한 전력과 부(富)를 두고 마지노선에서 패퇴하질 말았어야죠. 이 엉큼한 유태인 족속들은, 그 모든 사정을 알고도 더 참담한 침잠을 유발하느라고, 가증스런 극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었던 거죠. 물론 유태인을 그리 노골적으로 악하게 묘사하면 "법"에 걸리므로, 그 정도로 돌리고 또 돌려 말합니다.


오스트의 문장은 파리 최고의 멋쟁이가 부리는 세련의 극치요, 동시에 데카당스의 퇴폐 그 극한입니다. p192의 "주름살이 여자를 절단하듯 물결은 도시의 동체를 절단한다." 같은 걸 보세요. 대단히 감각적인 표현이죠. 일단 저 문장의 전단에서, 여자를 "절단"하는 게 주름살이란 언사에 정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자의 경우,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신분의 남자의 얼굴에 설득력있게 이리 저리 획을 그은 주름살이란 정말 멋져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주름살은, 가장 화사한 미소를 지을 때 눈가, 입가에 살짝 생기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에게 연민과 비애(최소한 그렇다는 겁니다. 대부분은 불쾌감과 역겨움을 자아낼 때도 있습니다)를 유발합니다. 그 타당성은 그렇다치고, 후단의 "도시 동체 절단" 운운은 뭘까요? 원문을 찾아 보지는 않았으나, 여기서의 물결이란 도시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강줄기가 아니라, 마치 채만식의 맥락에서 그 "탁류" 같은 걸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바로 그 뒤에 작가의 의도가 더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심상 간의 비례식이 확실히 완성되죠.

이처럼 문장이란, 단지 기계적 의미를 전달함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무수한 심상의 연속이요, 나아가 자아와 세계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도구이며, 어쩌면 문학의 본체적 요소일지도 모릅니다. 어리석고 둔한 머리에서 생산되는 그 생각이 짧으면 말도 덩달아 짧을수밖에 없고, 말이 짧다고 해서 허위와 군더더기가 없는 정신의 건강성을 보증하는 건 전혀 아니라고 봐야 겠죠. 이를 간결한 표현으로 절제된 의지와 정갈한 상념을 전달하는 양 호도, 위장하는 것은 오히려 (예컨대 헤밍웨이 같은) 간결체를 즐겨 구사한 대문호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미셸 오스트의 예에서, 산문이 시가 되고, 화사한 문장이 깊이 있는 사색으로 전화하는 좋은 예를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어리석고 열등감에 가득찬 낙오의 인생은, 극히 제한된 자신만의 오타쿠적 미니어처 밀실에서 세상이 시작하고 끝나는 줄 알지만, 아니 우기는 중이지만, 그런 자에게도 잔혹한 각성의 순간은 찾아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펜을 향하고 펜을 통하여 우주를 제한된 수단으로 포착하려는 문필에의 꿈을 그 하찮은 정신으로도 꿈꾼 적이야 있겠으나, 이에 성공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냉연한 현실에서 문득문득 마무치는 자신의 모습이란,  밀가루푸대마냥 밋밋하고 초점 없이 흔해빠진 그 얼굴만큼이나 가망 없이 역력한 시궁창임을 확인할 뿐이겠죠. 풋.

p238 핑크 플로이드의 "디 아더 사이드 오브 더 문" 언급은 시대상의 반영이고, 동시에 청각 매체를 동원할 수 없는 소설의 한계상 우리가 최대한 협조하며 떠올려야 할 미장센입니다. 소설의 분위기가 잘 감이 안 잡히는 분은, 이 곡을 듣고 책을 다시 읽어 보세요. 오스트와 바로 페친 먹고 싶으실 겁니다(이 할아버지는 아마 SNS를 안 하시겠습니다만).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라고요? 차라리 "병태와 영자"라고 하시는 게 어땠을까요.

v*****7 2013.10.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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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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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가지지 않는 인간은 이미 존재가 아니며 또한 용납될 수 없는 존재다. p.371   프랑스 문학상 공쿠르 상의 1986년도 수상작인 《밤의 노예(2013.09.24. 문예출판사)》의 주인공 ‘필립 아르쉐’는 우유부단하다. 스스로 난 인생낙오자(p.61)라고 고백할 만큼 삶의 의욕이나 애정도 없으며 확실한 목표도 없다. ‘필립 아르쉐’는 자신보다 스물다섯 살 많은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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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가지지 않는 인간은 이미 존재가 아니며 또한 용납될 수 없는 존재다. p.371

 

프랑스 문학상 공쿠르 상의 1986년도 수상작인 《밤의 노예(2013.09.24. 문예출판사)》의 주인공 ‘필립 아르쉐’는 우유부단하다. 스스로 난 인생낙오자(p.61)라고 고백할 만큼 삶의 의욕이나 애정도 없으며 확실한 목표도 없다. ‘필립 아르쉐’는 자신보다 스물다섯 살 많은 어머니 ‘지제트’와 함께 작은 아파트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그들은 한때는 풍요로웠고, 현재는 풍요롭지는 않지만 가난하지도 않은, 금전적으로는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전쟁 중 독일인의 만행을 막기 위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영웅, 아버지 ‘샤를르 에바리스트 위젠느’가 그와 그의 어머니 곁을 떠나면서 빌뇌브-르-르와 공장(일명 아르쉐 공장)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장을 운영할 수 있는 ‘토니 소앙’도 함께 보내주었다.

 

마흔 살이 된 주인공 ‘필립 아르쉐’는 어머니 지제트와 정체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흡사 고인 물과도 같은 삶이다. 그런데 필립에게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고인 물도 시간이 흐르면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과 같이, 필립도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무너져버릴게 뻔하다. 언제나 히스테리를 부리는 어머니 지제트와의 갈등 관계를 어떻게 개선시킬 것인가가 첫 번째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데만 급급했던 필립에게 여자친구인 ‘폴라 로첸’과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 것인가가 두 번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퇴직을 원하는 토니 소앙을 대신해 아르쉐 공장을 맡을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선 필립은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엄마 지제트가 처음부터 쉽게 흥분상태에 빠지는 불안정한 성격은 아니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언니 지젤만을 사랑하는 부모에게 거부당했고, 사랑했던 친구 블랑세트의 무서운 죽음을 목격하였으며 급기야 남편에게 버림받았다는 충격이 어머니를 어슴푸레한 자기 방에 혼자 칩거하면서 침묵과 히스테리로 일관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필립은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여자친구 폴라 로첸과의 미래를 그려본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필립 아르쉐는 영웅으로 그려 보았던 상상 속 아버지를 현실에서 만나려는 용기를 낸다. 아버지야 말로 그와 어머니의 현재를 있게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한 결심을 하기까지 필립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실세계가 아닌 환상 속을 헤매는 것과 같은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그 혼란스러움은 《밤의 노예》를 읽는 내내 나에게 지루한 시간과 궁금한 시간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가끔, 아니 자주 아무런 연관 없는 무의미한 생각의 조각들 혹은 상상의 조각들을 아무렇게나 나열해 놓은 느낌의 문장들이 끊임없이 계속될 때 나는 참을 수 없이 지루했다. 하지만 그 문장들, 문단들 그리고 페이지를 견딘 후에는, 반드시, 주인공이 왜 혼란스러워야했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바로! 이것이 소설 《밤의 노예》를 마지막 장까지 읽게 만든 힘이다.

 

《밤의 노예》를 한마디로 어떤 작품이라고 요약, 정리하기는 힘들다. 다만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척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필립 아르쉐’는 마지막까지 혼돈의 삶 속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루한 시간과 궁금한 시간을 오가며 읽느라 무척 고단했다. 이제는 책을 손에서 놓고 싶다.

 

희망을 가지지 않는 인간은 이미 존재가 아니며 또한 용납될 수 없는 존재다. 희망은 존재의 심층 깊숙한 곳에 박혀 있다. 희망이라는 내밀한 존재는 한순간 환상을 품게 만들고 그러고 난 후에는 분리되어 잘게 부수어져 결국 파괴되고 만다. 거기에는 목적이 없다. 어떤 희망을 경멸하게 되면 너 자신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p.371

 

 

 



b******s 2013.12.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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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관통하는 생(生)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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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날개를 달고 있다. 누구나 미처 접지 못한 날개를 가진 법이다. 표정없이 지나가는 차 앞대가리에 탁 받히는 순간 거짓말처럼 숨을 놓아버린 새끼를 낑낑대며 구석으로 물고가더라고 했다. 주차된 차 밑 깊숙하게 밀어넣더니 어디론가 사라지더라고,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사람이 말해주었다. 그의 책임이 아니었으므로 왜 구하거나 보호하지 않았냐고 따져물을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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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날개를 달고 있다. 누구나 미처 접지 못한 날개를 가진 법이다. 표정없이 지나가는 차 앞대가리에 탁 받히는 순간 거짓말처럼 숨을 놓아버린 새끼를 낑낑대며 구석으로 물고가더라고 했다. 주차된 차 밑 깊숙하게 밀어넣더니 어디론가 사라지더라고,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사람이 말해주었다. 그의 책임이 아니었으므로 왜 구하거나 보호하지 않았냐고 따져물을 수는 없었다. 새끼는 어미를 따라나섰다가 작은 몸을 커다란 자동차 범퍼에 부딪혀 죽었다. 신기하게도 외상은 없었다. 가고 싶어 떠난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저 멀리 집에서 가장 떨어진 곳에서만 볼일을 해결하던 어미를 따라 그 먼곳까지 갔다. 죄책감일까, 본능일까, 그것도 아니면 슬펐던 걸까, 겨우 쫑쫑 걷기 시작한 새끼를 지키지 못한 어미개는 아가는 어디두고 왔냐는 질문에 길을 재촉하더라고 했다. 그즈음 어미개는 나보다 세상을 빨리 배웠다. 걸어서 십 분 거리의 먼 부둣가에서 차가운 바닥에 고이 잠든 강아지를 신문지로 덮은 박스에 넣고 돌아와 서운하지 않도록 어미개가 보는 앞에서 잘 묻어줬다고 얘기한 사람은 물론 우리 아빠다. 소유는 책임을, 이별은 깊은 밤의 정적을 선사한다. 시간이 멈추면 언젠가 나를 떠난 것들에 대해 떠올린다. 더이상 쓰다듬을 개가 없다. 가엾고 비겁하지만 나는 지금이 다행이라 여긴다. 책임은, 아프다 아니 아팠다. 축 늘어진 책과 책 사이 침묵을 붙잡기 위해 언젠가 붉은 노트에 토로했던가. 세계의 끝과 그을음으로 가득찬 폐허와 두 개의 달, 아름다웠던 날의 우주와 어떤 날의 치기어린 고백을. 


나 자신을 마주 대하는 것을 나는 단 1초라도 권태로워한 적이 없으며, 나 자신이 된다는 것, 다시 말해 내가 늘 있어왔던 곳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자유로워지는 일이었다. 따라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어왔던 나 자신의 존재가 사실은 그보다 더 못한 것,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p.292)


적당한 반항과 악의없는 애교야말로 어린시절의 특권.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지나는 이 시기에는 웬만해선 허용되지 않는 시간의 허비나 낭비도 별 대가없이 허락된다. 하지만 영원할 줄 알았던 시간이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지나가버리면서 불행이 다가온다. 물론 가능성들로 빼곡한 한때는 주위의 불행조차 일절 단절시키지만 머지않아 존재의 무거움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 프랑스 작가 미셸 오스트는 서사는 존재하나 줄거리는 실종된 사유와 의식의 경계에서 자아의 가능성을 탐하는 생애 두 번째 소설을 발표하며 1986년 콩쿠르상을 수상한다. 문장이 시로 발현하는 진귀한 경험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다. 대체로 규모가 큰 세계전쟁과 대공황을 치르며 뼈아프게 바닥을 경험한 강대국에서 나타난다. 내부(자의식)와 외부(세계)가 충돌하는 한 생각이 하나일 수는 없다고 말한 이 작가 역시 플로베르, 발자크, 프루스트, 사르트르, 카뮈를 잇는 프랑스 근현대 작가들과 나란히 놓인다. 버지니아 울프, 헨리 제임스, 카프카, 릴케, 바흐만, 실비아 플라스의 몇몇 작품과는 주제마저 상통한다. 카프카의 K나 사르트르의 로캉탱, 카뮈의 뫼르소, 발자크의 랑베르나 라파엘, 릴케의 말테, 프루스트의 마르셀과 <밤의 노예>에 나오는 필립 아르쉐의 차이는 단지 국적이나 작가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그들을 관통한 허무와 절망이 고스란히 발현했다고 봐야 한다. 


그녀는 네가 떠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을 몹시 슬퍼했다. 그건 너에 대한 사랑과 네가 그녀에게 입힌 고통의 표시였다. 그녀는 너에게 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현재를 살아야 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너는 과거라는 진흙투성이 늪에 빠져 있다. 그것이 바로 너의 광기다. 폴라는 너에게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라고 요구할 만큼 용기가 있었다. 결국 너의 침묵이 그녀를 절망에 빠뜨렸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너는 침몰 상태에 있었으므로 조난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너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p.378)


모파상의 벨아미처럼 상류세계를 향한 퇴폐적 욕망으로 나타나든 필립처럼 제 존재의 근원을 찾기 위해 내면으로 천착하든 출구없는 방에 갇혀 잃어버린 중심과 균형을 찾으려는 이들의 가엾는 고군분투는 한결같다. 나는 누군가, 왜 여기 있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세 단계를 골자로 한 근원 찾기의 뼈저린 고통은 의심과 불안, 패배의식의 공존과 살아있는 한 마치 깨어날 길 없는 꿈처럼, 낮 없는 밤처럼 계속된다. 경험도 아니고 기억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서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허공을 끝도 없이 질주하는 일이 삶을 향한 탐색이자, 기쁨이고 갈망이다. 본의아니게 '의식의 흐름 기법'에 속하는 아는 소설들을 다 읊었지만 <밤의 노예>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읽힌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말테의 수기>와 비교해도 시적 문체나 작품 세계의 독특함에 있어 모자라거나 덜하지 않다. 아버지에게 버림 받고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며 처음 좋아한 여자애와 계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헤어졌던 나약한 주인공을 통해 잊고 싶은 수치, 버리고 싶은 트라우마, 두려운 미래를 직시하게 하지만 폴라 로첸이라는 인도자 겸 구원자가 있었던 아르쉐의 탐색이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건 생(生)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미궁을 의미한다. 


너는 침대에 드러눕는다. 가장 편안한 자세, 몇 시간이고 그대로 있을 수 있는 자세를 한다. 그 순간, 너의 창문은 현창(舷窓)이 되고 너의 방은 잠수함이 된다. 너의 방은 검은 심해로 침몰해간다. 천천히 그리고 순조롭게 추락한다. 부드럽고 격렬한 느낌. 너는 이런 감정을 예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이처럼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이렇게 격렬한 느낌도, 이처럼 너의 진실과 인접해 있는 어떤 감정도 너는 결코 느끼지 못했다. 너는 변화무쌍하면서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 심연으로 내려간다. 문은 열렸다가 다시 닫힌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그것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더불어 너의 휴식 또한 끊이지 않는다. 이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p.379)


지금껏 내 모든 감상은 촘촘한 올로 짜인 그물같은 밤이 있어 가능했다. 밤은 시공간을 단절하는 것으로 모자라 아예 지워버린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말끔히 지운다. 이런 나는 얼마만큼 밤의 노예일까. 단언컨대, 밤이 없었다면 나는 내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 이상을 잃어버리고도 그게 무엇인지 몰랐을 것이다. 유영하는 의식을 붙들어매기 위한 밤이 지금으로선 가장 고맙고 소중한 위로다. 다시 밤이 오고 있다. 




s*****d 2013.10.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