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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겨울,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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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기 개발에 많은 돈을 쓰면서도 스스로를 문명화되었다고 한다.  일종의 자기기만인 이 위선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다.  '위선'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숙에 이르는 첫 단계인, 우리 스스로를 진정으로 파악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런 점에서 끊임없이 경계심을 갖는 것은 우리의 지속적인 성장과 성숙을 위한 대가이기도 하다."    (P.170)   둘째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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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기 개발에 많은 돈을 쓰면서도 스스로를 문명화되었다고 한다.  일종의 자기기만인 이 위선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다.  '위선'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숙에 이르는 첫 단계인, 우리 스스로를 진정으로 파악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런 점에서 끊임없이 경계심을 갖는 것은 우리의 지속적인 성장과 성숙을 위한 대가이기도 하다."    (P.170)

 

둘째형은 손재주가 많은 편이었다.  언젠가(확실하지는 않지만 내가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을 것이다) 겨울에 형은 내게 나무로 스키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형과는 다르게 손재주라고는 전혀 없었던 나는 형이 하자는 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내가 살던 강원도에는 11월이면 눈이 오기 시작하여 3월까지 녹지 않았는데 활동적이었던 형은 긴 겨울 동안 집 안에서만 지내는 것이 못내 갑갑했던 모양이다.  형과 나는 톱과 낫을 들고 눈밭을 헤맨 끝에 어른 팔뚝보다 굵은 물푸레나무 두 그루를 잘라 산을 내려왔다.  눈 쌓인 산을 헤매느라 신발과 양말은 속까지 다 젖었고, 허술한 목장갑도 매한가지였다.

 

꽁꽁 언 두 손과 발을 녹이는 동안 우리는 엄마와 누나의 잔소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베어 온 나무를 어떻게 다듬을 지 궁리하느라 건성으로 대답만 '응,응'하였다.  그렇게 손을 녹인 후, 앞집에서 대패를 빌려 나무를 다듬기 시작했다.  젖은 나무를 다듬는 일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더구나 켜지도 않은 원형의 나무를 송판처럼 얇게, 그리고 면과 두께를 고르고 일정하게 하기란 대패질에 서툰 우리에게는 무리다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우리는 쉬지도 않고 온 종일 매달려 앞이 둥근 판재를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하였다.  다음은 이제 나무가 뒤틀리지 않도록 말려서 앞부분을 둥글게 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깎은 나무를 빛이 들지 않는 광에 며칠을 두어 제법 말랐다 싶었을 때 장작불 위에서 나무를 구으면서 앞을 휘느라 진땀을 흘렸다.

 

생각보다 모양새는 제법 그럴 듯하게 보였다.  우리가 만든 나무 스키에 신발을 묶을 끈을 고정하는 것으로 모든 공정이 마무리되었다.  형과 나는 그렇게 만든 스키와 함께 폴대로 쓸 바지랑대를 몰래 들고 집을 나와 뒷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스키는 잘 미끄러지지 않았다.  박닥면을 제대로 다듬지 않은 까닭이었다.  우리는 맥없이 산을 내려와 사포로 면을 다듬고 그 위에 양초를 수차례 발라 면에 광택을 냈다.  우리는 그 해 겨우내 바지랑대가 다 닳도록 스키를 타며 놀았다.

 

형은 그 후에도 외발 썰매며, 쇠구슬을 박은 팽이며 갖가지 놀잇감을 직접 만들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떤 일에 그때처럼 집중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워했던 적이 없었던 듯하다.  형과 나는 벌써 아이들을 키우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야 했던 그 때에 비하면 세상은 분명 살기 좋아지고 편리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전보다 더 공허해졌고 뭔가 근본에서 멀어진 것 같고, 우리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이러한 때에 기계문명의 시스템을 거부하고 실험적이고 새로운 삶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핸드메이드 라이프>(A Handmade Life)를 쓴 윌리엄 코퍼스웨이트(William Coperthwaite)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는 메인 주 북부 해안에 있는 농가에서 소박한 삶을 추구해 온 교사이자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이자 작가다. 소로, 간디, 디킨슨, 니어링 부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거의 아무것도 사지 않고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자연 속에서 땅에 사는 모든 생명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하나에 역사와 땀과 애정이 깃든 물건을 사용하고, 동력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땔감을 만들고 풀을 베고, 배를 저어가서 장을 보아 오고, 자신이 살 집은 손수 짓는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삶을 통해 실천하고 있다. 코퍼스웨이트는 한 개인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기계문명의 편의와 편리만 좇아 근원적인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 교육의 의미와 직업, 검소함과 배려 등 우리가 인간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가치있는 방식에서 너무나 멀리 와버렸는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그런 방식을 까맣게 잊은 채, 자식들에게, 그리고 그 자식의 자식들에게 삶의 고통과 폭력적 자기 착취의 방식만 전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저자가 원시적 생활방식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삶을 디자인하고, 우리가 사는 사회를 디자인하며, 바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생명에 대한 존경과 배려를 잊지 않는 삶, 그것은 꿈도 아니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우리는 그것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졌다.  그곳으로부터 너무 멀리 온 탓일까?

 

"오랜 세월 동안 비폭력의 삶을 살고자 한 사람들은 분노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주의자'나 '순수주의자' 혹은 '완벽주의자'나 '이상주의자'라는 딱지가 붙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 두려워서 더 큰 포부를 품지 못하고 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비폭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따뜻한 위로 한마디를 해주거나 다정하게 어깨에 손을 한번 얹어주는 일이다.  온전한 삶이란 것이 영원히 손에 닿지 않는다 하더라도 붙잡으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P.162)

 

이 책은 저자의 삶과 철학을 담고 있지만,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작가의 주장이 명확해진다.  1.삶을 디자인하다, 2.아름다움, 새로운 시선, 3.일과 밥벌이의 즐거움, 4.배움과 가르침, 5.비폭력, 정중한 혁명, 6.자발적인 가난함, 7.자연을 닮은 소박한 삶, 8.평생 작업을 찾아서.  작가가 말하는 '디자인'은 물건의 형태가 가지는 기능성과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소박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행위도 포함하고 있다.  즉 디자인은 사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태도 및 삶의 방식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디자인에 우리의 노력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핸드메이드'는 단순히 물건을 직접 만든다는 뜻을 넘어 내 손으로 만드는 인생, 내 손으로 만드는 새로운 세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온전히 경험하는 모든 행위는 내 가족과 이웃과 전 인류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나아가서는 우리가 사는 지구 전체의 모든 생명을 착취하거나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어야 한다.  그렇게만 살 수만 있다면 삶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며 우리의 아이들도 그런 삶을 배우고 자신의 삶을 즐길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 형과 함께 나누었던 경험을 중년이 된 지금까지 잊지 못하듯 아름다운 기억은 오래도록 그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기에...

이달의 사락 s*****l 2013.01.3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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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는 좋은데 실천하긴 어려운 .
"의도는 좋은데 실천하긴 어려운 ." 내용보기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요. 작가의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실천하는 점에 있어서 자신의 삶과 글이 모순되지 않는 점에서는 참으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환경의 중요함이나 인간의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작가나 학자들이 자신의 삶 모든 부분을 이상적으로 살기엔 현실적 토대가 많이 부족한데요. 저 같이 도시에 살면서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어느 정도까지 실천할 수
"의도는 좋은데 실천하긴 어려운 ." 내용보기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요. 작가의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실천하는 점에 있어서 자신의 삶과 글이 모순되지 않는 점에서는 참으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환경의 중요함이나 인간의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작가나 학자들이 자신의 삶 모든 부분을 이상적으로 살기엔 현실적 토대가 많이 부족한데요. 저 같이 도시에 살면서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어느 정도까지 실천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이 책은 참 이상적입니다. 그리고 사상이 변하지 않는 이상은 많은 부분 실천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아 읽으면서 맘 한 구석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마지막으로 밝혔듯이 이상적으로 가기위한 용기있는 작은 행동들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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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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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입해 있는 책사랑터에서 선정한 책이다.. 아직 핸리 데이빗 소로우의 책 시민의 불복종을 입양해 놓고도 읽지 못하고 있는데.. 사실 월든이 더 보고 싶긴 하다.. 월든의 저자인 소로우의 책이라 많은 고민하지 않고 입양해 왔는데..    여튼 핸드메이드 라이프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그리고 있다..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이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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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입해 있는 책사랑터에서 선정한 책이다..

아직 핸리 데이빗 소로우의 책 시민의 불복종을 입양해 놓고도 읽지 못하고 있는데..

사실 월든이 더 보고 싶긴 하다..

월든의 저자인 소로우의 책이라 많은 고민하지 않고 입양해 왔는데..

 

 여튼 핸드메이드 라이프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그리고 있다..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이분도 소로우에 많이 공감하는 분인듯 하다..

소로우의 이름이 여러번 등장한다..

이런 삶의 공감하는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닌 듯 한데..

실제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세계 60억 이상의 인구 중에 과연 몇이나 될까..

 

 나도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

모든 걸 내려놓고..할 수 있을까..

요즘 이런 생각을 조금씩 하고 있다..

 

 모임의 한 분께선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계신 분도 계셨다..

나는 생각만 하다 끝내 못 이루는 건 아닐까..

 

 윌리엄처럼 나만의 유르트를 지어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그리기만 할까..

생각은 다시 우리 마을로 돌아가 노통처럼 촌부로 살고 싶은데..

그가 그립다..갑자기..초등학교도 그립고..다송..

 

 아직은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머릿속에 그리기만 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2****s 2013.06.10.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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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드 라이프 -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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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잘 살고 갔다는 의미는 ‘아니온듯 다녀가소서’아닐까? 이 책은 소박한 삶의 귀중함에 대해 얘기한다. 자발적 가난의 소중함도 들려준다. 헨리 데이빗 소로나 니어링 부부와 같은 세상의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지 않고 자연과 하나되는 조화로운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나 글귀도 소개한다. 소박한 삶은 두가지 면에서 이롭다고 하는데, 우리 자신의 삶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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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잘 살고 갔다는 의미는 아니온듯 다녀가소서아닐까?

이 책은 소박한 삶의 귀중함에 대해 얘기한다. 자발적 가난의 소중함도 들려준다. 헨리 데이빗 소로나 니어링 부부와 같은 세상의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지 않고 자연과 하나되는 조화로운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나 글귀도 소개한다. 소박한 삶은 두가지 면에서 이롭다고 하는데,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해서 자원을 덜 소비한다는 점과, 다른 사람들에게 소비를 적게 하고도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줄 수 있다는 거다. 어느 책의 문구처럼, 공원 잔디밭에 푯말처럼 아니온듯 다녀가는게 우리가 세상에 기여하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우리의 후손이, 그리고 새들과 꽃들이 맑은 하늘과 구름과 더 신선한 자연을 느끼고 향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잘살고 가야한다. 소박하고 가난하게, 마치 아니온듯 말이다.

 

개인, 사회라는 몸의 일부, 타이타닉 호에서 포커게임을 해서 이긴들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개인은 혼자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 우리 몸의 어느 하나가 따로 떨어져서 기능할 수 없듯이, 열손가락 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사회도 몇몇의 부유하고 행복한 개인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그 사회를 평가하려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자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라고 했듯이 사회는 모든 개인의 최소한의 생존을 구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라는 개념의 확장이 필요하다. 인류가 진보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범위가 확장됨에 따라서이다. 옛날에는 나 자신과 가족만이 우리라는 범주에 들었다. 그것이 점차적으로 이웃, 도시, 국가의 범위까지 확대 되었고, 이제는 국경을 넘어서 인간 모두가 우리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동물과, 식물과 지구라는 환경 모두가 인간과 함께하는 우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우리의 선한 이기심은 모두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게 될 것이다. 사회가, 환경이, 지구가 침몰해간다면 개인의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침몰해가는 타이타닉호에서 포커게임을 해서 이긴들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실생활에서의 민주주의자가 진정한 민주주의자.

집에서 민주주의자가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는 말이 있다. 밖에서는 진보를 외치고 투쟁의 선두에 서서 변화를 열망하며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자들이 정작 집에 와서는 자신이 그토록 타도하고자 하는 그 대상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는 말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많은 사람들은 선배(?)를 잘못 만난 죄로 머리만 의식화되었다 뿐이지 한 꺼풀 벗겨보면 학교, 군대, 주변에서 답습해 온 많은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습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본다. 세상을 좀 더 낳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서 싸우는 과정은 물론이고 하루하루의 생활모습 그 자체가 우리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그 세상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는 홍세화선생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하겠다.

 

농사를 지으면서 자급을 하는 생활이 진짜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대량생산 대량소비시대가 되면서 많은 농사짓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공장에서 분업화된 단순 노동을 반복했다. 지금은 자동화가 되어서 예전보다 노동이 그리 고되지는 않겠지만, 역시 많은 시간을 일한다. 근데, 그 일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어떻게 사람에게 이득이 되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조직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일을 할 뿐이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필요한 일인지, 아니면 그냥 많이 팔아서 회사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인지, 잘 모르겠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생필품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소비하고도 남아돌 정도로 많다. 모든 게 불균형의 연속이다. 어떤 사람은 일자리가 없어서 힘이 들고, 어떤 사람은 너무 오래 일해 고되다. 어떤 회사는 넘쳐나는 물건을 어떻게 팔아야 할 지 모른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니, 농사나 작물을 키우는 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포기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직접 키우고 가꾼 땀 흘린 대가로 수확하는 먹거리를 자급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때의 기쁨이란 얼마나 크고 놀라울까? 남아도는 상품을 줄이고, 노동시간도 줄여서, 하루의 반 또는 일년의 반을 농작물을 생산하는 것과 병행한다면, 인생은 더 다채로운 색을 띄지 않을까.

 

사회적 소비, 투표?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물건을 구매하는 것도 우리의 지갑으로 투표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라는 개념이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로 시민 개인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여 세상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행위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어떤 물건 구매할 때, 그 물건을 제조하는 회사와 판매하는 회사의 모습이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제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된다. 우리의 의견을 소비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시민단체의 확산과 더불어 많이 활성화 된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많이 미흡하지 않나? 불매운동에 대한 법도 굉장히 엄격한 것 같다. 그럼, 불매가 아닌 구매로 투표하면 되지 않을까? 착한 기업에 말이다. 정치인은 한번 투표하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몇 년을 그냥 가야 하지만, 상품에 대한 투표는 즉시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교육은 배움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안내하는 것

20세기말 독일 중학교에서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그만 둔 두 명의 학생이 있다. 한 명은 늘 생각에 몰두하느라 선생님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고, 어학에서도 낙제점을 받았다. 다른 한 명은 엄격하고 권위적인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학당하고 만다. 그들은 아인슈타인과 헤르만 헤세다. 그 당시 독일은 비스마르크정권 이후 학교를 군국주의하에서 국가에 충성하는 엘리트를 만들어내는 양성소로 여겼다. 따라서, 오히려 재능 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두 천재에게는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이 학교가 불편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두 학생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이해해주고, 존중해 주는 학교로 전학을 가고나서야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지원해 주고 격려해준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학교는 아직도 20세기 말의 독일의 학교와 닮아있지 않은가? 인생의 순간순간이 그토록 소중하고, 의미 있는 하루하루가 모아져서 인생을 만들어간다면, 학생시절의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은 인생 전체에 있어 너무도 중요하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생 하나하나가 자신이 공부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깨닫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덕목 아닐까.

 

 

[책에서]

더 단순하게 사는 방법을 찾을 때마다 우리는 두 가지 점에서 남을 돕게 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해 세상의 자원을 소비하는 경우가 줄어든다는 점, 그리고 이웃의 풍족한 삶을 모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에게 좋은 역할 모델을 제시해준다는 점이다.

 

악덕에 대하여 공적으로는 반대 시위를 하면서도 사적으로는 그런 악덕의 원천이 되는 생활방식에 의존하며 그것을 지지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분명 모순이며 위험한 일이다.

 

사회는 그렇게 희소한 것에다 높은 값을 매겨놓았다. 그래서 다이아몬드나 백금이나 검은담비 모피가 비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폭력적인 개념이다. 여기에는 내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가난해져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보다 금 목걸이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은 본질적으로 근거가 없다.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우리가 지적으로 존중할 수 있는 것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쉽게 구할 수 있으며 누구나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값이 싸야 하고, 씻고 보관하기에 간편한 것도 아름다움의 한 단면

 

우리가 자동차나 어떤 물건 하나를 산다는 것은 우리의 지갑으로 투표를 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일이란 자발적으로 맡아서 자기 영혼을 절름발이로 만들지 않을 정도로만 한다면 지극히 흥미로운 학습 도구가 된다.

 

스코트 니어링은 신체가 멀쩡한 모든 성인들이 하루에 4시간만 밥벌이에 종사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간디는 하루 2시간이면 인간의 기본 욕구를 채우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한 이후에도 현대의 도구들은 생산성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노동이 고르게 분배된다면 각자의 삶에서 일은 아름답고 흥미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일을 하는 데 드는 노력을 줄여야 한다.

 

나는 어느 학교 어느 수업을 택하는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대답해준다. 그보다 더 중차대한 것은 배움을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해줄 사람을 찾는 일이다.

 

재물은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니, 너무 바라지 말라.

미덕이야말로 참재산이며 가진 자에게 진정으로 보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잃을 수도 없으며, 생명이 먼저 우리를

떠나지 않는 한 우리를 져버리지도 않는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우리 같은 영어권 민족들 가운데 누군가가 가난에 대한 찬가를 한번 더 대담하게 불러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마디로 가난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우리는 자기 내면의 삶을 소박하게 가꾸기 위해 자발적으로 가난해지고자 하는 사람을 보면 비웃는다. 그가 보편적인 사회 속의 쟁탈전에 참여하지 않거나 돈을 벌러 거리에 나와 헐떡이며 뛰어다니지 않으면, 그를 얼빠졌으며 야심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형편이 더 낫다는 현대 사람들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인 고난을 두려워할 때, 멋진 집이 생길 때까지는 결혼을 연기할 때, 은행에 모아둔 돈이 없으면 아이 가질 생각은 어림도 없다며 일에 파묻혀 지낼 때,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이토록 비인간적이고 불경한 심적 상태에 저항해야 한다. …. 나는 이 문제를 여러분이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교육받은 계층이 현재 갖고 있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문명이 겪고 있는 최악의 도덕적 질병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 윌리엄 제임스

 

인생은, 누구나 스스로 값지다고 여기는 것들을 찾아나서는 대단한 보물찾기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 명예, 승리와 같이 우리가 찾는 것들의 공급이 제한되어 있다면 그만큼의 투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지혜, 건강, 기술처럼 우리가 찾는 보물이 무한히 샘솟을 수 있는 것이라면, 또는 사랑, 우정, 정의처럼 남들을 돕는 보물이라면, 이미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목적을 위해 자신을 소진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삶의 기쁨이다. 세상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면서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찬 사납고 이기적인 작은 살덩어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 또한 삶의 기쁨이다.

 살아가는 동안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내 특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 모든 에너지를 다 태워버리고 죽기를 바란다.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많이 사는 셈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인생이란 짧게 타버린 초가 아니다. 삶이란 내가 잠시 붙잡은 훨훨 타오르는 횃불 같은 것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이 횃불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기 전에 가능하면 환히 타오르도록 하고 싶다. – 조지 버나드 쇼-

 

c****s 2014.02.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