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캠퍼스에서는 그 어떤 책도, 그 어떤 표현도, 그 어떤 연구도, 그 어떤 견해도 자유롭다고. 대학은 정부와 그 밖의 모든 것에 비판적인 위치를 견지해 나가야 한다. 대학이 이러하지 못할 때, 머지않아 대학은 대학이 지녀야 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아마 사회의식이 있는 대부분의 식자는, 그가 좌파이건 우파이건 대체로 이러한 당위에 동의할 것이다. 그 구체적인 형태는 다르더라도 말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현실이 당위와 얼마만큼 멀어져 있는지, 어떠한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권력의 지배를 받는 혹은 영향을 강하게 받는 대학이라는 상황이 초래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세계대전 전후의 그리고 냉전기의 미국 대학의 상황을 말하고 있으며, 적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리고 자국의 이해와 정책을 선전하기 위해 대학의 연구역량을 활용해왔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CIA의 시작과 활동, 그리고 그 영향하에서 수행된 다수의 연구들 - 하버드, MIT, 프린스턴, 예일, 콜럼비아... 라는 정말 쟁쟁한 미국 명문대학들에서 - 에 대한 사례조사를 중심으로... 그 대표적인 사례가 트로이 프로젝트와 카멜롯 프로젝트라고 하더라. 이름도 참... 전자는 VOA(Voice of America; 미국의 소리)의 소련내의 전파를 내용/기술적으로 연구하는 프로젝트였고, 후자는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새로운 독립국가들에 대한 동구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었다고 하더라. 이러한 일들은 말했다시피, 당시의 첨예한 체제경쟁 속에서 진행된 것이고, 그러한 상황으로 인해 "... 사회과학자들은 개인적으로 정부의 방침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카멜롯 프로젝트에 대한 가장 강한 비판자였다는 랠프 빌즈에게서 나왔다고 하니... 도구적 이성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생각이 난다. 내가 스키너의 '월덴 투'를 읽어본게 10년이 넘은 것 같은데, 그때 그 소설의 주인공인 행동심리학자(맞나?)의 기획 - 개인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통제 속을 자청해 가는, 그럴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이상적으로 그려진 공동체라는 기획에 대해 또 다른 주인공은 거부감을 느끼다가 결국을 굴복하게 되는 얘기 속에, 뭔가 야릇한 분위기를 감지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야릇하다.... 좀 그런가? 카멜롯 프로젝트의 중심 과제중의 하나는 심리학이였다고 하고, 스키너의 이야기도 나온다. ".... 결국 냉전 관리자들은 초강대국의 갈등이 불러일으킬 끔찍한 위험을 감독하는 것이 가장 큰 의무였다. 그것은 이들 스스로가 전지구적 '심리경주'에 출전한 전략가라고 인식하면서 지구의 미래는 자신들의 공격성, 공포, 이기심, 야만적 충성심, 안보에 대한 끝없는 불안감 등과 같은 각종 비이성적 형태에 의해 야기되는 심리적,행동적 무질서를 어떻게 안정시키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후 수십년 동안 이같은 심리적 방어벽을 설치하는 문제에 직면하여, 미국의 가장 유명한 심리학자의 한 사람인 B.F.스키너가 개인의 자율성을 부정하고 심리학의 최대 목표는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제시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 이 책의 앞부분에 실린 글들은, 이러한 뒷얘기 - 단순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니라, 최근에 밝혀진 기밀문서등을 조사해서 당시의 상황을 추적해 나간다. 그런데, 그게 좀 문제다. 당시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서술한다기 보다는, 많은 경우가 '당시의 실력자 누구는 무슨 대학의 누구 총장이랑 이야기를 해서 어떠한 연구소를 만들었다'는 식의 상황설명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그러한 상황으로 인해 어떠한 변화가 학문사회/내용에 있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소홀해졌다. 특히, 나처럼 4-60년대의 미국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냥 지루한 이야기 정도로 밖에는 다가오지 않더라. 부르스 커밍스의 글 마저도, 이런 식으로 흘러서 읽기가 좀 지루했다. 이러한 르뽀성 글들과는 약간 다르게, 마지막에 실린 로렌스 솔라의 '학계에 대한 기업의 새로운 야망'과 같은 글은, 정부가 아닌 기업들이 대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담론분석의 틀을 빌어 읽을만 하게 풀어놓았다. 이 글의 앞부분에는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이 행한 로비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분석은 소비에트의 과학기술 사가에 대한 슐라바 게로비치의 글에서 조금 더 탄탄하게 제시되고 있다. 앞에서의 미국의 사례와는 유사하면서도 조금은 다르게, 소련의 사회에서도 사회과학에 대한 권력의 영향은 꽤나 독특한 특성을 발현시켰다는 이야기를 한다. ".... 소비에트 역사가들의 연구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을 거의 혹은 전혀 하지 않고 오직 '사실논리'적 자료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전략은 정치적으로 안전했으며 동시에 '마르크시이스트(Marxyist, 그냥 맑시스트가 아닌 맑스의 언어를 흉내만 내는 부류들에 대한 용어)'의 해석 틀을 무시함으로써 개인적으로나 지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이런 배경하에서 '내재적 접근법'이 과도하게 주류가 되었고, 그들의 논리로 "과학자들은 과학사유 발전의 내재적 법칙에 따라 주로 자신의 전공분야 내에서 발생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현대기술의 가장 중요한 업적들은 실용적 가치보다는 순수한 지적 요청에 인도된 과학연구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따르게 되었다고 하더라. 하지만, 과하면 탈이나는 법, 스탈린 이후의 후르시쵸프 체제에서 한번 뒤집어졌고, 페레스트로이카와 소련 몰락 이후에는 내재적 접근이 역시 과도하게 수그러들고, 사회적 요인에 과도한 강조가 놓여진 분석들이 판을 치게 됬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내용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배경지식이 없는 나같은 이에게는 보다 상세한 상황설명보다는 담론분석적인 틀을 통한, 시대별 연구추세의 변동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해에 용이했다. 아무래도 내가 가장 가깝게 확인한 대학과 권력의 관계는 아무래도 연구비에 대한 교수들의 갈망들 정도에 한정될 것 같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리고 보다 다양한 사례들에 대한 설명을 통해 권력에 의해 학문세계가 어떻게 영향을 받게 되는지 이 책을 통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듯 하다. 잘 안읽히는 르뽀식 글이었다고 해도, 한편으로는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권력의 폐해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는 것보다는 현실을 파악하는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법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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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트로이프로젝트와 캐멜론프로젝트부터 시작을 한다. 세계대전이전을 언급하다. 냉전시대 정전이 대학을 이용한 정책수단 강구의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이 책에서는 소비에트와 미국에서으 대학과 권력의 유착관계를 예로 들었는데 어느나라나 경우는 다르지 않을것이나 또 책 뒷부분에선 기업들과 하국,대만,일본과 그 외의 국가들이 미국대학에 기부금을 주면서 자신의 이익에 맞게 논리를 전개시키는한마디로 대학에 대한 어용논리를 조장하는걸 다루었다. 내요은 좋은데 일반인 용으로 책을 쓰려면 좀 풀어서 써야하는데 너무 전문가 수준에서만 쓴다. 처음엔 대학에 대한 기부금입학이나 비리에 관한 여러가지 뒷구멍논리에 대해 썼을 줄 알았는데 예를들자면 재벌자제에 대한 특별입학이나 논문표절,국가의 간섭등 인사같은 부조리를 쓴걸로 알았는데 내 예상이 좀 빗나간 것 같다. 내가 책을 고를때 출판사리뷰를 건너뛰는 습관 때문에 저지른 실수 같지만 그래도 내용은 아찬부분도 있어 다행이다. 브루스커밍스교수 김대중대통령귀국때 같이 동행해 주었고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리를 전개한만큼 대학의 권력과 기업에 대한 종속화도 허심탄회하게 설명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낸시교수나 2차대전 암호해독한 외로운 천재 '앨런 튜링'같은 학자들이 정권이 이용한 대표적인 수재일 것이다. 학자로서의 삶의 본질은 다름아니라 진실규명이지만 오늘날 대학이 왜 일반적으로 학생보다 부유한 후원자의 이해를 대변하는데 대한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또 하나의 불문율이 대학에는 존재한다 다름아니라 "돈 내는 사람이 임자"라는 속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