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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 사랑하는 영화입니다..
지금 해외에 살고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DVD와 OST앨범을 한꺼번에 주문해버렸는데요..
너무너무 좋네요...
제가 이영화를 처음으로 봤던게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던것 같은데요..
그땐 내용도 헷갈리고 해서 내용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게 큰 감동도 받지 않았었는데
최근에 나이가 더 먹고나서 다시 보니..
정말 말로 표현할수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물론이고 배우들의 연기..대사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와 어우러지는 음악들..
그리고 카메라 앵글 하나하나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러브레터 앨범을 듣고있으면 영화를 보지않고 있는데도
그음악이 흐르던 영화속 장면이 머리속에 그대로 스쳐지나간다고나 할까요
영화와 음악이 이렇게 잘 어우러지는 영화는 처음인것같습니다..
DVD를 받은건 일주일쯤 전이었습니다
상당히 만족하고요, 너무 소장하고 싶은 영화였기에
정말 기뻤습니다^^
티비로 DVD를 봤을땐 화질도 깨끗하고 자막도 깔끔하게
나와 굉장히 만족을 했었는데 제 노트북으로 보니
화면이 좀 흔들리고 자막도 깔끔하지가 않아
그점이 좀 실망입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를 너무 사랑하는 저로썬 너무 만족했구요
이상 제 상품 리뷰였습니다 ^^;; [인상깊은구절] 전 '오겡끼데스까..' 이장면보단 오히려 이쯔키와 후지이가 마지막으로 대화하는 장면이 제일 인상깊었습니다^-^ 중간에 어른이쯔키가 병원에서 중학교시절을 기억하는 장면도 너무 인상깊었구요... 마지막에 작은 반전도 너무 귀엽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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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DVD에서 자막을 볼 수가 없습니다. 컴퓨터의 곰플레이어로 봤는데, 일어도 한국어도 자막으로 나오지 않더군요. 제가 뭘 잘 몰라서 그런게 아닌가 싶은데 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곰플레이어에 있는 자막 관련 메뉴들은 이래저래 다 확인을 해보았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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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긴 문장은 무려 522개의 단어로 이루어졌을 정도로 길고 복잡한 문장으로 구성된, 그래서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 귀에 익지만, 정작 읽어본 이는 거의 없는 작품이 있다. 1913년에 출간되어 프랑스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질 들뢰즈는 이 작품을 '기호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평했다. 바로 마르셀 푸르스트(Marcel Proust)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는 완역으로는 김창석 번역이 유일하며 총 12권으로 출간되었다. 그나마 가장 많이 읽힌 것은 1부에 해당하는 「스완네 집 쪽으로」. 대개 많은 이들이 1부에 해당하는 앞의 두권을 읽고난 후 더 읽기를 포기한다고 한다. 물론 난 이 작품의 한 글자도 본 적이 없다. 근데 왜 이 작품 이야기를 꺼내냐고..? 그건 이 작품이 이 영화 「러브 레터」 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
이 둘의 공통점을 논하기 전에 「스완네 집 쪽으로」 의 작품내용을 대강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날 주인공은 마들렌느 과자를 차에 적셔먹다가 문득 아득히 잊혀졌던 어린 시적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른바 '뜻하지 않은 기억의 재생'. 되살아난 유년 시절의 기억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과거를 재구성해가는 긴 '의식의 흐름'을 만든다. 장황하고 세밀한 묘사를 거친 후 마침내 스스로의 진정한 존재 이유가 문학에 있음을 깨달은 주인공은 문학에 삶을 바치기로 결심,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며 작품은 끝을 맺는다. 즉 주인공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는데서 작가는 작품을 마무리하는 형식. 여기서 일종의 보이지않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
영화 「러브 레터」 에서 여자 이츠키(이츠키가 남·여 두명이므로 촌스럽지만, 앞에 성별을 붙여둔다)가 불현듯 잊고지내던 과거를 떠올리게되는 계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독한 독감으로 인한 고열 속에서 보게되는 환각. 사실 이 과정이 우연히 히로코가 보낸 편지를 읽게되는 것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직접적인 계기다. 마들렌느를 차에 담가 먹는 것보다는 덜 낭만적일지 몰라도 개연성과 임펙트는 오히려 더 강하다는 느낌도 든다.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 주인공은 '의식의 흐름'과 '내면의 목소리'라는 두 가지 과정을 통해 잊고지내던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해간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 여자 이츠키가 지난 과거를 떠올려가는 과정 역시 히로코의 다소 집요해보이는 질문이 담긴 편지와 그 질문에 해답을 애써 떠올려가는 여자 이즈키의 답장을 통해 자츰 선명해져간다. 빗대자면, 히로코의 질문은 '내면의 목소리'에 여자 이츠키의 해답은 '의식의 흐름'에 각각 빗대어 볼 수 있다.
여자 이츠키가 맨 처음 떠올린 기억은 '후지이 이츠키'라는 같은 이름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꺼리가 되었던, 그저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사소한 기억이다. 둘은 동급생 아이들의 장난으로 인해 함께 주번을 서기도 하고, 시험지가 서로 뒤바뀌기도 한다. 나중에 둘은 역시 아이들의 장난으로 함께 도서위원에 선출된다. 그러면서 남자 이츠키에게는 묘한 취미가 생겼는데, 그것은 아무도 빌려보지 않은 책들만을 골라 그 뒤 대출카드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놓는 것.
히로코의 자극(?)으로 중학생 시절의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여자 이츠키는 남자 이츠키의 과거 행동에 흥미가 생긴다. 과거를 되짚어갈수록 그와의 인연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여자 이츠키. 그리고 그녀는 그 많은 추억에도 불구 그에 대한 기억이 희안할정도로 희미해진 이유가 바로 그 시기에 벌어진 아버지의 죽음과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을 덮는 과정에서 그와의 추억마처 함께 묻혀졌던 것.
여자 이츠키는 후배들이 보여준 책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뒤 도서카드에 유일하게 적혀있는 후지이 이츠키의 이름을 본다. 그리고 돌려본 뒷면.. 자신의 중학교 시절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남자 이츠키가 남들이 보지 않는 책들을 찾아 카드에 적어놓은 이름은 남자 이츠키 자신의 이름이었을까.. 아니면 여자 이츠키의 이름이었을까..? 그는 왜 아무도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만을 골라 그 이름을 적은 것일까..? 이러한 일련의 연관성과 대비의 관점에서 보면, 마르셀 푸르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는 단지 소재로서만이 아니라, 이 영화 스토리 전반의 줄기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을 듯. 물론 작품을 한 글자도 읽어보지 않은 순진하고 무책임한 내 개인적 추측이다.
이 영화는 너무도 닮은 두 여인(당연하다. 원래 나카야마 미호 혼자서 1인 2역을 한 거니까..)을 통해 사랑을 떠나보내는 애도의 과정과 새롭게 사랑을 깨달아가는 각성의 과정을 각각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히로코가 여자 이츠키보다 더 약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남자 이츠키가 자신에게 끌렸던 이유를 여자 이츠키에서 찾았고, 이를 통해 스스로에게 다가온 새로운 사랑으로부터 생길 수 있는 마음의 짐을 일부나마 덜어낼 수 있었으니까.
눈 쌓인 오타루와 고베의 멋진 설경과 이와이 슈운지 특유의 감성적 연출, 헨드핼드 카메라의 강한 몰입력(이런 말이 있나..? 흡입력이라기엔 좀 다른 의미라 쓴 건데. 어째 어색함)이 승수효과를 발휘, 90년대를 대표할만한 영화가 된 「러브 레터」.. 내겐 어쩐지 눈발 날리는 겨울마다 한 번쯤 꼭 봐주고 넘어가야 할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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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레터]의 죽음, 사랑의 이미지 이와이 순지의 영화 읽기 뮤직비디오와 CF, TV 드라마를 거쳐 이와이 슈운지가 만든 최초의 장편영화인 <러브 레터>는 1995년 일본에서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작품이다. 또한 '키네마준보'가 집계한 독자선정 '95 베스트10'에서 1위를 차지해 지적인 관객들의 사랑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이후 우리나라에서 몇 년간 불법비디오로 돌면서 약 10만명 정도가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몇 년 후 극장개봉시 서울관객 70만명을 동원했다. 모 음료수 CF에 '자전거 돌리며 불빛을 내는 장면'이 패러디되고 '오겡끼데스까'를 소재로 한 개그가 유행하는 등 우리나라 문화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만큼 <러브 레터>는 개인적 취향을 넘어서 일본의 미학과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와이 슈운지가 연출, 각본 뿐 아니라 편집까지 맡아 했기 때문에 작가주의적 분석이 유효하며, 분석은 결국 슈운지 자체가 가진 의식적, 무의식적인 일본성을 파헤치는 것이 될 것이다. 대학에서는 미술을 전공했고 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분명 천재적인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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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 자연, 미의식 옛부터 일본인에게 자연은 혜택을 주는 것, 친밀한 것이었다. 이는 일본이 온대지방에 위치해 있어서 자연환경이 온화했고 농경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과 자신을 일체화하고 살아가는 감정이 일본인의 모든 정신활동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의 일체감은 자연을 즐기고, 현세를 구가하는 현실긍정의 사고를 만들어냈다. 한편 춘하추동과 사계절의 변화로 인해 자연의 변화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자연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키워냈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예술과 생활습관이 생겨났다. 일본인의 자연관은 불교의 무상관으로 증폭되었는데 특히 선종사상과 결부되어 유겐, 와비, 사비 세계를 만들어냈고 다도, 정원, 꽂꽂이 등에서 있는 그대로의 꾸미지 않은 자연을 재현하게 된다. 일본인은 죽음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이 자연과 일치시키며 오히려 미화하기까지 해왔다. 불교 선종의 일파인 조동종을 일본에서 시작한 도겐(道元)은 '생사문제에 구애받지 말고 죽을 때는 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죽음에 철저하고, 살 때는 삶에 철저하여 순간순간을 전력을 다해 살아갈 것'을 주장, 이것이 무사도의 기초가 된다. 에도 시대에 정착이 되는 무사도는 죽음에 철저한 것이 완전한 삶과 이어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할복', '동반자살' 문화가 여기서 기인하고 현재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나라에 일본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영화들 중 '살인, 자살'이 많이 등장하고 공중파 TV 드라마에서도 엽기적인 죽음이 일반적인 소재인 것을 보면 일본에서 죽음이란 친근하기까지 한 문제일 듯싶다. 이러다보니 일본은 죽음과 자연을 결부시키고 자연스럽게 여기며 아름답게까지 생각하거나 표현하는 미학이 생겨났다. 36세에 자살한 시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는 죽음보다 더 나은 예술은 없다, 죽는다는 것은 사는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었는데 다음은 유서의 일부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얼음처럼 맑고 투명한 병적인 신경의 세계이다. (중략) 내가 언제 과감하게 자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단지 자연은 이런 나에게는 언제나 보아도 한층 아름답다." 또한 한 번에 피었다가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확 져버리는 사쿠라는 죽음의 미학을 상징한다. 이것은 가미가제의 젊은이들이 '당당하게' 죽을 수 있는, 그리고 죽게 하는 확고한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한다.
< 러브 레터>에는 두 명(두 건)의 죽음이 있는데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현재의 죽음과,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아버지의 죽음이 그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와타나베 히로코와 女 후지이 이츠키는 모두 그 죽음의 기억(아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의미심장한 것은 영화의 첫 신이 순백의 눈 위에 누워있는 히로코, 그리고 장례식 장면이라는 점이다. 죽음과 자연의 일체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렇게 누워있을 정도인 히로코는 사실 정상은 아니다. 갑작스런 연인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약간은 사이코적인 면을 보여준다. 연인 후지이는 눈 덮인 산에서 죽었다(<나라야마 부시코>에도 나오듯 산 -특히 영험한 산-과 죽음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나 보다. 일본 특유의 종교로 산에 오르는 수행을 근본으로 하는 산악 종교가 있는데 산은 인간이 사는 세계와 다른 타계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에도 중기에 이르러 후지산을 이르는 '후지코'가 서민들에게도 일반화되었다). 女 후지이는 아버지가 죽은 당시 장례식장에서 문득 눈 속에서 냉동돼 모양이 그대로인 잠자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하는 혼잣말이 뜬금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이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일본에서 잠자리는 나비와 같은 의미로, 혼,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고 재생, 부활을 상징한다. 결국 일련의 죽음을 둘러싼 얘기들이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영상과 환상적인 음악에 힘입어 감상자에게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은 무반응이라는 것이 놀랍다. 영화의 처음에서 보여지는 장례식에서 죽은 자의 가족이나 친구들의 분위기는 아주 활기차고 아무렇지도 않다(우리나라 병원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굉장히 침울하거나 애통함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그리고 여 후지이 이츠키의 집에서도 초반부에는 아버지(남편, 아들)의 죽음에 대해 다들 무덤덤하게 얘기하고, 농담을 하고 웃기까지 한다. 소위 일본의 감정에 대해 얘기할 때 긍정적으로 쓰는 ‘절제’일 수도 있고, ‘다테마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연히 필연적으로 다테마에의 폭발 내지는 분출이 어느 한순간 이루어질 때 굉장히 영화가 파워풀하고 극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방에서 죽은 후지이에 대해 와타나베와 후지이의 모(母)가 대화할 때 후지이의 엄마가 갑작스레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 여(女) 후지이가 고열로 쓰러지자 비로소 죽은 남편/아들에 관해 대립하는 두 부녀의 신이 바로 그러했다. 그리고 해 돋는 산에서 미친 듯이 절규하는 와타나베의 모습에 110%쯤 감정이입하면서 가슴이 절절한, 최초의 기이한 체험을 가능케 했다. 우리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도 ‘절제된 죽음’이 나오지만 여기엔 곧 죽을 당사자가 나와서 스스로 삶과 사랑을 정리한다는 면에서, 남(男) 후지이의 모습이 전혀 안 나오는 <러브 레터>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전자는 죽음을 일상에 결부시키고 후자는 자연과 밀착시키는 차이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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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테마에와 혼네 와타나베 히로코와 女 후지이 이츠키의 편지 교류 사이에서 다테마에와 혼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일단 처음에는 그 둘의 편지 교환은 서로가 각자 다른 의미로 출발을 한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끝끝내 애인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바로 집 앞에서조차 女 후지이를 찾을 것을 포기하고 결국은 무슨 심정인지 편지들을 그녀에게 돌려보낸다. 이것은 여 후지이를 향한 배려, 즉 혼네라고 볼 수 있다(‘이것들은 당신의 추억입니다’라며 돌려보낸다). 그리고 女 후지이는 우연히 선생님을 통해 男 후지이의 죽음을 듣고, 상대방을 배려해서 자신이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또한 밝히지 않는다. 대신 편지의 첫 시작을 ‘예전에 우리 아버지도 돌아가셨죠’라고 우회적으로 시작한다. 이런 모습들, 그리고 서로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거나 가슴시린 추억을 재발견해낸다는 사실이 참 경이롭고 아름답다.
3. 사랑 중의 사랑은 ‘시노부코이’(忍戀) 요시다 겐코의 ‘부족(결핍)주의’에 관한 글의 첫 머리는 ‘과연 꽃은 활짝 핀 상태에서 보아야 하고, 달은 보름달일 때 보아야 하는가’로 시작한다. 이에 따라 남녀의 정, 연애 역시 만나는 게 다가 아니라 만나지 못해 근심과 그리움이 쌓이고,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원망하고, 멀리 떨어진 님을 생각하며 기나긴 밤을 홀로 새우고,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의식이 있다. 미나미 히로시는 이것을 일본의 부족주의, 혹은 일본식 마조히즘이라고 표현한다. 부족주의의 미학은 이후 유겐(幽玄), 와비, 사비에도 전승되는 것이다. 유겐이란, 표박(飄泊)하여 뭐라 말할 수 없는 데가 있는 것, 혹은 마음과 뜻은 있지만 확실히 말해버릴 수 없는 상태이며 그것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뭔가 남겨놓은 모습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상태가 좋아지는 것이다. 즉 감정은 그것을 억제하면 억제할수록 순수해지고 강해진다는 게 일본적 감정설이다. ‘노’(가면악극)처럼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가능한 억제하여 감정의 내부적인 고조를 표현하는 것이 일본 전통 예술의 심리적 요소의 하나이다. <러브 레터>의 등장인물들 – 후지이 이츠키(남녀), 와타나베 히로코-의 관계 속에서 이것은 수시로 발견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적인 것을 넘어서서 10대의 사랑의 수줍음이라는 것 자체가 이런 면과 연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마치며
흔하게 우리나라 멜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유난히 연인의 비극적인 죽음코드가 등장하고 있지만 <러브 레터>처럼 몇 번을 봐도 어떤 절절한 느낌을 주는 영화는 드물다. 또한 <러브 레터>가 일본 평단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감각적이고 탈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비 일본인인 본인이 보기에는 분명 근원적으로 무척 일본적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 속 에서처럼 사랑, 죽음을 연관시킨 강렬한 눈[雪]의 황홀하면서도 아련한 이미지는 아직 어떤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기에 겨울이면 반드시 다시 꺼내보게 되는 일본의 대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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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yes24.com/bohemian75 (주소원) 3기 파워문화블로거 2012년 3월 영화부문 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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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와이 슌지 감독이 1995년 만든 영화 <러브 레터 Love Letter>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나는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 일이 바쁜 철인 2월과 3월은 그렇다쳐도, 5월에 들어선 이제까지도 몸과 마음은 무겁고 바빴다. 피붙이와 살붙이 가운데 한 사람은 몸이 세상을 떠나셨고, 한 사람은 마음이 좋지 못하다. 그런 틈바구니에서도 밥은 굶지 말고 살라는지 일감은 꾸준히 들어와서 일거리는 가려서 해야 할 판이다. 일이 힘들다 보니까 그 일을 못 견뎌하는 아랫사람이 떨어져나가고, 그 틈새를 땜질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이어지는 세월 속에서 밥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돈도 들어오지만,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사놓고 오랫동안 모셔(?)놓기만 했다. 이름난 작품이어서 빨리 볼까도 싶었지만, 내게는 그리 끌리지 않아서 제껴두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8월에 일터에서 일본 홋카이도에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가는 게 좋을 듯해서 보았지만, 글로 남겨두지 않았다.
일본에 가기 앞서부터 일을 많이 한 탓에 허리가 조금씩 아팠는데, 홋카이도에서 골프까지 치느라 허리가 더 나빠졌다. 골프장 안을 사슴 무리가 떼지어 돌아다니는 곳이라, 좋구나! 하면서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도 나는 허리 때문에 힘들게 닷새를 보낸 터라, 갔다온 다음에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잘 지내지 못하는 날들을 떠나보내면서 이 영화가 다시 생각이 났다.
2. 두 해 앞서 산에 갔다가 저승으로 떠난 후지이 이츠키(카시와바라 다카시). 사랑하는 이츠키를 잃었지만 늘 그리며 사는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 이젠 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지만 쉽게 이츠키를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츠키의 집에서 찾아낸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중학교 앨범에 나온 주소다. 홋카이도 오타루 시 제니바코 2-24번지. 하늘나라에 보내는 편지와 같다. 이츠키가 이 세상에 없으니 말이다. "후지이 이츠키 님, 잘 지내셨어요? 전 잘 지내요. 와타나베 히로코가"
히로코가 사는 코베에서 이츠키의 옛집인 오타루까지 편지야 가겠지만, 받을 사람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니까 답장이 올 리가 없는 편지였다. 그냥 허전하고 그립고 안타까운 마음을 편지로나 풀어보려고 보낸 것일 뿐...
그런데 며칠 뒤 답장이 왔다. 뭐야!!! 귀신이 보냈어? "와타나베 히로코 님, 저도 잘 지내요. 감기 기운이 좀 있지만..." 요즈음 귀신은 고뿔도 잘 걸리나 보네...
히로코도 하늘나라로 다시 편지를 보낸다. "후지이 이츠키 님, 감기는 좀 어떠세요? 빨리 건강해지세요"
처음에는 누가 장난을 치는 듯했지만, 히로코는 기쁘다.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이츠키한테서 답장이 왔으니 꿈인지 생시인지...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편지...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주고 받는 편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편지다. 지구에서 지구 밖인 우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뭔 일이지?
3. 영화는 두 갈래로 보여준다. 이츠키를 떠나보낸 뒤 홀로 남은 히로코가 보내는 삶을 한 갈래로 잡고, 이츠키가 홋카이도에서 살았을 때의 이야기를 다른 갈래로 엮어서 나아간다. 옛날 일과 이제의 일을 번갈아 앞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뒤에 나타내기도 하면서.
아무도 안 읽는 책만 빌려가서 책 뒤 대출카드에 제 이름을 첫 자리에 올리려고 하는, 잘 생겼지만 까칠한 이츠키를 둘러싸고 배움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영화 첫머리에서 나오는 대목들을 볼 때는 짐작조차 못하도록 했다.
퍼즐을 끼워 맞추듯 하나씩 밝혀가는 꼭지들은 영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게 했다. 그것이 비록 중학교를 다니던 어린 사내아이와 계집아이의 첫사랑이라 해도, 어른들의 농익은 사랑이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풋풋함이 묻어나와 좋았다.
나로서는 이츠키의 첫사랑에 들러리를 선 듯한 히로코가 안타까워 보였다. 이츠키가 처음으로 사랑한 그이는 이츠키가 떠났어도 담담하게 살았다. 이츠키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츠키는 제 첫사랑을 못 잊어서 가슴앓이를 하며 살았다. 코베에서 나중에 만난 히로코가 그이를 닮았기 때문에 끌렸다는 대목은 히로코를 가슴 아프게 할 뿐. 히로코는 그런 이츠키를 못 잊어하며 저를 좋아하는 선배 시게루 아키바(토요가와 에츠시)마저 뿌리쳤다. 사랑이란 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받지도 못한 사랑 때문에 어떤 이는 가슴 속에 묻고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보면 감독은 히로코한테 제가 져야 할 무게보다 더 많은 짐을 지우는 듯 보였다. 오히려 이츠키와 첫사랑이 더 오래도록 져야 할 몫인데도... 그래놓고 마지막에 산을 향해 소리치기만 한다. "잘 지내고 있습니까?" 그것도 이츠키가 죽을 때까지 그 속을 제대로 알지 못하던 히로코한테 떠넘기면서.
감독도 이런 내 투덜거림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히로코의 선배 아키바의 입을 빌려 히로코한테 이젠 그만 이츠키를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직 이츠키를 못 잊는군...그런데 우린 도대체 뭐야? 뭐야?" 아키바가 널 사랑하는 나는 뭐냐고 따지는 말에 비켜가는 히로코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곤란할 때마다 사투리로 넘기는군...이제 그만 후지이를 자유롭게 해줘. 너도 자유로워지고..." 아키바의 이 말을 들으면서, 히로코가 하는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히로코가 에둘러 가려고 말하는 사투리가 나한테는 와닿지 않으니까.
4. "와타나베 히로코 님, 당신은 대체 누구세요?" "웃기는 사람이네. 후지이 이츠키인 척한 게 누군데?" 처음에는 서로 그냥 장난이려니 생각하고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다가, 나중에는 이 사람이 왜 이럴까 싶어서 묻고 따지는 모습을 보는 건 즐거웠다.
보는 나로서는 일어나는 일들을 감독이 다 보여주고 있었지만, 편지를 주고 받는 두 사람이 나타내는 얼굴이나 몸짓이 미리 짜놓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처음 느끼는 모습으로 보여서 잘 짜맞춘 감독의 노련한 솜씨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이츠키라며 편지를 보낸 이를 만나러 오타루까지 간 히로코와 아키바가 그이를 만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갈 때, 만나게 할 수도 있을 법한데 감독은 아슬아슬하게 비켜가게 했다. 이 대목은 마치 물감으로 다 칠하지 않고 빈 곳을 남겨두는 동양화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 마음이 가장 끌리는 대목은 이츠키가 중학교 시절을 보낸 오타루에서 보낸 일들이었다. 풋내가 나는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들이 벌이는 일들은 이젠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내게는 아련히 다가왔기 때문이다. 누구를 좋아하면서도 차일까봐 걱정하고, 마음에 들지만 다가가지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는 풋사랑...
5. 아쉬운 대목은 끝무렵에 나왔다. 오타루에서 할아버지가 그 손녀한테 네가 태어날 때 잣나무를 심었다고 했을 때, 이 나무가 그 나무인가요? 하면서 마당을 샅샅이 찾아다니는데, 내 눈에는 자작나무 같은 것만 보였다. 뾰쪽잎나무인 잣나무와는 거리가 있는 나무들이었다. 잣나무와 비슷한 소나무 따위도 없는데 말이다.
또 하나는 첫 대목이었다. 눈이 내린 언덕에서 눈 위에 누웠다가 일어난 히로코가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여준다. 곧 사람들이 떠나간 이츠키를 기리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곳은 코베일 것이다. 그런데 눈으로 덮인 모습은 나중에 나오는 홋카이도 오타루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하얗게 쌓인 눈과 그곳을 내려가는 히로코의 모습이 눈으로 보기에는 나쁘지 않았으나, 눈이 많이 내리고 쌓여있어 보기에 남달랐던 홋카이도의 모습과 견주려면 오히려 다르게 나타내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네와 달라서 과연 그럴까 궁금하다. 어렵다고 하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인데도 거리낌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나, 이츠키가 죽은 지 두 해가 지나서 기리는 날에 그 아버지는 벗들과 어울려 술 마시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나, 아버지가 고뿔 끝에 폐렴으로 번져서 죽었다면서도 그 딸도 기침을 하면서도 빨리 낫우려 하지 않는 대목은 어쩐지 낯설고 쉽지 않을 듯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마구찌 선생 얘기는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배움터를 떠난 지 오래 되었는데도 그 때 배우던 아이들 번호까지 외우고 있다는 얘기는 이야깃거리로 좋을지 모르지만, 그런 선생이 몇 되겠나 싶어서 멀게 느껴졌다.
6. 감독이 골라서 배우들의 입을 빌려 하는 말들이 통통 튀어다녀서 좋았다. "당신의 추억을 나눠주세요" 하며 히로코가 보낸 편지를 보고는 맞대꾸한다. "내 머리를 통째로 소포로 보내는 게 가장 빠르겠군"
후지이 이츠키와 사귀고 싶다던 오이사와 사나에의 말들도 싱그러웠다. "사내는 제멋대로야...하지만 계집이 훨씬 교활하긴 해!" 이런 사나에가 도서실에서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며 끌고가던 이의 손을 뿌리치려 하다가도 "이젠 넌 필요없어" 하며 씩 웃으며 혼자 이츠키를 만나러 가는 모습도 시원해서 좋았다. 덤벼들 때는 과감하게 치고 들어가지만 아니다 싶을 때는 미련없이 떠나는...그런 이가 나는 마음에 든다.
이 영화는 펑펑 내리는 눈과 눈에 덮인 땅을 보는 게 좋았고, 후지이 이츠키를 두고 코베와 오타루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게 마음에 와닿았다. 큰 울림은 아닐지라도 사람 사이에서 있었던 애틋한 사랑과 추억을 잘 엮어놓아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는 매끈한 영화였다. 그래도 별은 넷만 주었다.
이츠키한테 속은(?) 히로코가 불쌍하고, 이츠키가 좋아한 사람은 히로코가 말할 때까지 무덤덤했기 때문. 이츠키가 자전거를 타고 따라가면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이한테 포대를 얼굴에 덮어씌워 아찔했는데, 여러 일들이 있었음에도 무덤덤하게 생각하면서 살 수 있는지...나로서는 감독의 마음을 알기가 어려웠다.
7.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영화여서 만든 지 오래 되지 않은 듯 느껴지지만, 벌써 스무 해가 지났다. 한장 짜리 디뷔디는 나쁘지는 않았다. 화면은 그럭저럭이지만, 소리도 괜찮고, 덤도 값에 견주면 좋았다. 예고편도 있고, 비록 글로써 나타냈지만 감독과 배우들을 소개해놓은 것도 2,900원짜리치고는 괜찮았다.
그런데 이젠 나오지 않는다. 책과 달리 영화 디뷔디는 조금만 지나면 살 수가 없다. 눈에 보일 때 사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블루레이를 팔려고 자꾸 내놓는 요즈음은 더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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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이 계속해서 날 숨막히게 한다 지금은 그나마 버틸만한데 이번 여름에 보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여전히 더운 이 시점에서 우연히 이 영화를 발견했다 배경이 겨울이라 그런지 보는 내내 시원했다 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것조차 잊은채 한때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일으킨 붐은 정말 대단했다 일본어 공부 열풍이 대단했고 명대사 명장면을 패러디하는가 하면 명대사를 늘 외치는 사람들까지 등장 그리고 배우와 감독을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확실히 인식시켜준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토리또한 어찌나 아름답고 좋던지 보는 내내 한순간도 눈을 뗄수가 없었고 어릴적 후지이 이츠키를 연기한 남학생은 꽃미남대회에서 1위를 한게 알려지면서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그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도서관 창문앞에서 책을 읽는 모습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바람에 날리는 커텐사이로 보인 그의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었으니까 몇년이 지나도 이 영화가 다시봐도 왜 그렇게 설레고 좋은지... 나까야마 미호의 1인2역이 영화 러브레터를 빛내는데 한몫했다고 본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정말 어떻게 됐을지...
한때 나도 저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애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나중에 꼭 해봐야지 했는데 몇년째 솔로다 ㅎㅎ 겨울이 배경이 영화라 늘 주위에는 눈이 항상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더운 날씨 탓에 그 배경만 봐도 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특히 이츠키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촬영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죽은 연인 후지이 이츠키를 잊지 못하는 와타나베 히로코는 그의 집에 갔다가 예전학교때의 졸업앨범을 발견하고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답장이 오면서 히로코는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바로 여자 후지이 이츠키와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히로코의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와 같은 중학교 동생창이라는 것을 알게 된후 그가 학창시절 어땠는지 알려다라 하고 후지이 이츠키는 히로꼬에게 같은 이름인 후지이 이츠키에 대해서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이 두사람의 편지로 인해 후지이 이츠키는 한남자에 대한 추억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참 단순해 보여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첫사랑에 대한 추억은 물론이고 떠나보내야 하는 와타나베 히로꼬의 가슴 아픈 이별장면도 모두가 잊을수가 없다 그녀가 산에서 외치던 그 대사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 명대사이다 언제 시간되면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
![]() ![]() 이 영화는 솔직히 OST를 우연히 듣고 너무 좋아서 영화까지 보게 된 케이스다. TV에서 방송되는 걸 보고 난 뒤 잔잔한 영상과 그 영상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피아노 선율이 너무 좋아서 결국 DVD까지 샀다. 학창시절 누구에게나 한번 쯤 있었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조난 당한 옛연인을 잊지 못해 그와 이름이 같았던 동창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서로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에 접근한다는 구조이다. 여주인공의 1인 2역을 보면서 문뜩 생각난 게 있는데, 죽은 이츠키는 과연 그녀를 사랑했을까, 아니면 그녀가 닮았던 첫사랑을 추억을 사랑한 것일까하는 생각이다. 영화 속에서 독서실에서 바람에 날리는 하얀색 커튼 뒤로 비스듬히 서서 책을 읽으며 이츠키를 바라보던 이츠키.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녀의 이름 이츠키를 모든 도서의 열람카드에 적어가던 그의 잔잔한 사랑이 가슴에 스며 들던 영화다. 지금도 눈이 오면 난 이 영화가 생각난다. 영화 속 명장면이자, 무수히 패러디 되었던 그 유명한
"おけんきですか。" 가 선명해진다. ![]() 할인 행사 때 샀지만 영화의 질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보시는 바와 같이 약간 썰렁하다. 좀 더 좋은 버전으로 사고 싶어도 이젠 구하기도 힘들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케이스안에 작품에 대한 설명이 첨가된 종이라도 하나 있었음 싶다. 그마저도 없으니 너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드네요. |
| 러브레터를 좋아하는데다가, 가격도 저렴해서 구입했습니다. 일단 DVD를 받으시면 7700원이라는 빨간 스티커가 자랑스럽게(?)붙어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만, 저는 그 점에서 왠지 아쉬웠습니다. 꼭 이렇게 붙여놔야했을까...라는. 안의 구성은 케이스를 열면 바로 씨디 한장만 들어있는 구성입니다만, 그렇게 허술하진 않습니다. 안에 크게, 극중 후지이 이즈키의 사진이 프린팅되어있거든요. 그 점에서 만족스러웠습니다.(가격을 생각하면 달랑 씨디 한장 들어있어도 군말할 수 없습니다만, 케이스를 열면 눈에 가득 보이는 후지이 이즈키라니요!♡) 재생도 해봤습니다. 화질도 괜찮구요. 장면선택도 있고, 다른 DVD에 비해 질이 떨어지진 않네요. 스페셜하게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라든가 코멘트는 없지만, 가격대에 비해서 좋은 제품인 것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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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げんきですか..... 많이 회자되어지던 말이다. 일전에 모 방송프로에서 남자배우가 강 저편을 보며 외쳐대던 장면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일본영화에 대한 느낌이 참 좋아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보고 있지만 이 영화는 나와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 깊숙한 곳의 감성까지 찾아가 울림을 주는 그 느낌이 참 좋아서 보기 시작했던 일본영화는 책으로 본 것은 어지간하면 영화로 다시 보지 않는다는 나만의 규칙을 깨뜨리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을만큼 다가오는 느낌들이 참 좋았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려내는 그 감각이 좋았던 영화도 있었고 사랑을 너무 몽환적으로 그려주지 않아 어쩌면 다가가기 편했던 영화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이 대부분 좋았기에 그에 못지않게 나의 기대감도 컸을 것이다. 사랑했던 연인을 그리워하는 한 여자가 눈속을 헤쳐나오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한 여자의 사랑보다는 그 사랑을 잉태하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는 구성인 듯 하다. 겨울 산에서 조난당해 죽어야 했던 약혼자를 못내 잊지 못하던 여자는 그의 추모식날 옛연인의 집 앨범속에서 그의 옛주소를 알게 되지만 지금은 국도가 되어버렸다는 말에 아쉬워한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그곳으로 편지를 보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되돌아오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예의같은 건 아니었을까? 이미 없어져버린 주소로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내야 했던 그녀의 마음을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하지만 우연처럼 답장이 온다. 옛연인과 같은 이름의 발신자로부터...
사랑이라는 건 어쩌면 지나가버린 시간속에 존재하는 흑백사진 같은 건 아닐까? 사랑에 대해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본다. 사진첩을 펼쳐볼 때마다 바로 어제의 일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내 곁으로 다가오는 지나버린 시간속의 일들은 참.... 허망하다. 눈물같다. 어느날 불현듯 내가 알지 못한 채, 느끼지 못한 채 흘러내리는 그런 눈물같은 게 사랑은 아닐까? 이 영화속의 주인공은 차라리 옛연인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 그랬다면 그 사랑을 영원토록 가슴속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었을 테니까... 같은 이름을 가졌던 옛연인의 동창생과 자신이 너무도 똑같이 생겼다는 걸 알고는 알 수 없는 절박함에 괴로워했던 그녀는 결국 자신을 사랑해주는 선배와 함께 옛연인이 잠들어 있는 그 산을 향해 출발한다.
되새김질 할수록 사랑은 아픔으로 다가오는 건가보다. 어쩌면 잊을 수 있는 마음조차도 사랑이라는 듯이... 옛사랑을 떨쳐버리고 새롭게 다가올 사랑에게 문을 열어주기 위하여 찾아갔던 곳에서 그녀가 이렇게 외쳤지... おげんきですか... 잘 지내시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외쳐대는 그녀의 속울음이 나는 너무도 슬펐다. 그 밖에 또 무슨 말을 할까? 결국 사랑했으나 그 사랑을 온전히 갖지 못했던 그녀의 지나간 시간들이 어쩌면 미웠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바라보았던 사랑도 눈치채지 못한 채 보내야 했던 또 하나의 사랑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을까? 주인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해 방황해야 했던 사랑이 이 영화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깜깜한 밤이 너무 어두워 차라리 흔들리며 빛을 내려보내는 가로등처럼 그렇게 허황하게 서 있다. 이 편지는 당신이 간직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옛연인과 같은 이름의 동창생에게 그동안 주고 받았던 편지를 돌려보내야 했던 그녀의 서글픔이 고스란히 눈처럼 그렇게 쌓여 있었다. 잘 지내시나요?... 나도 이제 당신처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은 추억을 먹고 사는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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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재구성, 이츠키(男)가 절벽에서 추락하면서 부른 노래가 왜 '푸른산호초'였는지에서부터 이츠키(女)가 이츠키(男)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발견한 책이 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였는지까지 생각해보아야하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일본영화이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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