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읽었던 책과 참으로 비교된다. 아는 게 많은 작가라는 것이 느껴진다. 아는 체 하는 사람이 많은 건축계에 진짜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을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실력자는 얼마나 될까. 진정한 실력자와 글 쓰는 능력은 다른 것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사람은 거짓부렁을 할 것 같진 않다. 얼마 전의 그 책보다 쉬운 말로 썼지만 더 깊이가 있다. 건축을 알기에 이보다 좋은 책이 없을 것 같다. 이를테면, 건축의 기본서랄까. 건축의 요소를 하나 하나 짚어 설명해주고 존재의 이유를 알게 해 준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도 미덕이다. 뭔가 있어 보이는 건축, 그 뭔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일반인에게 적극 권함. 내 수준도 일반인에 비해 나을게 별로 없으므로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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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박제된 과거 혹은 살아있는 유기체 “사람은 공간에 에너지를 채워넣는 가장 중요한 소도구다. 소도구라는 말이 적당하지 않다(면) 사람이 공간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1)”라고 해도 좋다. 그렇기에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은 살아있는 공간이지만,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면 그 건물은 관리의 유무에 따라 박제된 공간이 되거나 허물어지게 된다. 쉽게 생각해보자. “한때 우렁찬 파루(罷漏) 종소리에 맞추어 서울 시민의 움직임을 제어하였을 <숭례문(崇禮門)>은 이제 서울이라는 평면 위에서 침묵 속의 고도(孤島)가 되어버렸다. 자동차가 돌아가는 로터리와 관공서에서 홍보용으로 만드는 사진의 피사체 역할 정도가 <숭례문>의 현재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숭례문>은 이제 구조물이 아닌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초점으로 남아 있다.2)” 이렇게 박제된 과거의 또 다른 예로는 아치(arch)와 이맛돌(keystone)을 들 수 있다. “쌓아서 이루어지는 재료로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 허공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이것을 이루게 한 것이 바로 ‘홍예(虹霓)’ 혹은 ‘아치(arch)’의 발견이다. 이처럼) 아치의 발견은 건축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쌓아서 이루어지는 재료의 가장 위대한 성과라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돌을 붙여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아치가 지녔던 의미는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이맛돌(keystone)이 덩달아 무의미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 아치는 돌로 된 건물의 곳곳에 장식적으로 등장하고 이맛돌은 거기서 박제처럼 매달려 있곤 한다. 가슴 벅찼던 그 순간을 찬미하는 화석이 되어 있는 것이다.3)” 하지만, 전통 건축물 혹은 건축양식이라고 모두 이렇게 박제된 공간인 것만은 아니다. 옛 우리 선조들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 지키면서 120세대가 실제로 생활하고 있는 낙안읍성(樂安邑城) 민속마을의 경우처럼 예외도 존재한다. 어쩌면 불편할 것 같은 초가집에서 생활하면서 조선시대의 삶을 재현하는 듯한 그들 덕분에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가집촌’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용인 민속촌처럼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마네킹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제된 공간을 또 하나 보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공간의 확대 – 점, 선, 그리고 상자 건축이라는 것은 의외로 간단한 ‘점’에서 시작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새로 이사 간 집에서 그림을 어디에 걸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바로 ‘점’을 찍는 것이다. 이렇게 “평면의 어느 부분에든 ‘점’이 찍히면 (그) 평면은 바로 이 ‘점’에 의해 지배된다.4)” 단지 그것뿐이 아니다. 이렇게 최초의 ‘점’이 결정되면 그 다음 ‘점’들을 어디에,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건축의 방향이 정해진다. 만약 당신이 한가운데에 최초의 ‘점’을 찍고, 좌우대칭으로 디자인한다면, 가장 손쉬운 선택을 한 것인 동시에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디자인에 좌우대칭이 지금보다 더 많이 사용되어 왔던 것을 사회적으로 팽배한 권위 의식의 표현으로 해석5)”하기도 한다. 이렇게 건축은 그 사회의 정신을 반영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렇게 ‘점’에서 시작된 건축은 선, 상자(원통)를 거쳐 ‘공간’으로 확대된다. 그렇기에 건축을 ‘공간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을 채울 것인가 비울 것인가, 그리고 비우더라도 어떻게 비우냐에 따라 건물은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예컨대 같은 비움의 철학에 기초하더라도 을지로 입구의 <브릿지증권 사옥>과 동숭동의 <샘터 사옥>은 소통과 휴식이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브릿지증권 사옥>) 1층 부분은 꼭 필요한 부분을 남겨두고는 모두 공터로 개방되어 있다. 지하철역에서 나온 사람들은 이 땅을 지름길로 이용해 명동으로 향할 수 있다. (<샘터 사옥>의 1층은) 마로니에 공원을 제외하면 의외로 변변히 앉아 있을 곳도 없는 이 동네에서 쌈지 마당(이라는 휴식처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6)” 건축, 시대정신의 반영 우리 주위에서 가장 많이 보는 형태의 건물인 빌딩, 아파트는 흔히 개성 없는 콘크리트 성냥갑 덩어리로 매도당하곤 한다. 하지만 콘크리트에 있어서 이러한 비난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오히려 건축가와 시공자가 콘크리트라는 재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탓이다.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는 옛말처럼 돌, 콘크리트, 강철, 나무,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그 물리적 속성 외에 그 재료가 갖는 의미를 따져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건축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건물이 벽돌과 콘크리트 같은 재료들의 집합체인 것은 아니다. 건물을 드나들고 사용하는 사람들과 건물이 맺는 관계, 주변 건물과의 관계 또한 그 건물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예컨대 서울 연건동에 위치한 <대한의원 본관> 옆에 “<서울대학교 병원>을 설계하게 된 건축가는 이 사적(史蹟)에 최대의 경의를 표하였다. (그)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 병원> 건물은 두 팔을 넓게 벌려 옛 <대한의원 본관>을 포옹하는 듯한 자세로 배경에 물러서 있다. 그리하여 두 건물은 서로를 빛내 주고 있다.7) ” 물론 모든 건물이 이렇게 주위와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심술궂은 깡패 혹은 벼락부자처럼 주위에 몽니를 부리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건축이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고 표현되는 것처럼 공간은 단지 바라 보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과 생활 그리고 그 사회의 부대낌, 사회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을 담는 그릇이 된다. 이리하여 건축은 건축가가 공간으로 표현하는 시대정신이 되는 것이다.8)”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9)”는 유홍준 교수의 말은 건축에도 적용된다. 우리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들여다보며 말을 건네면 건물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이다. 우리가 알아듣던지 못하던지. |
| 재밌다. 고등학교 때, 건축을 공부하고 싶다는 친구가 갖고있는 책을 본 적이 있다. 화장실 건축에 관한 책이었는데, 뭐랄까... 보자마자 흥미가 생겼달까. 어쨌든 꽤 좋았었다. 전문적으로 생각한건 아니지만, 색다른 화장실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해보고싶다는 끌림을 가졌던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우연한 기회에 건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내재해있는 내 마음을 알게되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건축 자체에 대한 어렵고 전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인문학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고, 혹시 딱딱한 건축적 지식이라 할지라도 자상한 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특히나 감동적이었던 것은 건축가들이 가진 장인정신이랄까... 직접적으로 서술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의 건물들 중, 돌로 된 건물은 실제로는 겉에만 돌을 붙인 경우가 태반이라고... 채석장에서 그만큼 큰 돌을 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건축주가 부여해주는 경제적 능력도 제한되어있으니까. 이 때, 건축가들은 이 건물이 겉만 돌로 붙여져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돌의 두께를 보이게 설계한다던가, 쌓는 기법을 변형시키기도 한단다.(진짜 두꺼운 돌로는 할 수 없을 모양으로.) 또 남녀평등적인 건물을 만들기 위한 생각이라던가 (예를 들면 남녀화장실의 규모나, 갯수부터 같게 하는 식으로...) 건축주만의 건물이 아닌, 대중들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1층 로비는 모두의 통행로로 개방한 건물같이...), 이런 것들을 보면서 무엇 하나, 어디 한군데도 건축가의 생각없이 막 지어진 부분은 하나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동했다. 또 반갑게도, 저번 여름에 요시토모 나라 전시회보러 갔던 ''로댕갤러리''도 이 책에 나왔는데,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되어 신기했다. 이제 지나가면서도 간혹 건물을 조목조목 바라보게 될 것같다. 건축가가 전하고자, 표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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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책들 속에서 서현이란 저자의 이름을 발견하고 열어보지도 않고 구입한 책.
그 만큼 처음으로 읽었던 서현씨의 책이 마음에 꼬옥 들었다. 그 이유? 1. 군더더기 없는 글씨기와 산큼한 표현력. 2. 건축이라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주제를 가지고 책을 내는 다른 건축가가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했기에
이 책도 내게 무한한 즐거움을 주었다. 한 분야의 전문인이 되고 그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책을 쓰는 사람도 부러운데 그는 책도 잘 쓴다. 부러워라~~~ 아무튼 서두가 너무 길어졌다.
이 책을 읽고 결혼전 종로를 좋아하고 인사동을 좋아하던 나는 무심코 그냥 지나치던 나의 시선을 다시 바로 잡는 기회가 되었다.
건물의 외관은 물론 창과 향과 건축가의 의도까지도 읽어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그래서 아는 것만큼 즐겁다라고 하고 싶다.
아치와 이맛돌이 중요했던 시절이 지나고 지금은 이맛돌을 장식으로 쓴다는 이야기 뒤에
그러나 돌을 붙여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아치가 지녔던 의미는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이맛돌이 덩달아 무의미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 아치는 돌로 된 건물의 곳곳에 장식적으로 등장하고 이맛돌은 거기서 박제처럼 매달려 있곤 한다. 가슴 벅찼던 그 순간을 찬미하는 화석이 되어 있는 것이다. <113>
건물에 들어서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백화점은 건축가가 만드는 시장이다. 따라서 백화점에는 부산함이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한다. ....시장을 시장답게 설계하는 것이 건축가가 하는 일이다. 백화점을 설계하는 건축가가 할 이른 사람들에게 시장의 분위기를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다. 뭔가 신나는 일이 있을 것만 같은 들뜬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건축갇르은 가장 중요한 소도구들을 눈앞에 모두 늘어놓는다. ... 계단,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복도가 모두 그런 것들이다.<146>
아래 글을 보고 당장 연건동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 연거동에는 <대한의원 본관>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있다.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1908년 대한제국의 탁지부에서 설계하여 완성하였단느 이력이 보여 주는 대로 그 역사적인 의미는 범접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옆에 <서울대학교 병원>을 설계하게 된 건축가는 이 사적에 최대의 경의를 표하였다. 대학병원 건물은 일반적으로 그 크기와 복잡함에 있어서 다른 종류의 건물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 병원> 건물은 두 팔을 넓게 벌려 <대한의원 본관>을 포용하느 듯한 자세로 배경에 물러서 있다. 그리하여 두 건물은 서로를 빛내 주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전생에 이미 점지된 배필인 듯도 하다. <184>
이 책을 읽었을 때 클라이막스는 아마도 다리부분을 설명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한강을 지나칠 때마다 보곤하는 수 많은 다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생겨서 이제는 좀더 다리를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은 직접 읽어보세요~~
갑자기 건축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도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과 더불어...
항상 사진기를 갖다대면 인물(나)을 중심으로 찍었는데 이제는 간혹 멋진 건물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책을 덮었다. |
| 건축가 서현은 ‘저 건물은 멋있는 겁니까?’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건축가들만이 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건물이 멋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답은 건축가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질문자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은이가 일반인들로부터 가끔 받게 된다는 이 질문은 건축이 기능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가치가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건축의 현실은 건축의 과정이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이루어져서, 건축의 기능적 요소가 아름다움의 요소보다 더욱 강조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은 후 건축의 기능은 삶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목적 외에도, 바라보는 경관의 대상으로서 심미성도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건축물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이 생겨난 배경과 건축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에 대해 우리나라의 현대 건축을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건축가가 도면에 점 하나를 찍는 것으로부터 점차 면, 비례, 상자, 공간으로 확대되는 과정으로 전개되는 건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문이나 창의 위치 등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겨졌던 것들에 대해서 건축 공간의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배려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깨닫게 되었다. 좋은 건축을 음악과 미술처럼 즐겁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듯이, 서현의 풍부한 인문적 지식으로 건축을 친절하게 접근한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신선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건축가는 사회의 역동성과 시대의 정신에 적합한 건축적 답을 얻기 위해 사회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건축에 반영하게 된다. 따라서 건축을 통해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한 건축가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으며, 그 건축물이 만들어진 시대의 배경과 정신을 읽을 수 있다. 건축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축물 자체에 대한 사실적 정보도 중요하지만, 건축 당시 건축가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상황, 분위기를 먼저 파악할 필요성이 있음을 깨달았다. 건축은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음악과 미술처럼 예술이라고 볼 수 있지만, 건축을 하는 행위에 있어서는 음악과 미술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즉 건축은 엄청난 양의 물리적 자원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소요되고, 이들의 사회적 이해관계가 연계되어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건축에 대한 칭찬과 비판은 건축가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건축가를 포함한 건물주와 노동자까지 포함된다. 또한 건축물에 사용된 재료, 건물이 만들어진 시대적 상황까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만들어진 주위 건물들을 관찰하면서 그것이 아름답지 않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나의 책임은 어느 정도나 될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름다운 도시 공간을 만들기 위해 건축적인 제안을 하는 사람은 건축가들이며,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가진 사람은 그 도시에 살아가는 시민들이다.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도시의 발전은 지속가능해야 하므로, 현 세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도시의 환경을 더욱 신중하고 정성스럽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 우리의 도시와 건축이 더욱 아름다워지고 현 시대에 만들어진 공간을 다음 세대에 자랑스럽게 전해 주기 위해서, 좋은 건축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기를 소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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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바퀴통에 연결돼 있어도 비어 있어야 수레가 된다.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어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창과 문을 내어 방을 만들어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그런 고로 사물의 존재는 비어있음으로 쓸모가 있는 것이다. - 서현의《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중에서 - * 노자의 '도덕경'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비우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잃은 것 같고 놓치는 것 같고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많이 비워져 있는 그릇이 큰 그릇입니다. 많이 비워 있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비운 만큼 많이 채울 수 있고 많이 나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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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읽었던 건축 관련 책. '꽤 괜찮다'라는 말만 듣고 사놓았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부제가 '인문적 건축이야기'인데,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 안에 들어가 사는 것이 사람일진데, 어찌 건축이 인문적이지 않을 수 있으랴.
운동장 주위에는 이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물들의 동상이 나열되어 있다. 이 동상으로 세종대왕보다 이순신 장군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한동안 이 땅의 정치 중심에 서 있던 이들의 배경과 가치관을 보여준다. 반공교육이 중요할 때는 이승복 동상이 세워지곤 했고 민족 자주성이 강조되면서 단군상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학교는 건축으로 구현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아.. 여의도의 폭파대상 1호 건물 근처의 다른 건물들 높이가 왜 낮은지에 대한 설명도 이 책에서 처음 읽었다. (제기랄. 그딴식으로 하면 없는 권위가 세워진대?)
저자는 건축의 인문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건축이 치밀한 계산으로 명확한 한계를 벗어나는 작업임을 조곤조곤 설명해준다. 건축이 무엇인가를 주장하고 외치는 방법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된 것도 큰 성과.
<경희대학교 건축조경전문대학원>은 체육관을 개조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낡은 건물을 개조하여 건축 교육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작업을 맡게 된 건축가는 건축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건축 교육은 골방에서 이루어지는 도제 수련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접촉과 토론이 더욱 중요한 건축 교육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건축가의 이런 가치관은 계단, 복도를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만들었다. 건물 곳곳을 종횡무진 뚫고 지나가는 이 동선 공간들은 결국 사람들의 움직임을 서로에게 노출시킨다. 그리고 호객과 흥정이 떠들썩한 시장처럼 끊임없는 접촉과 토론을 강력하게 권유하는 장치가 된다.
그리고 그 장치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생각 없이 타고는 했던 에스컬레이터 등의 수단이 상징적 기능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흥미진진.
움직임과 관련하여 건축가들이 특히 좋아하는 소도구로는 에스컬레이터만한 게 없다. 에스컬레이터는 엘리베이터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송능력과 개방감을 가진 발명품이다. 이 신기한 물건은 자신이 움직이는 물체이면서 어디에 가져다 걸어도 3차원의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걸려야 한다는 점에서 공간의 박력을 주는 데는 더 없이 좋은 물건이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물들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이해 또한 빠르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눈으로 본 건축을 설명하되, 이제 당신의 눈으로 좋은 건물을 찾아내어 보라고 권하는 것이 맘에 들었다. 10년 후에 강의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무엇인가 내 인생에 중요한 강의였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경험이랄까.
사실 건축과 건설을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분명 다른 영역의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이 '건축 없는 건설'을 하는 단순한 삽쟁이라는 것도 더욱 명확해진다.
교각과 상판으로 이루어진 다리는 간단하다. 이런 값싼 다리가 가장 가치 있던 시대가 아마 있었을 것이다. 그 간단함은 만들기 쉽다는 의미에서의 간단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드는 이가 지닌 사고의 단순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고의 명쾌함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그것은 건너자는 의지 이외에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가 없다. 문화라는 덕목으로 거론할 만한 구석이 별로 없는 것이다. 이들은 '대교'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후손에게 물려주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것들이다. 가장 값싼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사회에서는 가장 값싼 문화가 만들어진다.
<교보생명 사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인도라는 한정된 부분에만 서 있지 않는다. 건물 앞의 마당에 서 있는 것이다. 그 앞의 넓은 공터는 언제나 누구나 왔다갔다 할 수 있다. 사무소 건물 앞에 으레 있기 마련인 계단도 없다. 주위를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대지는 활짝 열려 있다. 우리는 그 지하에 들어가서 책을 사고 친구를 만난다. 누구나 책을 살 수 있고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 그리하여 그 건물은 주위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이 되었다. 이 지하가 1주일만 문을 닫으면 한국의 지식 산업계는 비상사태에 돌입하여야 한다. 그 개방은 지명도로 곧 치환되었다. 이를 통하여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이는 그 바닥 넓이만큼의 임대료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사회적인 보상을 받고 있다. "아, 그 왜, 누렇고 옆으로 줄쳐진 바로 그 건물 15층"과 "교보 15층!"이 어찌 비교될 수 있으랴.
여기서 건축가는 다시 '누구를 위한?'이라는 질문에 부딪치게 된다. 도로와 건물 사이가 계단으로 분리되어 있다면 그 '누구'에서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은 제외된다. 주차장이 있다면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제외된다. 자동차가 있어도 기사가 없는 사람은 제외된다. 담이 있으면 거리의 시민은 모두 제외된다. 그만큼 건물은 배타성을 띠게 된다.
삐까뻔쩍한 '광장'을 지으면 뭘하는가. 폐쇄되고 포위된 광장은 광장이 아닌 것을. '그들'이 세금으로 지어대는 그 '기념물'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들인가. 누구를 위한 '삽질'인가.
어쨌거나, 저자의 인문학적 소양과 글솜씨까지 더해진 굉장히 멋진 책이다. 뒷부분에 한 건물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부분이 생각보다 짧아 아쉬움이 계속 남았지만, 이제 건물을 보는 것은 나의 몫이니.
각주나 미주, 각종 부록까지 다 읽고야마는 변태같은 성격으로-_-, 저자가 이 책의 출판사인 효형출판의 건물을 건축설계한 사람인 것도 알 수 있었다. ㅎㅎ 언제 건물 구경하러 파주출판단지나 한 번 가볼까. 거기 특이하게 생긴 건물들 많던데. |
| 아름다운 건축물을 구경할 때 느끼는 부러운 감정. ‘저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인간의 생활양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의 하나가 건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 반대도 가능하겠지요) 그 분야에 대해서 알고픈 욕구가 있었습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인테리어 잡지나 책자를 보았지만, 본질이 아닌 치장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며 약간의 답답함마저 느껴가던 중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인 대상의 건축에 관한 책이 드문 와중에 이 책은 참 유용하다고 보여집니다. 인문적 건축이야기란 표제에 걸맞게 공학적인 기술에다 인문적인 저자의 감상을 분리가 불가능할 만큼 잘 결합해 놓았습니다. 지나치게 딱딱하지 않고, 지나치게 말랑말랑 하지도 않게 건축이야기를 유려하게 풀어내 일반인들의 건축지식에 관한 욕구를 별다른 괴리감 없이 자연스럽게 만족시켜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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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전공자도 특별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 재밌게 읽었다.
일상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지내는 공간이지만 그 공간의 생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는 주변의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책에 등장하는 건축의 재료에 관한 부분을 읽고는 주변의 건물이 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지...
건물 속에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
건축의 요소는 아니지만 건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빛과 바람의 요소 등...
무심히 지나쳤던 생활 속 얘기거리들을 찾게 되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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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어느정도 이상의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단순히 '건축물'을 보여 주는게 아니라 '건축설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벽에서 방, 집으로 다시 집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도시로 차분히 확장시키면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른 책에서는 보기 힘든 벽돌, 콘크리트, 철근, 철골, 나무, 유리 소재에 대한 부분은 확실히 이 책이 어느 정도 수준의 책인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또한 일반적으로 건축서적이 '외국 건축물'이나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을 말한다면 이 책은 우리나라 '현대 건축물'을 중심으로 글을 풀어나간다.
소재뿐만이 아니라, 내용까지도 확연히 다른 건축에 대한 책들과 구분이 된다. 표지또한 건축책 답게 매력적이지 않은가.
이 책을 사고, 서현이 쓴 다른 책들도 구입했다. 그것도 절판된 책을, 출판사에 전화까지 하여서 얼룩도 묻고, 일부가 찢겨져 날아간 책을..
첫 작품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다.'에서는 한국의 거리에 관한 글이었다. 글에 슬픔과 분노가 묻어져 나왔다면 이번 책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에서는 분노가 약간씩 분출되었다. 그리고 최신작, '건축을 묻다'는 분노는 사라지고 성찰만이 남아 있는 글이었다. 대신 글이 좀 어려웠다.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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