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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번째 질문을 마주해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3만 번째 질문을 마주해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내용보기
술 취한 여성에게 폭행을 당한 40대 가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범죄자로 몰릴까봐 대응하지 않았다’는 말을 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신자들로부터 존경받는(나 역시도 존경했던) 어느 신부님으로부터 이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당시 신부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술에 취한 여
"3만 번째 질문을 마주해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내용보기
 술 취한 여성에게 폭행을 당한 40대 가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범죄자로 몰릴까봐 대응하지 않았다’는 말을 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신자들로부터 존경받는(나 역시도 존경했던) 어느 신부님으로부터 이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당시 신부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술에 취한 여자가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던 가장에게 폭행을 가했다는데, 그 남자가 성추행범으로 몰릴까봐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도 가만히 맞고만 있었다는 기사 봤어? 이제 남자들은 무슨 일이 닥쳐도 그저 팔짱만 끼고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아. 나 같은 신부들도 이제는 여성 신자들 앞에서는 팔짱을 끼고 있어야 해.’

 아마도 저 이야기를 한 신부님의 눈에는 본인이 언급한 기사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여행 중 성관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에 관한 기사와 생후 20개월 여야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고 살해까지 한 인면수심의 어느 남성에 관한 기사, 성범죄를 저질러서 15년간 복역한 남성이 출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두 명을 살해했다는 기사, 전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해 혼수상태 빠진 황예진씨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 등은 들어오지 않았나보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당시 실제로 보도되었던 기사들이다.) 신부님의 한탄섞인 의견대로라면 남자들은, 그래도 팔짱이라도 끼고 있으면 별 탈 없이 본인의 일상을 안전하게 이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남자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여성들의 기사’를 곁에 두고 여성들의 안위가 지켜지지 않는 사회를 향해 한탄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오혜민 박사의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는 저자가 한예종에서 페미니즘을 강의하면서 자주 받은 질문들을 골라 답한 것으로, 당시에 다 하지 못했던 말까지 담았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사례는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에서 하나의 예시로 등장하는 ‘괜히 여자들에게 CPR 했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거 아닌가요?’와 맥을 같이 한다.

 저자는 ‘성평등을 이야기하면서 군대 이야기는 왜 안 하느냐’, ‘여자대학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 아니냐’, ‘여성 인권만 이야기하지 왜 성소수자 얘기까지 꺼내느냐’, ‘모든 남자를 왜 잠재적 가해자로 보느냐’ 같은 질문들에 답한다. 그런데 저자는 저런 질문을 던지는 질문자들이 정말 궁금해서 물은 것일까에 대한 물음을 던지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으리라 의심한다. 예를 들어 군대를 주제로 꺼내면, 페미니스트들은 군대의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반면, 상대는 여성이 남성보다 못하다는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군대라는 주제를 써먹는다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자신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이퀄리즘을 지향한다는 사람들에게 이퀄리즘이 이론을 갖추지 못한 빈 개념임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이런 말들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오랜 투쟁 끝에 만들어 낸 말들을 손상시킨다는 점에서 아주 유해하다고 비판한다. 한국 페미니즘이 변질되었다는 지적에는 맞다고 받아친다. 자기 의견을 말할 때마다 “죄송하지만”, “이런 말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등의 쿠션어를 수시로 깔고, 상대에게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재차 확인시킨 후에야 자기 의사를 밝히고, 집에 돌아가서도 혹시 자신이 너무 공격적이고 까칠한 표정을 짓거나 그런 태도로 말을 한 것은 아닌지 계속 돌아보고, 상대의 말을 받아쳤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사회성을 의심하고 자책하며 더 나은, 더 평화로운 대응법은 없었는지 반성하는 페미니즘이 세상 어디에 있겠냐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을 읽으며 무례하고 무지하며 반복적이고 게으르기까지 한 질문들에 수없이 답을 하며 인내로이 살아왔을 여성들을 향한 경외감과 죄책감이 함께 밀려왔다. 더불어 나 역시도 내 어머니와 여동생을 비롯한 주변 여성들에게 마치 무례한 질문을 던지듯 그들이 처한 부당함을 당연하게 여겼던 모습들을 반성하게 된다. 이 같은 감정과 반성을 바탕으로, 저자가 서문을 통해 던지는 “당신의 삶은 ‘반페미니즘’으로만 정의할 수 있을 만큼 그저 단순한 무엇인가요?”라는 배려 가득한 물음에 많은 더 남성들이 호응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게 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8 2025.03.1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