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빗속에서의 하루
"빗속에서의 하루" 내용보기
계절의 변화는 거짓말처럼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밤새 비가 내렸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더위도 빗줄기에 한풀 씻겨 내려간 듯했다. 돌이켜보면 지독한 여름이었다. 직장인의 삶이라는 게 늦가을 해거름녘의 느린 산책처럼 여유롭고 한가할 수는 없겠지만 지난여름의 나는 입에서 단내가 물큰물큰 날 만큼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빗속에서의 하루" 내용보기

  계절의 변화는 거짓말처럼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밤새 비가 내렸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더위도 빗줄기에 한풀 씻겨 내려간 듯했다. 돌이켜보면 지독한 여름이었다. 직장인의 삶이라는 게 늦가을 해거름녘의 느린 산책처럼 여유롭고 한가할 수는 없겠지만 지난여름의 나는 입에서 단내가 물큰물큰 날 만큼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라고 썼던 박성원의 소설집 <하루>를 읽는 내내 길었던 추석 연휴가 흘러갔고, 하루가 천 년 같았던 연휴 뒤끝의 근무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주말.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소설은 맥락도 없이 뒤섞였다.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게 진짜 세상이라기보다 누군가가 그리고 있는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햇빛은 슬며시 구부러지고, 건물들은 마주 보거나 아니면 서로 등을 돌리고 서 있다. 바깥은 여름이고, 나는 마흔이다. 알고 있다. 바보 같은 나이다."  (p.43 '볼링의 힘' 중에서)


어제부터 내린 비로 도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물웅덩이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계속해서 물동그라미를 그린다. 선명하게 퍼지던 물동그라미의 파문이 이내 사라지고, 새로운 빗줄기에 의해 다시 또 생겨나는 물동그라미의 파문. 어디서 날아왔는지 마른 낙엽 한 장이 종이배처럼 떠 있다. 그 위로 사람들의 무심한 발길이 이어졌고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내렸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데 더위를 겨우 씻어낸 올해의 가을비는 한여름 장마처럼 끝이 길다.


"여자는 차창에 얼굴을 꼭 댄 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라고 남자는 중얼거렸다. 허브냄새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몸이 악기 같다고 생각했다."  (p124 '어느 맑은 가을 아침 갑자기' 중에서)


책에는 표제작인 '하루'를 비롯하여 '볼링의 힘', '얼룩', '어느 맑은 가을 아침 갑자기', '분노와 복종 사이에서 그녀를 찾아줘', '저녁의 아침', '흔적' 등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각각의 단편을 이끄는 중심인물들은 성격도, 직업도 제각각이지만 하나 비슷한 것은 그들의 이름이 모호하거나 알 수 없게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그녀 혹은 그 남자이거나 남편이나 아내, 때로는 여자나 남자 혹은 주인으로 명명될 뿐이다. 그런 까닭에 책을 읽는 독자는 소설의 얼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한 개인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가 무수히 많은 까닭에 그들의 이름조차 혼란스러운 것처럼. 그럼에도 소설은 무리 없이 읽힌다.


"생각해보니, 태어나지만 영원히 죽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것은 죽음과 금뿐이구나. 죽은 그것들은 이제 콧구멍도 없고 숨을 쉬는 허파도 없으며 되새김질할 수 있는 위장도 없다. 지금에 와선 그것이 부럽다. 죽음의 가장 큰 미덕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것이다. 그 점에선 내 삶이나 죽음이나 똑같구나."  (p.179 '저녁의 아침' 중에서)


빗줄기가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반복하며 강우량을 늘리고 있다. 사람들은 명절 연휴의 피로가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줄기와 함께 씻겨 내려가기를 바라며 하염없는 시선을 이어갔다. 스러지는 물동그라미의 파문 위로 속절없는 시간들이 지워지고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가 꿈인 양 되살아났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스러지는 물동그라미의 파문이 아련하고 끊이지 않는 빗소리가 익숙한 자장가처럼 잠을 불렀다.

이달의 사락 s*****l 2024.09.21. 신고 공감 10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의 하루는 안녕하신가요?
"당신의 하루는 안녕하신가요?" 내용보기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  평생 헐렁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싫었던 여자는 잘나가는 회사원과 결혼했다. 남편은 전세계약금을 빨리 입금하라고 아내에게 명령했다. 그녀는 은행업무 시간에 맞추느라 아이를 차안에 두고 바쁘게 뛰어간다. 결국, 견인된 차 속에 있던 아이는 죽게 된다. 여자의 남편으로부터 해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직장 후배 남
"당신의 하루는 안녕하신가요?" 내용보기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 

 

평생 헐렁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싫었던 여자는 잘나가는 회사원과 결혼했다. 남편은 전세계약금을 빨리 입금하라고 아내에게 명령했다. 그녀는 은행업무 시간에 맞추느라 아이를 차안에 두고 바쁘게 뛰어간다. 결국, 견인된 차 속에 있던 아이는 죽게 된다. 여자의 남편으로부터 해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직장 후배 남자는 아들이 난독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의 실직 소식과 겹치면서 실의에 빠졌다. 눈 속에서 아들에게 줄 장난감을 들고 죽어간다. 사고는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찾아오고, 생존경쟁은 패자를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며, 실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고, 장애는 유전이라는 복잡한 확률게임에 의해 발생한다. 하루라는 시간 안에 세상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들어차 있다. 알고 있다고 믿는 기억이 잊히듯이, 하루는 일식처럼 잊혀가고 반복된다.

 

하루는 24시간이다. 짧다고 할 수 있는 그 시간 안에서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상심하여 죽기도 할 것이다. 어느 곳은 물난리를 겪기도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생사가 오고가면서, 희노애락이 교차된다. 얼마 전, 대학 게시판에 안녕하십니까? 라는 대자보가 붙었었다. 안녕하기 위해서 현대인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모두들 자신의 안녕을 위하여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뒤쳐진 자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승리한 자들은 다시 또 무언가를 향해서 달려야만 한다.

 

쫓기듯 사는 인생은 올바른 삶인 것일까? 멈추는 순간 보인다는 책에서 말하듯이, 여유가 없는 삶은 선글라스를 씌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삶을 지속할 시에 자신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보다 중요한 가치를 보지 못하는 실수를 하게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더 차지하고, 편을 갈라서 승리하라고 가르치는데, 개인의 행복은 정말 이러한 경쟁 속에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고, 현명하다 할지라도 재난 없는 삶을 살지는 못한다. 현대인은 모두가 여러 가지의 사고와 재난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천재지변과 전쟁은 언제든지 인간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 자동차 사고와 선박 사고 같은 안전사고도 여전히 우리를 위험에 빠지게 한다. 또, 얼마 전 발생한 테러처럼, 부지불식간에 폭탄이 터지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바이러스 같은 질병은 또 어떠한가.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순간,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가 생각났다. 현대인은 모두 시시각각 스며드는 공포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치열한 경쟁에서 파생된 바쁜 하루하루가, 스며드는 공포를 무디게 한다. 삶의 올바름을 보게 하는 눈도 어둡게 한다. 그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자기에게 얼룩이 생기지 않았는지 한번 멈추고 생각해보는 성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d******m 2016.03.25. 신고 공감 2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