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이렇게 유쾌한 재미가 있나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우리 고전 [이춘풍전과 배비장전]을 읽었다. 오래전에 어떤 방속국에서 마당놀이로 본 적이 있고 여기 저기서 주워 들은 내용들이라 별거 있나 생각했다. 읽어 보면 새롭게 보인다. 이렇게 재미 있었구나! 현대적인 개그는 아니어도 웃긴 말이 나오지 않아도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진지"한 대화 하나 하나가 "해학"을 보여준다.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우리 고전이다. 남성들의 주색잡기를 비판하는 시각에서도 읽을 수 있고, 조선 후기의 관리들의 부패, 문란한 재정운영, 유흥문화 측면에서 바라 볼수도 있겠다.
2. 삽화와 잘 어울리는 구나 문학의 힘은 상상이다. 영화보다 강렬한 소설의 힘은 읽는 사람 각자가 자신의 머리속에서 이야기를 그려냄으로써 나온다. 상상을 영화화면이 이겨내지 못해 원작보다 떨어진다는 영화가 많다. 그만큼 삽화는 어렵고 중요하다. 대부분의 소설이 삽화가 없다. 이 책은 과감하게 꽤 많은 삽화를 덧 붙였으며 책 내용과 잘 어울린다. ![]() ![]() ![]() 3.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실들 작품은 언제나 그 시대를 반영한다. 해설에 나와 있는 것처럼 두 작품은 조선후기에 널리 퍼졌으며 특히 19세기에 독자들에게 많이 수용되었다. 19세기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글이다. 19세기는 어떤 시대인가? 자연재해가 극심해져 농사는 언제나 흉작이었다. 반대로 삼정으로 대표되는 국가의 착취와 관리들의 가렴주구는 극심해졌다. 민란이 일상이 될만큼 나라는 혼란이었다. 이런 고통의 시대, 민란의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소설에서 단서를 찾아 볼수 있다. 책을 읽으면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하나 하나 곰곰히 따져보면 시대의 아픔이고 백성에게는 고통이었던 사건들의 연속이다. 그저 그런 시기였던 숙종임금시대를 요순시대로 비유할 만큼 당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농사에 알맞게 기후가 좋았다고 그리워 하는 그 시대도 항상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평안한 기후를 그리워 하는 그 시절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을 볼 수 있다. 하급관리 비장이 국가의 창고를 열어 기생에게 퍼줄만큼 재정관리는 엉망이었다. 사회문화적으로는 기생을 거느리지 않으면 왕따를 당할 만큼 부패와 주색잡기 유흥문화가 뿌리를 내린 시대였다. 19세기 유흥문화가 하급 무관, 하급 관리등에 의해서 주도되었다고 하는데 그 "수입"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최상층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백성 고혈빨기의 낙수효과가 아니었을까? [이춘풍전, 배비장전] 두 책에서 당연하게 보여지는 하급관리들의 행동은 그 당시 무너져가는 조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급관리는 얼마나 심했을까? * 여성들이 남자를 버릴 수 없었던 저 시대에, 여자들이 외칠 수 있었던것 오로지 "조강지처가 좋더라~~~~~"라는 노래 밖에 없었다. 남편이라고 버리지는 못하고 애써 구해다 재활용해야 하는 신세다. ** 배비장은 정말 억울하겠다. 완전히 몰카와 꽃뱀에게 걸려든거 아냐? ㅋㅋ *** 세상이 원래 그런것인지 19세기를 2014년이라해도 어색할게 없어 보인다. |
|
서울 다락골에 사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 이춘풍은 술과 여자, 노름으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탕진했다네. 춘풍의 어진 아내는 춘풍을 정신 차리게 하려 애썼으나 그는 요지부동이니 어찌해야 할고. 결국, 남은 재산 하나도 없이 배를 곯기에 이르자 후회하는 듯했으나 뭐 별수 있으랴. 춘풍의 아내가 바느질하고 길쌈 방직하여 생계를 이어가기에 이르렀으니... 춘풍은 아내 덕에 옷 잘 입고 기름진 음식 뱃속에 채우며 교만해져 옛날 행실이 다시 나타나니 어쩌면 좋을까나. 설상가상 호조에서 돈 이천 냥을 얻어내 방물군자 행세하며 평양행을 서두르니 그의 아내 춘풍이 가는 길 막고 하소연하더라. “여보시오, 서방님! 잠깐 내 말을 들어 보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부모 유산 다 써서 없앤 후, 5년 동안이나 아무 일 하지 않고 앉아만 있어 세상 물정도 모르지 않소. 그러니 평양 장사 가지 마오. 내가 평양 물정을 들으니, 그곳은 매우 번화하고 사치한 곳으로, 화려하게 꾸민 아리따운 기생들이 고운 노래 부르며 돈 많고 허랑한 자들을 꼬드겨 세워 두고 벗긴다 하니, 제발 부디 가지 마오.” (18~19페이지) 이에 춘풍이 갈 길 막는 아내의 머리채를 휘어 감고 치며 집안 재물 다 털어 말에 싣고 떠나더라. 이런 나쁜 놈을 봤나. 그의 평양 살이 어떨까 싶어 궁금할 법도 하건만, 평양 기생 추월에게 호되게 당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가진 돈 모두 추월에게 털리고 거지가 되어 목숨이나 부지하고자 추월의 기방 하인이 되었다니 얼마나 통쾌한가. 미친 듯이 웃고 싶구나. 에이~ 고소하다. 봉두난발 차림으로 물지게를 지고 가는 춘풍을 보니 비웃음이 절로 난다. 아내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대하더니, 세상 물정 모르고 유흥에 돈을 함부로 쓰더니 잘되었다. 거지로 살면서 반성이나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랄 뿐이오.
춘풍과 다를 바 없는 배비장이 있었으니, 제주 목사로 관직을 받은 김경을 따라 제주행을 나섰다네. 예방의 일을 맡은 그를 배비장이라 불렀는데, 그의 아내 걱정이 태산일세. “제주는, 비록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긴 하나, 아름다운 기생이 많은 고을이라고 합니다. 그곳에 계시다가 만약 술과 기생에 빠져 돌아오지 못하신다면 부모님께는 불효가 되고 저의 신세 또한 망칠 것입니다.” (61페이지) 아니라오~ 아니라오~ 나는 아니라오~ 당신의 말을 명심하고 절대 계집은 가까이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오~라며 배비장은 큰소리를 쳤다지. 허나 큰소리친 것을 곧바로 후회하게 생겼구려. 마음만 먹으면 어느 사내든 홀랑 벗겨 버릴 수 있는 기생 애랑을 보고야 말았으니 어쩌란 말이오. 애랑을 보고 한눈에 반해 상사병까지 얻었는데 절대 기생을 가까이하지 않겠다는 공언을 어길 수는 없고 상사병으로 속은 타들어 가고 어쩌면 좋누. 아닌 척하며 애랑을 한 번만 봤으면, 애랑과 한 이불 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뭐든 못하겠소. 겉과 속이 다르게 위선을 떨던 배비장을 골탕먹이기 위해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그를 가지고 놀고 있으니 나도 끼어 그를 망신주고 싶구나. 그의 상투를 쥐고 몽둥이질을 하는 게 방자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었다네. 흠씬 두들겨 패주면 속이 풀리려나 모르겠소. 에라 모르겠다. 한바탕 놀이처럼 배비장의 속을 까뒤집는 판이나 벌여보자꾸나.
『이춘풍전』과 『배비장전』은 조선 후기, 19세기 소설이라 불린다. 조선 후기에 창작되어 같은 시기에 널리 읽힌 소설이다. 두 편 모두 내용은 비슷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춘풍의 몰지각한 행실과 대책 없는 유흥예찬은 그의 비참한 최후로 증명했다. 허나, 그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는 게 춘풍의 현실이었다. 그를 정신 차리게 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조강지처였다. 반면, 배비장의 애랑앓이는 그저 그의 진심을 드러내는 과정을 드러냈을 뿐이다.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로 상사병을 앓는 배비장의 도덕성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그저 그의 욕망을 표현하는 장난스러운 놀이처럼 보였다. 결국은 위선으로 가장하며, 욕망이든 욕심이든 진심을 드러내지 않고 아닌 척하던 그의 가면을 벗기는 것으로 끝맺는 이야기다. 반성 따위는 없다. ‘좋으면 그냥 좋다고 말을 해!’라는 충고라고나 할까.
솔직히 지금 시대에 두 소설의 결말은 남편의 외도로 가정이 풍비박산하거나 아내가 한번 용서해주고 참으며 끝내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게 익숙하다. 어디서 감히 아내를 두고? 배우자에 대한 예의가 없는 이 남자들을 어떻게 응징해줄까 속이 부글부글 끓게 한다.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19세기, 조선 후기라 하면 그 시대 문화를 볼 수 있다. 첩을 여럿 두어도 괜찮고 기방에서 놀아도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허용되던 시대, 그것도 남자들의 특권처럼 당연시했던 배경이었다. 이런 일로 여자가 투기하거나 나서면 안 된다는 분위기. 그러니 춘풍이나 배비장이 기생과 살림 차린 듯 지낸 거나, 기생에게 눈이 멀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상사병 운운하며 앓이 하는 게 뭐 대수라고, 라는 인식이 통용되었지 않았겠나. 화가 나면서도 어렴풋이 추측해본다. 남자들의 그런 생활에 드러내놓고 화를 낼 수 없는 여인이 쓴 게 『이춘풍전』이 아니었을까. 『배비장전』을 쓴 지은이는 남자들 세계의 여흥을 뻔뻔하게 대놓고 즐기자는 사고를 했던 남자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지은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유행가처럼 퍼진 이 소설이 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지, 그 당시에도 왜 그렇게 널리 읽혔는지 이유가 짐작된다.
두 소설의 매력은 내용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대화체에서도 보인다. 음의 운율을 느끼듯 가락을 타는 듯한 대화가 경쾌하게 들린다. 만담을 듣는 것도 같고, 마당놀이 한바탕 보는 것도 같다. 이 책의 뒷부분 설명을 보면 아마 이 소설들은 판소리에 영향을 받은 소설이거나 판소리였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렇게 해석할 가능성을 본문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한 시대의 배경을 알 수 있는 계기도 되었거니와 인간의 욕망을 어느 시선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같은 내용인 듯하면서 정반대의 결과로 보이는 것도 이런 이 때문이다. 고전을 읽는 즐거움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지금과 다른 시대적 배경을 함께 볼 수 있다. 문학으로 타임슬립하여 한 시대의 흐름을 그대로 만날 수 있음이 즐겁다. 여전히 나는 이춘풍과 배비장을 용서할 수 없지만, 고전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주인공들이므로 앞으로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며 마음을 정해보련다. ^^
|
|
부제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저자 - 김현양 그림 - 김종민
두 개의 우리 고전이 실려 있는데, 바로 ‘이춘풍전’과 ‘배비장전’이다. 공교롭게도 조선 시대 남자의 바람기에 대해 다룬 이야기들이다. 책으로 접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명절 때마다 방송해줬던 마당놀이극으로 본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아니 뭐 이딴 것들이 다 있어!’라고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게 있었다. 하긴 뒤표지에서 대놓고 ‘조선 시대 남성들의 삐뚜름한 성적 욕망 이야기 두 편!’이라고 적어놓을 정도니까 뭐.
‘이춘풍전’은 한마디로 주색잡기만 잘 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부모가 물려준 유산을 몽땅 다 탕진한다. 5년 동안 부인이 열심히 일해서 어느 정도 재산을 불려놓았더니 예전 습관이 살아나, 부인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으며 장사를 해보겠다고 돈을 싸들고 평양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평양 제일의 기생 추월에게 반해서 돈을 다 탕진하고 급기야는 그녀의 곁에라도 있겠다며 종살이를 한다. 한편 남편의 소식을 들은 부인은 옆집 참판의 도움으로 남장을 하고 비장이라는 직책으로 평양에 도착하는데…….
‘배비장전’은 제주로 발령받은 비장의 이야기다. 제주에 가서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지 않겠다고 부인과 단단히 약속한 배비장.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그의 행동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그들은 배비장을 유혹하라며 제주 최고의 기생 애랑을 부추기는데…….
위에서도 썼지만, 읽으면서 아주 그냥 울화가 치밀었다. 이춘풍의 병신 같은 짓은 둘째 치고, 부인의 행동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걸까? 남편에게는 겨우 곤장 열 대만 치고, 추월은 무려 오십 대나 때린다. 추월이 꽃뱀이라서? 그래, 꽃뱀이라고 치자. 그래서 오십 대나 곤장을 친다고 하자. 그러면 제 버릇 못주고 또 여자에게 넘어가 재산을 날린 춘풍은? 설마 섹스 중독에다가 알콜 중독에 걸린 환자라서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열 대만 때린 건가? 게다가 춘풍은 적반하장 격으로 부인이 자기를 구했다고 고마워하기는커녕, 가장의 볼기를 때렸다고 화를 낸다. 이건 뭐 개념도 없고 예의도 없고 뇌도 없는 건가……. 하긴 개념과 뇌가 있으면 애초에 그런 짓을 하지도 않았겠지.
![]()
춘풍의 부인이 내 친구이거나 친척이라면, 당장에 이혼하라고 했을 것이다. 5년 동안 바느질과 여러 가지 일을 해서 돈을 제법 모은 걸 보니 손재주가 뛰어난 모양이다. 그러면 어디 가서 굶고 살지는 않을 테니까. 누가 알겠는가. 괜찮은 디자이너가 될 지. 아무리 봐도 조선시대는 여자에게 상당히 불리한 사회였다. 저런 놈을 남편이라고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하다니…….
하지만 더 화가 난 건 ‘배비장전’이었다. 아니 남이사 기생에게 한눈을 팔건 말건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 난리인지 모르겠다. 이건 뭐, 자기 혼자만 당할 수 없다고 남을 끌어들이는 물귀신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냥 기생들이랑 놀고 싶으면 자기들끼리 놀면 되는데, 굳이 안 하겠다는 사람을 함정에 빠트려서 그 망신을 줘야 할까? 다 같이 공범으로 만들어 놓아야 나중에 자기들 부인에게 고자질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혼자 고고하게 노는 사람이 아니꼬워서 꼴 보기가 싫었던 걸까? 왜 그리도 남의 일에 간섭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저런 기질들이 지금도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기 혼자가 아닌, 주위 사람들까지 여럿 끌어들여 한 여자를 집단 성폭행을 하는 마을 사람들이나 학생들의 이야기는 한두 번 나오는 게 아니니까. 아, 왜 우리나라 속담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는지 알 것 같다. ‘근묵자흑 近墨者黑’이라고 나쁜 무리와 어울리지 말라는 고사 성어가 있다. 양반들은 어릴 적부터 여러 가지 학자들의 책을 읽으니까 저 말을 분명히 배웠을 텐데, 하는 짓은 왜 저모양인지. 하긴 요즘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길에서 자위행위를 하기도 하고, 불륜은 기본에 뇌물 수수, 살인 교사 그리고 난교파티까지 저지르니까.
역시 학력과 인성은 비례하는 게 아니다.
옛 고전을 읽으면서 느낀 게, 그 때나 요즘이나 기득권층의 난잡함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본성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미스 마플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
|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할머니 턱밑에 앉아서 옛날 이야기 듣던 적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에 빠져들던 시절, 그 때 할머니의 주머니에는 사탕도 들어있었지만 옛날 이야기도 가득 차 있었다. 이 책 후미에 평자는 작품 해설에서 ‘남성의 성적 욕망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두 작품을 평가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이유는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머니자 손자를 앞에 두고 옛날 이야기처럼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대화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할머니가 손주들(남매)을 데리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던 중에 이춘풍전과 배비장전을 해 주게 되었다. 이야기를 다 들려 준 다음에, 할머니가 먼저 손자에게 물었다. “이야기 재미있지?” 손자가 대답한다. “예, 재미있어요, 그런데 왜 이춘풍은 같은 실수를 계속하는 것일까요?” 할머니 왈, “그래 잘 보았다. 그런 실수를 하지 말라고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이란다.” 그 때, 같이 듣고 있던 누나가 동생을 꼬집으면서 말한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어리석지. 그 이야기를 보면 옛날부터 남자들은 실수하고, 여자들은 실수해서 곤경에 빠진 남자들을 구해주는 것, 분명히 알았지? 너는 그러면 안된다.” 손녀가 이번에는 할머니를 보고 말한다. “이춘풍의 부인이 보여준 지혜로운 행동은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남자로 변장하고 문제를 해결한 포샤와 비슷해요.” 그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성적 욕망’이 그렇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기에 손주들과 할머니의 대화가 그런 식으로 흘러 갈 수 있으리라. 평자는 ‘성적 욕망’이라 표현하지만, 이 작품에서 성은 자극적인 형태로 등장하지 않고 다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속에서 ‘실수’의 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적 묘사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두 남자가 드러내는 욕망도 요즈음의 성적 묘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성은 –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가 어디 있으랴? - 해학과 풍자의 한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할머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틈틈이 할머니는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 및 사물에 대하여 - 책속에서는 각주로 부가 설명된 것들 - 아이들에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예컨대 25쪽에서 등장하는 ‘유비가 제갈량 찾아가듯’, ‘서왕모 요대로 주목왕 찾아가듯’, 등등을 설명하면서 무궁무진한 역사 속의 인물들과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런 할머니의 보충 설명을 들으면서, 또한 우리말 사설조로 엮어진 이야기의 구성진 내용을 들으면서 두 손주는 저절로 어깨춤을 추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이것은 어떤가 86쪽에 등장하는 “망망대해의 천리 파도에 대붕이 날다가 지쳐서 앉아 있다.”는 말. 이 때 “대붕이 뭐예요?”라는 손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장자’의 한 구절을 설명해 주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이라면, 그래서 한자를 공부한 아이들이라면 28쪽에 등장하는 이춘풍과 기생 추월의 이름자를 가지고 희롱하는 부분에 흥미를 느낄만도 하다. “봄바람(春風)도 좋거니와 이슬 내리고 맑은 바람 불고 국화꽃 피는 가을에 가을달(秋月)이 밝았으니 더욱 좋네. 진심이라면 추월과 춘풍, 부부의 인연을 맺어 볼까!” 아이들은 이름자를 가지고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이 글을 지은 사람은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두 주인공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봐요.”라고 할만도 하다. 그런 대꾸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춘향전도 너희들 읽어보았지? 춘향전에는 그런 대목이 많이 나온단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 <춘향이와 이도령의 대화중 한토막. 이도령 하는 말이, "네 연세 몇이며, 네 성은 무엇인가?" 춘향이 여짜오되, "연세는 십륙세오, 성은 성가라 하나이다." 이도령 거동 보소. "허! 그 말 반갑도다. 네 연세 그러니 날과 동갑이요, 성짜는 그러니 이성지합이라. 천생연분일시 분명하다.“> 이(李)씨 성과 성(成)씨 성이 합하여 이성지합(李成之合)! 원래의 의미는 이성지합(二姓之合)이다. 서로 성이 달라야 결혼이 가능하기에 이도령이 그런 식으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듯이, 이춘풍전에서도 그런 언어 유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들이 재미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언어의 재미에 눈을 뜰 것이다. 또한 요즘 세상에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각박하게 평하는 말들이 살벌하기조차 한데, 여기 등장하는 대화들은 상대방을 깍아내리는 말조차도 격조가 있고, 여유가 있다. <회계비장 잘도 났다마는 수염이 없으니 그것이 흠이로다> (42쪽) <배비장이 그 여인을 한참 바라볼 때 방자가 말했다 “저 눈은 일을 낼 눈이로군”> (86쪽) 그런 식으로 이 이야기 두 편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꺼리는 무궁무진하다. 여기에서 다 열거하지 못하지만, 우리 고전의 깊은 맛은 그래서 일품이다. 이런 이야기 모처럼 읽으면서 푸근한 할머니 품, 무궁무진했던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를 회상해 보는 것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이 책으로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면서 가빠진 숨을 조금 누그려 뜨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
얼마나 일반화 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남자들이란~~' 어쩌고 저쩌고 할 때의 특성을 보여 주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이춘풍과 배비장(비장이 낮은 벼슬 이름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부끄럽게도). 글쎄, 정말로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 두 사람과 같은 본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내가 여지껏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궁금하기도 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나올 수도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 이유만으로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권할 수가 있으니까. 그리고 막상 읽으면 재미있다고 말한다. 물론 남학생과 여학생의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고.
이춘풍에게 추월이나 배비장에게 애랑이나 남자 쪽으로서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또 이춘풍의 아내가 남편의 됨됨이와 상관 없이 아내 몫을 다해 내는 것에 대해서도 남학생과 여학생의 반응이 다르다. 이 차이가 어쩌면 지금의 결혼 적령기에 있는 남녀가 결혼에 대해 느끼는 온도의 차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자라서 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것, 여자라서 하면 안 되는 것과 할 수밖에 없는 것.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소설이 유행했다면 상당 부분 당시의 삶이 이와 비슷했을 텐데, 남자와 여자로서 각기 다르게 받았을 대우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대립이 되고 갈등으로 대치되는 사회는 불행할 것이다. 서로는 적이 되어서도 안 되고 적이 될 수도 없는 거니까.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가부장적 사회로 거꾸로 돌아갈 수는 없을 터이고. 이해와 양보로 서로를 인정하는 게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좀처럼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지 못하고.
토론 수업 자료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답이 너무 뻔해 보이기도 한다. 이춘풍이나 배비장이 잘 나갈 때처럼 살고 싶다는 남학생, 과연 많을까? |
|
이춘풍전 배비장전 고전문학 두 편을 접했다. 해학과 풍자를 통해 19세기 사회 현상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특히 비뚫어진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성적 욕망에 관해 그 당시 일부다처제 및 다수의 첩을 거느릴 수 있었던 사회 풍속도에서도 여전히 가져야할 기본 관념에 대해 어필하고 있다. [이춘풍전] 한양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허랑하게 탕진한 한량 이춘풍, 부인 김씨에게 각서를 쓰면서까지 약속을 하고 집안 살림을 넘긴다. 그러나 부인의 노력으로 다시 재산을 모아놓으니 약속을 어기고 호조로부터 2천냥까지 빌어 가산을 정리한 채 평양으로 장사를 떠난다. 하지만 평양 기생 추월에게 빠져 재산을 다시 탕진하고 추월의 머슴살이를 하는 추태를 당한다. 한편, 김씨 부인은 평양 감사로 가는 이웃집 참판에 잘 보여 함께 회계비서로 남장한 채 떠난다. 감사를 도와 살림살이를 잘 산 덕에 상금 5만냥을 받기에 이르고 감사의 힘을 빌어 추월을 혼내고 빼앗긴 돈 및 이자까지 쳐서 받아낸다. 시치미 떼고 고향에 돌아와 남편의 거동을 살펴보면서 자초지종을 늘어놓으니 이춘풍 크게 깨닫고 집안을 일으킨다. [배비장전] 서강에 살던 배선달은 바람피지 않겠다고 부인에게 철석같이 약속하고 비장일인 예방 일을 맡아 제주도로 떠난다. 제주 기생 아랑에게 반하지만 체면상 드러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심지어 방자와의 내기까지 한터라 차마 애랑에게 접근도 못한다. 숲속에서 목욕하던 애랑의 모습만 눈에 어른거려 편지 한 통을 보내고, 방자와 애랑의 꾐에 빠진 지도 모른 채 벌거벗은 채 애랑 집을 찾았다가 자루 속에서 몰매 맞고 궤짝에 갇힌 채 동헌 앞뜰에 내동댕이쳐져 위선적인 행동은 적나라하게 드러나 망신을 당한다. 두 작품은 19세기 유흥문화의 향유 계층이었던 하급관리, 상인, 중인들이 중심축을 이룬 가운데 판소리나 특유의 문체, 표현, 어법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남성의 성적 욕망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춘풍전은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남성의 성적 욕망은 경계의 대상이었고 방탕함 역시 금기시 하였다. 반면 배비장전은 남성의 시각에서 성적 욕망은 감추거나 숨길 대상이 아니며 감추거나 숨길 수도 없기에 위선적인 행동은 경계해야 한다고 바라보고 있다. 이처럼 두 작품은 동일한 성적 욕망을 달리 해석하고 있다. 이같은 고전문학은 시대적 오랜 산물이며 인간의 삶의 본질을 꿰뚫는 근본 가치를 다루고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며 타당한 세계적 가치를 다루는 데,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했던 공동체 의식이 깃들여 있고, 선비문화 속에 녹아있던 자연 친화의지와 강자에게 비굴하지 않고 고난에 굴복하지 않는 당당하고 끈질긴 생명력과 고달픈 삶을 해학으로 풀어내며 서러운 약자에게 아름다운 결말을 만들어주는 넉넉함까지 보이고 있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어울어져 하나되는 일체감마져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고전문학을 접해야 하는 당위성을 발견할 수 있다. |
|
김현양 교수가 고쳐 쓴 『이춘풍전 배비장전』은 현암사 서평단에서 받은 책이다. 두 편의 고전 작품은 학창 시절에 이미 읽은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원문 그대로의 딱딱한 문체였고, 이 책은 원전의 내용과 언어 감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글맛을 살리기 위해 여러 차례 윤문을 거쳤다고 한다. 새로운 느낌을 기대하면서 펼친 이 책에서 느낀 점을 몇 가지만 적겠다. 첫째, 원전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원전의 내용과 언어 감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글맛을 살리기 위해 여러 차례 윤문을 거친’형태이다. 즉 고전 그대로가 아니고 현대의 감각에 가깝게 윤색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시가로 꼽히고 있는 황조가는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한역으로 전하고 있다. 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편편황조 자웅상의 염아지독 수기여귀) 이것을 학창 시절에 배울 때는 다음과 같은 풀이로 익혔다. 펄펄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와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고. 또한 두산백과 사전을 보니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었다. 꾀꼬리 오락가락, 암수 서로 노니는데,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뉘와곰 돌아가랴. 그렇다면 이 시의 원전은 어떤 것일까? 翩翩黃鳥(편편황조)로 시작하는 한자어를 원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삼국사기의 한역 역시 유리왕의 목소리는 아니다. 유리왕은 그 당시의 어떤 언어로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것을 몇 백 년 후의 고려시대 사람인 김부식이 ‘翩翩黃鳥’로 옮겼을 뿐이다. 즉 고려 시대의 감각으로 옮겼으니 당대에 맞는 원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각으로 고친 ‘펄펄 나는 저 꾀꼬리’나 ‘꾀꼬리 오락가락’역시 원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유리왕 시절에 유리왕이 읊은 원문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해도, 이 시대에 그것을 원전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원전의 내용과 언어 감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글맛을 살리기 위해 여러 차례 윤문을 거친’것이라고 해도 원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조선시대의 효도와 지금의 효도는 방법이 다르지만, 우리가 우리 시절에 행하는 효도를 한국 고유의 효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원전을 대하듯 흥미 있게 읽었다. 둘째, 두 작품을 함께 실은 편자의 의도에 공감하면서, 작가의 시선을 생각했다. 학창 시절에 이 작품들을 읽을 때는 이 책의 표지 뒤쪽에 있는 표현처럼 그저 ‘단순하게 조선 시대 남성들의 삐뚜름한 성적 욕망 이야기’ 정도로만 이해했다. 『이춘풍전』이나『배비장전』모두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조금은 외설적인 이야기로만 생각했지 차이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춘풍전』은 남성의 지나친 성적인 욕망을 경계하는 여성적인 시선이 담겨 있고, 『배비장전』남성의 성적 욕망은 감추거나 숨길 수 없는 본능이라는 남성적인 시선이 담겼다는 지적을 보면서 작가의 시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는 우리 고전인 『토끼전』의 결말에 대해 각각 다르게 전하는 다음과 같은 판본이 소개되고 있었다. - 자라에게 속은 별주부가 자결을 하려는데 명의 화타가 나타나서 충성을 칭찬하면서 영약을 주어서 용왕을 살리는 결말 - 자라에게 속은 별주부가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고 자결하는 결말 - 자라에게 속은 별주부가 도망을 쳐서 목숨을 구하고, 용왕은 병으로 인해 죽는 결말 이 결말들도 그것을 꾸민 개별 작가의 시선이 담겨있지 않겠는가? 한 작품에 대해서도 전수자의 의도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하물며 다른 작품에서는 물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춘풍전』의 작가는 춘풍 처의 시선으로 남성의 방탕함을 꾸짖고 있었을 것이고, 『배비장전』에서 제주목사 김경의 입장에서 성적 욕망을 본능으로 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춘풍 처와 김경의 시선을 느끼면서 책장을 넘기는 재미도 솔솔했다. 셋째, 편안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은『이춘풍전』이나『배비장전』을 안 읽은 독자는 물론, 원전까지 독파해서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독자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풍부하게 실린 김종민 화백의 익살맞은 삽화도 좋았다. 책을 포함해서 우리의 고전소설들은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야 할 책일 것이다. ‘원전의 내용과 언어 감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글맛을 살리기 위해 여러 차례 윤문을 거친’이 책은 그런 고전에 대하여 독자에게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
|
조선시대 남성들의 삐뚤어진 성적 욕망을 다른 이야기! <이춘풍전,배비장전> 우리나라의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책으로는 잘 읽혀지지 않은 것 같다. 나역시도 어릴적에 읽었던 기억이 없어서 이 둘의 이야기가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다룬 이야기인줄도 몰랐다. 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보니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이춘풍전>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많은 재산을 주색잡기와 노름등으로 탕진하고는 아내와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였지만 아내가 바느질로 힘겹게 번 돈으로 술만 먹고 놀다가 호조의 돈을 빌려 평양에 장사를 하러 갔다. 춘풍은 평양에서 제일 가는 기생 추월에게 반해 돈을 몽땅 써버리고는 이도 저도 못해 추월의 집에서 노비일을 하며 갖은 고생을 하였다. 이러한 소문을 듣고 아내는 비장으로 남장을 하여 추월을 혼내주고 호조의 돈도 돌려받고 춘풍도 집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배비장전>은 절대로 아내 말고는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배비장을 사또와 주위 사람들이 모두 합세하여 제주의 기생 애랑이를 시켜 배비장을 애랑이에게 빠지게 만들어 놓고는 혼줄을 내준다.
이 책의 해설을 보면 <이춘풍전>과 <배비장전>은 똑같이 남성의 성적 욕망을 다루기는 하였으나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고 하였다. <이춘풍전>은 춘풍의 방탕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체가 여성이며, <배비장전>은 성적 욕망을 감추려고 하는 것이 안좋은 것으로 말하는, 바라보는 주체가 남성이라 한다.
이 이야기들이 쓰인 시대에는 첩을 여러 두기도 하고, 남성의 기생 놀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였다고는 하지만, 이춘풍의 행동은 요즘의 시대로 바라보면 정말 한심하고, 당장 이혼당하고, 폭력으로 고소당할 그런 인물이다. 그나마 지혜로운 아내가 결국에는 남편이 반성하고 착해질 수 있게 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런 남편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내가 있을까 싶다. 아니, 남편을 변화 시킨다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기에 이춘풍 같은 남편은....정말 에혀..다..
판소리로 더 유명하기도 한 <이춘풍전,배비장전> 유쾌하고 해학적이여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그 웃음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 였다.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된 리뷰임> |
|
요즘 나오는 책들을 보면 외국 저자가 쓴 책이 정말 많다는 걸 쉽게 알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보아도 그러하고. 우리나라 작가가 쓴 책들은 왜 인기가 없는 것일까. 번역된 언어에서는 느낄수 없는 감성같은 것들이 한국 작가가 지은 책에서는 느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재미로써만 추구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맞지 않는 것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학생들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가장 감동깊게 읽는 책은? 이나 또는 기억에 남는 책을 물어보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라던가 '어린왕자'라던가 하는 책을 꼽기 일쑤이다. 왜 우리나라 책은 뽑히지 못하는가. 획일화된 교육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중학교때 읽은 책들은 한국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지정도서로 나왔던 책들이 현진건이나 김동리 그리고 염상섭 이런 한국 작가들이어서 그분들의 책을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김동리나 김유정 같은 작가의 작품은 좋아해서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은 작품들까지도 찾아 읽었었다. 그 이후 고등학교때 데미안을 읽었었고 헤르만 헤세의 다른 작품이나 도스토에프스키의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고전문학이다. 내가 앞에서 말한 그 한국작가의 작품들 보다도 더 오래된 이야기들이다. 내게 있어서 이런 작품들은 낯설다. 학교 다닐때도 고전문학시간에만 봤을까. 그때도 시험에 필요한 작품들만 나올뿐 이런 해학적이고 재미있는 작품들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 현암사라는 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는 고전 시리즈가 아주 소중하게 느겨진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조상의 위트를 보여주고 재미와 감동교훈을 느끼게 할 책들. 사실 찾아보면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것들도 있고 이 이야기처럼 모르고 있는 것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앞으로도 더욱 많은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줄수 있는 그런 출판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 책은 짧은 이야기 두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짧기도 하지만 이야기 두편이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쓰여졌기 때문에 일부러 같이 묶어놓은 것이 아닐까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조금 외설적인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림이 귀엽게 그려져 있고 아이들이 보기에 또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는 문체를 구성하고 있어서 소재가 다소 자극적이라 할지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춘풍'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태어날때부터 부자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이 없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흥청망청 다 써버리고 나자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그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지만 아내가 조금 가세를 일으켜놓자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돈을 빌려 한양에 가서 장사를 해오겠다고 나선다. 아내는 그런 그를 말리지만 큰소리만 떵떵치고 나선 그는 아니나 다를까 제버릇 개 못 준다고 '추월'이라는 기생을 만나 자기가 가져온 돈을 몽땅 탕진하기에 이른다. 기생 추월은 돈 없는 그를 상대해줄 리 만무하고 이제 그는 어떻게 될까.
이춘풍전과는 다르게 배비장전은 제목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배비장이 도대체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 설명에 배씨 성을 가진 '비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김사장 처럼 직함으로 쓰이는 것을 제목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배비장 또한 여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제주로 발령이 나서 가지만 자신은 절대 기생들과 놀아나지 않겠다고 주위 다른 관리들과 내기를 한다. 하지만 자신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곳에서 유명한 기생에게 홀랑 빠져버리고 마는데 그런 그를 놀려주는 이야기가 전체의 줄거리이다. 이 두편의 이야기들을 통하여서 아이들이 얻을 것은 무엇일까. 일단은 가볍게 쓰인 이야기가 즐거움을 줄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보다도 어른들에게 아내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여러 어려운 단어들을 한편에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어서 그런 단어들을 공부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사실 한자어를 많이 아는 편이데도 불구하고 모르는 단어들이 나오자 멈칫하게 되었는데 설명을 보니 금세 알수 있었다. 새로운 단어를 알아가는 재미도 더해주는 그런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