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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의 삶은 단순하면서도 다양하다. 그를 둘러싼 고향(자연, 가족)과 그에게 배우며 자라나는 아이들(학생)과 그가 사랑하는 시(글)가 전부인 그의 삶은 타인의 눈에 심심하고 지루하게 비추어지지만 그의 글을 통해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냥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나무에서 여러 갈래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것처럼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무궁무진하게 풀어낸다. 마르지 않는 샘과 같고 꺼내도 꺼내도 보물이 계속 나오는 화수분 같다. 주변 풍경과 일상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맞추고 관심을 두는 사람만이 그 같은 이야기보따리를 지닐 수 있다.
<김용택 시인의 풍경일기_가을>에서는 시골 아침 냄새가 난다. 덥다고 생난리를 치던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아침 공기는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인 사람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만큼 맑고 상쾌했더랬다. 한겨울 얼음물처럼 차가운 공기에 섞여 있던 매캐하고 알싸한 냄새가 코끝에 오래도록 남던 시골의 가을 아침 풍경은 도시에서 만날 수 없기에 지금까지 아련한 향수를 풍긴다. 그러한 시골의 가을 아침 공기는 책 곳곳에 숨어 있다가 책장을 펼친 사람이 글과 사진을 구경하는 동안 스멀스멀 올라와 코끝에 맺힌다.
시인이 즐겨 산책하는 솔숲에 켜켜이 쌓인 솔잎들이 떨어진 햇수만큼 지니고 있다는 제각각의 색깔들, 늦가을 지인들과 보았던 강물에 비친, 화려한 비단 같은 아름다운 절경은 이백의 시에 나오는 별천지이고, 늦은 밤 다림질을 하던 할머니가 속삭이듯 가만가만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의 무서움과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보낸 시끌벅적한 추억까지. 하나 같이 정겨운 풍경과 일상은 시인의 손을 빌려 수더분한 글로 다시 태어나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로 정직하게 웃고 있다. 책 속에서 볕 좋은 날 시인의 어머니께서 문짝을 뜯어내 찢어지고 묵은 창호지를 죄다 떼어내고 새로운 종이를 바르는 부분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다른 부분보다 손이 많이 가서 헤지기 쉬운 문고리 옆에는 특별히 단풍 물이 곱게 든 담쟁이 이파리로 무늬를 놓는다고 하는데 가을볕에 금세 마르는 문종이의 깨끗한 하양과 문고리 부분에 달린 담쟁이 이파리의 고운 색을 상상하고 있자면 들썩들썩 시끄러운 마음이 차분해지고 한결 여유로워진다. 문종이를 바르는 날은 볕이 좋아야 한다고 하니 아마도 하늘은 눈이 시릴 만큼 파랗고 투명하리라. 그리고 담쟁이 이파리는 밤마다 자신의 그림자로 깨끗한 문종이에 운치를 더하리라. 이런 것이야말로 생활에 녹아든 예술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창문은 이 세상에 남을 것이다. 한때 내 삶의 순간을 잡아 비춰주었던 정말 별 볼 일 없이 평범한, 창문, 그러나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창문, 그 창문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삶의 순간들이……. 인생은 지나간다.
- '오래된 창문' 중에서
나도 창문을 하나 만들고 싶다. 학교에 있는 작고 평범한 창문을 통해 시인이 끊임없이 변하는 계절의 풍경을 빠짐없이 지켜본 것처럼, 흘러간 30년의 세월을 다시 비춰보는 것처럼 나만의 작은 창문을 내어 거기에 비치는 풍경과 일상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가슴 안에 새겨두고 싶다. 너무 크지 않아야 더욱 좋다. 그저 나의 인생 순간순간을 바라볼만한 크기면 적당하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계절마다 변하고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과정은 얼마나 가슴 벅찰는지. 해마다 켜켜이 쌓이는 솔잎처럼 묵묵히 쌓여 햇살에 반짝거릴 내 인생의 순간들은 얼마나 정직하고 아름다울는지 창문을 통해 배우고 싶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 사랑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의 모퉁이에 우리는 서 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다정하고 정다운 사람인가. 나는 지금
나누어줄 온기를 가지고 있는가.
- '은행나무 밑 지날 때 큰소리로 말하지 말라' 중에서
11월은 곧 다가올 겨울에게 슬금슬금 자리를 뺏기는 달이자 가을의 마지막과 겨울의 시작을 동시에 맛보는 달이기도 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문득 겨울 냄새를 풍기는 11월의 막바지에서 나는 나를 둘러싼 풍경과 일상으로부터 온기를 얻고 싶다. 또한 그 온기를 다른 이와 기꺼이 나눌 줄 아는 정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자면 사진전에 걸린 박제된 풍경 사진 바라보듯 풍경과 일상을 볼 것이 아니라 시인처럼 애정을 가지고 그것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풍경과 일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좋은 나의 친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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