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일생을 재구하다!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일생을 재구하다!" 내용보기
소설가 홍명희는 장편소설 <임꺽정>의 작가로 알려졌으며, 남북이 분단된 이후 북한에서 고위직을 역임했기에 우리 문학사에서는 한동안 언급이 되기 힘들었던 인물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광수와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으며, 나머지 두 사람은 이후 친일 행적을 보여줬지만 홍명희는 평생을 일제와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살았다. 이 책은 ‘민족문학 최고봉 <임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일생을 재구하다!" 내용보기

소설가 홍명희는 장편소설 임꺽정의 작가로 알려졌으며남북이 분단된 이후 북한에서 고위직을 역임했기에 우리 문학사에서는 한동안 언급이 되기 힘들었던 인물이었다일제 강점기 이광수와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으며나머지 두 사람은 이후 친일 행적을 보여줬지만 홍명희는 평생을 일제와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살았다이 책은 민족문학 최고봉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고 있으며저자는 임꺽정에 대한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부터 홍명희의 연구에 매진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 등에 연재가 되었던 소설 임꺽정은 여전히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있는데해방 이후 지인들이 작품의 완성을 권했지만 홍명희는 끝내 완결하지 않은 상태로 두었다고 한다.

  

임꺽정을 집필할 당시에는 일제의 탄압이 거세된 시기였기에아마도 임꺽정이라는 역사 인물을 통해서 비판적인 저항정신을 추구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그러나 해방 이후 북쪽을 선택하여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굳이 작품을 완결짓지 않더라도 현실 속에서 그 정신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때문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홍명희의 평전을 구성하면서저자는 먼저 작가와의 가상대담을 서두에 배치시키고 있다이미 1968년에 죽은 작가와 대담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저자는 그동안 자신이 연구했던 홍명희에 대한 내용을 토대로 가상대담을 시도하는 것이다실상 이 내용만을 보더라도 홍명희의 일생과 사상 그리고 소설가이자 정치인으로서의 행적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저자는 조선시대 명문 양반가의 후예로 태어난 홍명희가 신문학과 근대사상의 세례를 받게 된 경위에 대해서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서술하고 있다무능한 왕조시대의 정치인들로 인해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끝내 식민지로 전락하고, ‘경술국치와 부친 홍영식의 순국은 홍명희의 인생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부친의 순국 이후 한동안 은둔하다시피 하며 지내던 홍명희는 1912년 가을’ 중국으로 떠나, ‘해외독립운동의 모색을 하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비록 7년만에 귀국을 했지만당시 중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과의 교유를 통해 ‘20대의 젊은 나이에 오래 동안 해외에서 활동한 경험과 이력은 민족운동가로서의 홍명희의 성장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절친한 벗이었던 이광수와 최남선은 후일 친일의 유혹에 빠져 그와 길을 달리 하였지만홍명희가 항일운동의 험난한 길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 당시 중국에서의 경험이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다시 귀국한 홍명희는 ‘3.1운동에서 신간회운동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활동을 했으며, ‘천민인 백정 신분의 인물 임꺽정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했다당시의 역사소설이 주로 지배층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음에 비해천민 신분의 의적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임꺽정은 일제 강점기의 역사 소설 중 극히 예외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이 작품은 홍명희의 사정에 따라 몇 자례에 걸쳐 연재가 중단되기도 했으며연재하던 신문이 폐간되어 집필을 이어가지 못하고 끝내 미완의 작품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전쟁으로 치닫던 일제 강점기 후반부에는 당시 내로라하던 지식인들이 친일의 길로 뛰어들 때홍명희는 일제말의 은둔을 택하여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며 살았다일제의 패망으로 조국이 해방되었지만남과북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지식인들조차 이념적인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했다홍명희는 해방 직후의 격동 속에서’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김구와 함께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였다가 그대로 북쪽에 남아있게 되었다이후 북에서의 만년은 고위급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68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책의 말미에 첨부된 홍명희 연보를 통해서 그의 일생을 간략하게 더듬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여전히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북에서 고위직을 지낸 홍명희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일제 강점기 그가 보여주었던 행적이나 임꺽정이라는 작품이 지닌 성과나 의의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저자 역시 홍명희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길이 기억되어야 할 존재로 평가하고 있기에다양한 자료를 통해 그의 일생을 재구하여 평전으로 소개하고 있다오래 전에 읽었지만이번 여름방학에는 시간을 내서 다시 소설 임꺽정을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22.05.13. 신고 공감 1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포용력과 지조를 가진 선비
"포용력과 지조를 가진 선비" 내용보기
책을 읽으면 즐거운것은 내가 몰랐던 지식을 알게되는 기쁨이 첫째라면 둘째는 지은이의 정신세계를 여행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나와 다른 그 사람의 인간적 체취를 맡아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지면을 통해 만나게 된 옛 사람은 실제 만나 볼 수 없기에 더욱 반가움이 더하다. 또한 그런 만남은 자연스레 지은이의 학문적, 인간적 인간관계에 연결되어 확대되게 되는데 이것도
"포용력과 지조를 가진 선비" 내용보기

책을 읽으면 즐거운것은 내가 몰랐던 지식을 알게되는 기쁨이 첫째라면 둘째는 지은이의 정신세계를 여행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나와 다른 그 사람의 인간적 체취를 맡아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지면을 통해 만나게 된 옛 사람은 실제 만나 볼 수 없기에 더욱 반가움이 더하다. 또한 그런 만남은 자연스레 지은이의 학문적, 인간적 인간관계에 연결되어 확대되게 되는데 이것도 또한 큰 즐거움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단재 신채호를 알게되고 그를 통해 벽초 홍명희를 알게되었다.

 

임꺽정의 작가로만 알고있던 홍명희는 예전에 국어선생님께서 담배를 워날 즐기셔서 별명이 골초였다고 이야기했던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그의 평전을 읽어보니 단지 역사소설의 작가였던 옛사람이 아니라 독립운동가요, 언론인이요, 학자요, 사회운동가요, 정치가였던 분이다. 어쩌면 시대가 그에게 많은 역할을 요구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지식인들이 그랬던것처럼. 난 아직 그의 임꺽정을 읽지 않았다. 이번에 내 도서목록에 추가했다. 먼저 작품을 읽고 평전을 읽었다면 더욱 뜻깊었을것을...

 

벽초 홍명희 선생은 구한말 명망있는 양반가의 장손으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문재를 떨쳤다. 한학을 배우고 신교육을 받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이때부터 대단한 독서가 기질을 보였다고 한다. 조선의 망국으로 순국자결한 부친의 유지를 따르고자 중국으로 망명하고 이후 동남아 일대를 주유하며 독립운동에 힘썼다. 귀국 후 고향인 괴산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 투옥하고 신간회를 설립했으나 재차 투옥되었다.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민중계몽 활동을 꾸준히 펼쳤으며 그이 역작인 임꺽정을 여러 차례의 중단을 거치며 조선일보에 연재했다. 이후 민족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정치참여에 나섰으나 결국 월북하여 북에서 고위직 정치인으로 80세의 일기를 마쳤다.

 

아마도 그가 월북작가, 월북정치인으로 분류되기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았나보다. 평전이란 작가가 주인공의 생애를 애정과 존경이 넘치는 문체로 포장하기때문에 독자도 호감을 가지게 되는면도 있지만 벽초 홍명희는 말씨, 태도, 외모와는 달리 넓은 포용력과 초지일관의 지조를 가진 선비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 분의 정치적 선택이 무엇이었든 그가 조국에 가졌던 애정과 민중에 보였던 관심은 그의 작품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되리라 믿는다.

y*******0 2007.08.22.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