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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존 포드 감독이 리처드 르웰린의 소설을 바탕 삼아 1941년에 만든 흑백 영화로, 영국 웨일즈의 시골 탄광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고단하고 아픈 삶을 그렸다.
2. 아들 여섯과 딸 하나를 둔 아버지 모건(도날드 크리습)은 바르게 살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어린 휴(로디 맥도월)를 빼고 사내들은 모두 탄광에서 일한다. 아버지는 반장으로, 나머지 아들들은 광부로 일하는데, 넉넉하지는 않아도 집은 웃음이 넘친다. 집안일을 거드는 안하라드(모린 오하라)와 엄마는 힘든 줄을 모르고 산다.
그런데 이들한테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언제나 벌어진다. 큰아들 이보아한테 아리따운 브론윈(안나 리)가 시집을 와서 바로 옆집으로 살림을 차려 나간다.
석탄값이 떨어지고 다른 탄광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일하려는 이가 많아 품삯이 떨어진다. 피끓는 젊은 아들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제 값을 받을 수 있다며 나서는데, 아버지 모건은 말린다. "품삯이 줄었지만 그렇다고 우리 집이 굶지는 않아...노조는 공산당이나 하는 짓이야"
아들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광산 임자들이 나빠요. 이러다간 나중엔 품삯을 안 줄지도 몰라요..." 파업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안된다고 막는다. 끝내 아들 둘은 일자리를 구하러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마을 광부들은 파업을 벌인다.
언제나 나이든 사람들은 조금 억울하고 힘들더라도 별탈 없이 지내려 한다. 새롭게 다른 생각으로 살기엔 오래 산 탓도 있지만, 오랜동안 지녀온 생각이 머리에 굳었기 때문에 새삼 바꾸기가 어려운 탓이다. 그래서 보수적으로 되어 간다. 아무리 좋다고 해도 새로 뭘 하는 건 버겁다. 바꾸는 건 몸부터 싫어한다. 그러니 마음은 오죽하랴.
그러나 현실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찾으려 애쓰는 젊은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바꾸려 한다. 아직 살아야 할 앞날이 한참 남았으므로. 그래서 진보적이다. 젊은데도 보수적인 사람의 값어치는 없다. 더 나은 앞날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일 뿐이므로.
3. 가슴 아픈 대목이 많다. 일감이 없어 다른 나라로 떠나는 아들들을 그냥 보낼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마음은 아프다.
안하라드는 새로온 그리피드 목사(월터 비전)를 보고는 뿅가고 그리피드 목사도 마음이 가지만, 이들의 사랑은 이루기가 쉽지 않다.
안하라드가 부끄럽지만 아주 드러내놓고 말한다. "내가 바라는 건 당신의 사랑입니다" 그런데도 목사는 "나 혼자 힘들게 사는 건 괜찮지만, 아내나 아이들이 어렵게 사는 건 볼 수가 없어요" 이 따위 김빠지는 소리를 해댄다. (이게 하나님을 등에 업고 다니는 사내가 할 소린지...) 게다가 탄광 사장인 에반스가 제 아들 레스틴이 안하라드와 같이 살기를 바란다고 하질 않나...
막내인 휴가 어렵사리 다른 마을에 있는 국립학교에 갔을 때, 먼저 와있던 아이들이 텃세를 부린다. 휴가 새로 사간 필통을 덩치가 큰 놈이 부수고, 성이난 휴가 덤벼들고, 싸우다 휴는 코피가 나고... 서울로 가면 시골놈이 왔다고 놀리고, 서울에서 오면 서울내기라고 놀리던 우리네와 다를 바가 없다.
4. 어렵던 시절을 산 피붙이들의 삶을 잘 그리고 있으나, 사랑은 이루지 못하고, 피붙이는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이 짙게 배어있다.
그래서 이 영화보다는 존 포드 감독이 1952년에 만든 밝은 모습의 아일랜드를 그린 영화 <말없는 사나이 The Quiet Man>(아일랜드의 연풍)가 더 마음을 끌어당긴다.
오래된 영화라 그런지 디브이디는 볼품이 적다. 그림이나 감독과 배우 소개는 있으나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