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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일생을 두고 뇌를 쓸 수 있는 게 전체의 10%라고 합니다. 나머지 90%는 그럼 쓰지 못하고 버리는 부분인가, 그렇지는
않고요. 동시에 활성화할 수 있는 최대치가 10%라는 거죠. 말이란 그래서 정확한 표현을 써야 듣는 이가 오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 속에 쓰여지지 않고 버려지는 어떤 잠재력에 대해 미련을 갖습니다. 만약 우리가 원 없이, 주어진 모든 것을
남김 없이 소진하고, 유감없이 불태우듯 자원을 활용하며 생을 마친다면, 저런 부정확한 명제가 유행처럼 인구에 회자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전 저 말을 중학생 때 처음 들었는데, 그때도 지금의 자기계발 강사에 해당할 만한 이들이 여러 학교를
순회하며 일종의 모티베이션 교육을 펴곤 했습니다. 속으로 비웃으며 "그 한계 10%는 이미 10%이 아닌 100%이기에 그걸
한계라고 부르는 거다."라곤 했었죠. 오히려 나이가 든 지금, "그래도 뭔가가 더 있지 않을까?"란 기대가 더 피어 오르는 건
무슨 심리인지 저 자신도 고개가 갸웃해지곤 합니다.
여러
차례 리더십에 대한 책 리뷰를 쓰며 "리더십은 결코 거창한 게 아니며, 특별한 사람한테나 필요한 자질이라고 한정 짓는다면 그건
전근대적 사고 방식에 불과하다. 현대 시민 사회, 참여가 의무가 되는 사회에서 리더십이란 이미 특권이 아닌 봉사의 마음가짐에
가깝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이라기보다 거의 모든 책 저자가, 독자로 하여금 그런 결론을 내리게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점을 보다
분명히합니다. 많은 책들이 저 점을 당연시하지만 암묵적인 전제로 활용함에 그치는 반면, 이 책은 "일단 독자들이 전근대적 이해,
아니 불건전한 오해를 분명히 버리게끔" 적극적이고 명시적으로 리더십에 대한 정의를 바로잡는 데서 논의를 시작합니다. 많은 이들이
아직까지도 오해하는, 특출한 이 하나(혹은 소수)가 나머지 무리를 이끈다는 식의 이른바 "자질론"은, 학계에서 이미 극복된 지
오래입니다. 저자는 이후 이론 발전의 동향에 대해 더 상세한 소개를 베풉니다.
잘난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니(저자분의 표현입니다) 더 이상 특출한 소수가 다수를 이끈다는 이론이 공감을 얻기 힘들게 되죠. 그래서
이번에는 "추종자 중심론"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자질만으로는 조직이 성공하기 부족하고, 그 지도자를 떠받드는
이들이 뛰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역시 크게 보면 "자질론"의 스케이프에서 크게 벗어나는 태도가 아닙니다. 리더 한
사람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큰 덩어리의 자질"이, 그 측근들에 고루 분배되어, 결국 특권을 지닌 소수의 능력이 조직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결론이죠.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폭넓은 동의를 얻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현실 작동의 양상에 잘 부합되지도
않습니다. 당장 도요타의 칸반 시스템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억지로 민주적 미덕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사회 현실 자체가 이미 그
단계를 벗어난지 오래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자질이 잘 계발되어 운용되는 사회가, 소수 엘리트들이 전횡하는 사회보다 더 큰 저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지, 무능 저능한 미친 몽상가가 함부로 중책을 맡아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어떤 졸부의 자식은 이런
취지로, 되지도 않은 헛소리를 떠들더군요. 이 이론이 지들에게는 그렇게나 매력적이었는지, 무지렁이 잡초 거렁뱅이들도 무슨 파천황의
진리나 접한 듯 입에 거품을 물고 맞다며 구원을 얻었다며 아우성을 쳐 댑니다. 이런 불량품들은 어느 조직에서나 하루빨리
솎아내어져야 나머지가 피해를 입지 않으며, 성능 좋은 예초기로 싹뚝싹뚝 절단되어야만 합니다.
저자는
현대 학계의 주류 스탠스라 할 수 있는 상황론, 그 중에서도 조지 테리, 키스 데이비스(키스 리처드가 아니니 오해하는 분들이
없길 ㅋ), 폴 허시(바바라 허시와는 사돈의 팔촌도 아닙니다), 케네쓰 블랜처드(안 끼는 데가 없네요?) 등의 입장을 절충하여,
"주어진 상황 내에서 조직성원들로 하여금 희구하는 목표를 보람차게 추구하도록 조력(leading, helping,
mentoring)하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이 정의를 잘 읽어 보세요. 이미 리더는 리더가 아니라, 조력자에 불과합니다.
조직원들의 사기를 최대한 북돋워서, 감추어져 있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돕는 이가 진정한 리더라는 뜻입니다.
몇
년 전에도 조직의 리더를 "멀티플라이어"와 "디미니셔"로 나누어,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이 에고 만족을 위해 남들을 기죽이는
독재자나 나르시스트가 아니라, 나머지 성원들을 신나게 만들어 조직 전체가 살게 하는 자질을 가진 이들이란 가르침이, 리즈 와이즈먼
같은 대중 저술가에 의해 널리 유행을 탄 적이 있습니다(그 역시 본인의 독창적 업적이 아니라, 다른 탁월한 학자들의 성과를 잘
요약, 전달한 것입니다만). 사람의 잠재력은 자신의 일터에서, 혹은 가정에서, 하는 일과 참여하는 상황이 "신이 날 때"
최대한으로 발휘됩니다. 남을 기쁘게 만드는 사람이결국 최선의 리더가 된다는 결론, 저 한 세기 전 미친 독재자가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괴성을 질러가며 사람들을 광기에 몰아넣던 시절과 비교하면 얼마나 희망적입니까? 이 세상은 그래서 잡초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더 살만한 곳이 되어 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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