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고백 시인 로버트 로웰(R. Lowell)은 현대인의 상태를 로봇화된 상태라고 보았다. 이는 자기 자신만의 가치를 전혀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시대가 명령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아이, 로봇> 역시 자유 의지를 잃은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로봇에 비유하여 비판하고 있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로봇과 관련된 영화가 그렇듯,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과학과 만나면서 생기는 묵시록적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인류 과학 발전의 정점을 보여주는 새로운 로봇 NS-5는 인간과 아주 가깝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무한한 발전만을 고집하는 인간의 욕심은 결국 로봇의 반란으로 이어져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기존의 SF영화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 영화가 다른 영화에 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는 것은, 영화 속 로봇이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자유 의지를 잃은 현대인을 보여주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로봇들은 인간들의 명령만을 따르는 존재다. 인간의 명령이 옳고 그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자유의지도 없다. 물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자유의지도 없기 때문에 영화 속 사회는 범죄가 오늘날에 비해 적게 발생한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시인 엘리엇(T.S Eliot)이 오늘날을 '지나치게 정화된 사회(over-refine socity)'라고 부른 것처럼 영화 속 미래는 지나칠 정도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반듯이 정돈되어 있다. 사회가 명령하는 것을 거역할 자유의지를 로봇은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 없이 살아가는 것은 비단 로보트 뿐만 아니다. 로보트를 생산하는 회사의 사장이나 수잔 박사 역시 로보트가 지닌 완벽함과 유용함에 대해 어떠한 비판적 시각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로보트는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며 안전하다는 사회의 가치는 진리다. 이들의 모습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 내는 가치관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오직 스프너 형사만이 절대 가치를 지닌 로보트에 대해 의심하고 끊임없이 비판한다. 때론 과도한 비판으로 문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뚜렷한 믿음이 있다. 알렉스 프로야스는 미래의 로봇화된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하면서 대안으로 스프너 형사와 같은 인물을 내놓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로보트를 신뢰하지 못한다. 아이와 여성을 보호하려는 미국인의 가치를 지닌 스프너는 자신이 살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아이 대신 자신을 구한 로보트의 차가운 이성을 혐오한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로봇이 보여주는 발전된 과학이 아닌, 휴머니즘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모두가 이성이라는 절대 가치에 중독되어 있을 때 스프너 형사만이 감성을 중시한다. 그래서 그는 아이 대신 자신이 살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슬퍼한다. 결국 스프너는 감성을 지닌 로봇 '써니'를 만나게 되고 이성과 질서를 대변하는 로봇들의 반란에 대항해 인간의 가치를 지키려 노력한다. 영화는 로봇의 반란을 통해 스너프가 지닌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반란을 일으키는 로봇의 목적은 인간의 보호이다. 그리고 그들은 U.S로보틱스 건물을 통제하는 로봇의 지배를 받고 반란을 일으킨다. 인간보호라는 명분과 로봇 전체를 지배하는 하나의 로봇이란 구조는 매우 익숙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전체주의, 파시즘이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각각 게르만 민족과 이태리 민족의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람들을 로봇처럼 통제했듯이 미래의 자유의지 없는 로봇들은 건물을 통제하는 로봇에 의해 쉽게 통제 받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H. Arendt)가 이야기 했듯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는 비판력과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로봇과 같은 미래의 사람들은 어떤 명령에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전체주의 독재자의 음모는 비판적 사고로 똘똘 뭉친 스너프 형사에 의해 무산된다. 프로야스는 이런 모습을 통해 무비판적인 대중, 자유 의지를 상실한 개인이 지니는 위험함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안은 바로 스너프 형사이다. 영화는 이와 같이 자칫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헐리우드 블록 버스터의 감각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자동차 추격신이나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로봇 공장신은 영화가 재미와 주제를 적절히 잘 섞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감독은 과거에 우리가 지니고 있던 휴머니즘과 감성과 이성의 적절한 조화를 강조하며 사회가 지나치게 합리화되는 것의 우려를 보여준다. 동시에 사회가 하나의 가치에 매몰되어 사회 구성원들이 자유 의지를 잃어버리는 상황을 경고한다. 스너프 형사가 미래에도 2004년형 컨버스 신발을 신고 휴머니즘과 비판적 사고을 잃지 않듯,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가장 필요한 것은 과거의 사람들이 지녔던 휴머니즘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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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보진 못했지만 DVD를 콜렉팅 하면서 아이로봇에 대한 평가가 대단한 것을 보고. 찾아 봤지만 역시나 다 품절 ..
이제서야 다시금 할인으로 2디스크 버전이 풀렸다.
조금 시간이 지난 작품이지만 화질,음질 모두 좋다고 하니 일단은 주문 해 놓고 기다릴뿐.
거기에 부가 영상까지 레퍼런스 타이틀이라고 하니 기대가 너무 크다! |
| 올해 나온 영화중에서 가장 지적인 부분을 채워준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아이로봇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유명한 로봇 삼원칙을 바탕으로 동명의 소설의 이미지를 차용해 만든 이 영화는 크로우, 다크시티 등 어두운 분위기와 어두운 색깔을 표현하는데 뛰어난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이 지휘하여 좀 더 어두운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다. 공상과학 애니에서나 나올법 한 중앙제어시스템이 로봇을 지배하고 그 로봇을 이용하여 인간세계를 통제할려고 하고 그 걸 인간이 막을려고 하는 어찌보면 상당히 투박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한 스토리다.. 하지만 이런 스토리가 이 영화에서 다르게 보이는 건 로봇과 인간의 대립을 그린게 아니라 로봇을 부정하던 주인공(월 스미스)이 대립속에서 로봇을 하나의 인간적인 객체로 인정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멋지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로봇의 퀄리티는 올해 내가 본 그 어떤 영화보다도 화질, 음질, 셔플 모두 뛰어나다. 컴퓨터 모니터에 5.1인치 헤드폰으로 듣는 거라 화질, 음질 모두 다른 것과 비교하기가 무리이긴 했으나 올해 본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9시간 이상되는 셔플먼트(커멘터리, 제작과정)는 2DISK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충실한 모습이였다. 아직 스파이더맨 2와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확장판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올해 최고라는 함부로 쓸 수는 없지만 그 들과 함께 최고의 레퍼런스 타이틀을 겨룰 영화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
| 이 영화는 감독의 상당한 상상력 수준을 보여준다. 짜임새있는 스토리와 반진감 넘치는 액션 그리고 엔딩은 정말 볼만하다. 끔찍한 사고로인해 로봇에 대한 나쁜 편견을 가지고 있는 형사를 월 스미스는 잘 소화해 냄으로써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며 로봇들의 공격은 인간이 이길지 로봇이 이길지 궁금해지며 최후에 드러나는 인간을 공격한 로봇들의 배후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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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체상 경어는 생략했습니다. ───────────────────────────
아이, 로봇 I, ROBOT ──────────────────────── [DVD] production : unknown director : 알렉스 프로야스 actor/actress : 윌 스미스 place : 내무실 price : 8400 won (폭스 바겐세일) ────────────────────────────────────────── □ 이 글에는 전반적인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읽기 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 명백한 스포일러 부분은# 이렇게# 로 처리했습니다. 드래그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20자평 : 때론 자신이 다리미보다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을 위한 영화 감정과 개성, 즉 자아를 지닌 로봇은 인간의 영혼을 지닌 기계와 기계 몸에 깃든 인간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비 슷비슷 말 장난 같은 얘기지만 어느 쪽이 주가 되는지는 꽤 중요한 점이다. 인간처럼 말하고 인간처럼 생각하는 로봇은 말 그대로 '처럼'이다. 결국 주는 기계요, 로봇이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것은 논리회로의 정교함이오, 인간처럼 행동하는 건 프로그래밍의 결과물일 뿐 - 수학적 계산 과정을 빼면 남는 것이 없다. 반대로 '기계 몸에 깃든 인간'이란 표현은 인간이 주가 된다. 지독한 근시인 내가 '안경'이란 도구의 힘을 빌려 사물을 보고, 불의의 사고로 사지를 잃은 사람들이 인공 의수, 의족을 달고 활동하는 것처럼 몸이 '심각하게' 불편한 누군가가 활동을 위해 로봇을 도구삼아, 제몸삼아 쓰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 역시 인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자아라는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곤 하지만 사회화와 교육을 통해서만 제 역할을 하는 것처럼 100 % 선천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백번 양보해서 무에서 창조된 (자아를 지닌) 로봇을 인간과 동일선상에서 놓고 볼 수는 없더라손 적어도 인간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지적인 생명체'로 봐야할 것 같다. "생명을, 인간을 규정하는 건 고스트(정신)." 유명한 누군가(공안 9과의 모토코 소령) 한 말이니 믿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웃음). I, ROBOT. 그 의미는 'I = ROBOT' 혹은 'I am ROBOT'일 것이다. 나. 의인화를 하지 않는 이상 인간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주격대명사 '나(I)'와 '로봇(IT)'은 매치가 되지 않는다. '저는 냉장고입니다. 제 문을 꼭 닫아주세요'라는 말 속에서 '나(저)'는 냉장고 기계의 제조업자가 고객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서 주어를 냉장고로 바꾼 것일 분, 녹음되어 있는 패턴이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 NS-5, 써니가 말하는 '나'는 냉장고나 다리미의 '나'와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나의 존재를 인지하고 내 의지대로 행동하며 형이상적인 문제로 고뇌하는' 누군가 아니 무엇이 말하는 '나'는 인간의 '나'와 다르지 않다. 로봇을 싫어하는 형사 스푸너와 인간보다 인간적인 로봇 써니의 첫만남은 용의자와 형사라는 딱딱한 관계에서 시작하지만, 동료/친구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에서 어린 소녀를 구하라는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생존 확률이 높은 자신을 대신 구한 로봇 때문에 로봇을 불신하게 된(..라기 보단 '저 놈들은 제아무리 인간에게 우호적이라도 본질은 합리성과 확률, 논리로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하다'라는 생각을 하게된) 스푸너의 입장은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 중 하나를 품고 있다. 인간은 지켜야 할 보편적 원칙이 있지만, 동시에 그 원칙을 어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인간은 인정(人情)상 거짓말을 하고, 봐주고, 넘어간다. 인간은 감정에 휘둘려 폭력을 행사하고 살해하고 사랑한다. 한없이 성스러워지기도, 악마보다 사악해지기도 한다. 댓가 없는 희생과 목적 없는 폭력이 공존한다. 도덕성은 원천적으로 강제되지 않고 단지 법이나 양심같은 외적/내적 수단으로 얄팍하게 보호되고 있다. 무언가를 지킴과 동시에 파괴할 수 있는 자율성의 존재는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조건이 아닐까. 원칙을 어기는 파격은 진화와 발전을 가져온다. 불을 발견한 유인원은 '번개치는 날엔 얌전히 동굴 속에 있어라'라는 원칙을 어긴 망나니였을 것이다. 반면 스푸너가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로봇은 의식의 밑바닥에 새겨져 있는 절대 진리 - 로봇의 삼원칙을 지니고 있다. 제 아무리 똑똑한 로봇이라도 1mm도 어긋날 수 없는 이 원칙은 로봇을 결코 인간의 수준까지 도달할 수 없게 만든다. (설령 높은 단계로의 도달이 아니라 '격하'라고 해도) 영화 속에서 (스포일러입니다. 드레그해서 보시면 됩니다) # '인간을 지키기 위해 내가 통제하겠다.'라며 되도 않은 반란을 꿈꾸는 비키(컴퓨터, 여) 역시 # 나름대로 창의적인 생각을 했지만 실은 '인간을 지킨다'라는 로봇 3원칙을 너무 곧이곧대로 생각한 어리석은 결과일 뿐이다. [터미네이터]에 등장한 인공지능 컴퓨터 스카이 넷 역시 '적을 섬멸한다'는 기본 설정이 '적 = 인간' 으로 계산되는 바람에 미쳐버린 것으로 볼 수 있을테고 말이다. 여기 하나의 원시인 집단과 최고급 사양의 로봇이 있다고 하자. 한 쪽은 이제 막 나무에서 내려왔다고 해도 좋을만큼 지성과는 거리가 먼 친구들이고 다른 한 쪽은 초당 몇 조 번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지성 넘치는 로봇이다. 100만년만 기다려보면, 원시인 친구들은 지구의 대부분을 바글바글 덮은 채 전쟁을 일으키고, 사랑을 하고, PSP와 mp3와 영화와 로봇과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냈을 터이고, 최고급 사양의 로봇은 여전히 '엄청나게 빠른 계산기'일 것이다. 이 모든 차이는 번개 치는 날 동굴 밖에 나가지 말라는 원칙을 어긴 원시인 친구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실수하고, 바보처럼 굴고, 여자 친구가 고민을 얘기할 때 '듣고보니 너도 잘못 했네'라고 말할 정도로 어리석을 수 있기에 인간인 것이다. 대충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을 스푸너 형사는 '스스로'를 인지할 수 있는 불량품 써니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저 '좀 더 정교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을 뿐. 하지만 너무나도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준 써니는 점차 로봇 이상의 존재로 인식되고, 결국 영화의 종반부 # 자기 대신 (살 가능성이 훨씬 없어보이는) 여박사를 구하라는 비합리적이고 인간적인(非로봇적인) 부탁을 들어준 # 써니를, 스푸너는 로봇이 아닌 동료로 인정하게 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원작 소설이 원체 뛰어나기도 했지만 영화의 완성도 역시 뛰어나다. 로봇이란 이유로 R등급의 각종 해체를 당하며 시각적 스펙타클을 안겨준 NS-5들의 살신성인 정신과 위화감없는 미래 도시를 그려낸 시각 효과의 출중함은 블록버스터 영화로서의 미덕을 보여준다. [크로우], [다크시티]의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답지 않은 '밝은 톤'은 의외였으나 영화 속 주제는 이전 작품 못지 않게 무거운지라 감독의 취향은 어디 가지 않았다는 안도를 하게 된다. 나날이 발전하는 테크놀로지로 인해 언젠가 인간은 인간에 무한이 근접한 자아를 지닌 로봇을 개발해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정의같은 기본적인 개념부터 송두리째 뒤흔들릴 것이다. 다소간의 혼란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런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아니, 되려 내 생전에 그런 일들이 벌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아를 지닌 로봇은 인간의 유일성을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이 넓은 외로운 우주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이기 때문이다. 덧> DVD로서의 퀄리티는 '레퍼런스의 레퍼런스'급이다. DVD 매체 상의 한계라고 얘기할 정도로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칼 같은 해상도, 흠을 찾아볼 수 없는 화면, 완벽한 사운드 등 발매 당시 화제가 되었던 타이틀이다. 20세기 폭스사의 레퍼런스 3형제 중 하나. (나머지 두 형제는 투머로우와 스타워즈 트릴로지). [인크레더블]이 CG애니메이션의 한계점이라면 실사 영화의 극단은 [아이, 로봇]이라 할 정도로 대단한 수준이다. DVD 애호가에겐 필견(必見) 타이틀. ──────────────────────────────────────────
2005. 08. 08 [소비전대 ~Mad Tea Party] all rights reserved. |
| 너무 뒤늦게 빠져버렸다!! 이미 최고의 스타인 윌스미스의 매력에 이제서야 빠져서 친구들이 비웃기까지..;; '맨인블랙'을 봤을 당시에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다. 윌스미스를 알고는 있었고 영화도 재미있게 봤지만 그냥 주인공이구나 그런 느낌뿐이었는데 '아이, 로봇'은 윌스미스의 색다른 모습과 매력을 한껏 눈치챌수있게 해주는 영화다. 전체적인 내용설정은 한번쯤은 상상해봤을.. 종종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는 미래의 로봇시대. 그래도 로봇이란 소재는 흥미롭고 관심을 끈다. 로봇없이는 살수없는 시대에 로봇을 불신하는 유일한 사람 윌스미스! 로봇과 사람의 대결구도라 할수있다. 반전의 반전과 멋진액션신들도 볼만하지만 '맨인블랙'의 코믹한 윌스미스만 알고있던 나로서는 윌스미스의 다른 모습에 눈을 땔수가 없었다. 완전히 다른 모습에도 어색하지 않은 연기.. 마냥 마른줄 알았는데 멋진 근육질의 몸매에 아무옷을 걸쳐도 멋있는.. 진짜 한눈에 반해버렸다!! ^^ 거기다 완벽한 연기와 역시나 빠지지 않는 코믹함까지! 제대로 윌스미스의 매력에 당했다! 내용도 주인공도 연기도 모두 good!! 강추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