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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아카데미 7개 부문에 올랐지만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한 불운의 영화로 기억되는 이 작품은 2004년 10월에 영화 개봉 10주년만에 드디어 SE(Special Edition) 버전으로 재출시 되었다.
쇼생크 탈출은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했지만, 많은 아카데미상 수여 작품들처럼 ‘아카데미가 인정한 그 영화!’와 같은 그런 문구는 결코 쓸 수 없었던 작품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실제로 상을 받았든 못 받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일단 이 영화를 보고나면 왜 이영화가 상을 하나도 못 받았을까? 하고 되묻지는 않을까...?^^
이 영화를 처음 봤던 10년 전에는 내가 어렸던 것도 있지만 그냥 평범한 탈옥 영화구나...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봤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하나, TV에서 봤던 ‘알카트라즈 탈출’의 여파가 너무도 커서 그랬는지 ‘주인공이 얼마나 멋지게 탈출을 해낼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차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는 단순한 탈출 영화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시간이 흘러 케이블 TV를 통해 방영되는 것을 중간 부분부터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난 뒤에 어렸을 적에는 괜히 탈출 후에 질질 끌면서 무의미해보였던 앤디와 레드의 해변가의 해후까지의 과정이 주던 잔잔한 감동이 나의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영화는 원작이 따로 존재하며 ‘스티븐 킹’이라는 미국의 작가가 쓴 ‘리타 헤이우드와 쇼생크 구원(Rita Heywood and Shawshank Redemption. *원제에서 redemption은 구원이라는 의미이다.)’인 것도 알게 되었고, 이것은 후에 감독인 프랭크 다라본트의 작품인 ‘그린 마일’에 대한 나의 적극적인 관심표출에도 영향을 미쳤다. 어쨌든 영화는 별다른 부가적인 설명이 없이도 이해하고 즐기는데 부족함이 없지만,(역시 프랭크 감독님의 연출력! Good!!) 서플의 코멘터리와 부가 영상, 그리고 스티븐 킹의 코멘터리도 좋은 볼거리이다.
다시금 영화를 보며 내가 배운 것은 ‘희망’의 중요성이었다. 쇼생크에서 유일하게 죄가 없던 사람으로서, 어쩌면 가장 교도소 생활에서 먼저 희망이라는 것을 저버리기 좋은 상태였다. 이것은 극 초반에서 못 견디겠다고 울부짖다가 구타를 당해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는 죄수의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교도소에 적응하며 현실을 잊어가고 타협하는 듯 한 삶을 살다보니 나중에는 출소가 두려워지고 결국에는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것은 비단 영화 속의 어느 인물에게만 제한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하지만, 앤디는 끝까지 희망을 믿는다. 그리고 그 희망의 힘을 자신의 친구인 레드에게도 전해준다. 영화의 원제인 ‘쇼섕크 구원’이라는 제목과 연관을 지어 생각해보면 이것은 영화를 탈출하여 자유를 맛보게 된 앤디에 해당되는 구원이 아니라, 교도소 속에서 우연찮게 만난 앤디를 통해서 삶의 변화를 체험하고, (어찌보면) 순조롭게 가석방이 된 ‘레드’에 해당되는 것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앤디의 그런 모습들이 힘든 날을 보내는 가운데 다시금 희망에 대해서 돌이켜보게 해주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계속 보고 싶어지고, 인정받는 영화들을 보게 되고 소장하게 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쇼생크 탈출은 좋은 영화를 소장하는 사람들의 리스트에 결코 없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좋은 영화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원래 25000원이었던 타이틀을 워너 사의 저가 정책에 그 반값 정도로 만나볼 수 있으니 아직 없는 분들이라면 구입해도 좋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Andy : Remember Red, hope is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I will be hoping that this letter finds you and finds you well. Your friend, Andy. (기억해요, 레드, 희망은 좋은 것이예요. 아마도 최고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이 편지를 꼭 찾길 바랄게요. 친구 앤디.) 이 대사는 영화 중간, 수감 중에 ‘희망’을 강조하던 앤디에게 ‘희망은 쓸모없으며 의미가 없다.’고 하던 레드의 모습과 함께 연결시키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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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이상 본 영화이다.
보면 볼수록
그 대사에 인생이 들어있다.
억울한 인생으로 자기인생을 파괴하느것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단어로
그는 매일 매일 노력하였다.
어린시절에 보았고 성인이 되어서 보는 이 영화는 최고의 영화임에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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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승리
"Fear Can Hold You Prisoner, Hope Can Set You Free"촉망받는 은행 간부 앤디 듀프레인(Andy Dufresne: 팀 로빈슨 분)은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다. 주변의 증언과 살해 현장의 그럴듯한 증거들로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질범들만 수용한다는 지옥같은 교도소 쇼생크로 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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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레포트 쓸 자료를 찾다가 '씨네필 다이어리'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그 책은 영화랑 철학을 결합시켜서 영화를 해석하는 책이었다. 그냥 처음 볼 때는 정말 별 생각 없이 보았다.'금요일날 수업 일찍 끝나니까 일찍 도서관가서 영화나 봐야지'이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말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준 영화였다. 처음에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들었었다. 20년동안 어떤 남자가 굴을 파서 감옥에서 탈옥하는 영화. 나는 그래서 뭔가 되게 우락부락하게 생긴 말없는 주인공이 탈옥하고 이런 내용 위주인 줄 알았다. 플롯은 그렇지만 스토리는 전혀 달랐다.
주인공은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종신형에 살게 된 남자이다. 아내와 그의 정부를 죽였다는 누명을 썼다. 재판장은 이거는 두명을 종신형에 처한 것이기 때문에 너도 종신형이야! 이런다. 그 후 감옥에서 살다가 간부의 세금 문제를 도와주게 되고, 결국은 소장의 검은 돈을 감춰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소장은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이다(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고 친구 레드를 만나게 되고, 여차저차하다가 탈출해서 잘 산다는 내용이다.ㅎㅎ
정말 흥미로웠던 장면은 사람들이 감옥을 싫어하다가 결국은 그 철창에 의지해서 산다는 내용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럴만 하다. 오히려 브룩스 영감에게는 감옥에서 나가게 하는 것이 더욱 더 큰 형벌이었다. 거의 죽을 때가 다 된 노인을 사회로 내보내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앤디가 '바쁘게 살거나 혹은 바쁘게 죽거나'라고 말한 것도 마음에 박혔다. 요즘 안그래도 이상하게 우울증 비슷한 증세가 오고 있었는데 그 대사를 통해 치유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계속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게 계속 이뤄지지 않아도 계속 꿈을꾸다보면 언젠가는 이뤄지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는데 이 영화는 권력의 관계에 대한 니체의 생각과 연결이 된다고 한다. '모난 돌이 징맞는다'라고 한다. 그런데 모난 돌이라는 것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이고, 징은 누가 때리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리지어 다니면서 자신들이 대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며, 가장 현명한 사람은'혼자서도 모든 행동들을 자신감있게 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글귀를 보고 정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요즘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혼자서는 못할 것 같다. 집에도 혼자 못가겠고, 심지어 물마시러도 친구를 데려 가야 안심이 된다. 왜 그런지는 몰랐었는데 그게 나에 대한 자존감 부족이었나보다.
그리고 니체는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는 없다고 한다. 도덕은 단지 나쁜 행동에 대한 보복심이다. 그런데 정말 맞는 것 같다. 도덕이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하지만 누구나 어느정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도덕을 지키기 위한 권력이 도덕을 어긴 사람보다 더 폭력적이라는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주인공들이 누명을 쓰게 된다. 이런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권력의 폭력성을 관중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덕을 어긴 사람의 폭력성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예전에 어떤 영화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사형에 관한 영화를 논술 학원에서 본 적이 있다. 정말 혼란스러웠다. 사형수가 약물을 투여받고 죽는 장면과 그 사형수가 어렸을때 저질렀던 범죄(산에 여자애들 두명을 끌고가서 강간하고 죽인 장면)가 오버랩되었다. 솔직히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굳이 잘못한 쪽을 택하라면 사형수가 더 잘못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를 봐도 그렇다. 강동원은 누명을 썼을 뿐이다. 그리고 또 작은 스토리로 피해자의 가족들이 피의자를 만나면서 '우리는 당신을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피해자들의 가족음 엄청 괴로워했다. 안절부절못하고 거의 흐느끼면서 이야기 했다. 그런데 피의자는 '저는 용서 받았습니다. 이미 하느님을 믿고있기 때문에 저는 구원받을 것입니다. 저는 천국에 갈 것 입니다.'라면서 매우 태연해했다. 정말 엄청난 충격이었다.
솔직히 영화는 너무 한 면만을 그리고 있다. 나는 그런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 범죄자 한 명이 있고, 그가 저지른 범죄를 모두 다 상세하게 보여주고, 그로인해 망가진 피해자 가족들의 삶도 보여주고, 그 후에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권력의 폭력성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공정한 것이 아닐까? |
| 영화의 제목을 들은 지는 참 오래된 거 같은데. 정작 본 지는 얼마 전이었다. 지루한 영화라고 들었는데 보면서는 시간이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에 푹 빠져서 시간이 금방 흘러 간 것 같았다. 가슴에 와닿고 나도 모르게 씨익 웃으면서 영화를 보니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이야기 한 편을 들은 것 같다. 나도 감옥에 가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20년~30년을 감옥에서 살고 나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일단은 감옥에 관한 영화라는 점이 역시 생소하다. 아~그리고 광복절 특사의 한 장면이 쇼생크 탈출의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면 정말 남는 영화인 것만 같다.. 그래도 범죄는 하지 맙시다ㅎㅎ |
| 스티븐 킹의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들은 대부분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스티븐 킹의 원작들은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와 존재의 의미같은 심오한 주제들을 호러라는 대중적인 장르에 제대로 녹여낸 작품들인데 반해서, 영화들은 단순히 시각, 청각적인 공포만 강조하는 수준의 싸구려호러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미저리'같은 제대로 된 작품이 개봉되기도 하는데 이 '쇼생크 탈출'도 그런 작품 중의 한 편이다. 스티븐 킹의 탄탄한 원작을 무명감독의 깔끔하고 섬세한 연출과 두 명배우들의 진지한 연기로 표현한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광고카피에는 '빠삐용' 이후 최고의 감옥영화라고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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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1994 원작 : 스티븐 킹 - 소설 ‘쇼생크 탈출 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 1982’ 감독 : 프랭크 다라본트 출연 :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제임스 휘트모어 등 등급 : 15세 이용가 날짜 : 200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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