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한테 한 권 선물하고 읽어보니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좋다고 한다. 뭐가 좋은데? 하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읽긴 읽었는데, 잔상만 남고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서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고 한다. 황당하지만, 나도 그렇다. 기억과 이해의 틈은 아주 가늘면서도 길게 이어진 느낌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많은 생각이 담긴 책. 수 많은 책의 융합과 변이가 만들어낸 사고작용의 흔적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성과 음율, 목소리가 공명의 떨림으로 문장이 되었다. 사실 난 그 소리에 집중이 잘 안되었다. 내가 읽은 책이 아닌 것을 남의 시선으로 잘 포장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낯선 집에서 주인 행세하는 것 마냥 불편하다. 바다를 보지 않고, 바다를 느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뛰어난 상상력과 자기 기만이 만들어낸 조화이다. 감성과 이해의 틀은 결코 주입되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글에 공감은 할 수 있어도 내 몸은 불감증으로 얼어버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적지 않게 교집합을 이루고 있음에도… 이 책의 의도는 단순한 책 소개도 아니오, 독서 편력에 대한 저자의 독백도 아닐 것이다. 내가 느낀 바로는 전혀 에로틱하지 않으면서도 적나라한 책과의 애정 행각에 대한 진솔한 고백성사 같다. 바람둥이답게 이 책 저 책과의 불륜으로 낳은 자식들의 모습은 하나하나 제 각각이다. 생태를 닮은 아이, 인권을 닮은 소녀, 평화를 닮은 녀석, 철학, 행복, 동심,낭만의 네 자매 등. 족보를 따질 수 없는 그의 모종행위는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정체를 좀처럼 드러내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의 글쓰기는 섬세하고 풍부한 표현력으로 자기를 은근히 노출한다. 노출증까지 있는 듯 하다. 따지자면 그 표현력의 정체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하늘만 보고 있어도, 삼라만상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은 눈매, 책 앞 표지 안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은 끊임없는 관심과 대화의 연속이다. 무관심과 침묵의 언어는 파경의 지름길. 그러나 집착은 권태로 가는 막차. 권태와 파경의 경계에 있는 그는, 그래서 그의 사랑은 잡을 수 없고, 잡으려 하지 않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역마살 사랑이어라. 그리하여 목마름은 끝이 없다. 노래로도 있다.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남의 과거를 들었으면, 자신의 과거도 들추는 것이 진실게임의 룰이렸다. 나는 책에 어떤 존재였는가, 나는 책에 사랑을 얼마나 주었는가를 적다 보면 이만큼 성장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책은 서서히 스며들어 어느새 나의 영혼을 잠식해 버렸다. 기억은 나지 않아도 잔상은 남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잔상이 나의 피 속에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고백하듯 책에 다가서는 사람의 모습에서 난 아름다움을 느낀다. 특히 지하철에서 긴 생머리를 넘기며 책장을 넘기는 숙녀를 볼 때는 죽음이다! ( 이 부분은 리뷰에서 제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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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거나 인정할 수 있는 지식을 일컬어 상식이라고 한다. 그러한 상식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반복되는 행동이나 내용 등을 통해서 습득하기 때문에, ‘상식적인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한 사회의 반복된 문화에서 정립된 ‘상식’이 때로는 타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된다. ‘어느 국어선생의 쓸모 없는 책읽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일종의 독서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저자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놓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날개에 자신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매달 30여 권의 책을 사서 잠을 줄여가며 미친 듯이 읽’고, 이후에는 ‘다시 미련없이 책을 솎아내어 버린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지금은 정확히 그 목록이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 전의 모임에서 저자가 나눠주는 책을 몇 권쯤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저자는 ‘책읽기가 지금의 현실에서 쓸모 없음을 인정’하지만, 또한 책읽기의 쾌락이 주는 의미를 알고 있기에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지금은 대부분 사라져 버린 ‘청계천 헌 책방을 드나들기 시작했’음을 밝히면서, 자신의 독서 편력과 책읽기에 탐닉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자신의 독서 성향을 ‘닥치는 대로 읽는 독서’라고 규정하면서, 그것을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려는 내 일탈의 욕구’라고 주장하는 저자가 독서의 효용을 강조하는 세상의 ‘상식’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이해된다. 닥치는 대로 읽는 책 읽기 즉 ‘남독(濫讀)이야말로 가장 큰 독서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그동안 읽었던 책들의 목록을 ‘나를 흔든 책들’과 ‘상식의 그늘’ 그리고 ‘불편의 재발견’이라는 항목으로 정리하고 있다. 각각의 책들에 대한 간단한 감상과 정밀한 리뷰, 그리고 깊이 있는 분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고 있다.
독서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에, 독자의 입장에서 한 걸음 떨어져 저자가 풀어놓은 책에 대한 느낌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책의 말미에는 부록으로 ‘수록된 도서 목록’을 제시하고 있어, 그것을 통해 구체적인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분명 나와는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지만, 책에 대한 저자의 열정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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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발간된 책이고, 나는 이 책을 언제 사 놓았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 놓고 전혀 안 본 것은 아니었고, 읽다가 멈추었다가를 거듭 하면서 영 치우지는 못하고 계속 가까운 곳에 두었던 책이다. 확 끌어당기는 힘은 없었어도 지긋이 물고 있는 책이었다고 하면 될까.
작가가 국어 선생님이어서 더 오래 매달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국어 선생님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싶은 동경과 존경과 질투의 마음으로. 도저히 이 작가의 책읽기와 글쓰기 수준에는 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비슷한 경지에 이를 때를 노려 연습을 한 후에 이 책을 읽으리라 싶은 마음으로 계속 미뤄 왔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나는 포기한다. 여기까지 인정하고 이 책을 거두면서 이 작가의 신간을 사 보는 것이 독자로서의 도리이겠다고 생각하려 한다.
세상 참 빨리도 변하는가 싶었더니 그렇지도 않다. 또 느낀다. 물질적으로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를 것이리라 싶은데, 정신적으로는 도대체 어찌 이리도 그대로인지. 10년 전 작가의 입으로 던진 문제들이 오늘에도 여전히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어쩌면 정신 문화의 변화 속도 단위는 한 사람의 일생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일까. 내가 살아서는 내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을 징조로도 느끼지 못할 만큼 더딘 것일까. 아니, 인류 역사 2000년조차 지금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면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10년 전에 읽었어도 지금과 같은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10년 쯤 후에 다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이다. 작가가 소개하는 책들도 독서 효용 가치가 별로 변하지 않을 책으로 보이고, 세상 또한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때 책을 다시 읽고, 내가 지금 쓴 이 리뷰도 다시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지금이라도 다시 읽어서 다행이었던 책이라고 기록한다. 읽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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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일이라고 하는 어느 국어교사가 그가 읽어온 '책'을 중심으로 나름대로의 생각을 풀어놓은 여러 글들을 묶어낸 책이다.
쾌락의 일종으로 책을 읽어왔다는 저자의 필력이 놀랍다.
책을 읽는 이유 중에 하나가 어떤 것을 알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진대 이 책에 담긴 그의 글들이 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그간 읽어온 많은 책들과 줄곧 생각해온 여러 문제에 대해 감상을 뛰어넘은 나름대로의 결론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나도 그처럼 내 나름대로의 사고를 촘촘하고 꼼꼼하게 만들어나가고 싶다. 이 책 저 책 읽어가며 리뷰써가는 지금이 그런 꿈으로의 도정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가 불편해하는 '상식'이라는 것들 중 이제는 하도 비판을 받아서 이미 상식이 아니게 된 것이 많다. 또한 그러한 오래된 상식의 대척점에 세워놓은 그의 생각들 주에서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얘기를 하고 이견을 표명해 온 결과로 -일부에 국한되어서 일지라도-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잡은 것들이 많다.
상식이라 불리우는 것들도 패러다임 붕괴과정처럼 그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던 이들이 계속 균열을 일으키는 와중에 새로운 생각으로 갈아치워지나 보다.
사실 '상식'이라는 말이 무서운 말인데, 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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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생각했던 어떤문제에 대한 생각을 책으로 만날 수가 있다. 그는 놀라운 경험이다 나두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또 아 ~ 더 깊은 점이 있었군 어~ 이건 나랑 틀린 생각인데 이런 식으로 하지만 더욱 기쁠땐 같은 생각이 있을때가 아니가 싶다. 이 책이 나에게 그런 기쁨을 주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더욱 깊은 생각을 하게 도와주었다. 좋은 책이구나 아니 나에게 맞는 책이구나 맛있는 책이구나 하면서 말이다. 독서는 이렇게 기쁘다.여기에 나온 책들도 꼭한번 읽어 보리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독서의 기쁨을 다시한번 일깨워 준책인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p. 93~94 어떤 여행자가 여행 중 배에 앉아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꼬박꼬박 졸고 있는 한 어부를 보았다. 그 여행자는 어부에게 왜 고기를 잡지 않고 졸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부는 오늘,내일, 모레, 3일 동안 잡을 분량을 아침에 벌써 다 잡았다며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여행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물고기가 많다면 왜 더 잡으려고 하지 않을까? 여행자는 그 어부를 위해 사업 시나리오를 구생해 주었다. 우선, 모터 달리 배를 구입한 후 물고기를 많이 잡아 그것을 팔고, 그것으로 다시 물고기를 더 많이 실을 수 있는 모터 발린 범선을 하나, 아니 두개 정도 사서 물고기를 더욱 많이 잡아. 물고기 가공공장을 차려 국제무역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여행자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열광했다. 그때 어부가 물었다. 그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나면 무엇을 하느냐고, 그러자 여행자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한가로이 햇살벝을 쬐면서 바다나 바라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어부는 자기는 벌써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