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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지하디스트인 서아프리카 어느 나라 전직 대통령의 통역사로 투입되며, 피고인의 말과 법정의 언어 사이를 가만히 오간다. 누군가는 증오를 말하고, 누군가는 정의를 말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자기 언어가 아닌 채 옮겨야 한다. 통역사는 언제나 ‘존재하지 않는 자’로 존재하는 듯 하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해 '제 일은 언어 사이의 간극을 가능한 한 작게 만드는 것입니다.'(p141)라고 표현한다. 원제는 <intimacy>로 '친밀함'이란 뜻이다. 소설을 읽으며 번역 제목인 '친밀한 사이' 는 물론 원제의 단어의 뜻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이 소설은 친밀함을 형성하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파헤쳐 써내려간다.'(온라인 소개 중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통역하는 피고인과도 미묘한 친밀감을 느끼며, 때로는 도덕적 판단마저 흐려지는 등 불편한 감정을 경험한다. 주인공은 연인 아드리안과 함께 있지만, 그의 삶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다. 친구와 식사를 함께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피고인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친밀함'을 느끼는 아이러니라니. 🔖 이 업무의 비인격화된 성질 - 나는 그저 도구일 뿐이고, 거기 있는 몇 시간 동안 누가 내게 직접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내게 한 번이라도 수고스럽게 말을 건넨 유일한 사람은 전직 대통령이었다 - 이 그 만남의 기이한 친밀함과 나란히 존재했다. - p169 부스에서 보내는 그 긴긴 시간동안 때때로 나는 아래층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 중에서, 아니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사람 중에서, 전직 대통령이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불쾌한 감각을 느꼈다. - p205 작가는 통역이라는 직업을 통해 언어의 불완전성과 오해의 가능성을 집요하게 탐구하고, 법정에서의 극도의 정확성과 언어 사이의 간극, 그리고 통역사가 중립적 도구가 아닌, 감정과 해석이 개입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말을 옮긴다는 건, 감정을 옮기는 일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리고 감정은, 옮기다 보면 자기 몸 안으로 스며들고 만다. 문체는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으나, 그 속에 강한 불안과 긴장, 그리고 내면의 혼란이 깃들어 있다. 소설 전반에 헤이그라는 도시의 겉보기 평온함과 그 이면의 불안, 위협,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이 깔려있고, 그 가운데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주인공의 내면적 불안과 맞물려 있다, 감정이 절제된, 무표정의 목소리 톤 같은 서술은 오히려 내게 더 큰 몰입과 공감을 자아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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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누군가와 친밀한 사이가 될 가능성에 내가 평소보다 좀더 여지를 남겨두었던 순간, 그녀는 내 인생에 들어왔다. 그녀가 수다스럽게 곁을 지키고 있으면 나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도감을 느꼈고, 이렇게 다른 둘 사이에서 일종의 평형을 이루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_p11
‘나’는 탈출하듯 뉴욕을 떠나, 헤이그의 재판소에 일 년짜리 계약직으로 통역사 일을 하기 위해 이 곳에 왔다. 아버지의 오랜 투병후 죽음으로 희망을 품는 것에 경계를 가지게 된 ‘나’는 지인의 소개로 지나치게 솔직한 야나를 만났고 자주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나’는 남자친구를 만나기도 하지만 아직 이혼이 마무리가 안된 남자이다. 어느 날, 방문하게 된 남자의 집에서 미처 지워지지 않은 결혼생활의 흔적, 아내와 아이들... 한때 친밀했었던 관계에 대한 의미를 ‘나’에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국제 재판소이니 만큼 다뤄지는 사안들도 정치적이고 인권적인 이슈 등 민감한 것들이여서 관련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상황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 부분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 국제 재판소내의 통역사와 피고인 관계였다.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지하디스트인 서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전직 대통령의 통역사로 배정받았는데 ‘나’에게만 친근하게 구는 그에 대하여 일을 잘했다는 뿌듯함이 느껴지다가 이 인물의 범죄를 떠올리며 불편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깨달은 것은 자신이 일을 잘했다기보다는 검열 없이 그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누군가를 원했고 이런 역할을 ‘내’가 했구나 하는 거였다. 방을 즉시 떠나고 싶었으나 통역사이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챕터의 미묘한 친밀함은 마치 위로와 생존력이 느껴지는 듯해서 살짝 소름끼쳤다. 이런 분위기를 행동 하나하나와 대화, 속내 등으로 어색함 없이 표현해주고 있었다.
아냐 집 방문 후에 등 뒤로 들리는 찰칵 소리,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 집, 국제 재판소의 통역사에게 요구되는바, 남자의 집의 흔적들과 상상이 만드는 거리감, 큰 도시에서 혼자 사는 여자로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감각들과 불안감, 사건사고들, 등을 읽으면서 차가운 공기가 책 속에서 느껴졌다. 화자의 외로움?... 친밀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보이고 주인공은 예리하게 캐치한다. 그런 중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하루하루 나아가는 주인공을 보며, 낯설지 않은 현대인이 보였다. ‘집’처럼 느껴지는 곳을 ‘나’는 결국 알게 될까? 물음표를 느낌표로 찾아가는 주인공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
#친밀한사이 에 대한 질문은 책속의 그녀처럼 오늘의 나에게도 계속된다.
_나는 생각했다 - 집에 가고 싶다. 집처럼 느껴지는 곳에 있고 싶다. 그게 어디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_p253
_제 일은 언어 사이의 간극을 가능한 한 작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하고자 희망했던 힐책이 아니었다. 발언으로서 그것은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정도로 추상적이었다.... 내 일은 언어 사이에 탈출로가 없도록 단속하는 거였다._p141
_누군가가 충분한 시간이 경과했음을 내비쳤던 게 틀림없었다. 그녀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증인을 내려다보았는데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를 대신해 그녀의 증언을 말한다는 위화감 대문에. 내 것이 아니라 그녀 것인 이 저라는 단어를, 포용력이 충분히 크지 못한 이 단어를 사용한다는 잘못된 느낌 때문에._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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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기타무라 장편소설/ 문학동네(펴냄) 해문클럽 세번째로 만난 소설은 일본계 미국인 여성 작가의 작품이다. 미국 국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로 ○○계, ○○계로 분류된다. ○○계라고 명명되는 순간 하나의 이방인이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알수록 더 모르겠다. 최근에 한국계 미국인 저자가 쓴 요리 에세이를 읽으며 조금 친밀함을 느끼게 되었는데, 미국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정말 다양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떤 분류는 도움이 되기도 하고, 어떤 분류는 배척이 되기도 한다. 그 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을 가졌냐에 따라 다르다. 내가 말하는 '이방인'의 의미는 '배척 당하는 자'의 의미는 아니다. ○○계 미국인이라는 작가 소개 혹은 단어를 만날 때 나의 내부에서 약간의 경련이 일어나는 느낌은 왜일까? 이 낯선 거부감이라니 ㅎㅎㅎ 뭔가 원류에서 멀어지는 느낌, 우리는 결혼 이민을 온 외국인 여성이 한국 국적으로 살아갈 때 베트남계 한국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미국은 워낙 이민이 많은 나라라서 ㅠㅠ 전범재판에서 동시통역을 맡게 된 주인공, 언어란 일종의 해석이다. 번역이나 통역의 일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 나는 원문에 충실한 해석, 원문 그대로의 맛을 살린 해석을 좋아하며 역자의 의견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배제하는 편이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다. 문학적 감성이나 문장의 맛을 살린 번역을 좋아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 겉으로 온화하게 흐르는 이 소설은 ( 여기서, 흐른다는 표현은 서술 방식이 조용하고 담담했다. ) 깊은 내적 충돌을 말해주었다. 주인공의 감정 변화가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되는 소설이다. 책의 제목에서 '친밀한'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친밀함이라!! 한쪽과의 친밀함은 다른 쪽과의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중간자의 입장에서 저자가 전하는 생생한 언어의 감각, 물론 번역을 통해 만난 소설이지만 그 생생함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요즘 소설을 만나면 종종 따옴표가 없는데, 이 소설도 그렇다^^ 번역하는 일, 직업으로서 어떨까 궁금하다면 이 소설!! 소설을 덮으며 나는 통역사 그녀 이름이 궁금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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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는 나고 자란 뉴욕을 벗어나 헤이그로 이사 왔다. 그녀는 5개 국어를 하고 여러 나라에 이동하며 살았기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국제 재판소에서 1년간 통역사로 일자리를 얻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헤이그에는 그녀의 남자 친구 아드리안과 친구 야나가 있지만 그들 간의 관계는 모호하다. 아드리안은 별거 중인 아내가 있고 이혼하기 위해 아내가 있는 곳으로 떠나지만, 소식이 없다. 친구 야나와는 친밀하게 지내지만, 아드리안과 만나는 자리에서 묘한 플러팅을 던지는 것을 보고 거리가 생긴다. 그러던 중 중범죄를 저지른 서아프리카의 대통령의 통역을 맡게 된다. 범죄자의 통역사가 되는 것은 그의 귀가 되고 입이 되는 것으로, 능력을 인정받을수록 불편해진다. 나의 관계들은 어떻게 흘러갈까? 이방인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정착하고 싶은 마음과 이방인의 기질 때문에 여러 관계에서 거리감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나'가 헤이그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그렇게 느껴졌다. 뉴욕으로 돌아갈 생각도, 어머니가 계신 싱가포르로 갈 생각도 없고, 렌트하고 있는 집도 가구가 채워져 있는 아파트, 인간관계도 마음을 누이지 못한다. 섬세한 심리 묘사로 주인공이 느끼는 미묘한 친밀함과 거기서 수반되는 불편함이 잘 느껴진다. 주인공의 도덕성과 통역하면서 생기는 중범죄자와의 친밀함의 괴리감, 남자 친구와 그의 아내가 살았던 집에 머무르면서 느껴지는 감정 등. 특수한 상황에 보편적인 감정이 뒤섞여 나에 몰입하게 된다. 사건은 잘 흘러가는 듯 하지만 긴장감이 잔잔하게 깔려 있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 감상의 이유를 알게 된다. '나'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선이 "친밀한 사이"라는 제목에 힘을 더해주는 듯하다. 통쾌한 전개라거나 극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지만 느릿하고 섬세한 시선이 오히려 일상적으로 다가왔다. + 해외에 살았다면 더 공감되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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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해문클럽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엄마마저 싱가포르로 이주하자 ‘나‘는 우리 가족 누구의 출신지도 아닌 뉴욕을 떠나 네델란드 헤이그로 오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위치한 국제 재판소의 일 년 계약직 통역사로 일하게 된다. 현재 ‘나’는 런던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미술관 큐레이터인 ’야나’와 친밀하게 지내고 있고 아주 멋진 남자인 ’아드리안‘과 사귀고 있다. 문제라면 아드리안이 결혼해 아이들이 있고 아직 결혼 생활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나’는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서아프리카의 어느 나라 대통령의 통역을 맡게 되면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한편 남자 친구인 ‘아드리안’은 결혼 생활을 결판 내기 위해 아내가 있는 포루투칼로 떠나며 ‘나’에게 자신의 아파트에서 지내라는 제안을 한다. 친하다는 말보다는 왠지 격식이 느껴지는 친밀하다는 지내는 사이가 친하고 밀접한 것을 뜻하는 단어다. 소설 속 ‘나’는 전혀 연고가 없는 낯선 나라에 살면서 사람들을 여러 방법을 통해 사귀고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 친밀하게 다가오는 이들에게서 불편을 느끼기도 한다. 헤이그에 정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이유 중 하나였던 연인은 친밀한 사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도 하고 마음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 ‘야나‘와는 ‘아드리안‘이 끼면서 불편하고도 꺼림칙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친밀하게 지내고 싶었던 이가 동생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동생의 아내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관계가 끝나기도 한다. 어느 순간 친밀함이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부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친밀하다고 하지만 멀리 떨어져 지내기도 하고 충분히 가까운 밀접한 거리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친밀하다고 할 수 없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줬던 친구는 어느 순간 의논 상대에서 제외되기도 하고 사랑하던 연인의 친밀함마저도 별 것 아닌 것이 되기도 한다. 친밀이 소원으로 변하는 순간 이유가 분명한 경우도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작지만 미묘한 파열이 생겨 멀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소설 속 ’나’의 일상 역시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일들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나타나면서 벌어지기도 한다. 소설은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고 겉으로 보기엔 평온함의 연속같지만 주인공인 ‘나’는 자신의 일은 물론 사랑과도 멀어지게 된다. 살다보면 영원한 건 없는 것처럼 관계 또한 영원한 것이 없음을 알기에 ’나‘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아 공감하며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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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관계들*은 위태롭고 위험하다. * 원제 Intimacies 이제 4월인데... 해양 온도가 후텁지근하게 느껴졌다. 다가올 여름이 너무나 두렵다. 반갑지 않은 열기를 잠시 잊게 해줄 그런 서늘한 작품일거란 기대. “나는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다. 집처럼 느껴지는 곳에 있고 싶다. 그게 어디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집이란 짐이나 보관하고 잠이나 좀 자는 장소로 여기며 살던 시절, 누가 질문했는지 기억은 정확치 않지만, 대답은 지금도 같다. “제일 좋아하는 여행은 한 장소에 도착한 후 동네 사람들과 일상적인 산책을 하며 가능한 오래 머물기.” 그러니까 나는 익숙한 모든 것에서 멀어지는 낯선 방식을 좋아라 선택하지만, 관광객이나 방문객이라는 낯선 존재에서 조금이라도 더 친숙하고 일상적인 존재로 얼른 친숙해지고 싶은, 짧은 주기로 진동하는 이율배반적 존재였다.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버거운 책임에 더해, 복잡하고 모순적인 제 본성에 휘둘려야하는 쉽지 않은 인간의 삶, 한 존재 안에서도 관계 사이에서도 함정처럼 도사린 수많은 균열들, 그 틈은 때론 노력을 무용하게 만들고, 때론 훌쩍 뛰어넘었단 착각으로 모든 것을 위태롭게도 만든다. 끝까지 이름을 알 수 없어서 읽는 내내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든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언어의 간극을 메우는 통역사인 것은 기막히게 적확한 상징 같다. 의사소통행위의 핵심이 언어라고 여기는 내게는 더욱 관심이 가는 설정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잊어야만 하고 실제로 잊는다. 알지만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더구나 언어는 의식 자체이며 의식을 만들고 변화시키고 고정시키기는 강력한 인지 도구이다. 세상을 파악하고 반응하는 방식이 감정이라고 생각하므로, 언어의 다름, 모호함, 간극은. 살며 느끼는 종합적인 감정적 어려움에 대한 실마리처럼 들린다. ‘물증’이 있는 사건조차, 진술과 행위로서 모두 설명될 수 없는, 복잡성을 가지지 마련인데, 각자의 사정과 고통은 얼마나 오래 반복되는 부족과 결여의 복잡성을 지닐까. 이런 면들로 인해, 최선의 최선조차 때론 서글프고 적막하다. 그래서 있지 않은, 장담할 수 없는, 보장 받지 못하는, 안전과 안정을 조바심을 내며 바라는 것일 테지. 친밀한 모든 것이 애달프다. 시간이 지나 낯선 곳에서 문득 잠이 깬 어느 새벽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모든 확실성은 예고 없이 무너질 수 있다. 아무도 또 아무것도 이 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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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친밀한 사이』의 주인공은 헤이그 국제 재판소 통역사로 1년 계약을 하게 되며 뉴욕에서 헤이그로 이사합니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도시를 오가며 자란 주인공은 국제 재판소에서 일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정처 없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며, ‘집’이라고 부를 만한 대상을 갈망합니다. 이러한 갈망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이 헤이그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내밀하게 묘사합니다. 헤이그에서 만난 남자친구 아드리안은 별거 중인 아내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오겠다고 떠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주인공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서아프리카 전직 대통령의 통역을 맡게 되고,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불편하면서도 불가피한 친밀함이 형성됩니다. 또한 친구의 소개로 안톤과 엘리너 남매와 가까워지지만, 안톤의 내밀한 비밀을 목격하며 그와의 친밀함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여러 관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주인공은 어느 쪽의 친밀함으로 기울게 될까요? 이 책에서 인물들의 대화는 따옴표 없이 서술됩니다. 이건 마치 지금 인물이 하고 있는 말이 속마음인지, 서로 주고 받고 있는 대화인지 모호하게 합니다. 이러한 서술은 여러 관계들 속에서 친밀하다가도 멀어지기도 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복잡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관계들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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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기타무라_ 친밀한 사이 헤이그 국제 재판소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그 주인공을 둘러싼 다양한 사적 또는 공적 관계에 대해 느끼는 세밀한 심리 묘사로 전개가 된다. 주인공의 출신은 나오지 않으나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단서로 인하여 아시아계로 추정되며, 어릴 때 싱가포르에 잠깐 살았고 이후 쭉 뉴욕에서 살았다고 나온다. 네덜란드에 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며, 이를 통해 주인공이 어디에서나 이방인의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외부에서 보는 관점일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본인이다. 어느 도시에서도 주인공은 집이라고 할만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녀가 일하는 국제 재판소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여러 국가에서 살아 그만큼 여러 언어를 하는 통역가들이기에 천성상 범세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녀 같지는 않다. 어떤 이들은 이미 헤이그를 집으로 여기거나 하는 반면, 주인공은 헤이그에 계속 살지 고민이 되나, 그렇다고 뉴욕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내면으로 인하여 그녀를 둘러싼 관계 또한 어느 것 하나 분명한게 없다. 관계는 분명하다. 다만 어떤 관계를 택해야 할지가 그녀에겐 분명하지 않다. 그녀에겐 헤이그에 와서 만난 친구 야나, 그리고 남자친구 아드리안과의 관계가 있다. 또한,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러 재판 받는 전직 대통령과 그에게 반하는 증인을 동시에 통역해야 한다. 야나를 통해 만나게 된 엘리너와 안톤 남매와의 불편한 관계도 있다. 이 책이 친밀한 사이, 라는 제목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유는 그녀가 느끼는 친밀함의 미묘함과 불편함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야나와 아드리안에게 느끼는 친밀감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학살과 폭력을 자행한 전직 대통령을 통역하게 되면서 그의 생각에 익숙해지는 친밀감은 사실 매우 불편한 감정이다. 자신은 그에게 불만을 가지면서도, 통역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의사에 익숙해진 사이에, 동시에 그 때문에 가족을 잃은 증인을 통역해야 한다. 엘리너와 안톤도 마찬가지이다. 안톤의 불륜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를 묵인하는 엘리너를 보며, 막상 아무런 안면도 없는 안톤의 아내에게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이 관계에서 그녀가 친밀한 사이는 상대적으로 엘리너와 안톤일 것이다. 아드리안과의 관계도 복잡하다. 아드리안은 십오년 간의 결혼생활을 함께한 아내가 다른 남자를 선택하여 포르투갈로 떠나버렸고, 아직 결혼 생활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주인공 스스로 남자로 인해 본인 인생에 대한 결정이 흔들리는 것에 스스로 혐오감을 느끼지만,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이다. 헤이그에도 집이라는 관념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남자친구의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통역사라는 직업에 본인의 기질이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과연 헤이그에 남게 될까? 아니면 다른 도시를 찾아 떠날까? 친밀함이 말 그대로의 친밀함이 아니고, 위와 같이 부적절한 친밀함, 또는 그 친밀함에서 오는 도덕적인 죄책감 등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나는 통역이란걸 해본 적도 없고, 심지어 외국에서 산 경험도 6개월이 다인, 누가 봐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하고 그 모든 환경이 정체성과 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주인공에 공감하고, 실제로 위에서 내가 이해한 바를 직설적으로 주인공이 서술한 적이 없음에도, 그녀가 주변 관계에 느낀 매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들에서 충분히 느꼈을 만큼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이 작품은 요새 대세라는 “사이다”가 없는 작품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법의 심판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안톤의 불륜을 알리기 보다는 그들과 서서히 멀어지는 등, 여느 독자가 보기엔 답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심리 묘사를 따라가 보면 결코 애매하지 않음을, 오히려 속도가 느릴 뿐, 그녀만의 속도로 견고한 확정성으로 결정을 내림을 알 수 있다. 그녀가 스스로가 이런 사람인가 걱정했을 지언정, 결국 그녀는 아드리안이라는 남자의 존재 때문에 인생의 결정을 내리지도 않고, 전직 대통령을 통역하며 느낀 친밀감 때문에 그녀의 도덕적 기준이 낮아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주인공이 마지막에 내린 “그래”라는 한 마디가 온기를 품은 듯한, 따스한 마침표로 보였다. 🏷️그녀가 주로 느낀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죄책감이었다. 그녀는 피고인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정말로 볼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잊어야만 하고 실제로 잊는다. 알지만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무언가가 내 안에서 쩍 아가리를 벌렸다. 이 업무의 비인격화된 성질- 나는 그저 도구일 뿐이고, 거기 있는 몇 시간 동안 누가 내게 직접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내게 한 번이라도 수고스럽게 말을 건넨 유일한 사람은 전직 대통령이었다 -이 그 만남의 기이한 친밀함과 나란히 존재했다. 🏷️부스에서 보내는 그 긴긴 시간 동안 때때로 나는 아래층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 중에서, 아니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사람 중에서, 전직 대통령이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불쾌한 감각을 느꼈다. 🏷️나는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다. 집처럼 느껴지는 곳에 있고 싶다. 그게 어디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문학동네 #해문클럽 #해외문학큐레이션 #북서평 #북스타그램 #책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