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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얼마전에 전무송님 주연의 연국 <더 파더>를 관람했었다. 연극 <더 파더>는 주인공 앙드레가 치매로 인해 자신의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상실의 과정을 그린다. 앙드레는 점차적으로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혼란을 겪는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그 혼란 속에서 점점 더 외로워진다. 딸 안느는 아버지의 기억 상실과 혼란스러운 상태를 목격하며, 그를 돕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도 소용돌이에 빠진다. 치매로 인한 감정적 갈등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고, 사랑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질병이 그들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연극은 앙드레와안느의 갈등을 중심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과 그를 지켜보는 사람의 심리적 충돌 그리고 상실을 그린다. 기억 상실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각자의 감정과 본능적인 행동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번이 이러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실을 주제로 한 바우리 님의 신간 소설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방우리님의 <낙원맨션>이었다. 옴비버스 형식의 작가의 소설은 외로운 우리의 삶에 대해 여러가지 화두를 던지는 것 같다. 저자인 방우리님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 출생. 2014년 단편소설 「이사」로 ‘제2회 김승옥문학상’ 신인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을 비롯해 다양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이사 창문을 여는 일 물왕멀 낙원맨션 최소화의 순간 행갈이 ㅂ의 유실 해설 : 필연적 사건에 대한 고찰 _소유정(문학평론가) ![]() 상실은 현대인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주제다. 우리는 매일매일 무언가를 잃고, 그로 인해 느끼는 감정은 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저자는 신간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상실의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하는 화두를 던진다. 현대인의 내면에 자리한 공허감과 불안, 고립감을 정교하게 드러내며, 소설을 읽으면서 그 감정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작품 「이사」에서 남자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미세한 갈등을 통해 상실의 징후를 인식하게 된다. 개를 잃어버리는 사건은 그가 무의식적으로 유예해왔던 시간의 흐름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상실은 종종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며, 그로 인해 우리는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변화를 냄새와 경계라는 감각적인 요소로 표현하며, 그 징후를 통해 상실의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창문을 여는 일」에서는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가 현대인의 단절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창문을 여는 행위는 세상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지만, 진정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단절감은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느끼는 고독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상실은 또한 기억의 진실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물왕멀」과 「낙원맨션」에서 작가는 잊히고 사라진 공간을 통해 기억의 변형을 이야기 한다.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왜곡되고, 그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진실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완벽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가 선택한 진실이 진짜 진실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에게 상실의 아픔을 느끼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도록 유도한다.
이외 여러 작품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은 상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게 된다. 상실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상실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함께 치유의 과정을 거쳐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상실의 순간을 통해 우리는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을 얻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상실은 결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 상실과 관련한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소설의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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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서평을 보면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상실'이라고 한다. 나는 이 책 속 문장들을 곱씹어보니 단순히 무언가를 잃어버려서 슬프다는 상실이 아니라, 살기 너무 버거워서 나 자신을 자꾸만 깎아내고 최소화하려는 지독한 잃어버림을 담은 것 같았다. 「최소화의 순간」에 등장하는 문장들을 읽고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삶을 인터넷 창 최소화하듯 줄여버리면 어떨까 하는 상상, 다들 한 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번아웃이 찾아올 때면 내 삶의 면적을 최대한 줄여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숨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표제작인 「낙원맨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처받기 싫으니 애써 망각하려 노력하는 대신, 그냥 기억의 스위치를 꺼버린다고 말한다. 어차피 기억이란 완벽한 진실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변형되는 것이니까.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감정과 기억의 전원을 내려버리는 방어기제 같아서 씁쓸하면서도 깊이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나를 줄이고 마음을 닫으며 살다 보니, 어느새 내 안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행갈이」에서 말하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지 몰라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 막막한 감정 말이다. 어쩌면 그게 바로 현대인들이 매일 달고 사는 원인 모를 공허함이 아닐까 싶다. 「ㅂ의 유실」은 사라진 'ㅂ'에 대해 논하지만, 결국 지긋지긋해서 훌쩍 버리고 싶었던 것들, 도망치고 싶었던 세상을 조명한다. 평생 눈에도 띄지 않던 '저채도 저명도 인간'인 병과 병에게 색을 준 평을 보여주며, 아예 사라져 버린 상실과 부재에 대한 공허함을 말하는 듯했다. 지쳐서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 역설적이게도 내가 버리고 싶었던 그 무거운 짐들이 나를 살게 하는 이유였음을 깨닫게 해주는, 한편으론 서늘하지만 그럼에도 따뜻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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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맨션』은 작가 방우리의 첫 소설집이다. 소설집을 읽는 내내 이상한 감각이 남았다. 대낮에 읽었는데도, 마치 새벽 공기 속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햇살은 환한데 마음 한켠은 푸르스름하게 서늘하고, 문장 하나하나가 조용히 스며들었다. 『낙원맨션』 속 세계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기보다, 내 안의 빈 방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에 가깝다. 책의 첫 작품 「이사」에서는 어느 날 이웃 아이의 부탁으로 강아지를 맡게 된 부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강아지가 사라지고, 그 사건을 계기로 부부의 관계는 서서히 무너진다. 그러나 작가는 그 균열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사라진 ‘치치’를 둘러싼 공기, 침묵, 정리되지 못한 물건들을 통해 상실의 질감을 그려낸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대신, 그 부재를 통과하며 각자가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낙원맨션』의 인물들은 모두 조금씩 가라앉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이 소설집이 특별한 이유는, 그 버티는 삶을 애써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아주 조용한 온기를 발견해낸다는 점이다. 『낙원맨션』은 사라져버린 것들의 자리에 남은 미세한 온도를 보여주는 책이다.
읽고 나면 마음속 어딘가가 서늘하게 식어가다가, 이내 아주 조용히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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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유했던 물건이나 추억, 어떤 사람과의 관계 등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상실 이전에는 존재가 있었다. 존재하고 소유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자연스레 나의 일부가 되었던 것들은 비로소 상실을 겪은 이후에야 내가 가졌고, 맺었던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데, 상실을 통해서야 존재를 깨닫는다는 것이 참 소설 같으면서도 사실이라는 점에서 재미있기도 하고 아이러니하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다. 가볍게 무게조차 느끼지 못하고 흐르다가 어느 순간에는 순간순간이 억겁처럼 엄청난 무게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흘러가는 시간들은 침묵이 아니었는데도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어떤 시간들은 강한 흔적으로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상흔을 남기기도 한다.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는 그저 듣고 흘리며 나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느끼고 소유하며 타인에게 이야기로 만들어 전한다. 이래서 인생은 소설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소설 속에서도 다양한 인물들의 인생이 펼쳐지는데, 어떤 인물의 이야기는 몇 줄로 정리가 되고 어떤 인물의 이야기는 한순간이 몇 문단, 몇 장에 걸쳐 묘사가 될 정도로 상세하게 펼쳐진다. 우리 인생 역시 소설처럼 때로는 이야기가 되고 때로는 타인에게서 그냥 흘러가며 그렇게 존재했지만 상실이 되기도 하고, 상실을 통해 비로소 존재하기도 한다. 이런 일상 속의 상실을 다룬 소설집을 만났다. 김순옥 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은 방우리 작가의 소설집 《낙원맨션》은 7개의 단편을 통해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증언과 동시에 상실을 통해 비로소 존재에 대한 흔적을 찾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자신이 밀고 나가는 소설론에 대한 증명을 이어나가고 있다. 내가 마주하지 못했던 나를 향한 눈, 타인만을 바라볼 수 있는 밖을 향한 눈에서 자신을 향한 안을 향하는 눈을 통해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지,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무언가의 상실 앞에 비로소 그것의 존재를 깨닫고 그것을 따라가며 자신이 가졌던 어떤 사물이나 관계, 인연에 대하여 돌아보고 그 돌아봄은 마지막엔 자신을 향한다. 타인에게로 시작했던 방향이 결국엔 자신에게로 돌아오며 발견하는 의미는 소설 자체의 흐름뿐 아니라 작가가 그려나가고자 하는 자신의 세계관이자 인생론으로 다가온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등장인물들을 따라 함께 방황을 하며 시작했던 소설들은 '잃어버렸다'는 것에 맞춰졌던 초점에서 '사실은 잃어버리기 전 존재했던' 그 시작의 의미로 되돌아간다. 투덜거리거나 쏟아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현실적이지 않고 소설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우리가 나의 일이 아닌 타인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을 생각하면 그 자체로도 이미 '현실적'이기도 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최소화의 순간〉은 머나먼 미래를 위해 지금을 양보하고 겨우 지금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오늘날 사회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하면서도 안쓰럽고 답답한 마음에 몇 번이고 다시 펼쳐보게 했다. 존재라는 것은 무엇일까? 또 상실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이 감정은 결국 인생이라는 긴 책을 단편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깨달음의 일부가 아닐까? 방우리의 소설을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한 지난한 질문을 꺼내본다. "이 글은 교유당으로부터 교유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
낙원맨션방우리 소설 / 교유서가 "어떤 이들은 이야기를 하고, 어떤 이들은 이야기가 된다." 방우리의 소설은 이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증언인 동시에 한 작가가 밀고 나가는 소설론에 대한 증명이기도 하다. - 소유정 (문학평론가) ---------------------------------------------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는 낙원맨션 작가님의 편지속에는 책에 대해 이렇게 쓰여있다 한계를 깨닫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 보이지 않던 벽을 마주하고서야 그 벽을 넘어설 가능성이 생긴다는 의미에서 변화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고.. 이사 창문을 여는 일 물왕멀 낙원맨션 최소화의 순간 행갈이 ㅂ의 유실 7편의 소설들이 가볍고 밝은 내용들은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굳이 사람들이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조금은 어둡고 불편한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뒤쪽 해설에서는 상실이 방우리 소설을 이루는 주된 키워드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이 소설집에서 발견되는 상실은 누군가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잊히거나 잃어버리게 된다는 단어 본래 의미와도 연관된다 이웃집 아이가 죽고 맡긴 개가 사라지고 살던 집이 점점 낡아가고 시력과 정신이 깜박거리고 이별하고 키보드의 글자가 사라지는 등 이야기 속에서는 상실이 여러 모습으로 표현된다 *p38 왜 눈은 바깥을 향해 열려 있을까. 눈으로 바깥이 아닌 안을 볼 수 있다면 무엇이 보일까. 나는 안을 향해 열린 눈으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내 눈에는 과연 무엇이 보일까. 문장들 역시 가볍지 않다 이런 문장들을 읽으며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p110 '십칠층짜리 건물이 한 칸, 한 칸 불빛을 깜박이는 걸 외부의 누군가 우연히 보게 된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는 불빛이 일층에 닿을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바라봐줄 사람일까. 누군가 일정한 속도로 한 층씩 걸어서 내려가고 있다는 것에서 무어라도 의미를 발견해줄 사람일까.'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가족들도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일하는 회사 동료들도 서로 함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단절되어있고 무관심하며 그렇기에 외로운 우리의 현실이 이야기들속에 드러나 있어 읽으면서 내내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현실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마주할 때 그 벽 너머에 있는 가능성과 변화를 꿈꿔볼 수 있는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상실은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또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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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다정하고 포근한 위로를 받은 듯한 책입니다. 책을 읽고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한 적은 있었지만 작가님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궁금한 적은 방우리 작가님이 처음이었습니다. 글만 봐도 따뜻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보통 단편소설집은 한 번에 다 읽지 않고 단편 하나하나씩 읽는 걸 좋아하는데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 [이사]에서 남자는 현관문 쪽 벽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는데 그것이 아내와의 관계에 균열이라는 것은 뒤늦게 깨닫는다. 남자의 무관심함이 만들어낸 결과는 끔찍했고 남자가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자신의 공간과 아내 등 많은 것을 잃고 난 후였다. 그제서야 남자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하는 수 없이 있는 힘껏 두 눈만 크게 뜬 채 잘게 부서져 내리는 어둠과 시간의 잔해를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이었다. p. 16 - 남자는 자신이 흘려보내고 있는 시간을 제멋대로 ’유예‘라고 이름 붙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보내는 시기였지만 그는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머물고 있었다. 이 시간만 지나면 자신의 진짜 삶이 찾아올 것이라 막연히 믿고 있었다. [최소한의 순간]을 읽으면서 울컥했던 소설이다. 왜 불행과 불운은 힘든 사람들에게만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것인지. 어쩌다 행복인줄 알고 다가가면 그 뒤엔 더 큰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참 안타깝고 마음이 먹먹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노력한만큼 그 대가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 사회초년생들이나 반복되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듯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을 떠나 이 책에 큰 애정을 갖게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접했으면 하는 바람에 서평을 쓰는데도 한참이 걸렸습니다. 작가님이 이 소설집을 내기까지 10년이 걸린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며 작가님께도 이 소설이 응원과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