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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라는 산문집을 통해 처음 만난 이기호 작가. 어쩌면 이야기를 이리도 맛깔나게 하는지. 성석제, 박민규, 천명관과는 또다른 층위의 이야기꾼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과는 잘해요',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연이어 읽고, 많은 사람들이 호평했던 '최순덕 성령 충만기'를 접하기에 이르렀다. 약장수 같다고나 할까.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령과 성별, 때와 장소에 맞게 변화무쌍하게 부려놓는 그의 질펀한 말재주. 놀라웠다.
한편으론 어쩌면 작가 또한 항상 이야기에 목말라있던 나와 비슷한 심경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어린 시절부터 난 늘 외로웠다. 직업 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거의 해마다 이사를 다녔고, 친구라곤 할머니와 책장 가득 꽂혀있던 문고판 위인전이 전부였다. 항상 겉도는 아이, 말수가 적은 아이,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시골 아이였던 난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했다. 주목받고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는 아이가 부러웠고,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께 칭찬받는 아이가 부러웠다. 그러던 중, 내 미래를 결정짓는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군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 참가했었다. 운문보다는 산문이 좋았다. 주제가 '꿈'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당시 한번도 원고지에 뭔가를 써본 적 없던 나였지만, 묵묵히 빈 칸들을 채워나갔다. 원고지 5장을 채우기가 쉽지 않았는데, 온갖 상상을 머리로 그려가며 연필을 놀렸다. 그리고 발표가 있었다. 별 기대를 안하고(더욱이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동행했지만, 나만 홀로 참가했었다) 있던 중 내 산문이 장원에 뽑혔다. 뭐랄까. 어린 마음에 거짓말을 써놓은 것 같아 약간의 심적 동요가 있었지만, 수상 소식에 그러한 부담은 오간데 없었다. '바로 이거구나. 이렇게 글을 쓰면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일생 일대의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개인적인 아픔이 있던 시절이었지만,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담임이 아동문학가였다) 고등학교 3년에 이르기까지 각종 백일장, 현상 공모에 빠짐없이 참가했고, 더러 입상도 하는 나날을 보냈다. 이야기가 어떤 내용을 담보하든, 잘 만들어진, 잘 꾸며진 글이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쉽게 끊을 수 없는 중독이었다. 국문과에 진학한 후, 재능 있는 친구들의 글쓰기에 좌절하긴 했지만, 이야기가 주는 위력은 여전히 실감하고 있다. 사실 잡지 편집자로 일을 하게 되면서, 이러한 이야기보다 말 자체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 하지만 잡지 또한 결국 이야기를 통해 독자와 세상 혹은 독자와 기업을 잇는 소통 도구다. 그렇기에 여전히 이야기를 가공하고, 다듬고, 편집하는 행위가 나의 주된 업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이기호 작가의 소설을 보며 많은 생각들이 가지를 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엿보인다. 소설집을 들여다보면, 그 형식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롭다. 마치 힙합 음악에 맞춰 프리스타일 랩을 하듯 읊조리는 '버니', Q&A 취조 형태로 일관하는 '햄릿 포에버', 성경의 의고체 어투를 그대로 패러디한 '최순덕 성령충만기' 등 이야기를 부리고 내치는 작가의 재주가 눈부시다. 이는 그의 '갈팡질팡하다가...'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래는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를 읽고 정리한 글의 일부다.
능청스러운 이야기의 달인을 꼽으라면, 내겐 두 명이 동시에 떠오른다. 성석제와 박민규다. 성석제의 글들은 해학과 위트 속에 따뜻한 휴머니즘이 느껴진다. 한국다움의 가치 판단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난 단연 성석제를 가장 한국다움의 글쓰기를 하는 소설가라 말하고 싶다. 이에 반해 박민규는 비문학적 요소들을 소설로 끌어와 능청스럽게 부려놓는 솜씨가 일품이다. 둘다 타고 났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이야기꾼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이기호(데뷔로 따지자면 성석제와 박민규의 사이에 위치하겠지만)는 이들에게 'History는 Hi! Story(안녕! 이야기)이야'라며 보기좋게 너스레를 떨며, 두 사람에게 대동강 물을 팔 정도로 능청스럽다. 이 놀라운 괴물은 언제 등장한건가?
이 책에서 소설가와 소설쓰는 행위에 대한 그의 정의(가령 곡괭이로 벽을 파는 '육체노동자'와 같은). 역사를 바라보는 재밌는 시선(다양한 기담 속에 더욱 구체화되는 역사 공간 창조) 등이 새롭고, 놀라웠다. 또한 '나쁜 소설'은 부제(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독자를 당신으로 상정하고 서두에 최면을 걸어온다. 박민규의 '카스테라'가 일관된 상상력에 기초하여 실려있는 글들이 전반적으로 동일한 층위를 이룬다면, 이기호의 이 책은 대략 난감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소재,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 등 무엇 하나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작가는 말한다. 모든 세상사는 항상 논리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의 연속일 수도 있다고. 대학 학부 당시 작가의 소설에 대해 '논리의 비약'을 질타했던 교수님에게 변명하듯 말이다. 작가는 또 밝힌다. 소설들은 자신의 이야기라고. 뒤통수에 눈이 달린 '백미러 사나이'나 귀기 서린듯 몽환적인 '머리칼 傳言', 토템에 더해진 설화와 같은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등 다수의 일상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글들도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야기라고.
역순으로 그의 전작 읽기를 끝마쳤다. 지금껏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견지했던 그이기에 다음의 행로가 더없이 궁금하다. 그의 어느 소설에나 등장하는 '시봉'이가 이번엔 어떤 인물로 분하여 말을 건넬지. 분명한 건, 올해부터 전작 읽기를 시도한 박현욱, 박민규, 천명관, 편혜영 작가 중에서 단연 이기호를 첫손에 꼽고 싶다는 것이다. 난 여전히 이야기의 힘을 믿으니까 말이다. |
![]() 책 읽으면서 웃어보는거 오랜만이다. 작가 이름은 많이 들었었지만 단편을 선호하지 않아서 안 봤었는데, 진짜 대단하다.
책에 실린 첫 단편, <버니> 에서부터 그랬다. '백제 근초고왕이 일본 왕에게 하사한 검의 이름을 쓰시오' 라는 중간고사 국사 문제 부분이었다.
사실 이 단편이 웃기려고 쓴 건 아니다.
이 형식에 담긴 내용은 이렇다.
이 단편집에는 사회적 규범은 가볍게 뛰어넘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백미러 사나이>와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이 그랬다.
한편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너무 웃겼다.
날카로운 풍자도 풍자지만 그냥 말투가 너무 재미있어서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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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지가 수년째인데 드디어 오늘 완독했다. 이기호씨 작품으로는 두번째. 장편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전에 본 김박사는 누구인가처럼 단편모음집 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진작 볼껄 그랬다. 실려있는 작품은 8편으로 다음과 같다. 버니 : 처음부터 욕지기가 나와서 살짝 인상이 찡그려지긴 했는데 알고보니 희한한 내용. 평범한 말에는 반응을 안하고 오로지 랩에만 반응하는, 평범하지 않은 버니라는 예명을 가진 순희가 주인공. 무슨 사건으로 정신을 놓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돈을 버니 좋니 버니. 보도방이 무슨말인가 했는데 뜻도 약자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햄릿 포에버 : 여기도 마찬가지로 정신을 놓은 사람이 주인공. 이시봉이었던가. 하여간 가진것없고 배운것 없는 이 사람이 본드를 마시고 햄릿의 환영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연극의 퀄리티를 높여주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어떤 누나가 문방구에서 본드좀 사다달라는 부탁을 그때는 착한일 한답시고 고분고분 들어줬던 기억이 불현듯. 옆에서 본 저 고백은─告白時代 : 결말을 보고 빵터졌다. 앵벌이 집단에서 진짜 조직원으로의 전향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그 고백이 오히려 유익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더라는. 진짜 이 작가는 기발하다. 머리칼 傳言 : 이건 좀 으스스. 보지는 않았지만 일본만화중에 기생수라는게 생각나더라는. 백미러 사나이─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 사실 이것도 머리칼 전언과 비슷한 부분이 있긴한데 그래도 이건 상당히 재밌었다. 특히 현수막 쓰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큰소리내며 웃고 말았는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할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또 웃음이 난다. 개인적으로 결말이 조금 아쉽긴 했는데 그것만 아니었으면 이걸 대표작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간첩이 다녀가셨다 : 이건 그냥저냥. 최순덕 성령충만기 :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인쇄가 잘못된건줄 알았다. 이런 방식으로 기록된 소설이 또 있을까? 진짜 기발했다! 성령충만한 최순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성경외에는 기본적인 학습도 외면해가며 성장, 바바리맨을 교화시키겠다는 사명을 실천하는 이야기는 성경말씀처럼 2단으로 표현된 형식에 맞춰 경건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 이제보니 밭밑으로가 아니라 발밑으로 였네. 이것도 약간 판타지스러운 내용이었는데 액자소설 구성으로 감자를 키우는데 쓰던 소가 죽자 아들이 자발적으로 소가 되어 위병소 군인들이 성스러운 체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 조금은 무겁게 느껴졌다. 재밌게 본 작품을 3위까지 꼽아보자면 순서대로 백미러 사나이, 최순덕 성령충만기, 옆에서 본 저 고백은=햄릿 포에버. 이제보니 그나마 정상인(?)만 나오는 작품은 간첩이 다녀가셨다 하나이다. 나머지는 조금 정신이 모자르거나 절대 정상이라고 볼수 없는 캐릭터가 주인공. 끝에 실린 서평을 보니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라는 개념이 나오던데 무슨말인지 몰라서 찾아보기도 했다. 문학비평용어 사전에 따르면 뜻이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와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는 서로 쌍을 이루는 개념으로, 탈영토화는 하나의 구조나 체계를 벗어나는 것이며 재영토화는 그 벗어남이 새로운 구조나 체계로 다시 나아가는 것을 나타낸다.' 라고. 등장인물을 보니 탈영토화는 어느정도 납득이 되는데 재영토화는 어떻게 연결시켜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재밌게 본 책이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이런 주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갈 수 있는건지 새삼스레 소설가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같은 저자의 책을 더 찾아볼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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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소설가란 우선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 탁월해야 한다. 글을 매끄럽게 쓰고,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은 다음 일이다. 서사문학의 본질은 다름 아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기호가 이 방면에 있어 누구보다 뛰어난 소설가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까지 두 편의 소설집을 출간한 그의 소설들은 (비록 단편 뿐이지만) 역동적이다.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은 생생한 소설 속 세계는 독자들을 완벽하게 장악한다. 단편은 한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읽게 되는 경향이 강한데, 이기호의 소설은 비록 단편 뿐이지만 소설 읽는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이기호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작가의 등단작품 '버니'를 비롯해 개성있는 단편 8편이 실려 있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하자 있는 인물들이다. 고교 중퇴자, 앵벌이, 본드중독자, 광신론자 등. 각기 다른 의미에서 비루한 삶의 언저리에 존재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어수룩해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한다. 바로 여기에서 무수한 이야깃거리가 나온다. 이기호의 소설에는 수많은 '이시봉'들(최순덕이여도 좋고, 황순녀여도 상관없다)의 어수룩함이 빚어낸 우여곡절들이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절실하게 펼쳐진다.
작가의 상상력의 원천은 매우 다양하다. 티비 특종프로에서 다루어졌을 법한 뒤로 걷는 사나이, 뉴스에서 집중 보도되었을 보도방, 본드흡입, 앵벌이 문제, 이제는 아물어져가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까지 이야깃거리를 찾아 낸다. 거기에다 그 소재들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독특하게 비틀고 다듬어 낸다. 때로는 기발한 판타지로, 때로는 우매한자가 벌이는 한 편의 촌극으로, 때로는 아이러니한 블랙코미디로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이기호는 소설작법에 있어 하나의 방식만을 맹렬하게 고집하지 않는다. 소설 한 편을 전부 랩의 가사로 채우는가 하면(버니), 피의자 조서형식으로 꾸미기도 하고(햄릿 포에버), 성경의 의고체 어투를 흉내내어 쓰기도 한다(최순덕 성령충만기). 단지 형식적 실험을 위해서만 이러한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소설에서 이러한 형식의 파괴는 작품의 내용과 긴밀하게 연관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랩의 가사를 흉내낸 것은 작품 속 인물 버니가 랩밖에는 할 줄 모르는 백치여서이고, 피의자 조서형식으로 꾸며낸 것은 작품의 주인공이 실제로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또 성경의 어투를 흉내낸 것은 주인공이 광신도인 것과 관계가 있다. 이밖에도 이러한 형식적 파괴를 통해서 얻는 효과는 적지 않다. '버니'의 경우 랩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어서인지 활자에 리듬감이 부여되어 청각적인 효과를 거둔다. 성경을 흉내내어 의도적으로 다단편집을 해 놓은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문자가 지시하는 의미 뿐 아니라, 문자의 배열 상태에 따른 시각적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다음 소설집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에서도 꾸준히 이어진다. 이야기 자체 뿐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를 포함해) 이야기를 이루는 모든 것이 이야기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기호의 소설을 기존의 소설 형식에 반기를 드는 말장난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소설들은 낯선 형식 속에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이기호의 소설은 붓가는대로 끄적인 듯 하지만 한 편을 읽고나면 묘하게 질서정연함이 느껴진다. 마구잡이로 확산되는 상상의 나래가 산만하게 흩어지지 않고 결국은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되돌아 오는 느낌을 준다. 표제작인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광신론자 최순덕의 일대기를 성자의 삶에 빗대어 서술하고 있지만, 읽는 이를 숙연하게 만드는 성인의 전기와는 반대로 인물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버니'와 '햄릿 포에버', '옆에서 보는 저 고백은' 등에서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만한 인물들을 비난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적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백미러 사나이', '간첩이 다녀가셨다',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에서는 정치나 권력,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종의 알레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번득이는 기발함, 수준 높은 풍자와 유머가 이기호의 모든 작품을 일관적으로 포용하는 특징일 것이다. |
| 소설이, 소설다워야 소설이지.... 소설의 이야기가 재밌을 때 그 즐거움이 가장 크지만, 이기호와 같은 새롭고 신선한 작가를 만나는 것 또한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요즘 신진 작가들의 등장을 환영하는 언론 기사들을 볼 때마다 언급되는 작가 중 한 명이 이기호였고 그의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였다. 당연히 그 소설집을 먼저 읽어야했지만 나는 꾹 참고 그의 첫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부터 구입버튼을 눌렀다. 역시 였다. 소설의 재미와 의미를 모두 넣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다소 엿보이기는 하지만, 소재의 신선함, 형식의 새로움에 매료됐다. 특히 <간첩이 다녀가셨다>와 <최순덕 성령충만기>에서는 작가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우리에게 다시 되돌려줄까 하는 생각에 오싹함마저 느꼈다. 이제 그토록 언론이 재미있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갈팡질팡~>을 구입했다. 그 책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첫 장을 연다... |
| 이토록 유쾌한 소설을 읽어본 적이 언제던가? 이 소설을 읽다가 한바탕씩 웃어대지 않는 사람은 정말 사람도 아니라고 나는 단언한다... 그것은 파쇼독재의 원흉이고, 미국을 축출한 기술의 혁신-삼성에 대한 모독이다. (무슨 말인지는 책을 읽어보면 안다..) 앵벌이 출신 고아들이 취직을 해보겠다고 자기소개서 한편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본드속에 환상을 연기하는 배우의 이야기, 살아 움직이는 머리칼을 가진 소녀이야기, 바바리맨을 교화하여 천당을 가겠다는 한 열혈 처녀의 성령충만기, 깨진 재떨이 파편에 생긴 뒤통수의 상처로 인해 박대통령의 눈을 갖게 된 소년의 이야기... 이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황당 그 자체이다. 이기호의 상상력은 기발하다면 둘째가기 서러울 베르나르 베르베르보다 한 수 앞선다.. 더우기 신기한 건, 베르나르의 상상이 조금 터무니 없고, 비약적인 것이라면, 이기호의 상상은 허무맹랑하면서도, 정말 혹시 있을 법하지 않을까라는 혹함(?)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가?) 그래서, 한강공원이나 남산계단길에서 거닐다 우연히 백미러 사나이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지은이의 당부가 뒷머리를 곧추서게도 하는 것이다. 간혹, 마치 내가 본드를 한 상태에서 읽은 이야기가 아닌가 라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 기괴함은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에 이르러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도의 숭고함으로까지 인식된다. 그러면서 그는 언뜻언뜻 내비친다. 이나라의 밤거리를 교육제도를 군사정권을 마약문화를 거리의 부랑자를 종교를. 이 무겁고도 거창한 이야기들을 그만의 유쾌함으로 이렇듯 통렬히 일깨울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의 산만하고 해괴한 문장들은 겉멋들지 않고, 훈계하지 않고, 이 도도한 문제들을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이기호! 나에게 여태까지 그토록 절절한 문학의 효용을 일깨워준 이는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그를 주목하기로 했다. 혹여 시작부터 끝까지 랩으로 읊어대는 버니의 이야기가 다소 어지럽더라도, 환각과 현실이 맹렬히 교차되는 햄릿의 이야기에 구토증상이 일더라도, 제발 계속해서 읽어나가기 바란다... 정말 새로운 세계를 당신은 만나게 될 것이다. 세상을 혼돈과 몽롱한 삐딱함으로 구분짓는 것은 부질없다. 제정신이든, 혼미한 정신세계에서든 내가 왜 웃고있는 지를 알아야 한다. 정말 웃겨서 웃는 건지, 웃을 수 밖에 없어서 웃는 건지, 아니면, 웃지 않고서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웃는 건지... 그걸 말이다. 이기호의 상상은 그 모든 고행을 관통한 듯 싶다. 본드를 넘고, 보도방을 넘고, 박통을 넘어, 최루탄을 넘어, 간첩과 성경을 넘어, 끝내 말한다. 이 웃긴 세상이 그토록 신산하고, 재미없는 곳이란 걸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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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면서 맘껏 웃어 본 것 같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괜히 주변의 시선을 받을 정도였으니까
그는 일명 '썰'을 잘 푸는 작가이다 특히 '썰'을 어떤 방법으로 풀지, 이야기에 따라 최고의 방법을 꼬집어 낼 줄 아는 작가이다 한 여성 랩퍼의 이야기는 랩으로 글을 쓰고, 또 제목이기도 한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성경의 문체를 고스란히 따라 '썰'을 푼다 그런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맛깔스럽게 비벼낸 비빔밥처럼 재료의 맛과 간이 제대로 배합된 그의 글은 읽는 즐거움을 준다
꽤나 진지한 주제나 상황을 그는 천연덕스럽게 '오바'를 섞어가며 농담을 건네듯 이야기한다 '백미러 사나이'는 이런 그의 매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인데 주인공의 놀라운 빽샷(?)은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거기다 결국 모든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얻어들은 후일담인 것처럼 살짝 비틀어 보이는 마무리까지 잊지 않는다
첫 번째 데뷔작이 이 정도라니... (두 번째 단편집이 얼마전에 나왔다!) 앞으로 기대가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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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소설다운 소설 재미있는 이야기들... 나름 신선했고 유쾌했다. 책의 제목인 최순덕.. 만 빼고 나머지 이야기들 모두 좋았다. 나도 정말 이런 소설 한번 써보고 싶다 진짜...으~~ 특히 햄릿포에버는 너무 탐난다 진짜...ㅜ.ㅜ 이미 다 읽었고 책 제목인 단편 하나만 남겨 두었다가 지금 읽고 이렇게쓴다 성석제와 김영하 만큼 재밌는 소설이다~~ 앞으로 기대되는 작가다 이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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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그의 신작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의 리뷰를 보고서 그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후배로부터 이기호 작가의 책을 잠시 빌려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최순덕 성령충만기>이다. 총 8편의 단편으로 되어 있는 소설집에서 먼저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펼쳐들었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종교에 심취한 최순덕의 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구성방식부터가 특이했다. 마치 성경을 읽는 듯 성경과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었으며 문체 또한 성경의 것을 그대로 따랐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글의 특성을 살린 것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러한 시도는 그만이 가진 독특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랩 가사를 읊어대듯 쓴 ‘버니’, ‘버니’는 우리 문학의 장르 중 판소리를 연상케 했다. 판소리가 소설화되기 이전에는 노래로 불리던 것이 아닌가. 시대를 뛰어넘어 판소리가 랩으로 바뀌어 재현된 듯 보였다. 그 밖에도 ‘햄릿 포에버’는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은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는 개성이 넘쳐흐른다. 그래서 읽기에 지루함이 없으며, 노래를 듣듯 연극을 보듯 쉽게 넘어 간다. 이는 비단 글의 형식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이든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 다양한 그릇에 담긴 소설들은 제 그릇에 맞게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재미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책을 읽다 말고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침 출근 길에 전철 안에서 책을 읽다가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웃음이 나올 것이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이것이 그의 소설이 가진 힘이다. 그리고 그가 택한 소재들은 평범할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래서 별 것 아닌 것처럼 치부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이지만, 그는 그러한 상황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재주를 타고난 듯하다. 그렇다고 일부러 소설의 전개를 극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연스레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한참을 웃고 난 후 생각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느껴짐은 그의 소설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기대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던 탓인지 그의 소설을 읽고 난 후 새롭고 신선함을 많이 느꼈다. 자연스런 일상에서 웃음을 자아내고, 그 웃음 뒤에서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그의 소설을 통해 즐거울 수 있었다.
* 책 속 한 구절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 모든 것이 다 꿈이거니, 다 환각이려니 생각했습니다. 때론 현실보다 더 생생한 환각도 있으니까요……. 한편으론 다행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제 주의의 모든 것이, 심지어 제 자신조차도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아무 변화가 없는데 나만 혼자 미쳐 날뛰고 있는 듯한 두려움, 혹은 외로움 같은 거 말입니다.” - 햄릿 포에버(p.73)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눈앞에 보이는 아무 땅이나 파보아라. 지상에서부터 약 십오 센티미터 정도만 파고 들어가면, 그곳에 당신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당신이 상상치도 못했던, 씨감자가 싹을 틔우고 있을 테니……. 주변이 온통 시멘트 천지라고? 철물점에 가서 시멘트 깨부수는 망치를 사라, 이 친구야. 시멘트 밑에 뭐가 있겠는가? 제발 상상 좀 하고 살아라.” -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p.309)
by 꽃다지, 2007년 2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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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이 기 호
각종 도서관련 사이트를 들락날락 거리다보면.. 한번씩 '차세대 우리나라 문학을 이끌어갈 유망 작가'에 관한 설문조사등을 하는걸 볼 수 있다..
독서에 있어서도 '편식'은 좋지 않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발상이었다..
그리하여 몇권의 장편소설을 사고.. 읽어보고 그러던중.. 당췌 단편소설집까지 다 사려니 도저히 감당이 불감당이라.. -_-
휴일을 맞이하여.. 아침일찍 조조영화를 한편보고..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하러 코엑스엘 들렀다가.. 반디앤 루니스에서 몇 시간 책을 보고 돌아왔다..
차세대 우리나라 문학을 이끌어갈 유망 작가들과 만나고 있는.. 필자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것이다..
아직은 대형서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책꽂이 한켠을 차지하고있진 못하지만..
특히 그의 첫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읽고 있노라면.. 그 독특한 제목만큼이나.. 신선하고도 쏠쏠한 재미에.. 어느샌가.. 킬킬 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본의 아니게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에 대해 사회적 비난이 거센 가운데.. 순수한 동기로 믿음을 가지고있는 대다수의 기독교인 까지도 도매급으로 비난을 받아.. 거 참 종교이야기를 말하기가 거시기 하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아주 뼈속까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그런 그녀가.. 바바리맨을 전도한다는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를 이루는데.. 그냥 단순히 변태 바바리맨으로만 끝나지 않고.. 부권을 상실한 우리 시대의 아버지상 정도로 해석하는게 옳을듯 하다..
암튼.. 여러모로.. 참신한 상황설정이 아닌가.. (또다른 개재작 '햄릿 포에버'에서는 더욱 더 참신하게도 햄릿이 본드도 분다 -_-;;; )
내용보다도.. 더.. 놀라운건.. '성경'의 형식으로 씌여진 사실.. (이기호 작가의 아버지는 실제로 목사라고 함.)
앞으로도 우리나라 문학은.. 적어도.. 심심하진 않을거란 예상을 감히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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