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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니카라과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충격이라기보다 울분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독재정권에 맞서 니카라과 국민들은 시위를 벌이며 투쟁했는데, 니카라과 정부를 '지원'하던 미국의 힘 때문에 정부가 번번이 무력진압하는 결과로 끝나고는 했다. 하지만 시위를 취재하던 미국인 기자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고, 그 장면을 동료 기자가 찍은 사진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그 직후 미국은 니카라과 정부에서 손을 뗐고, 니카라과 정부는 오래지 않아 곧 무너졌다.
이것만으로도 한바탕 통탄하고도 남을 일이건만, '후일담' 한 토막을 들으면 그야말로 마음이 싸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한 니카라과 할머니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미국인 한 명을 죽여서 이 전쟁이 끝날 줄 알았다면, 내가 진작 미국인 한 명을 죽였을텐데.' 비판할 수는 있어도 비난할 수는 없는 말이었다. 아무리 국적에 따라 목숨값이 다르다지만, 미국인 기자 한 명의 목숨이 니카라과 국민 수천 명의 목숨보다 더 귀중하게 '취급'된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에 직설적인 이권 문제까지 개입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비슷한 대목이 바로 얼마 전 읽었던 <거짓 나침반>에서도 나왔었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에는 미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 대기업이 등장하지만, 행동 패턴이나 결과는 별로 다르지 않다. 다국적 대기업에 반대 시위를 벌이는 민간 유력인사가 체포되자, 해당 기업은 투쟁을 포기한다면 정부에 석방을 '권고'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 민간인사는 제안을 거부했고, 정부는 결국 사형을 집행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비극을 초래했던가. 대개는 묵인했고, 때로는 방조했다. 별로 이익 될 것이 없다는 이유로 개입하지 않았고, 이익을 챙겨야 한다는 명분으로 개입하고는 했다. 미국이 전쟁을 대놓고 도발한 적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전쟁을 지속시킨 것은 미국의 '힘'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너무 냉철하고 싸늘하게 바라보아서 방조되고 빚어지는 비극들이다. 하지만 항상 '냉철하게' 대응하는 것만도 아니었다. 그저 막연한 직관에 근거해 행동할 때도 알게 모르게 많았다. 이 점을 가장 확실하게 느꼈던 것이, 베트남군이 축출한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 잔당을 지원할 계획을 세웠을 때였다. 아무리 베트남에 이를 갈고 있다지만, 국민 700만명을 집권 2년만에 500만명으로 줄인 학살 정권을 지원할 생각을 했었다는 말인가!
이 책의 제목은 <미국과 대량 학살의 시대>다. 미국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기야 냉전 시대가 사실상 종식된 즈음부터의 일을 본격적으로 다루니 그럴 만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유력 강대국의 전형적인 패턴이라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얼마 전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서 우리는 비슷한 상황을 보았다. 전 세계가 미얀마에게 등을 돌릴 때 중국은 미얀마의 군부정권과 손을 잡았다. 그 사태를 미얀마의 천연자원, 특히 전세계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 루비를 독점확보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자, 천연자원이라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하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그러고보면 개도국의 천연자원이란 선진국에 수출한다는 형식으로 헐값에 사실상 강탈당하거나, 독재군사정권이 들어선 다음 자금줄로 악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과연 있기나 할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희망이 있다면, 바로 국민들일 것이다. 미국이 개입하는 나라의 국민들, 그리고 미국의 국민들, 비단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사는 수많은 사람들 말이다. 사람들이 깨어 있는 한 아무리 어두운 사회에서도 희망은 있는 법이라고 했다. 여기에 아무리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다는 말을 덧붙여야 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