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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레이몽은 같은 반 친구들보다 수준이 떨어진다고 선생님으로부터
바보멍청이 취급을 당한다.
학교 친구들은 그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고, 겁쟁이 계집애 당나귀 귀라고
놀린다.
매를 맞고, 매를 맞을까봐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레이몽!
동생이 태어난 후로 매일 하루종일 아빠에게 맞는 날이 많고,
엄마는 자식으로서 레이몽을 인정하지 않는다.
맞을 때마다 레이몽은 엄마 아빠가 빨리 죽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레이몽을 보듬어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도 레이몽과 같은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읽는 내내 가슴이 많이 아팠다.
레이몽의 행복은 언제쯤 시작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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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키우는 맘으로 책을 읽으며 갑갑했다. 내가 혹시 나의 아이를 당나귀 귀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았다. 학교와 공부라는 틀에 가두어 정형화된 모범생을 원하고 있었던 부모로서의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청소년 화제작이라 아이를 읽게 하려고 구입했는데 내가 먼저 읽어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에 레이몽은 과연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레이몽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청소년기의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 보길 권하고 싶다.
난 3부작으로 이루어진 다음편을 계속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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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이제는 발길질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릎팍으로 나를 쳤다. 난 먹은 걸 모두 토할 것 같았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아빠가 나를 짐짝처럼 집 안으로 던지도록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난 감자 자루처럼 집 안에 던져져 내팽개쳐졌다. 난 거실에 있는 타일 바닥에 미끄러져서 현관 외투걸이 밑에 팔을 앞으로 하고 길게 늘어져 쓰러졌다. 더 이상은 아픈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난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곧 죽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는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내 얼굴을 들어 다시 일으켜 세우더니 아빠의 허리띠를 풀어 들고 달려들었다. 아빠는 귀신 들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날뛰었다. 온 집안에 허리띠로 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이 새끼! 이거나 받아라. 그러면 조금 더 빨리 생각할 수 있겠지. 공부를 왜 못 따라가. 병신 같은 새끼!" (104쪽 발췌)
꿈이나 상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레이몽 아빠가 푸르스떼이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우리의 주인공 레이몽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입니다. 레이몽이 포르투갈 아이들이랑 공부하는 열등반으로 가지 않고 지금 공부하는 정규반에서 그대로 공부하기 위해 푸르스떼이 선생님에게 돼지 한 마리를 바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아들이 공부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창피를 당한 것보다 돼지를 바쳐야 한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습니다. 아빠에게 레이몽의 학습 진도보다 더 관심이 있는 것은 돼지 한 마리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레이몽은 동생 죠슬린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관심 밖의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뺨을 안 맞는 날이 없을 정도로 거의 매일 매를 맞았습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 세상 모두가 레이몽을 혼내주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유일하게 빵집 아저씨만이 레이몽을 사람 대접하지만 허망할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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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수가 있을까? 세상에는 어느나라를 막론하고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일들이 많으며 삶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어른이지만 당나귀 귀에 나오는 주인공 레이몽 라구스뛰르의 하루하루는 (겨우 열두어살 먹었을 )비참하고 비통하여 차마 말을 다 할 수가 없다.
저마다의 특성이 다른 아이들을 보듬어주기보다는 자신의 가르침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아이의 영혼을 갉아먹는 행동을 서슴치 않는 양심불량의 교사와 낙제를 면하려 뇌물로 바친 돼지 한마리가 아까워 아이를 밤낮없이 때리고 발길질 하는 레이몽의 부모때문에 솟구치는 화를 누를 길이 없다.
주인공 레이몽은 학교에선 셈을 못하고 수업이해가 더디다는 이유로 저능아로 낙인찍혀 모욕받고 아버지에겐 수치로 여겨져 심한 매질 속에 두려움에 떨며 공포스런 나날을 보낸다. 그런 레이몽에게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빵장수 아저씨이다. 다소 엉뚱하고 괴짜 같은 아저씨는 레이몽의 개성을 알아봐주고 재치있고 꾀많은 아이라 귀여워한다.
어쩌면 ...한 아이를 두고 이렇게나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건 마치 이 세상 어떤 아이라도 나름대로의 사랑받을 만한 구석이 있다고 작가가 피를 토하듯 말하는 것 같다. 저마다의 재주와 사랑을 지녔을 아이들이 어느 한 구석에서 레이몽처럼 몰이해와 학대로 시들어 가고 있을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아름답고 착한 얘기들로만 가득한 게 동화라는 고정관념때문에 당나귀 귀를 읽는 내내 심하게 마음이 쿵당거렸다. 일찌기 문화 혁명이 일어나고 공교육이 잘 자리잡힌 프랑스라는 배경이 더욱 심상치않았고... 작가는 레이몽의 고통이 배가되면 될 수록 너무나 신랄하고 풍자적으로 담담하게 위선스런 어른들의 세계를 그려나가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었으니까.
레이몽이 행복해지길 두 손 모아 빌며 끝나지 않은 뒷 이야기 2편 3편을 기다린다. 얼만큼의 불행을 더 견뎌내야 레이몽은 행복한 아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