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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 나라 최고의 지배학벌인 서울대에 들어가는 학생은 수험생 가운데 0.5%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대 학벌은 이 나라 대학교수의 1/4을 차지하며, 국회의원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법조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행정부 최고위직의 2/3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서울대 출신들이 똑똑하기 때문이고, 똑똑한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더 나아가 서울대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을 향해 "꼭 서울대 나오지 않는 것들이..."라는 비아냥을 서슴치 않는 것이다. 이건 분명 병리적인 현상이다.
분명한 것은 서울대 출신들이 똑똑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시험을 잘 본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학벌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우리들은 '시험성적=능력'이라는 도식을 내면화하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성적이 좋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자연스런 도덕적 판단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병적인 발상"이며 도리어 이런 '성적 이데올로기'가 "공부 잘하는 아이는 지배욕에 불타는 허영심의 덩어리로 만들고, 공부 못하는 아이는 지배받기에 어울리는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든다."고 비판하고 있다.(p.107∼109)
저자는 서울대 문제를 '학벌'이라는 사회적 실체로 구성하고 그로부터 철학적이고 사회학적인 탐색을 감행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다른 어떤 대안도 실천적 운동의 순서에서 서울대 학부 폐지에 앞설 수 있는 대안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 제안은 공교롭게도 서울대 물리학과 장회익 교수로부터 나왔는데, 한시적으로 학부를 폐지하고 국공립대 학부생들에게 학부를 개방하는 명실상부한 대학 평준화인 셈이다.
이와 같은 대학 평준화에 대한 세속적인 반론은 두 가지다. 첫째는 대학 평준화에 따라 학력과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 대학이 대학인가?'라고 반문한다. 학문을 연구하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오직 서열화된 권력 매개 기구로 전락한 대학의 현실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있다.
"최고 학벌문중인 서울대학의 학생들은 자기가 선택한 전공에 불만을 품고 많은 학생들이 고시공부에 열중하고, 그 다음 서열인 연.고대 학생들은 서울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학교에는 등록만 해두고 반수를 택하며, 서울과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높은 서열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편입시험에 목을 매며, 지방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다시 서울과 수도권 대학으로 진입하기 위해 고등학생과 하나 다름없이 영어 참고서를 끼고 살아야 하는 이 나라의 대학에서 학문을 말한다는 것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p.314)
저자가 보기에 대학 평준화야말로 대학에게 대학 본연의 기능을 회복시켜줄 대안이다. 대학에 진학할 때 수험생들이 선택하는 것은 전공학문이라기보다는 대학의 학벌이다. 학벌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공부했느냐가 아니라 어느 대학에 다녔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 권력의 5할을 독점하고 있고 또 계속 재생산하고 있는 서울대의 학부가 사라진다면, 수험생들은 이제 '전공학문'을 선택하게 될 것이고, 사회에서도 더 이상 '어느 대학에 다녔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반론은 서울대 학부가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제 2, 제 3의 서울대가 생겨날 거 아니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연.고대가 서울대의 패권을 차지할 거라는 예언은 관습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논의가 서울대가 국립대로서 받았던 각종 유.무형의 특혜를 배제시킨 아무런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고 있다. "그보다는 서울대가 없어지면 다른 학교들이 서울대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과거의 대학서열이 지금보다 유동적이 되리라는 추측이 보다 현실적이다."(p.401)
물론 서울대 학부 폐지론이 만능은 아니다. 아울러 공직자 지역할당제와 같은 실제적인 권력 분점 제도가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방대한 이 책은 학벌 문제를 파헤치며 그 근거와 실천을 다룬 사회학 서적이기 이전에 교육철학서이기도 하다. 물론 그가 기대는 철학은 칸트에서 비롯되며 저자 고유의 주체 철학을 바탕에 두고 학벌과 공교육이 사유된다. 저자 스스로 학벌없는 사회를 주도하며 그의 철학과 이론을 온몸으로 실천한 만큼 그의 결론은 구체적이고 설득적이다.
그러니 나로서도 그의 '말씀 하나'가 갈급한 형편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나 역시 학벌 체제 유지에 일정 정도 종사하고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교사들에게 두 가지를 제안한다. 하나는 "교육으로 하여금 자기의 바른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학벌체제와 입시경쟁을 이제는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거부'는 생경하다. 무엇을 어떻게? 불행히도 그가 말하는 '거부'는 어떤 구체적인 실천적 지침을 주지 못한다. 강준만 교수가 부딪혔던 딜레마처럼 서울대 갈 실력이 있는 학생에게 어떻게 입시지도를 해야하는가? 학벌체제와 입시경쟁을 거부하기 위해 그에게 서울대를 가지 말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다른 하나는 "학교에서 입시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입시학원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결국 저자가 제시한 판단력의 원칙 중에서 현실적으로 교사가 취할 수 있는 '빠른 길'은 "소극적 실천의 원칙"일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이것을 읽어주고 주지시켜 주어야만 한다. 선택은 아이들의 몫이다.
"학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묻는 것이다. 존재의 신비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놀라움 속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질문하는 것, 그것이 학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내게 다가올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학문이다. ……결과적으로 시험성적이 좋은 학생이든 나쁜 학생이든 학문하기에 본질적으로 부적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상위권 학생들은 물음을 던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묻지 않고, 하위권 학생들은 자신감의 상실과 여기서 비롯되는 삶에 대한 적극적 관심의 결여 때문에 물음을 던질줄 모른다. 그 결과 대다수 한국의 대학들은 정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더 이상 학문의 전수가 이루어질 수 없는 불모지들이다."(p.305, 306)
[인상깊은구절] "학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묻는 것이다. 존재의 신비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놀라움 속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질문하는 것, 그것이 학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내게 다가올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학문이다. ……결과적으로 시험성적이 좋은 학생이든 나쁜 학생이든 학문하기에 본질적으로 부적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상위권 학생들은 물음을 던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묻지 않고, 하위권 학생들은 자신감의 상실과 여기서 비롯되는 삶에 대한 적극적 관심의 결여 때문에 물음을 던질줄 모른다. 그 결과 대다수 한국의 대학들은 정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더 이상 학문의 전수가 이루어질 수 없는 불모지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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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력을 바탕으로 한 20세 전후의 한 번의 시험으로 20세 이후 개인의 능력이 규정되어 버리는 사회. 이것이 바로 '학벌사회'의 한 단면이다. '학벌'이 독점적 지위와 구조로 자리잡고 대학서열체제의 기반으로 사회 전체를 규정함으로써 입시지옥과 사교육 광품의 근원을 형성하고 있다. 도대체 '학벌'이란 무엇이고 '학벌사회'란 무엇인가? 그 학문적, 철학적 기반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껏 강준만, 김동훈, 김경근, 정진상 등이 출간한 학벌사회와 서울대 독점, 대학서열체제 등에 대한 책을 읽어보았지만 아직 학문적으로 그 근원을 헤집고 들어간 교수나 학자는 없었다. 김경근 교수가 <대학 서열 깨기>(개마고원, 1999)에서 '학벌'이 '재벌'과 비슷하게 한국 고유의 존재양식임을 주장했고, 김동훈 교수가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에서 '학벌'을 조선 후기 '문벌'에서 뿌리가 이어져 온 것이며 따라서 '학벌'이 한국사회를 '신분사회'로 기능토록 한다고 주장했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학문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학벌과 학벌의식, 학벌사회에 대한 철학적 탐구 결과라 할 수 있다. '학벌'을 단순히 한국 고유의 사회적 특징이나 특수현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 문제의 철학적, 학문적 뿌리까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학벌'이 사회적 실체로서 존재함을 철학적으로 분석하여 개념을 규명한다. "학벌이 이렇게 공유된 학벌의식에 의해 결속된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어떤 지속성을 갖는 집단적 주체가 될 때, 이 주체는 사회 속에서 일정한 질량과 외연을 가지고 작용하는 사회적 실체가 된다." 그만큼 저자는 문제를 문제로서 인식하기 위해 '실체'로서 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학벌'이 통상 진보학계에서 근대 산업사회(자본주의사회)의 사회적 구조를 분석하는 틀인 '계급'이나 봉건적 사회구조인 '신분'과 일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한국사회의 구조적 실체라 주장한다.
"학벌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급도 아니고 신분도 아니다. 학벌이 사회적 불평등의 기제인 한에서 우리는 그것을 계급이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번 정해지면 다시 새로운 학벌을 얻지 않는 한, 변치 않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계급과는 다르다. .... 이처럼 계급과 개인의 귀속관계는 본질적으로 우연적이며 유동적이다. 그러나 학벌은 다르다. 특정 학벌에 대한 귀속관계는 한번 정해지면 다른 학벌을 얻기 전까지는 결코 변하지 않는 영구적 관계이다. 학벌이 좋든 나쁘든 그것이 이처럼 개인의 변치않는 규정인 한에서 그것은 같은 사회적 차별의 기제라 하더라도 계급보다는 신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학벌차별은 계급적 차별보다 훨씬 더 나쁘다. 계급과 달리 학벌은 한번 정해지면 변치 않는다. 한번 지배학벌에 속한 사람은 영원히 그 지배학벌에 속하며 한번 낙오한 사람은 영원히 피지배계급에 머무른다. 이처럼 학벌경쟁에는 이른바 패자부활전이 없다. 스무 살 전후 한 번의 경쟁에서 뒤처지면 영원한 노예의 낙인이 찍히는 사회가 한국이다. 이런 학벌의 고정성 때문에 학벌경쟁은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무한경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이 온갖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이처럼 학벌이 근대적 계급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봉건적 신분에 더 가까운 개인의 고정된 지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벌은 개인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신분이라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굳이 학벌을 신분이라 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후천적 신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학벌이 계급과 똑같지도 않고 신분과도 똑같이 않다는 것은 학벌문제가 한국사회 고유한 불평등 기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벌차별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서도 유사한 것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사회 특유의 차별기제인 것이다."(p.123)
철학적 분석으로 들어가면 자못 심각해진다. 주체와 주체성, 홀로주체성과 서로주체성, 서로주체성과 사회적 주체성, 시민적 주체성, 공동주체성 등... 이런 철학적 개념으로 들어가면 조금 머리 아프긴 하다.ㅋ "이처럼 보편적 사유가 아니라 자기중심적 욕망을 매개로 형성된 '우리'의 집단의식 속에 진정한 주체성이 설 자리가 없다. 욕망이 그 자체로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유하지 않는 욕망은 굴레이다. 그때 욕망은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인간을 구속한다. 그런데 학벌은 처음부터 자기이익의 극대화 이외에는 아무런 보편적 이상도 담지할 수 엇는 왜곡된 공동주체이므로 참된 의미의 사유와 양립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학벌과 자기를 긴밀하게 동일시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탐욕스러워지고 더 멍청해지며, 마지막에는 더 노예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노예적 정신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주는 학벌의식은 더 이상 깨어있는 사유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야수적 욕망과 모호한 감정일 뿐이다."(p.205)
저자는 '학벌'의 철학적 개념규정에 근거하여 '학벌의식'과 '학벌사회'를 설명하고, 학벌이기주의의 구체적인 실태와 학벌사회 및 학벌독점 문제가 결국 서울대의 문제라는 것을 밝힌다. 한국의 경우 '학벌'이 권력과 자본의 '공속'으로 진화하고 있고, 학벌이데올로기와 학벌독점의 사회문화가 어떻게 학벌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유지, 강화하는지 그 연관성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학벌사회가 공교육을 어떻게 파탄시키는지도 과목별로 예를 들어 설명한다. 전인교육도, 전문교육도 아닌 입시교육의 폐해는 학생들에게 '생각의 힘'을 말살시키고 '도덕'을 파탄시키며 공동체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한다.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교육의 존재가치를 없애버려 아이들이 예술을 멀리하도록 만들고 인간성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움'에 대해 무능한 존재로 양육한다.
제목이 말해주듯 저자는 오랫동안 고착화되어온, 최고의 학벌을 얻기 위해 인류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삼는 만연된 사회풍조를 가리켜 '학벌사회'라 규정한다. 그리고 심각한 교육문제의 근본 해결점을 철옹성 같기만 한 '학벌서열'의 타파에서 찾고 있다. 나아가 문제의 거점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학벌이자 명문 서울대에 문제의 방점을 찍는다. 이 책은 학벌문제에 대한 그 동안의 선행연구를 정리함은 물론, 구체적 통계자료들을 들어가며 사회 각 분야에서 일부 학벌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고 지배되는 현상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학벌문제로 상징되는 우리 교육문제의 실상을 폭넓게 연구한 본격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교육의 이념을 새롭게 되새겨볼 뿐만 아니라 '대학과 전문대학의 혼성모방', '반수와 편입시험 몰두', '학문의 식민성' 등 학벌이 야기하는 대학교육의 위기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서울대 학부폐지', '대학평준화 정책', '지역별 공직할당제' 등으로 대변되는 학벌타파의 구체적 대안들을 꼼꼼히 제시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 교육경쟁력의 강화는 무엇보다 국가의 부강과 직결되는 문제다.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최선을 다해 그들을 교육하고 사회 적재적소에 진출시킴으로써 우리 사회는 당당히 앞선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력과 권력을 얻기 위한 맹목적 인류대 선호 심리와 서열 위주의 치열한 입시경쟁은 사회를 황폐하게 만들 뿐 국가경쟁력과는 역행한다. 사회로서는 개인 능력의 지표가 학벌 밖에 없는 현 상황을 타개해야 하고, 개인으로서는 다양한 삶의 선택을 볼 줄 아는 자기의식과 안목을 키워야 할 것이다. 대학은 자율화와 특성화 교육으로 고유의 경쟁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교육은 10년의 큰 계획이라 했던가. 정부는 하루아침에 피고지는 꽃처럼 단기성 정책을 남발하지 말고, 나무 한 그루를 심고 키우듯 앞을 내다보는 정책으로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일, 특히 학벌타파를 위한 대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우리 각자가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고 작은 실천이라도 즉시 행할 때 가능한 일이다. "애교심과 동문애가 진리에 대한 열정을 지양해버린 이런 나라에서 제대로 된 학문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 나라에서 발전하는 것은 학벌이요, 죽어가는 것은 학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이 어디 대학사회뿐이겠는가? 일과 뜻에 따라 모이지 못하고 학벌에 따라 뭉치고 헤어지는 씨족사회에서는 건강한 시민사회도 건강한 나라도 모두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가족적 유대를 갈구한다. 그러나 확장된 현대사회에서 그것을 채워주는 것은 학벌 밖에 없다. 그리하여 학벌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동문, 선후배를 찾아 결속하고 이를 통해 자기 이익을 도모한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떤 공동체에 들어가든 그것을 공동의 목표와 이념을 추구하는 통일된 공동체가 아니라 이기적인 학벌문중들의 각축장으로 해체해버린다. 그리하여 학교도, 회사도, 정당도, 정부도, 아니 각종 시민단체조차도 경쟁하는 학벌문중들의 불안정한 연립체로 전락한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학벌이란 우리나라 봉건적 가족주의가 현대적 옷을 입고 다시 불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흔히 학벌문제를 근대화의 불가피한 산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애기다. 문벌이 학벌로 탈바꿈한 것은 분명히 근대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문벌이든 학벌이든 그 형태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가족적 공동체라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전근대적인 공동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학벌체제를 타파하는 것은 차별과 불평등을 철폐하기 위한 일종의 계급투쟁일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의 전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문화혁명이다."(p.217)
[ 2012년 7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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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교육이라고 말한다. 입시교육. 교육에 있어서, 경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대를 중심으로 서열화된 대학. 대학은 학문을 탐구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라 권력을 얻기 위한 기관이 되어버렸다.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 학벌. 한국사회를 다른 사회와 구분지을 수 있는 기준이 학벌이라고 말한다. 학벌체제를 타파해야 본질적인 교육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대학평준화를 주장한다. 다시 한번 재독할만한 가치가 있다. 품절된 것이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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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서울대출신이 유무형의 권력과 사회적 자본을 독과점하는 권력집단의 재생산 장치가 되었다. 지방출신 서울대생이 아무리 적다고해도 그들이 학업을 마친후 서울에 그대로 눌리앉는게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대부분의 선생님들 촌지받으시고 적극적인 선생님들은 직접 학생들집 찾아다니면서 수금하십니다 또 잘살던못살던 학부모들 대부분 촌지 상납합니다. 이런 뇌물관행이 제일 먼저 지적되어야할 부분입니다. 저도 고3때 담임선생님이 자신에게 고액과외 안받으면 원서 안써준다고해서 1년간 강제로 받은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이사람 그런돈 모아서 대학교수자리 하나 얻었다고합니다.☆☆ 김수로씨가 주연한 ㅡ 울학교 이티 ㅡ 에서 반장에게 통장을 건네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건 따뜻한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아무리 일지매 흉내를 내도 도둑은 도둑입니딘. 학부모들이 탐관오리입니까 악질지주입니까. 촌지 거둬 통장만들어 가난한 학생돕는게 자랑은 아닙니다.○○ 학문이 권력획득의 수단이 되면 반드시 부패한다.ㅡ 좋은 지적입니다. 학교교육에 대한 책을 읽을때마다 고쳐야할 난제가 태산이다.사교육의 원인이 학벌사회외 대학서열이다 지적은 아주 좋았습니다. 현실에 대한 반성도 좋았습니다.♡♡ 예를들자면 공직자 지역할당제 좋았습니다. 입사원서에 출신학교난과 출신지역난을 삭제한다든지 좋았습니다. 한국인10명중 4명은 1년에 책을 한권도 안읽고 독서량은 가나나 앙골라보다 아래라고합니다 이것도 학교책임입니다 지적 부탁드립니다 ○○ 초겨울에 자미원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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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만큼 대학이 서열화 된 곳이 있을까? 우리 뇌리엔 스카이 서성한 중경외시~~와 같은 대학 서열들을 줄줄이 외우고 있는 나라가 있을까? 가끔 그런 학벌 사회에 답답함을 느끼며, 정말 학벌이라는 것이 합리적 차별인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그런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할때, 역시 사회의 현실을 예리하게 분석해 주는 책 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래서 읽은 책이 김상봉 교수의 학벌 사회다.
김상봉 교수는 전남대학교의 철학자이다. 그는 우리사회 교육의 문제는 학벌이며, 학벌 때문에 고등학생 뿐만이 아니라, 초등학생까지도 학업스트레스를 받으며 자살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의 저작에서 가장 충격적인 예시는 이런 것이다. 초등학교 오학년의 학생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그의 유서에는 ' 아빠도 8시간을 일하는데, 왜 초등생인 나는 12시간을 넘게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물고기 처럼 자유롭게 살고싶다.' 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가 학벌사회를 분석하는 틀은 그의 직업대로 철학이다. 철학으로서 우리 사회 공동체가 가져야 할 이상 이라는 것이 있는데, 학벌사회는 그 이상을 이루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의 이상은 아마도 그리스식의 도덕적인간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도덕보다는 학벌을 우선적 가치로 새우고 있고, 상위 학벌을 가지지 못한 인간은 가치가 없는 인간으로 취급받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의 책을 읽으며 느낀 단상은 그의 책이 학술서 처럼 예리하게 사회를 분석하기도 하지만, 감정적인 감동 조차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단 한번 읽었지만, 보다 더 꼼꼼이 다독하여,자세한 리뷰를 쓰겠다. |
| 김상봉은 철학자이다. 이책은 그동안 그가 학벌없는 사회를 통해서 사상의 나래를 폈던 것을 정리한 책이다. 책을 보면서 느끼겠지만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벌이라는 실체없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는데는 마땅한 어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는 학벌사회는 결국 서울대의 사회임을 지적하고 이런 한 대학의 패권주의를 인륜공동체를 헤치는 것이고 근대화의 저해요인이다고 주장을 펼친다. 그의 이론의 근거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있고, 그 안에는 그 나름의 사상체계인 사회적 주체성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주체성은 세가지로 하나는 홀로주체성, 또하나는 간주체성, 세 번째는 우리라는 틀안에서 파악되는 사회적 주체성이라는 것이다. 서로 주체성인 상대를 인격적 존재로 만나는 것으로 이런 사상적 배경안에서 윈윈을 위한 전략을 펼칠때 학벌사회의 틀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펼친다. 그러나 그는 정책을 철폐하기 위해 또 정책을 펼치고 있다. 답답스럽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