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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question of God-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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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목은 "The question of God"이다. 과연 하나님은 존재하시는가? 신이 존재하며 그의 선하심을 믿는 영적세계관(유신론)과 신같은 "동화적인" 것은 없으니 그런 헛소리말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무신론을 비교, 검증하며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게 만든다. 두 사상의 거두인 프로이트와 루이스를 모델로 그들의 저서, 서신, 친구들의 말, 그들의 행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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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목은 "The question of God"이다. 과연 하나님은 존재하시는가? 신이 존재하며 그의 선하심을 믿는 영적세계관(유신론)과 신같은 "동화적인" 것은 없으니 그런 헛소리말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무신론을 비교, 검증하며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게 만든다. 두 사상의 거두인 프로이트와 루이스를 모델로 그들의 저서, 서신, 친구들의 말, 그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과연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까운가를 조금씩 더듬어간다. 따라서 이 책의 한글제목인 루이스 vs 프로이트는 이 책의 주제라기보다는 이 책이 "하나님"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나타내는 것이다.(물론 The question of God보다 훨씬 자극적인 제목이고 따라서 판매부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나도 어느정도는 제목에 혹해서 샀다;;; 워낙 루이스의 저서를 좋아하기 때문에^^;) 일단, 이 책을 읽고 난다음의 느낌은 "놀라웠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철학은 그 바닥까지 철저하게 꿰뚫고 있음이 분명했다. 두 천재의 저서를 자유자재로 인용해서 일관성있게 책의 내용을 서술하는 것은, 본질적인 이해가 없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철저하게 상충되는 두 이론을 모두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 저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도...사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흔히 말하는 바로 "꽉 막힌" 기독교인이었다. 나의 신앙만이 진실한 것이며, 따라서 다른 이들의 말은 들을 가치조차없다는...소위 "무례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보면 그것은 나의 신앙이 너무나 약하고 뿌리가 얕은 탓에, 약간의 바람에도 흔들려 무조건 방어하려고 했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런 태도가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른 생각들도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더욱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루이스도 회심 이전엔 골수 무신론자이지 않았는가. 믿기 이전에 신에대해, 삶의 의미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고 비판하고 고뇌했던 바로 그 덕분에 그의 신앙이 훨씬 더 성숙하게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같은 전투적인 열혈신자(?)가 하나님을 격렬하게 부정하는 자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나니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이 책을 읽고, 내가 그동안 생각해오던 편협한 하나님을 떠나서 열린 눈으로 아무런 선입견없이 진정한 하나님을 알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책은 기존신자에게는 다시 한번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다시금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되며,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 그 방향을 절실히 탐구하는 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a******n 2004.12.16.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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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대논쟁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대논쟁" 내용보기
신의 존재.사랑.성.인생의 의미에 관한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대논쟁 바로 이 책의 부제이다   역사상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신의 존재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궁극적인 질문에 답하려고 애썼다 더 이상 새로운 논변이 어느쪽에서도 제기될 것 같지 않았지만, 20세기에 신을 믿는 쪽과 믿지 않는 쪽에 서 새롭고 재치 있고 오래 지속되는 논변들을 제시하는 두 사상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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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사랑.성.인생의 의미에 관한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대논쟁

바로 이 책의 부제이다

 

역사상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신의 존재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궁극적인

질문에 답하려고 애썼다

더 이상 새로운 논변이 어느쪽에서도 제기될 것 같지 않았지만, 20세기에 신을 믿는

쪽과 믿지 않는 쪽에 서 새롭고 재치 있고 오래 지속되는 논변들을 제시하는

두 사상가가 등장했다.

 

이제껏 C.S.루이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보다 더 탁월하게 자신의 입장을 옹호한

사상가는 없었다

 

이 책 [루이스 대 프로이트]는 프로이트가 논증을 펼치면 루이스가 반론을 제기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형식으로 되어있어 마치 둘이 함께 강단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그들, 두 사상가의 논쟁이 가감없이 드러남으로써 독자들은 관중석에 앉아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대결의 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아맨드 니콜라이 교수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25년이상,

두 인물의 저술들을 연구하고 각각의 세계관을 비교하는 인기있는 강의를 해왔다

 

[루이스 대 프로이트]는 어느 것이 정답인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쓰여진 신앙과 불신앙에 대한 책 중에서 최고일 것이다.

 

결국 독자들은 하버드의 니콜라이교수의 수강생들처럼 마지막에 가서야

어느 길을 따라야 할 지 스스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두 천재들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이 무엇을 갈망하며 추구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니콜라이 교수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신념을 탁월하게.. 비교하여 보여주고 있다

 

나는 끝까지 이 책을 놓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존경해 왔지만,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C.S.루이스에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자 택일의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철학과 논리,

세계관이 너무 논리적이고 학문적이며, 체계적이기에 각각의 패러다임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유신론자가 무신론자가 되거나, 그 반대가 되는 경우를

기대하기 보다는...  루이스이던, 프로이트이던... 두 천재의 발자취에서 묻어나오

는 그 지적인 쾌락을 누릴 수 있으면 그만일 것이다

 

공정하고 학문적이며 객관적인 책이 있는가 하면,

도전적이고 흥미를 끌며 주관적인 감동으로 이끄는 책이 있다

이 두가지를 다 갖춘 책이 있다면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책 [루이스 대 프로이트]가 그런 책일 것이다

 

의식있는 독자의 일독을 권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n 2009.01.08.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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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과 무신론자 천재의 지적 토론장
"유신론과 무신론자 천재의 지적 토론장 " 내용보기
두 천재가 만들어 낸, 전혀 다른 두 세계 오래간만에 모든 지적인 에너지를 다 동원해서 한자 한자를 골몰하며 읽어야 할 책을 만났다. 세기적 천재였던 두 사람의 전혀 다른 생각 - 유신론과 무신론 - 속에서 그들과 함께 그들의 품었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고민해볼 기회를 가지는 기회였다. 그리고 그들이 각각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었는지에 대해서 들었고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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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천재가 만들어 낸, 전혀 다른 두 세계 오래간만에 모든 지적인 에너지를 다 동원해서 한자 한자를 골몰하며 읽어야 할 책을 만났다. 세기적 천재였던 두 사람의 전혀 다른 생각 - 유신론과 무신론 - 속에서 그들과 함께 그들의 품었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고민해볼 기회를 가지는 기회였다. 그리고 그들이 각각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었는지에 대해서 들었고 그들이 말하는 논리 속에서 함께 고민하며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오래간만에 오래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뇌의 다른 부분까지 동원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이 시대에 가장 높은 수준의 대학에서 펼쳐진 한 학기의 강의를 함께 청강하는 기분이었고, 노트를 펼쳐서 정리하면서 수업을 듣듯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책이었다. 수업은 흥미로웠고, 진지했으며, 재미있었고, 결론적으로 유익했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주제 안에서 주인공이 될 프로이드와 루이스의 생애에 대한 설명과 그들이 생각하는 창조자, 도덕률, 삶의 가치와 변화 에 대한 믿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철학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고, 깊이에의 고민을 했던 인간들의 공통적인 평생의 고민거리였던 그 기본적인 삶의 근저가 되는 명제들에 대해서 두 명의 천재가 생각했던 근거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즉 1부를 통해서 이 책은 무신론자와 유신론자가 되어 그들이 세계를 바라보기 전, 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부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고민으로 넘어간다. 행복, 성, 사랑, 고통, 죽음 이라는 인생의 가장 굴직해 보이는 주제들에 대해서 두 사람의 천재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들의 삶과 더불어 설명해주고 있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겪는 이 통과 의례와 같은 주제들에 대해서 두 사람은 철저하게 자신이 믿는 대로 살았고, 그 믿음에 근거들을 제시하는데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동원했었음에 대해서도 볼 수 있었다. 둘다. 자신이 말한 것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치열하게 노력했으며 그러한 부분에서는 둘 다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 책에 대한 출판사의 설명과는 달리 프로이드와 루이스의 논쟁에서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지도 않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쓰인 책은 아니다. 프로이드의 영향을 받은 루이스가 프로이드에 대해 논박할 수는 있었지만 이미 전시대의 사람인 프로이드가 루이스의 생각에 반론을 제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그 당시의 유신론자들에 대해서 반론을 제시했었고, 프로이드로 대표되는 무신론에 대해서 루이스는 보다 체계적으로 반론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인물의 그러한 배경 때문에 이 책은 - 이 책의 저자가 기독교인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 프로이드와 루이스의 논쟁에서 대부분 - 전부라고 해도 되겠지만 - 루이스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이러한 유신론적 주장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류의 다른 책들과는 철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적어도 무신론을 주장하는 이의 주장을 가치 폄하하거나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존재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무신론을 고수하며 죽어간 프로이드가 왜 무신론자였는지 그의 사상과 생각 속에 무신론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공감할 만큼 철저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무신론자가 무신론자 일 수 있는 합당한 이유들에 대해서 이 책은 사실적이고 합리적으로 풀어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정독하며 여러 부분에 밑줄을 그어가며 연습장에 두 사람의 생각들을 표로 구분하면서 읽는 가운데 무신론자로 시작한 프로이드와 루이스가 한명은 무신론자의 대표자로 다른 한명은 기독교 변증가의 대표자로 세워지게 된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프로이드를 찾아온 수많은 신앙적 갈등의 순간에 그가 계속해서 ‘신의 부정’의 길을 고수했던 모습을 봤다. 그런 프로이드가 죽는 날까지 나는 무신론자라고 말하며 신의 부정에 대해서 외쳤던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그 신에 대한 고민 속에서 신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가여운 천재의 모습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졌었다. 이 책의 정독을 권한다. 하버드에서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표적인 주장들에 대해서 주장했던 두 천재의 논쟁 속에 빨려 들어가 그들과 함께 ‘내가 믿게 된 하나님’을 향해 감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무시할 수는 있으나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피할 수는 없다. 세상은 그분의 존재로 가득 차 있다. 그분이 도처에서 신분을 숨기고 걸어다니신다. 그분이 숨기는 신분을 파악하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다. 깨어나야 하고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l******s 2004.12.09.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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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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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 제목이 상당히 거시기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해서 읽은 이유 1. C.S. 루이스에 대한 관심 2. 저자 : 저자가 어설픈 신학자, 목사였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텐데, 하버드 의대의 정신과 교수가 쓴 책이라서.... 3. 이 책의 내용을 저자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책의 주제로 25년째 강의를 했고, [하버드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강좌' 평가받는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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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 제목이 상당히 거시기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해서 읽은 이유 1. C.S. 루이스에 대한 관심 2. 저자 : 저자가 어설픈 신학자, 목사였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텐데, 하버드 의대의 정신과 교수가 쓴 책이라서.... 3. 이 책의 내용을 저자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책의 주제로 25년째 강의를 했고, [하버드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강좌' 평가받는다]라는 소개 때문에 - 물론 이 말을 순진하게 믿지는 않았다. 만약에 진짜로 하버드 대학의 인기 강좌라면 책이 그만큼 읽을 만하다는 소리일 것이고, 거짓말이어도 (적어도 하버드에서 강의를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닐 것 같다) 미국내 지식사회의 보수화와 기독교화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같아서 그걸로 만족 이제 책의 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자면,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C.S. 루이스와 프로이트 두명의 세계관을 비교하는 책이다. 두명은 젊은시절 상당히 유사한 경험들을 하며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살아왔다. 그런데 루이스는 이른바 회심을 하고 기독교인이 되었고, 프로이트는 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철저한 무신론자로 남았다. 무엇이 이 두명을 다른 길로 인도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시작으로, 과연 두 사람의 세계관(더 나아가서, 무신론자와 기독교인의 세계관)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연구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과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그들의 인생을 어떻게 인도해왔는지 실제로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왔는지에도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대충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지 알 수 있다. 1부 :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1. 주인공 -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의 생애 2. 창조자 - 우주 너머에 지성적 존재가 있는가? 3. 양심 - 보편적 도덕률이 있는가? 4. 위대한 변화 - 실재에 이르는 길은 어느 것인가? 2부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5. 행복 -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의 근원은 무엇인가? 6. 성 - 쾌락의 추구가 우리의 유일한 목적인가? 7. 사랑 - 모든 사랑은 승화된 성인가? 8. 고통 -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9. 죽음 - 죽음이 우리의 유일한 운명인가?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서 루이스와 프로이트가 쓴 책, 편지등에서 여러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책의 3분의 2정도가 두 사람 책의 인용이다.) 가급적 저자의 해석을 자제하며 전개한다. 물론 저자는 루이스의 편이다. 그러기 위해서 책을 쓴 것이니까.... 한마디로 요약해 보자면, "프로이트가 여러가지 대단한 주장들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그의 삶을 보자. 그는 정말로 불행하게 살았다. 과연 그가 옳은 것일까? 신이 없다고 믿으며 살았다면, 자유와 기쁨 속에서 행복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그는 그렇게 불행했을까? 그런데 루이스는 좀 달랐어"라는 것이 저자의 마음인 것 같다. 본인처럼 루이스라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추천... 프로이트에게 관심이 많은 분이시라면 비추...
a*******e 2005.04.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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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과 유신론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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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과 무신론. 두 논쟁은 지금도 대립하고 있죠. 유물론적 과학주의 세계관에 젖어 있는 이들은 인간의 이성과 지식 습득만을 제일로 여기지만, 영적인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신의 존재는 물론이고 그로부터 파생된 도덕적인 진리와 옳은 행위까지도 모두 수용하죠. 가끔 유신론에 젖어 있다가 무신론으로 이탈한 이도 있고, 무신론 속에 있다가 유신론으로 돌아선 이들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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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과 무신론. 두 논쟁은 지금도 대립하고 있죠. 유물론적 과학주의 세계관에 젖어 있는 이들은 인간의 이성과 지식 습득만을 제일로 여기지만, 영적인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신의 존재는 물론이고 그로부터 파생된 도덕적인 진리와 옳은 행위까지도 모두 수용하죠.

가끔 유신론에 젖어 있다가 무신론으로 이탈한 이도 있고, 무신론 속에 있다가 유신론으로 돌아선 이들도 있죠.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5.6~1939.9.23)와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1.29~1963.11.22)가 대표적인 인물이죠. 프로이트가 유대교 집안 배경에서 무신론으로 박차고 나온 경우라면, 루이스는 기독교 세계관에서 무신론으로 나왔다가 다시금 하나님께로 회귀한 예지요.

1999년 3월의 <타임>지는 프로이트를 20세기 과학자 100명 중 6번째 인물로 손꼽기도 했죠. 그의 이론이 전기·문학비평·사회학·의학·역사학·교육학·윤리학 심지어 법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겠지요. 그의 <꿈의 해석>과 <정신분석학 소론>은 모든 학자가 한 번씩은 거쳐야 하는 책이지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인기의 행동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그의 정신분석 개념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요. 다만 그가 남긴 지적 유산 중에는 무신론적 인생철학, 곧 '과학적 세계관'은 신앙과 양립할 수 없는 갈등 관계로 남아 있죠.

그에 비해 루이스는 어떤 인물일까요? 사실 그는 프로이트에게 비길 만한 인물은 아니겠지요. 나이도 24년이나 차이가 있죠. 하지만 루이스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로 알려졌죠. 1963년 11월 25일의 <뉴욕 타임스>에 케네디 암살 기사가 올라왔을 때 그의 이름이 표제로 도배되기도 했었죠. 더욱이 그의 <나니아 연대기>는 전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유명한 동화지요. 그뿐만 아니라 <고통의 문제>나 <예기치 못한 기쁨>도 꽤 많이 읽히고 있는 책이고요. 그가 무신론에 머물다가 유신론으로 회귀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들을 담아내고 있는 까닭이겠지요.

"프로이트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개념과 믿음의 기초가 되는 강렬하고 깊이 자리 잡은 소망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이미지(형상)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부모의 이미지로 창조한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어렸을 적 부모의 이미지로 하나님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프로이트는 '종교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포기하고 철 좀 들라고 우리에게 충고하지 않을 수 없다.

C.S. 루이스는 성경적 세계관이 상당한 절망과 고통을 수반하며 결코 사람이 소망하여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프로이트의 소망 충족 논증에 맞섰다. 아울러 성경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길은, 인간이 깊은 고뇌에 차 있고 도덕률을 범했으며 용서와 화해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자각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했다(63쪽)."

하버드 의대의 정신과 교수로서, 25년 동안 루이스와 프로이트의 대립되는 세계관을 비교 강의한 아맨드 M. 니콜라이의 <루이스 VS. 프로이트>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그야말로 루이스로 대변할 수 있는 '믿는 자'와 프로이트로 대변되는 '믿지 않는 자' 사이의 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라 할 수 있죠. 대립되는 두 세계관의 관점으로 인간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토록 해 주고 있지요.

신에 대한 이해는 둘 사이가 그렇게 갈리지요. 프로이트는 하나님을 유아기에 겪은 부성(父性) 인식이 성인기의 '보호 기제 투사'로 만들어낸 '유치증 상태의 고착'이라고 하죠. 그것이 신앙 자체를 '대중 망상'으로, '인간의 보편적 강박신경증'으로 바라본 이유지요. 하지만 루이스는 비록 그런 갈망과 소망으로 인간이 위안을 얻고자 해도 결코 충족되지 않는 또 다른 외적인 위안이 있다고 하죠. 인간의 망상이나 강박신경증으로 고착시킬 수 있는 기제가 아니라 외적인 실체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은총이 그것이지요.

"프로이트는 개인에게 있는 본능적 만족감의 결핍은 만족의 필요를 더 많이 의식하게 함으로써 죄책감을 더 느끼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성자들이 특히 본능을 만족시키고픈 유혹에 상당한 정도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신을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틀리지는 않다. 잘 알려져 있듯이 유혹은 계속적인 좌절에 의해 증가되는 반면에 유혹을 이따금씩 만족시키면 적어도 당분간은 감소한다.'

루이스는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사람은 더 나아질수록 자기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악을 더욱더 명확히 이해한다. 반대로 더 나빠질 때는 자신의 악을 점점 더 이해 못 하게 된다. 적당히 나쁜 사람은 자신이 아주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철저하게 나쁜 사람은 자신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은 선과 악 양자에 대해 알지만 나쁜 사람은 둘 다 모른다'(102쪽)."

보편적 도덕률, 이른바 '양심'에 관한 둘의 차이를 설명하는 니콜라이 교수의 관점이죠.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를 통해 '양심의 가책'을 이야기하지만 '교육받은 이성' 곧 '내면화된 힘'만 있으면 얼마든지 고상한 도덕률을 지킬 수 있다고 하고,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를 통해 인간 안에 있는 '무시무시한 악성'으로 인해 '외부의 도움'에 의해서만 그 도덕률을 지켜나갈 수 있다고, 바라본 것이지요.

아울러 '행복'에 관해서도 둘은 차이가 있다고 하죠. 프로이트는 행복이 부부의 '일시적인 성적 쾌락'에 기인하지만, 루이스는 두 사람이 연인으로서 절제하고 성실하고 서로 순응하는 '연합'에 의해 깃든다고 하죠. 그런데 재밌는 게 있죠. 평생토록 성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프로이트의 결혼 생활이 전통 규범을 고수한 것으로 드러났고, 그의 6남매 아이들에게도 자위행위를 엄히 경고했다고 한 게 그것이죠. 그의 성생활도 83년의 인생 중에 단지 10년으로만 제한했다고 하고요. 그에 비해 자위행위에 죄의식을 품지 않았던 루이스는 처음에는 친구였다가 나중에 연인이 된 '조이 데이빗먼'과 함께 노년에도 성적 활력을 활발하게 즐겼다고 하죠.

그렇다면 프로이트와 루이스를 둘러싸고 있던 어린 시절의 종교적 배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들이 예배당에 나가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했는데, 왜 그들 두 사람이 성년기에 무신론으로 돌아섰던 걸까요? 정확하게 꼬집는다면 그런 게 아닐까요? 둘 다 '비본질적인 종교성'에 기인하고 있었다는 것 말이죠. 비록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예배당의 종교적인 분위기에 젖어들었지만 주님의 실체를 만나지는 못한 것 말이죠. 그것은 사회적인 체면을 위해 종교 행사에 참여하는 성인들의 모습과도 같지 않을까요?

다만 프로이트는 성인이 되어 그런 형식들을 박차고 무신론으로 빠져나갔다면, 루이스는 그런 형식들을 박차고 나왔다가 다시금 '본질적인 종교성'을 회복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을 주된 동기로 삼고 그분과의 온전한 연합을 '기쁨'으로 여기는 순전한 신앙인 말이죠. 이 책은 그런 부분까지 이해시켜 주고 있으니, 정말로 탁월한 책이 아닐 수가 없네요. 어쩌면 같은 하버드 대학에 몸담고 있는 마이클 샌델의 강의와 견줄 만한 강의이지 않을까 싶어요.

s*****e 2012.06.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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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계관의 대결, 그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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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대표적인 유물론자인 프로이트와 회심 후 많은 강연과 책들을 통해서 영적 세계관을 설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C. S. 루이스의 책과 편지들을 바탕으로 두 세계관을 비교, 대조하는 작업이 담겨 있는 책이다. 하버드에서 실제로도 같은 주제를 놓고 오랫동안 강의를 해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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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대표적인 유물론자인 프로이트와 회심 후 많은 강연과 책들을 통해서 영적 세계관을 설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C. S. 루이스의 책과 편지들을 바탕으로 두 세계관을 비교, 대조하는 작업이 담겨 있는 책이다. 하버드에서 실제로도 같은 주제를 놓고 오랫동안 강의를 해온 저자답게 양측의 주장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설명해내고 있다.

 

 

 

2. 감상평 。。。。。。。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보통 이렇게 같은 책을 바로 반복해서 독서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모두 다 2박 3일 동안 데려다 놓고는 딱히 별로 할 일이 없어서 가지고 간 책 밖에 볼 수 없도록 만든 예비군 훈련 때문이다.;; 아무튼 뭐 덕분에 아주 제대로 정독을 할 수 있었으니까.

 

 

     다양한 세계관들이 있지만, 역시 크게 나눈다면 유물론적 세계관과 유신론적 세계관이 있다. 유물론적 세계관 위에 과학주의적 세계관을 비롯한 다양한 증거주의적, 또는 환원주의적 세계관들이 있고, 유신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는 여러 종교들의 세계관들이 꽃피우고 있다.(물론 이 책에서 루이스는 유신론적 세계관 중에서도 기독교 세계관의 입장에 서 있다) 문제를 늘 단순하게 해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쪽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으로, 다른 쪽은 그저 신앙적이거나 맹신적인 것으로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뭐 그건 자신들이 사안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음을(혹은 그럴 능력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지 실제의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프로이트는 퍽이나 솔직한 유물론자였다. 그는 자신이 분명 어떤 입장을 ‘채택’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고, 자신이 선택한 세계관 안에서 모든 것을 끝까지 해석하려고 애썼던 인물이니까. 분명 그는 자신이 선택한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맹점들과 한계들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어느 지점(예컨대 ‘죽음’과 같은)에 이르러서는 ‘체념’밖에 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한편 C. S. 루이스야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기독교 세계관(그의 용어로는 ‘영적 세계관’)의 대표적인 옹호자이자 변증가다. 이 둘의 대결은 상상만으로도 상당한 지적 즐거움이 예상되는 논쟁인데, 이 책의 저자는 아쉽게도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이 대화를 상당한 정도로 재구성해 낸다. 책은 대체적으로 객관적인 입자에서 양쪽의 입장을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분위기는 루이스 쪽으로 약간 기우는 게 아닌가 싶다. 아마도 각자의 세계관에 충실하게 살았던 두 사람의 실제 삶의 모습이 한족은 깊은 우울감에 빠져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개인적인 성취감에 있어서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던 반면, 다른 쪽은 그가 가진 세계관으로 여러 고통과 아픔들을 이겨내고 삶은 점점 더 생기로 빛나며 주변사람들에게는 유익을, 자기 자신에게는 만족감을 주었으니까. 결국 가장 확실한 증거는 실제 삶의 모습 일 테니 말이다.

 

 

     이 책에서 언급된 C. S. 루이스의 책은 거의 다 읽어봤기에 익숙한 내용들이었고, 주제별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반면 프로이트의 책의 경우는 익숙하지 못했는데, 정신분석을 전공한 저자의 명쾌한 정리 덕분에 대략적인 이해를 얻는 데 도움이 되었다. 세계관에 대한 논의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면, 대조를 통해 서로 다른 세계관의 차이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책일 것이다.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읽고 나면 분명 얻는 바가 있을 책.



p*********n 2012.10.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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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잠잠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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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내게 <아버지를 이해한 아들>로 각인되어 있다.마지막 순간 "주여,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고통에 차서 절규하던 그.그러나 곧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당신의 뜻대로 이뤄지게 하소서라고 말한다.자신의 뜻이 아닌...33살에 아버지(신)의 뜻을 이해하다니.우리 인간사에 그런 인간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당신은 어떤가?당신은 고통의 순간에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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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내게 <아버지를 이해한 아들>로 각인되어 있다.마지막 순간 "주여,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고통에 차서 절규하던 그.그러나 곧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당신의 뜻대로 이뤄지게 하소서라고 말한다.자신의 뜻이 아닌...33살에 아버지(신)의 뜻을 이해하다니.우리 인간사에 그런 인간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당신은 어떤가?당신은 고통의 순간에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머리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던 두 사람을 분석한 책이다.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두드러진 지성의 소유자들이었기에 후대 작가의 소재가 된다는 것이 놀라울 것은 없지만,대척점에 서 있는 분들의 비교라 더 흥미로웠다.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결론이 뻔한 대결,얍삽한 뒷담화만 흥미 위주로만 풀어 냈을 거란 편견,무엇보다 이런 천재들을 정당하게 분석해낼만큼 작가에게 통찰력과 열정과 능력이 있을까에 대한 회의로 외면했던 책. 기우였다.두 분의 생애부터 시작,양심의 문제,신은 있는가에 대한 대답,행복,사랑과 성,고통에 대한 견해들이 일목요연하고 깊이있게 서술되고 있었으니까.읽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다시 말하지만, 좋은 책은 그리 흔한게 아니다.

 

특히 C.S.루이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선명한 통찰력과 놀라운 지성,그리고 따스한 품성과 애틋한 사랑으로 기억되는 그를 다시 보게 되니 뿌듯했다.그리고 루이스의 생각들,내가 어찌 그의 견해에 토를 달겠는가?그저 고개를 끄떡이는게 다였다.풍요롭고 사랑에 가득한 삶을 살았던 그와 비교해,친구를 몰아내고,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며,죽음을 간절히 기다렸으나 불굴의 의지로 80을 넘겼던 프로이트를 보는 것은 약간 미안했다.인류에게 매달린 족쇄 하나를 풀어준 인물임에도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기에.고통스러운 삶을 솔직하고 냉철하게 사셨던 분,어쨌거나 존경스러웠다.두 분의 삶을 비교하면서 '얘들아,인생을 어떻게 사는게 바람직할까?'라면서 손을 루이스쪽으로 가리켜 주는것이 좀 우스웠지만,그거야 각자 판단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현존은 더운 여름날의 새벽처럼 서서히 찾아왔다."하나님을 바라볼 때,내 마음은 더 이상 닫힌 문에 부딪치지 않는다.조이를 바라볼 때,이제 더 이상 공허한 진공을 만나게 되지 않는다....."루이스가 모든 질문에 답을 얻는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그의 말대로,"다소 특별한 종류의 묵묵부답을 받았다."잠긴 문이 아니다.외려 조용하고 분명 동정적인 시선 같은 것,마치 그분이 거절의 뜻으로 머리를 가로 저으시는게 아니라 질문을 유예하시는 것 같은."아들아 잠잠하여라,너는 이해하지 못한다."와 같은...그는 하나님이 우리 믿음이나 사랑의 자질을 알아 보시려고 시험을 하시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 분은 이미 알고 계시니까 모르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고난 차제가 좋은 것이 아니다.고통스런 경험의 유익은 고난받은 당사자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되며 그의 고난을 목격한 사람들은 동정심을 품고 자비로운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

                                                                                                 <본문 중에서, C.S.루이스>

 

 말년의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에 집착한다.그 자신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그의 사랑하는 아내 조이가 암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그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그는 질문한다.신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한다면 왜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하고.나아질 가망성 없는 상실감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는 우리를 대신해 질문을 던진다.감히 예수처럼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말을 내뱉지 못하는 그.나와 닮았다.당신의 뜻대로 라는 말을 할 수 없던 고집스런 당나귀 같던 나.난 그가 내놓은 해답을 본다.잠잠하여라,아직 너는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그말에 난 위안을 얻는다.나 역시도 잠잠해진다.언젠가 이해하는 날이 내게도 올지는 모르겠으나,적어도 지금은 잠잠하리라...루이스는 자신의 고통의 댓가로 얻은 지혜가 다른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아마도,넉넉한 미소를 지으며,마음껏 가져가라고 하겠지 .그것이 바로 내 뜻이었다면서...그의 너그러움에 감사 드린다.

a*******0 2007.09.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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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습 프로이트 루이스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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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을 모아 책을 내는 책이라고 가볍게 여겼다가 내용의 만만치 않음(저자들이 어디 만만한 사람들인가-_-)에 다시 읽다보니 놓친 내용도 좀 있었고 생각이 끊기면 독해가 좀 안되는 부분도 있었다-_-;;   읽다가 생각드는 점 *프로이트 전집을 읽어봐야겠다   *루이스책을 다 사서 봐야 겠다(요새 싸게 보급판으로 나오는게 있더만..)   *프로이트의 삶의 방식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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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들을 모아 책을 내는 책이라고 가볍게 여겼다가 내용의 만만치 않음(저자들이 어디 만만한 사람들인가-_-)에 다시 읽다보니 놓친 내용도 좀

있었고 생각이 끊기면 독해가 좀 안되는 부분도 있었다-_-;;

 

읽다가 생각드는 점

*프로이트 전집을 읽어봐야겠다

 

*루이스책을 다 사서 봐야 겠다(요새 싸게 보급판으로 나오는게 있더만..)

 

*프로이트의 삶의 방식이 내가 그동안 살아온 방식과 비슷하더라. 내가

쿨하게 살아가는 방식의 결말이 결국은 프로이트 발뒤꿈치도

못따라가겠구나..근데 이 프로이트 선생조차도 이렇게 불행하게

가슴아프게 살았다니.. 연민이 간다.

 

*루이스가 자신의 생각을 明徵하게 드러내는 글쓰기의 방식을 배우고 싶다. 이정도 내공이 되는 사람이야말로 회의자를 위한 사도가 되겠구나싶었다.

 

*생각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깔린 유물론적 철학관이 빈약한 것이구나 .. 루이스의 유신론 논변이 훨씬 꽂힌다.

 

 

*내가 그동안 신앙에서 갈팡질팡했던 걸 이책을 계기로 자신감을 가지고

..사실 기독교신앙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거든.. 근데 그렇게 된

배경을 조금 생각해보니 어렸을때 교회에서 왕따당했던 기억들, 새로 옮긴 교회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던 기억들, 교회옆의 불교 제사도구들을 파는 곳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회하는 그 열성(좀 그런..)에 이해하지 못함, 내 의문에 속시원히 답은 못해줄망정 같이 고민해보자고 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런 책을 많이 보면 머리가 이상해진다고 겁주던 분위기에서 ..내가 받은 기독교에 대한 인상은 ..이곳에 속해있더라도 이곳에 동화되지 말자.. 부끄럽다 였다. 나는 회의자였다. 왜 있잖은가.. 기도회에서 수련회에서 남들 다 울면서 뜨거워서 박수치면서 기도하고 찬양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맨 뒤에서 혹은 가장자리에서 자신이 열성적이지 못함이 들킬까 두려워 눈은 꼭 감고 있지만 이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혹은

전도사님이 결단의 시간이라고 해서 다들 일어서라고 뭔가 결심을 촉구할때 일어나는 것은 나자신을 속이는 거라고 느껴 끝내 일어나지 않는

그런 아이.. 내가 이상한 아이라고 느끼고 결함이 있는 아이라고 느끼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청소년기를 지나고 이십대의 끝자락에 그나마

루이스를 만나게 된건 참..다.행.이.다.

 

 

 

YES마니아 : 로얄 h*****i 2007.07.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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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무신론자보다는 행복한 유신론자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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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처럼 여겨지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자처했으며 죽을 때 까지 그것을 고수했다.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일신 신앙을 따르지 않고, 종교는 약한 인간의 바람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고, 조물주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투영된, 사람이 만든 개념이라는 주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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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처럼 여겨지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자처했으며 죽을 때 까지 그것을 고수했다.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일신 신앙을 따르지 않고, 종교는 약한 인간의 바람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고, 조물주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투영된, 사람이 만든 개념이라는 주장을 견지했다.

 

프로이트보다 30년쯤 뒤에 태어난 C.S.루이스는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이자, 작가로서도 유명하지만 기독교의 신앙을 변론한 책들로도 유명하다. 루이스도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졌다가 다시 크리스찬이 된 이력을 갖고 있다.

 

유신론과 무신론을 대표하는 이 두 지성인이 두사람이 만나서 창조자에 대해, 죽음에 대해, 성에 대해, 그리고 다른 무거운 주제에 대해 논쟁한다면 어떻게 될 까?

 

한 치 양보도 없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지 않을까. 무릇 어떤 싸움이든지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법. 구경꾼들은 부담 없이 보다 보면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의 관점을 갖는데 도움이 될 터이다.

 

니콜라이라는 이 책의 저자는 하버드 의대에서 정신분석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라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하버드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20년 넘게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번역도 깔끔하고, 내용도 좋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The Question of God이다. 창조주의 문제, 죽음의 문제는 누구나 언젠가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인생 궁극의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해 주는 좋은 길잡이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홍성사라는 출판사에서 이 책이 나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니콜라이 교수는 은근히 루이스의 입장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는 책의 앞 부분에서 갤럽에서 실시한 미국인 대상의 최근 여론조사를 인용한다. 정확한 수치는 잊었지만, 그 사회 조사에서 무려 80% 이상이 미국인들이 이 세상을 만든 조물주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정확한 수치는 찾아 보면 나올 것이다. 이 책의 전반부에)

s******n 2007.03.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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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다르면 행동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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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와 루이스를 비교한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생각을 비교한 것도 흥미로웠다. 이점이 중요한 것은 그들의 생각이 그들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는가이다. 기독교에서는 앎과 실천을 따로 말하지 않는다. 성령을 따르는 삶은 열매가 있어야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면에 있어서 이들의 삶과 작품을 통한 비교분석은 변증뿐만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세상적인 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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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와 루이스를 비교한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생각을 비교한 것도 흥미로웠다. 이점이 중요한 것은 그들의 생각이 그들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는가이다. 기독교에서는 앎과 실천을 따로 말하지 않는다. 성령을 따르는 삶은 열매가 있어야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면에 있어서 이들의 삶과 작품을 통한 비교분석은 변증뿐만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세상적인 관점들 사이에서 어떤 관점을 유지해야할 것인지를 생각나게 해준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사람들의 차이를 이들의 명성만큼 그렇게 주의깊게 바라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들의 비교를 통해서 기돌교를 드러내준다. 오늘날에는 그냥 기독교에 대해서 가르쳐야할때 세상에서 어떤 것들과 부딪치고 맞물리는지 그 현실속에서 드러내도록 하는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성경의 생각은 성경을 통해서 세워지지만 많은 경우 우리의 삶속에서 생겨진 관점들, 생각들, 주장들이 우리에게 남아있고 우리의 일부가 되었기때문이다. 이런 방법 좋다. 작가의 탁월함과 수고에 찬사를 보낸다.

[인상깊은구절]
어느 관점이 옳고 어느 관점이 그른지를 아는 것이 정말로 차이를 만드는가?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모두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인생의 상당부분을 할애하여 그 관점은 옳은가? 라는 질문을 거듭해서 던지며 이러한 논쟁점들을 탐구했다.
a*****2 2007.0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