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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한것들과의결별(김명인): 총체적 세계인식이라니.. 그런 거창함이 딴에는 그립기도 합니다
"자명한것들과의결별(김명인): 총체적 세계인식이라니.. 그런 거창함이 딴에는 그립기도 합니다" 내용보기
종로 피맛골에 있는 옥토페스트에서 김명인 선생을 만났다. 정통 체코 맥주집이라더니 과연 필스너(pilsner)와 부드바이저(budweiser) 비슷한 것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하우스맥주를 마시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전통주인 안동소주 따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또 자연스럽게, 정부가 쌀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개인 양조를 허용하게 된 사연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리
"자명한것들과의결별(김명인): 총체적 세계인식이라니.. 그런 거창함이 딴에는 그립기도 합니다" 내용보기

종로 피맛골에 있는 옥토페스트에서 김명인 선생을 만났다. 정통 체코 맥주집이라더니 과연 필스너(pilsner)와 부드바이저(budweiser) 비슷한 것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하우스맥주를 마시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전통주인 안동소주 따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또 자연스럽게, 정부가 쌀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개인 양조를 허용하게 된 사연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쌀시장개방, 우르과이라운드, FTA, 활복자살한 농부, 민주노동당 이야기.
맥주 몇잔 마시면서 참 복잡해지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누군가 오줌누러 간 사이, 문득 선생의 이 책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이 떠올랐다. 몹시 거창한 제목인데, 소제목들은 더하다. 이를테면 '비극적 세계인식의 회복을 위하여'라는 식이다.

바로 그 소제목을 달고 있는 글에서 선생은 80년대 소설을 평하고 있다. 김영현, 박범신, 공지영, 김별아 같은 작가들 말이다. 선생이 개별작품을 잘됐다 못됐다 판단하는 기준은 간명하다. 즉 '총체적 세계인식을 하고 있는가 아닌가'라는 기준이다. 그에 따르면 공선옥, 김소진 등이 쓴 작품이 "진정성 어린" 훌륭한 것들이며, 이들의 작품이야말로 비극성을 온전히 담고 있다고 평한다.
요컨대 세계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결국 비극적 세계인식으로 귀착하게 되리라는, 선생 특유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셈이다.

총체적 세계인식이라니. 엄청 진지해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퍽 허황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더구나 비극성은 또 무언가. 이러한 말들을 동원하여 설명할 수밖에 없는 세계관이란, 적어도 내가 보기엔, 자칫 유치해지기 딱 십상인 것이다. 정말 그렇다는 증거는 멀리 있지 않다.
선생의 같은 책의 다른 장 '한 허무주의자의 길찾기'는 이문열에 대한 작가론인데, 선생이 하필이면 다른 평론가들은 논의에서 아예 제쳐놓는 이문열이라는 (대중)작가에 대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까닭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비평풍토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비평가의 선택은 대개 자신과 세계관상의 친화력이 있는 작가나 작품으로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p.180)

흠, "세계관상의 친화력"? 이문열과 세계관상의 친화력을 느낄 수 있다니, 그것 참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열혈 저항세력이었던 선생이? 그러나 정작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 수밖에.
아무려나 이 부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선생이 ... (2005년에 여기까지 썼다. 이후 부분은 2010년 1월에 쓰는 것이다) ... 원래 그토록 유연한 세계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해왔거나, 또는 한 인간으로서 정신적/물리적으로 변화를 겪은 것이거나, 둘 중 하나렸다. 글쎄, 아마 선생은 원래 이문열도 좋아하는 분이었겠지. 사실 이문열의 '세계관'이란 것이, 한두 줄 끄적이는 것으로 설명될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라면, 이 작가가 보여주는 특징 중 어떤 것, 이를테면 지식인 본연의 나약한 속성이랄지 뭐 그런 것에 공감을 느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려나, 나는 김명인 선생의 세계관의 다소 거창하여 부담스런 것일망정 한편으로는 꽤나 의미 있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가 시류 혹은 본인의 처지에 따라 세계관을 뒤짚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렸다. 흠.


P.S.
제목에서 '자명한 것'은 프랑스어 ce-qui-va-de-soi에서 따온 것 같다. 롤랑 바르트는 <신화론>에서 '자명한 것'(쓰끼바드스와)이라 불리는 어떤 것 속에는 이데올로기적 남용이 감추어져 있었다, 라고 말쌈하신 바 있다.

r******a 2007.05.07.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