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오래도록 망설였다. 사실은 막막했다. 책을 읽고 나면 독자로서 후기를 짧게나마 한줄씩 쓰면서, 책을 쓰고 나서 뭔가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론 책에 실리는 저자후기와는 별개의 차원일게다. 그 저자후기는 그 자체로 이미 책의 일부일 뿐이다. 그냥 한 사람의 독자로서 냉정한 후기를 한번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하지만 그건 영영 불가능할 듯 보인다. 그래서 해를 넘기기 전에 간단하게 정리해 두고 넘어가는 쪽을 택했다. <미토노믹스> 친한 선배 형이 그랬다. “야 임마, 제목 외우는데 한달 걸렸다.” 인정한다. 제목이 너무 어렵다. 기억도 잘 안되고, 처음 들어서 뜻을 알기도 불가능하다. 좋지 않은 제목이다. 그래서 부제를 달아 줬다. ‘그리스 신화로 읽는 경제 이야기’. 직접 읽어본 사람들은 다들 입모아서 자신있게 말했다. 재미있다고. 다행이다. 사실 ‘재미’라는 덕목은 처음 구상 단계부터 가장 신경 쓴 부분 가운데 하나였다. 아마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나오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을 거다. 게다가 그 이야기란 지난 3천년동안 재미를 검증받은 그리스 신화들이다. 경제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편하게 후식 먹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물론 경제 이야기들도, 온갖 경제 서적 가운데에서 재미있는 일화들만 골라낸 것들이다. 그 일화들만 읽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론은, 그렇게 읽다보면 자연스레 체득될 것이라는게 애초의 계산이었다. 즉, ‘쉬움’의 문제였는데, 하지만 그 계산은 조금 무리가 있었던 듯 하다. 경제학 원론은 그래프와 수식 하나 없이, 이야기에만 의지해서 풀어간다는게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더구나 경제학을 전혀 접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건,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조카들이 이 책을 정독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그리스 신화에 밝은 그들에게는, 신화의 변형으로서 경제학이 가까이 느껴졌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요컨대 관심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고 열심히 읽으면 이론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지지만,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까지 재미있고 쉽게 다가가지는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 되겠다. 다만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호흡이 가쁜 내 문장이다. 문장들이 내 머릿속의 생각을 따라가기 바빴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건너뛰는 부분이 많겠다 싶다. 되새겨보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이런 책을 되새겨 가며 읽을 독자는 없을 터이니, 애초에 쓸 때 잘 쓸 일이다. 상사 한명이 책 다 읽었다며 자랑하면서 “근데 좀 어거지가 많더라”고 아주 아픈 평을 내렸다. 신화를 통해 경제를 풀어낸다는게 애초의 기획 취지였는데, 신화와 경제의 연결 고리가 어거지라는 지적은, 나로서는 정말이지 뼈아픈 지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이다. 어거지가 있다. 경제학 원론을 그리스 신화로 풀어내다 보니 분명히 몇몇 부분에서 신화와 경제의 연결고리에 무리가 있었다. 시장의 약점을 말하면서 아킬레스건을 예로 드는 건 정말이지 말장난이었다. 끝부분에 경제학의 영웅들이라는 제목으로, 경제학자와 신화속 인물들과의 비교도 아무래도 무리였다. 하지만 이는 지엽일 뿐이다. 파리스의 사과 만큼이나 경제학적 선택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줄 수는 없다. 경제학 교과서의 설명 몇 쪽보다도, 파리스의 이야기가 훨씬 더 효과적이다. 임금의 하방경직성을 말하면서 페넬로페의 정절을 갖다 붙인것도 절묘하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이자의 기원을 말하면서 히포마네스의 사과를 끌어들인 것도 문제의 본질을 꿰뚫은 예였다. 물론 독자가 어거지로 느낀다면 그건 어거지가 맞다. 다만 제대로 읽었는지는 되묻고 싶다. 출간시기가 뒤늦지 않았느냐는 친구의 지적도 있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우리 경제는 대부분 2003년의 현실인데, 출간 시점은 2004년말. 친구의 지적은 적절하다. 나도 동의한다. 다만 애초에 시점에 구애받지 않도록 썼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반성이 우선돼야 한다. 구체적인 사건이라 하리라도 시점만은 명시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리라. 대신 고유명사를 명시하면 그 시점이야 은연중에 분명히 밝히는 결과가 되니 말이다. 지난 6년여 동안 그리스 신화에 푹 빠져 있었다. 그 결과물이 <미토노믹스>였다. 최근 관심의 축이 동양과 한국 고전으로 기울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 저작은 동양 고전과 관련한 것이 되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될 것 같다. 그리스 신화로 하나 더 쓰고 싶다. 이 모든 지적 겸허히 받아들여서, 한 권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다. 어느 출판사가 그 책을 내줄지는 의문이지만... 미토노믹스>미토노믹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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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로 읽는 경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경제라면 으례히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외면해 오던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불문학을 전공하고 경제학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기자라는 자신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실제의 경험담과 그리스 신화, 경제학 이론을 토막토막 쉬운 글로 만들어 낸다.
책을 읽다 보면 지나간 과거의 일들에 대해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곳이 곳곳에 있다. 가령 아직도 머리속에 고통스런 기억으로 남아 있는 IMF에 대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비유하여 IMF에서 시행한 획일화의 위험성으로 설명한다. 서민들이 즐겨 사는 복권을 사는 이유를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하여 상자 속에 겨우 남은 희망이라는 끈으로 해석해 낸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는 강원 정선 카지노의 확률로 설명될 때는 대박을 꿈꾸는 인간의 헛된 욕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경제학 관련 이론이 그리스 신화로 해석된다는 사실이 내게는 흥미롭다. 신화 속에 나오는 숱한 신들의 이름은 늘상 들어도 헷갈리기 일쑤인데 어쩌면 저자는 이렇게 적재적소에 신들을 배치했을까 하는 부분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기자답게 잘 쓴 글 역시 잘 읽히는 책으로 만든다. 신문을 보면 낯선 경제학 용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자주 있는데 책 중간중간에 곁들인 어려운 경제학 용어 해석 역시 맛깔스럽다. 경제학에 별 관심이 없던 어른들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신문의 경제란에서 낯선 용어 때문에 헤메는 경우는 많이 사라질 것 같다.
우등재와 열등재를 설명할 때 저자는 헤라를 탐낸 익시온을 데려 온다. 헤라를 탐낸 댓가는 컸지만 익시온으로 인해 '기펜재'라는 생소한 용어 하나를 익혔다. 그리고 기자의 반짝이는 순발력으로 위스키와 맥주를 통해 평소에 둘은 대체재로서 역할을 하지만 폭탄주가 되면 보완재가 된다는 기발한 설명도 보게 된다.
그리스 신화뿐만 아니라 곳곳에 실려 있는 중국신화 역시 재미있다. 그리스 신화와 중국 신화가 머리속에 통째로 들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책이다. 그 많은 신들과 인간의 이름이 한 사람의 머리 속에 통째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사람의 기억이란 어디까지 확장되는 것일까 하는,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호기심이 일면서 내가 아는 한 사람이 떠오른다. 전직 수학교사였다는 그이는 실명으로 교사직을 그만두고 집에서 과외를 한다. 실명된 사람의 수학과외, 선뜻 연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전교에서 5등 안에 드는 학생들이 수학과외를 받기 위해 그 사람을 찾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왠만한 수학 책은 통째로 머리 속에 들어 앉아 있다는 소문이다. 낯선 도형이나 문제는 학생이 읽어 주거나 설명하면 해석이 줄줄 나온다니 정말 경이롭다. 내 아이 역시 한동안 그 사람에게 수학 과외를 받고 싶어 몸살이 났다. 문제는 과외비가 좀 비싸다는 데 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고액과외가 아니다. 그냥 일상적인 수준이지만 내게는 고액이라는 것이다. 눈만 보인다면 부르는 것이 돈이라는 소문 역시 뜬소문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불문학 전공 경제학 기자의 경제 상식이래봤자 그냥 기사 쓸 정도겠거니 했지만 아니었다. 저자가 자주 인용하는 것은 아담 스미스와 케인스이다. 내가 보기에 저자는 아마도 케인스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경제라면 그냥 먹고 사는 문제만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시시콜콜히 별것을 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이런 다양성 때문에 사실 책 읽을 맛도 나는 것이다. 한번 읽어 보면 좋을듯 하다. 그냥 일상적인 상식 하나 키운다는 생각이나 또는 자식들이 뜬금없이 경제학 이론이나 용어를 물어 올 때 신화와 연결해서 설명해 준다면 아이들도 감탄사를 연발할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조금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