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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여왕들]입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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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는 세 분의 여왕이 있다. 선덕, 진덕, 진성 여왕. 그런데 다 신라의 여왕들이다. 이렇게 신라에만 여왕이 등장한 이유는 뭘까? 그 이후로는 여왕이 등장하지 않은 이유도 또 뭘까? 실제 역사와 달리 기혼 할머니로 즉위한 선덕 여왕은 젊은 시기에 즉위한 지헤로운 처녀 여왕으로 사람들이 착각하고, 진성 여왕은 불룬과 황음을 일삼아 신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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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는 세 분의 여왕이 있다. 선덕, 진덕, 진성 여왕. 그런데 다 신라의 여왕들이다. 이렇게 신라에만 여왕이 등장한 이유는 뭘까? 그 이후로는 여왕이 등장하지 않은 이유도 또 뭘까? 실제 역사와 달리 기혼 할머니로 즉위한 선덕 여왕은 젊은 시기에 즉위한 지헤로운 처녀 여왕으로 사람들이 착각하고, 진성 여왕은 불룬과 황음을 일삼아 신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으로 묘사된다. 왜 그럴까?

 

이런 의문을 가져 본 사람들이 읽기 딱 좋은 입문서이다. 일단 전무후무하게 여왕들을 배출한 역사를 가진 신라의 경우, 도읍을 옮겼던 백제나 고구려와 달리 서라벌에서 안정적 번영을 누렸기에 다소 불리한 조건일지라도 여왕이 즉위할 수 있을만큼 정치가 안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덕 여왕의 즉위는 그 부왕 진평왕 때부터 이미 준비가 된 상태였음을 알 수 있고 세간의 속설과 달리 여왕에게는 삼촌인 정식 남편과 그외 사적 관계의 남편들이 있었다는 것, 그러나 아들을 얻지 못하여 사촌이자 마지막 성골인 진덕 여왕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는 것. 물론 여성들의 지위가 꽤 높았던 신라 사회에서도 가계의 계승은 여성 당자 1대에만 해당되었기 때문에 선덕 여왕이나 진덕 여왕에게 아들이 있었다해도 그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란 내용도 있다. 또 선덕, 진덕 재위 당시 김춘추, 김유신의 보좌로 안정적 치세가 가능했지만 진성 여왕 재위 당시에는 이미 신라 하대의 국력이 기울어져가던 시기라, 나라 패망의 원인을 진성 여왕 혼자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는 내용이 있어, 군주가 여자인 탓으로 신라가 망한 양 써갈긴 고려 이하 유교적 역사 기술자들의 편견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비교적 다른 보수적 역사학자들과 달리 <화랑세기>의 내용도 인용하여 여러 견해를 두루 객관적으로 보여 준다. 나는 이종욱 교수의 화랑세기 관련 책들을 미리 읽은지라, <화랑세기>의 서술을 참고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를 어렵게 돌아가서 설명한다는 느낌도 조금 받았다.

 

그런데 재미있을만 하면 책이 끝난다. 책세상 문고다. 



m******n 2010.12.27. 신고 공감 4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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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우리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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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여왕들'이라는 소재 자체가 흥미롭다. 일단은 참 잘 기획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고판으로 나온 책이라서 아주 깊이 있는 내용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그 역할을 충분히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 중에서 왜 신라에서만 여왕이 등장할 수 있었나? 라는 질문과 그 답   그리고 신라 시대에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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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여왕들'이라는 소재 자체가 흥미롭다.

일단은 참 잘 기획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고판으로 나온 책이라서

아주 깊이 있는 내용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그 역할을 충분히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 중에서

왜 신라에서만 여왕이 등장할 수 있었나?

라는 질문과 그 답

 

그리고 신라 시대에 존재했던 세 명의 여왕

즉, 선덕여왕(632-647), 진덕여왕(647-654), 진성여왕(887-897)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들이 각각 왕위에 등극할 수 있었던

시대적, 정치적 배경들에 대해 설명하고

그들의 통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조직적인 왜곡이 있었던 걸까?

여왕들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고 그들의 업적에 비해 폄하되거나

(문란한) 사생활이 강조된 부분 등을 읽다보면

지금의 우리 현실이 신라 시대보다 하나도 나을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암튼, 단순한 역사서로 읽든 아니면 페미니즘 관련 여성사로 읽든

그것은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입문서로는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c*****g 2009.03.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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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님 우리 여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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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우리 역사의 여왕들에 관심이 많았다. 연구서나 논문이나 체계적인 정리를 시도한 책을 찾아내지 못하다가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깊이 있는 역사지식이 부족하여 이해가 쉽지 않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수차례 읽고 또 읽었다. 여왕님들은 정말 하실 말씀이 많으시다. “남왕들은 좀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용서를 하면서 왜 우리들의 작은 잘못은 더 확대하고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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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우리 역사의 여왕들에 관심이 많았다. 연구서나 논문이나 체계적인 정리를 시도한 책을 찾아내지 못하다가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깊이 있는 역사지식이 부족하여 이해가 쉽지 않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수차례 읽고 또 읽었다. 여왕님들은 정말 하실 말씀이 많으시다. “남왕들은 좀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용서를 하면서 왜 우리들의 작은 잘못은 더 확대하고 치적은 무시하느냐.” 선덕여왕은 왕위를 계승할 성골의 남자가 없어서 나라사람들이 추대했다고 한다. 신분이 우선이던 시대이긴 하지만 개인능력이 없었더라면 왕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진평왕이 후계자가 되어 십여 년간 제왕수업을 받으면서 김춘추와 김유신을 문무의 양날개로 자신의 곁에 포진시켰다. 이 일은 분명히 선덕여왕이 주도했으리라 생각한다. 당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김유신이 아무리 동생을 이용한 작전을 선택했어도 후계자 덕만공주가 무시했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공주는 김유신의 능력을 사전에 알아보고 받아들인 것이다. 필요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통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 아닌가. 수양제는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자신이 임명한 장군들을 믿지 못한 까닭에 일이 생기면 보고한 후에 작전을 펼치라고 하였다. 그런 지휘관 밑에서 펼치는 전쟁에 무슨 승산이 있을까. 진덕여왕이나 진성여왕도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다. 남왕들이 후궁을 수십 명 둘 수 있다면 여왕들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진성여왕 때 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은 왕을 비롯한 진골들의 부정부패 때문이지 여왕의 잘못이 아니다. 수십 년 재위하면서 나라를 망치는데 앞장 선 명나라 졸장부 황제들과 비교하면 국가를 위한 여왕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당연히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책 뒤에는 더 읽어야할 자료들이 제시되어 있다. 그 책들을 하나하나 구해 읽으며 우리 시대에도 능력이 있는 자가 필요한 자리에서, 자신의 소신대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신라시대처럼 여성도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과거를 통하여 삶의 지혜를 배우라고 알려준다. 여왕들의 시대를 읽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배우기를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첨성대 같은 관측 건물을 세워 자연재해를 미리 예측하려했던 것만 보더라도 선덕여왕은 매우 명민하고 뛰어난 왕이었음을 알 수 있다.
c*****8 2004.02.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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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 존재하는 여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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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보았던 ‘결과적으로는 역사도 허구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현대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에 반하는 요소에 대해 의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역사는 완성되고 있는 듯 하다. 조선시대라는 가부장적 유교제에 입각한 사회를 통해 형성된 가치관은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그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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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보았던 ‘결과적으로는 역사도 허구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현대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에 반하는 요소에 대해 의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역사는 완성되고 있는 듯 하다. 조선시대라는 가부장적 유교제에 입각한 사회를 통해 형성된 가치관은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여성들에 대해서는 현실에서도 많은 가치폄하적 발언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 듯 하다. 최초의 여성총리서리 지명이라며, 이것은 남녀평등과 여성의 지위향상을 의미한다는 식의 대대적인 발언이 있어왔지만 청문회에서 남성들이 보여준 공격적인 발언들과 수많은 언론들이 보여준 가치폄하적 행태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약자임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현실속에서는 역사 속에 존재했던 인물들에 대한 가치왜곡이 일어나게 되는 듯 싶다. 그것은 지난 군부독재 시절 비정상적으로 가치찬양의 대상으로 군림해버린 이순신의 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1차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많은 것들을 간과할 수 없는 듯 하다. 신라시대에 존재했던 3명의 여성에 대한 고찰은 기존에 우리가 중,고등학교 역사시간을 통해 배워왔던 것들에 대해 조금은 흔들어놓는 기폭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듯 싶다. 아직까지는 유교적 가치관이 그다지 많이 지배적이지 않던 그 시절, 여성들에게도 일종의 기회가 주어졌었고, 오히려 남녀보다는 성골과 진골 등 신분제에 입각한 기회부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들의 여왕으로서의 삶이 가능했었다. 선덕여왕이 성골남자의 대가 끊기면서 그 정통성을 인정받아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이가 되었던 것에 대해 ‘여왕’ 아닌 ‘여주’의 호칭을 부여함으로써 그녀를 의도적으로 비하하는데 초점을 곤두세웠던 역사도 존재한다. 선왕의 여성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수많은 노력과 그녀가 지니고 있는 덕으로 인한 현명한 정치도 여성이기 떄문에 인정하지 않는 것이 지난 역사에 대한 우리의 평인 듯 하다. 그나마 선덕여왕에 대한 평은 나은 편인 듯 하다. 진성여왕의 경우, 그녀의 방탕한 생활과 통치능력부족으로 인하여 결국에는 신라가 멸망하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늘 빠지지 않는다. 그 전대부터 존재했던 골품제의 모순과 빈부의 문제 등에 대해서 보다 진성여왕의 통치능력 자체에 대한 의심에 초점이 맞추어진 역사 해석은 결과적으로 여성은 정치적으로 무능하며 공적인 일을 맡을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라는 관점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이유로서 자주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여왕으로 존재하던 시기에 편찬된 ‘삼대목’에 대해서는 왜 그녀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요소인지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치 않는다. 다른 (남성)왕들의 경우에는 그 시대에 이루어진 모든 문화적 업적도 왕의 것으로 돌리면서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여성에 대해 행해진 의도적 왜곡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왜곡에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왜곡이 어느 순간 진실로 둔갑해버린… 그다지 많이 존재치 않는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 신라시대의 세 여왕이 가능했던 이유와 그 여왕들의 업적, 그들의 정당성과 그것에 대한 그 시대적 논쟁들에 대해 빠짐없이 기술하고 있는 점에서 이 책은 과거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는 듯 하다. 다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경제적, 물리적 우위에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왕의 등극이 가능했던 것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승리라는 평은-그들은 성골로서의 정통성 유지를 위해 선택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으며, 진성여왕의 경우 특히 세자(효공왕)의 성장을 위한 임시적인 여왕이었다는 점에서-다소 위험하지 않나 생각된다.
q*****2 2002.10.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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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책세상문고 우리시대-009] 우리 역사의 여왕 –조범환(2017.07.08.)
"53. [책세상문고 우리시대-009] 우리 역사의 여왕 –조범환(2017.07.08.)" 내용보기
53. [책세상문고 우리시대-009] 우리 역사의 여왕 –조범환(2017.07.08.)   한동안 숙제에 파묻혀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작년부터 지도교수님 과제 있을 때는 아무것도 못한다. 숙제의 깊이도 깊고 내용도 많아서숙제를 하다보면 관련 자료 찾고 하면 주말에도 책을 볼 여유가 안생겼다.다행히 이번 주는 내용을 좀 알고 있었고,원서도 좀 쉬운 편이라 일찍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53. [책세상문고 우리시대-009] 우리 역사의 여왕 –조범환(2017.07.08.)" 내용보기

53. [책세상문고 우리시대-009] 우리 역사의 여왕 –조범환(2017.07.08.)

  

한동안 숙제에 파묻혀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작년부터 지도교수님 과제 있을 때는 아무것도 못한다.


숙제의 깊이도 깊고 내용도 많아서

숙제를 하다보면 관련 자료 찾고 하면 주말에도 책을 볼 여유가 안생겼다.

다행히 이번 주는 내용을 좀 알고 있었고,

원서도 좀 쉬운 편이라 일찍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경주에 갔다.

나는 쉴 때 박물관이나 유적지가 참 좋다.

사람이 적고..

그리고 조용해서 좋다.

오늘은 경주 박물관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도착하고 비가 와서..

그냥 근처에 괜찮은 찻집을 갔다.

가서 볼 책을 미리 준비한 덕에

느긋하게 책을 다 볼 수 있었다. 

이번에 책은 여왕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 여왕은 모두 3명이 있었다.

선덕, 진덕, 진성...

그렇다 모두 신라다.

왜 경주까지 와서 이 책을 읽는지 이유가 될 듯하다.

 

저자는 역사의 여왕이 왜 신라에만 있을까 

그리고 정말 역사에 나온 여왕들은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었을까 

이런 질문에서 사료를 찾아보고 글을 정리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선덕여왕에 대해서는

한때 유행한 [미실]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고현정의 매혹적인 자태를

기억하며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료를 바탕으로 추론해보면,

나이 50세에 가까워 즉위했고,

결혼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나이가 나이인 만큼 남편을 먼저 보냈을 가능성을 유추한다.

(신라에서는 사위가 왕위를 잇는 경우도 있고,

당시 사위도 같은 성골이라 문제가 되지 않으나,

굳이 선덕여왕이 된 것으로 보아 남편이 없는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또 선덕여왕이 왜 그리 많은 절을 지었고,

선덕여왕 때 있던 그 많던 귀족 반란이

진덕여왕 때 왜 거의 없었는지...

또한 진성여왕은 음란하고 문제가 많았는지..

사료를 검토하며 이야기 해준다.

딱 한 시간이면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재미있다.

 

이 시리즈의 단점이자 장점인...

그림없다. 딱 글만 있다.

그래서 이렇게 리뷰 쓸 때 뭘 찍을 것이 없다.

그래도 책이 가볍고 가독성이 좋다.

들고 다니며 보기도 좋고..

 

위의 질문들에 대해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 보시길 권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사료의 출처에 대한 근거 제시가 아쉽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구당서 등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화랑세기의 내용도 꽤 많다.

물론 당시의 이야기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재현해 주는 책이

화랑세기라는 점에서 이해는 한다지만...

아직 화랑세기의 진위 여부가 논란이 있는 만큼

각주에서도 이 점을 밝혀주었다면

사료 출처의 확인 부분에서 오해를 들어줄 수 있었을텐데..

또 재미있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

저자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내용이

여왕들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이라고 할까 

 

가볍게 읽기에는 더할 것이 좋지만...

우리 역사의 여왕들에 대해 학술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면 더 찾아보길 권한다.


뱀의 다리

책세상문고의 책은 사진이나 그림이 없어

그냥 책읽은 장소 첨부합니다^^


s*****n 2017.07.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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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오늘 마지막 방송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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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여왕들』이라는 책의 소재는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드라마는 잘 보는 편이 아니지만 그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드라마에서 덕만(후일 선덕여왕)과 미실과의 관계가 고조되면서 시청률이 높아졌다가 미실이 사라지면서 시청률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에 여왕에 대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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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여왕들』이라는 책의 소재는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드라마는 잘 보는 편이 아니지만 그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드라마에서 덕만(후일 선덕여왕)과 미실과의 관계가 고조되면서 시청률이 높아졌다가 미실이 사라지면서 시청률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에 여왕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가게 되어 선택했는데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여왕은 신라시대 때에만 존재했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선덕여왕, 그 다음에 진덕여왕, 진성여왕이 그 분들이다.

유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여성의 몸으로 왕이 된다는 것은 거의 희박한 일이었다. 또한 유학자들에 의해서 많은 부분이 묻힌 것도 사실이다.


목록을 살펴보자면 1장에서는 여왕의 왕위 계승과 통치(왕위를 계승한 배경-중요한 내용임)에 대해, 2장에서는 여왕에 대한 궁금한 점(이 부분이 제일 알고 싶었던 부분이다)을 다루었다. 3장에는 유독 신라시대에만 여왕이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3장에 대한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조선, 고구려, 백제, 고려, 조선의 역사들을 봐도 여왕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충 여기서 목차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제일 관심이 가게 된 2장 내용을 잠깐 살펴볼까 한다.

2장에는 여왕의 남편과 자녀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과연 그들은 결혼을 했을까? 했다면 그 자녀들이 과연 있었을까? 그 자녀들이 왕위를 이을 수는 있었을까? 등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역사를 알게 되면서 간질거렸던 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시원한 기분이 든다. 더 깊은 내용들이 나중에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얇은 책 치고는 정말 핵심적인 내용을 잘 전달받은 기분까지 든다.

두 번째 내용은 “그 당시 귀족들의 반발은 없었을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그 내용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나오지만 비담의 반란을 들 수 있다.

드라마에서는 약간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하다보니 잘못된 내용도 나오지만 어쨌든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원인과 그에 동조한 귀족들이 많았다는 것은 사실인 듯싶다.


오늘날 신라 시대의 여왕이 가지는 의미는 “남녀 차별의 장벽 제거”를 들 수 있다.

- p. 103 결론 부분.

이미 알고 있다시피 선덕여왕 통치基에도 비담 등의 반란이 있었다.

이유는 여자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러 관점에서 보자면 남성들이 다스린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여성들이 많은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有 원 수준인 정치계까지 진출해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나라에서 먼저 여성이 여왕이 아닌 여자 대통령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 어느 나라에서 먼저 나오게 될까?

암튼 오늘은 1500년 전 신라의 여왕을 만나는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뜻 깊은 시간이었다.



p********p 2009.12.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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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여왕처럼 이 시대 여성 대통령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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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지지자가 아니기에 민노당 경선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권영길 예비후보와 결선 투표까지 가는 선전을 펼친 '심상정' 예비후보의 보도를 접하고 나서 정말 놀랐다. 심상정 후보가 민노당 대선 후보에서 노회찬 후보를 제치고 2위에 올랐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인지도 면에서는 분명 노회찬 후보보다도 뒤떨어진다. 하지만 민노당 당원들은 노회찬이 아니라 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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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지지자가 아니기에 민노당 경선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권영길 예비후보와 결선 투표까지 가는 선전을 펼친 '심상정' 예비후보의 보도를 접하고 나서 정말 놀랐다. 심상정 후보가 민노당 대선 후보에서 노회찬 후보를 제치고 2위에 올랐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인지도 면에서는 분명 노회찬 후보보다도 뒤떨어진다. 하지만 민노당 당원들은 노회찬이 아니라 심상정을 선택했다. 다른 정당들이 '여론조사'가 승부를 가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 비하면 민노당은 한국 정당에서 가장 안정된 정치구조를 가진 선진 정당임을 알게 하였다.


 


심상정 예비후보가 본선에 나갈 수 있는지는 잘모르겠지만 여성 후보자 중에서 가장 앞서가는 사람이다. 박근혜, 추미애는 이미 본선 경쟁에서 떨어졌고, 대통합민주신당의 한명숙 후보는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 여성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심상정 후보에게 기대를 해본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대통령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여성 대통령을 선택하지 못했다. 여성의 권익이 과거보다는 좋아졌지만 아직 여성은 소수자에 머물고 있다. 여기서 소수자란 남성보다는 차별 받는 사회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민주공화국 시대에 이런 차별이 있다는 것은 절차적, 형식적면에서 민주주의는 정착되었지만 내용과 질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완결은 아직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 지도자-대통령-이 나와야 민주주의가 완결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 지도자가 나와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은 질적인 면에서 민주주의는 현재보다 한결 성숙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한국 상황에서 매우 흥미 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한다. 조범환의 <우리 역사의 여왕들>이다. 1500년 전 여성은 우리 시대 여성보다 분명 나은 존중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오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역사에서 여왕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시대가 우리의 시대보다 나은 시대라고 단정은 할 수 없지만 그 시대가 여성에게 암울하기만 한 시대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역사의 여왕들>은 파편화된 지식에 불과했던 우리의 지식을 새롭게 조명해 준다.  진성여왕의 음란. 이런 파편적인 지식은 신라를 통치했던 왕으로서 여성을 너무 비하시켰다. 선덕왕은 대당 외교를 통하여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으로부터 신라를 지켰고, 결국 후임 왕이 삼국을 통일하는 터를 만들었다. 이를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은 부왕인 진평왕에 이어 즉위했다. 진평왕은 살아 생전에 딸인 선덕 여왕에게 왕위를 물려줄 결심을 했으며 이에 따라 선덕여왕은 왕위 계승 수업을 받았다. 김춘추, 김유신의 세력과 을제와 같은 인물을 사전에 포섭한 것이다. "(본문 108쪽)


 


선덕왕은 어떻게 하다가 왕이 된 것이 아니라 부왕에게 왕위 계승 수업을 받았고, 당시 신라 귀족 세력과 연대하고 그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한 왕이었다. 여성 왕이 아니라 신라의 왕으로 존재하였고, 통치하였다.


 


"선덕여왕 3년 봄에 연호를 인평이라 하고 분황사를 세웠다. 새로운 연호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다. 진평왕 6년인 584년부터 쓰이던 건복이라는 연호대신 인평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쓰기 시작하였다."(본문 45쪽)


 


이는 선덕 여왕이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신라 왕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며, 신라 왕으로 독립적인 존재를 알린 것을 말한다. 연호를 독자적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선덕왕은 백성들을 통치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여왕은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전란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자장으로 하여금 불(佛) 보살과 신라의 인연을 강조했다. 선덕 여왕은 왕 자신이 불교 세력에 가까이 다가가 기존의 정치 세력과 무관한 새로운 세력을 통해 자신의 왕권을 더욱 강화하려는 의도를 지녔었다고 생각된다."(본문 52쪽)


 


선덕왕은 백성들의 종교적 심성을 통하여 자신을 노리는 세력을 대항하는 힘을 길렀던 것이다. 선덕왕은 여성이라는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말년에는 정치적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느 왕보다 왕으로서의 지도력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신라에서 3명의 여성 왕이 등극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신라는 분명 어떤 국가보다 앞선 국가였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배격하였고, 신라는 여성 왕을 받아들였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서 여성 지도자를 받아들일 수 있고, 진정 유능하고 지도력과 도덕성을 지닌 여성 지도자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때가 올 대선일 수도 있고, 5년 후가 될 수도 있다. 하루 빨리 대한민국을 멋지게 이끌어 갈 여성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k****e 2007.09.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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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왕이 이렇게 희귀한걸까?
"왜 여왕이 이렇게 희귀한걸까?" 내용보기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던 것. 상식은 대체로 오류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시점까진 그게 사실이고 유효하지만 그 생명력이 길지 않음을 절감한다. '여왕'이라는 단어.선덕, 진덕, 진성이라는 세 이름에 대해 알려질만한 것들은 다 알고 있다고 자부했기에 별 기대는 없이 그냥 책 두께만큼이나 가벼운 가격 때문에 선택한 책인데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상식들
"왜 여왕이 이렇게 희귀한걸까?" 내용보기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던 것. 상식은 대체로 오류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시점까진 그게 사실이고 유효하지만 그 생명력이 길지 않음을 절감한다. '여왕'이라는 단어.선덕, 진덕, 진성이라는 세 이름에 대해 알려질만한 것들은 다 알고 있다고 자부했기에 별 기대는 없이 그냥 책 두께만큼이나 가벼운 가격 때문에 선택한 책인데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상식들이 많이 뒤집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보지 않았다면 난 아마 아직도 미모의 처녀 여왕으로서 선덕의 이미지를 갖고 있을텐데... 이건 솔직히 그다지 달갑진 않다. 인간은 사실보다는 자신이 믿고싶은 것만을 보려 한다는 말이 사실인듯. 새롭게 알게 됐거나 내가 알던 것이 바뀐 것을 보면...선덕의 생몰연대.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에선 그게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걸로 나왔었는데 그동안 연구가 제대로 된 모양. 그리고 선덕여왕의 결혼 사실. 평생 결혼하지 않았던 처녀 여왕으로서의 이미지가... 그림책으로 된 선덕여왕전에서 그 화려한 삽화 덕분에 너무나 강렬했는데 김유신, 김춘추의 할머니뻘이란 사실이 조금은 뜨아...진덕 여왕의 경우.난 이쪽이 결혼해서 아들이 하나 있었으나 성골이 아니어서 김춘추가 대를 이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었는데 오히려 진덕 여왕이 노처녀였었군. 신분이 맞는 성골 남자가 없으면 결혼을 안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니 가뜩이나 범위가 좁은 성골의 대가 끊긴 것이 이해가 간다. 여왕과 상관없이 성골의 범위에 관한 것도 개념 정립(지금 이 저자가 한 정리가 진실인 동안만은...) 아버지가 김씨이고 어머니가 왕비족인 박씨인 경우에만 성골이라고 배웠었는데 왕궁에 살고 있었던 왕의 일가친척. 딱 그 가족만이 성골이라면... 거기다 근친결혼은 오래될수록 출산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역시 대가 끊긴 것이 납득. 진성여왕의 경우는 다행히 아직은 내가 아는 것이 사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몇년간 한국사의 성과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더니 많이 뒤떨어진 느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도서관 구석에 박힌, 세로로 쓰인 하드커버 역사책이 바로 내 머리속이었던 듯.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한번씩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켜줘야겠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요즘 돌아다니면서 읽는 조선시대의 성풍속 어쩌고를 읽으면서 조선 중후기의 그 억압적 가치관이 여성들에게 끼친 폐해는 정말 이루 말로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세계 어디를 내놔도 뒤지지 않는 남녀 평등의 풍속과 가치관이(결국 평등을 누리는건 대체로 먹고 살만한 계층들이었겠지만) 이렇게 아프가니스탄과 사우디를 제외하곤 아래를 찾아보기 힘든 불평등 기조로 바뀌다니. 폐쇄적 집단의 억압적 통치 몇백년이 전체의 틀과 색깔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 진리의 힘에 입이 딱 벌어짐. 여자 대통령이 나와야 평등 어쩌고를 하는 날이 오는거겠지.

[인상깊은구절]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물음은 우리 역사에 존재했던 여왕이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각자의 마음 속에서 여왕을 어떻게 보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이는 결국 독자의 몫이 될 것이다.
p***1 2002.04.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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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선덕,진덕,진성여왕이 있을수 밖에 없었던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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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구입동기는 가격이었다. 3000원대의 가격이 나를 사로 잡았고 구입하게 했다. 우리나라의 여왕은 왜? 신라때만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바로 이런것이다 엄격한 신분제도 속에 왕족 조차도 성골과 진골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선덕,진덕 여왕은 왕위계승을할 성골 남자가 없어서 여왕이 되었던것이고 진성여왕은 조카가 너무 어려서 조카가 왕위를 계승할만큼 나이가 될때 까지 잠시
"신라의 선덕,진덕,진성여왕이 있을수 밖에 없었던이유" 내용보기
이책의 구입동기는 가격이었다. 3000원대의 가격이 나를 사로 잡았고 구입하게 했다. 우리나라의 여왕은 왜? 신라때만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바로 이런것이다 엄격한 신분제도 속에 왕족 조차도 성골과 진골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선덕,진덕 여왕은 왕위계승을할 성골 남자가 없어서 여왕이 되었던것이고 진성여왕은 조카가 너무 어려서 조카가 왕위를 계승할만큼 나이가 될때 까지 잠시 예비역이었던것이다. 같은 여자 입장에서 보면 세 여왕모두 대타였고 다른시대에는 여왕이 없던게 분하기도 하다. 이책은 마치 대학에서 학위를 받기 위해 작성한 논문같기도 해 조금은 딱딱 하지만 그래도 푹 빠져들게하는 묘약이 숨어있는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진평왕 이후 왕위를 이을만한 인물이 존재 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우선 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와 그의 손자 김춘추가 있다. 그 다음 으로는 선덕여왕의 남편인 음갈문완을 꼽을수 있다.그렇다면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왜 '성골남진'이라고 했을까 하는 으의문이 든다. 다시말해 용수나 용수의 아들인 김춘추가 아니라 .......(중략)
l********n 2002.0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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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여왕들...
"우리나라의 여왕들..." 내용보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우리나라의 영왕들에대한 비하가 너무 많았다는 생각과 선덕영왕도 나이와는 걸맞지 않게 너무 젊은 여왕으로 비추어지지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의 나이가 적어도 50이상은 되었다는 이야기를 다른 책에서도 읽었지만 사실 그냥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젊은 여왕이 아니었난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역사라는 것은 우리가 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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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우리나라의 영왕들에대한 비하가 너무 많았다는 생각과 선덕영왕도 나이와는 걸맞지 않게 너무 젊은 여왕으로 비추어지지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의 나이가 적어도 50이상은 되었다는 이야기를 다른 책에서도 읽었지만 사실 그냥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젊은 여왕이 아니었난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역사라는 것은 우리가 교과서에서만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요즘 장안의 화재가 되고 있는 왕건이란 드라마에서 앞부분에 나왔던 진성여왕은 '마치 불륜처럼 그렸지만 산라의, 특히 왕실에서의 혼인 관습을 제대로 고증하지 못해 생긴 결과이다'(책의 주석중에)라는 말처럼 우리가 그 시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또 깊은 역사를 배우지 않고 연대만 줄줄 외우는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특히나 신라시대 이후의 시대인 고려와 조선시대에 여왕들은 낮추어서 역사에 기술한 것도 여왕을 낮게 평가하는 한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이야기에 비해서 진덕여왕에 대한 기록은 너무 없고 또한 진성여왕은 너무 복잡한 사생활을 가진 여왕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여왕 전체의 인식을 나쁘게하는 것같다. 제대로된 역사를 배울수 있고 알릴 수 있는 교육이 하루 빨리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인상깊은구절]
~ 진덕영왕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나가기 위해 제도를 개혁한 만큼 전적으로 당의 제도를 본떠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던 듯하다. 따라서 651년의 전반적인 관제개혁에서도 3성 6부제를 채용하지 않았고 신라 고유의 관명도 고수해나갔다. 그러므로 한화정책이라고는 하나 한화 정책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로써 진덕 여왕은 선덕여왕과는 차별화된 통치를 하면서도 제도 개편의 독자성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 이렇게보면 선덕여왕이 여러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한 것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당시 신라 왕실의 남녀 관계에는 어떤 원칙이나 원리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왕이 용춘과 용수 형제를 차례로 가까이 했다고 해서 황음하다거나 이상하게 뵬 필요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 진성여왕이 위홍과 사통한 것은 사통 그 자체보다는 당시 위홍이 경문왕가의 실질적인 주도자였다는정치적인 측면이 더욱 강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a*****4 2001.01.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