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2002년 월드컵으로 온 나라에 붉은 물결이 출렁거릴 때가 아닌가 싶다. 태극전사 중의 패기만만한 선수 한 명이 일약 스타로 떠오르면서, 그에 대한 수식어로 따라다녔던 '쿨'하다는 말.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어쩌면 칭찬(?)처럼 쓰이게 된 그 단어를 자신의 생활철학으로 삼는 아이가 있다. 나 또한 평소에 '쿨'하게 살고 싶으나, 번번이 '쿨'하지 못한 자신에게 연민의 정을 느껴야 했으므로, 처음부터 난 그 아이의 '쿨'함에 매력을 느꼈다. 중학교 2학년인 주인공 여자아이는 초등학교 5,6학년 시절 같은 반 아이들(유카리 일당)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맞추고, 주위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 신경을 쓰던' 이 아이는 그 때의 끔찍한 경험에서 벗어나고자,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두 가지 원칙을 정한다. '첫째, 쿨하게 살아간다. 둘째,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즉 자신은 이제 '당하는 쪽이 아니라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만들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만만치는 않다.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입을 열지 않으려는 아이도 학교 생활에서는 역시 '튀는' 아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별로 불편하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주인공에게 중학교 2학년인 현재는 단지 물리적인 시간일 뿐, 정신적으로는 늘 2,3년 전의 과거 그 악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연히 만난 서른 살의 '사라'를 (소원을 말하면 들어준다는 소문 속의) '초록아줌마'로 착각하게 되고, 위기의 상황에서 전화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친해진다. 주인공은 (비록 또래가 아닌 어른이지만) 사라와 친해지고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냄으로써 학교 생활에서도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신선처럼' 지낼 수 있게 된다. 그런 모습은 현재 같은 반에서 또 다른 따돌림의 피해자가 되어 자살까지 기도한 '미즈에'에게 호감을 갖게 만들어, 둘은 조심스레 진정한 친구로 발전한다. 그런데 주인공이 따돌림의 기억에서 점차 벗어나고 마즈에와 친구가 되어갈 무렵 새롭게 알게 것은, 사라 역시 직장 내에서 '디자이너'로서 인정받지 못해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나름대로 회사를 향해 복수(?)도 하고 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3년 전 자신을 괴롭혔던 유리카에게 가끔씩 장난전화를 걸어 복수를 하던 주인공은 이런 사라에게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물론, 이후에 속시원한 반격이라는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서) 불행했던 과거를 일단락 짓게 된다. 이제 주인공은 어느 날 우연히 '진짜 초록아줌마'를 만난다고 해도 그 어떤 소원도 말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는 것이다. 간결한 문체에 탁월한 심리묘사로 술술 읽히지만,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도 문득 문득 멈추어 서게 하듯 생각할 것이 많은 소설이었다. '집단 따돌림의 상처와 회복'이라는 무거운 주제지만 다양한 갈등과 현실감 있는 묘사 덕분에, 한 아이(개인)의 내면, 한 시대의 단면이 깊이 있고 정확하게 짚어진다. 어쩌면 제목(불균형)이 상징하듯 획일적인 사회의 집단 생활 속에서 개인이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관심을 가지고 읽었건만 주인공의 이름은 끝내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작가는 익명성을 보호받고 싶어하는, 눈에 띄지 않고 살고 싶어하는 (어른이건, 아이건 간에) 현대인들의 소망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 아닌가 싶다. 주인공은 이제 15살이다. 세상을 단정하기에 아직은 어린 나이다. 하지만 사라에게서 '겨울잠을, 죽을 때까지 쭉 겨울잠만 자고 싶다'는 말을 듣고 아이는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 '이대로 가면 어른이 되어도 별다른 미래가 펼쳐지지 않을 것이란 걸' 이미 알고 있는 자신을 새삼 확인하면서. 또 '사라와는 산뜻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그게 즐겁다.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걸 한 번 털어놓으면 끝도 없이 질척질척해질까 봐 두렵다' 고 망설이는 주인공은 도저히 열다섯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열다섯이면 어떻고, 서른이면 어때야 한다는 것도 나의 선입견에 지나지 않았다. 상처를 가진 사람은, 아니 아직도 자신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은 끊임없이 '쿨'하게 살기를 소원한다. '쿨'하게 사는 사람만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두려운 아픔을 가진 사람만이 또 다시 '쿨'하기를 시도하는 옆 사람을 알아본다. 그렇게 '쿨'한 인생들이 서로를 알아보면 그 때 비로소 '쿨'함의 미덕은 철저하게 무너진다. 15살 소녀의 '쿨'함에 산뜻하게 끌렸지만 결국은 내 안에도 누군가를 '질척하게' 만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눈 마주보며 이야기를 꺼내면 당황스러워하지만, 채팅(메일)으로는 거칠 것이 없는 요즘 아이들, 서른이나 다를 바 없는 열다섯 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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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균형
-초록아줌마는 내 안에 있었다-
중학교 2학년생인 주인공은 초등학교 시절에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 마음속 깊이 상처를 받게 되면서 친구관계나 모든 생활에 소극적인 아이가 되고 중학생이 되면서 다시는 외톨이가 되는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작전을 정한다.
첫째, 쿨하게 살아간다.
둘째,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자신의 계획대로 누구도 사귀지 않으며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하게 학교 생활을 해 나간다.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안고 하루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라언니를 만나게 된다. 아이들 사이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초록아줌마 이야기가 돌던 시기였는데 비오는 날 다리 위에 서있던 사라언니를 초록아줌마라고 착각하고 다가가 끌어안으며 소원을 들어 달라고 부탁하게 된것이다. 이후 언니와는 언제든 찾아살 수 있는 안식처이자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마다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자신만큼 사라언니도 아픈 일들이 있다는걸 알게 된다.
서서히 마음을 여는 방법을 알아가고 조금씩 상처를 치유하면서 드디어 학교에서도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된 친구가 생기는데......
일본 고단샤 아동문학 수상작이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런 유명세는 몰랐다.
딸아이 독서토론 단기수업을 얼마 전에 받은 적이 있었는데 수업을 마치면서 담당 선생님께서 자료로 주신 추천 리스트에 들어있던 책이어서 아이와 함께 읽게 되었다. 청소년 성장소설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비뚤어진 길을 택하거나, 아픔을 겪는 이유를 알게 되면 대부분의 책임이 아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아이도 늘 바빠서 마주 앉기도 힘든 부모에게조차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 속으로 아픔을 안고 살아가면서 누구든 자신의 얘기를 함께 들어줄 사람이 절실했었다. 항상 딸아이의 책을 함께 읽다가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청소년문제를 다루는 성장소설은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들이 함께 꼭 읽고 대화를 가져야 한다는 믿음이다.
내 아이, 네 아이 가리지 말고 아이들 문제만큼은 제일 우선으로 우리 어른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노력을 함께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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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중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가지 원칙을 정한다. '첫째, 쿨하게 살아간다. 둘째,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학교란 곳이 어떤 곳이기에 생존전략을 짜서 학교 생활을 대비해야 하는 것일까. 열댓살이 된 소녀가. 제목 '불균형'은 소녀 자신이 길을 잃어 이미 어찌해야 할 바를 잃은 정신적 불균형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 구조 자체의 문제점을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소녀는 초등학교 시절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되는데, 다른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 자신을 꾸미고 남에게 맞추려 노력하며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다 친구들에게서 버려지고 만다. 남과 자신의 사이를 요령있게 맞춰가는 면이 부족한데다 남에게 맞추기 위해 자신을 꾸미거나 입에 바른 말을 하는 것만이 전부였던 탓에 친구들에게 독재자라는 심한 말을 들어가며 어디에도 말할 수 없이 혼자 버텨왔다. 그러다 중학교에 가게 되면서 자신을 지키기위해 앞으로는 남에게 자신을 맞추거나 남과 연관되는 일 없이 지내려 철저히 혼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아무도 없이 그저 혼자서만 지내는 생활에 만족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혼자여서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날 밤 소녀는 학교에서 들리는 소문의 소원을 들어주는 '초록아줌마'를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초록아줌마에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사실 소녀가 발견한 것은 진짜 초록 아줌마가 아닌, 평범한 젊은 여자였지만 사라는 소녀의 절박한 외침을 외면하지 않는다. 소녀와 사라는 나이를 뛰어넘어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관계가 된다. 소녀가 자신만의 문제를 그러안고 있듯이 사라 역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괴로움을 안고 있는 평범한 이십대였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괴로움을 털어내고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보기좋은 성장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이 그저 스스로 찾은 방법으로 자신을 치유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나타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소녀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거나 이해하려는 친구가 없이 그저 목표삼아 따돌리는 것만이 전부인 세계가 학교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꿈을 이루지 못해 좌절한 젊은이는 그저 현실을 인정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진짜 초록 아줌마가 나타나 소원을 이뤄주기 전에는.
그렇지만 두 사람이 초록아줌마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읽는 이에게 긍정적인 희망을 주는 모습임에 분명하다. 끝맺음은 아름답지만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까지도 밝고 명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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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머리, 초록색 옷 모든 것이 초록색인 아줌마의 머리나 옷을 만지면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나’는 우연히 초록아줌마를 보고는 “도와줘!” 라고 말했다. 뒤를 돌아본 사람은 이십대 후반의 여자로 입고 있는 옷도 초록색이 아닌 노란색이었다. 간절히 도움을 바랐기 때문에 ‘나’한테는 노란색이 초록색으로 보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솔직히 말하면 노란색 보색이 초록색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보라색이었다) 그러나 ‘나’는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왜 도와달라고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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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모처럼 일본 청소년의 성장소설입니다. 일본은 거리상으로 역사적으로 가깝지만 다른 나라입니다. 우리가 중앙집권적인 정치구조하에서 오랫동안 지낸 반면 일본은 지방분권적인 봉건사회를 거친 나라입니다. 따라서 문화가 완전히 다르지요. 일단 줄거리를 보자면 나는 초등학교 때 '사토 유카리'에게 당한 이후 친구를 사귀지 않기로 결심한다. 친구를 사귀지 않으면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럴싸한 논리입니다) 이사를 한 다음 중학교에 진학하였으므로 새로운 아이들뿐이여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녀는 '입 없는 애'라는 별명을 갖고 살게 됩니다. 내가 임의로 붙인 3인조 중 하나인 '마스무라 미즈에'가 주로 놀리는 선봉에 서게 됩니다. 어느 날 미즈에가 말을 걸어옵니다. 의외였고 무시하고 지나칩니다. 당시 유행하던 '초록색 아줌마'로 착각한 어떤 여자(하야시모토 사라)와 엮이게 됩니다. 그녀와 자주 만나 스트레스를 풀어내던 그녀는 미즈에가 자살을 시도함으로써 미즈에와도 엮기게 됩니다. 두 여자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이야기가 진행하고 또 결론을 내립니다. 평소 듣던 일본의 문제가 조금 나옵니다. 나머진 어느 나라이든 청소년이 직면하는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그런 것은 문화 자체보다는 인간 자체의 공통점인가 봅니다. 제목이 비(非) 발란스(balance)인데 일본어로 쓴 것을 다시 영어 알파벳으로 옮기면서 hi baransu가 됩니다. 언어를 여러 번 거치면 생기는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의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 또는 '너'로 나옵니다. 독특하네요. 100403/100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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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 하늘 아래,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날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살다 보면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번번이 무력한 상황 속에 내팽개쳐지곤 한다. 아무리 용을 써도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소원'이 생겨나고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을 떠올리기에 이른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따로 노는' 전략을 구사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미봉책일 뿐이다. 누구의 장난인지 우리는 서로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 누군가 자기를 지지해 주고 이해해 주어야만 숨통이 트인다. 마음을 터놓을 만한 상대가 있을 때에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어처구니없는 폭력(따돌림은 폭력이다)을 당한 '나'는 휘청거린다. 미래도 썩 밝아보이지 않는다. 막연하면서도 '그럴 듯한' 일이지만, 사람은 희망이 '필요'한 존재다. '나'는 왼발, 오른발, 왼발, 왼발.. 힘겨운 걸음을 걷는다. 뱅글뱅글 한곳을 맴돌고 있다. 어디로도 이르지 못하는 길이다. '나'가 따박따박 경쾌한(?) 발소리를 내면서 '제 길'을 가기까지는 고통이 따를 것이다. 세상엔 공짜가 없는 법이다.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니까. 이 책은 '나' 스스로 '곧장 걸어가게 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일본책에는 '사라'라는 여자가 등장하는데 사람 인자처럼 '나'를 한동한 지탱해 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맨 마지막 '사라'의 선택은 어떻게 보아야 할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겪고 '여기 지금'에서 떠나는 사라. 그곳에선 부디 일이 잘 풀리기를.. 기우일까, 못내 걱정이다. |
| 삶이 기우뚱거리며 균형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삶에 균형을 잡고 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나의 삶 역시 늘 삐걱거리며 균형을 잃은 채 좌충우돌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 어려서는 어른이 되면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 힘든 시기를 겪게 되면, 이 시기를 지나면 다시 나의 삶은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만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늘 생각하며 견뎌내지만 삶이란 한 고개 넘기면 또 다른 장애가, 더 큰 장애가 기다리고 있는 걸 이젠 알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 다짐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대체로 좋은 친구를 사귀기, 공부를 열심히 하기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주인공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결심을 하게 된다. ‘쿨하게 살기. 친구를 사귀지 않기''이다. 주인공이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데는 초등학교 5,6학년 때 일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맞추고, 주위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 신경을 쓰던'' 주인공은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왕따(괴롭힘)을 당한 후부터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쿨하게 살기로 했다. 즉 이제부터는 당하는 쪽이 아니라 친구를 만들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쿨하게 살기로 마음먹었지만 그의 상처는 내면에 앙금처럼 남아 있어서 불쑥불쑥 꿈으로 나타나고 식은땀을 흘리며 벗어나려고 한다. 그래서 15살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괴롭혔던 친구에게 전화를 건 후 아무말없이 있다가 끊는 일이다. 그러다가 주인공은 30살의 사라를 만난다. 주인공은 사라가 초록 아줌마라고 생각했고, 위급한 상황일 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초록 아줌마란 아이들 사이에서 소원을 말하면 들어준다는 풍문 속의 여자이다. 비록 초록 아줌마는 아니었지만 친구가 없는 주인공에게 사라는 마음을 나누게 되고 친구처럼 지낸다. 그러나 사라에게도 주인공 소녀 못지 않게 상처를 안고 있다. 디자이너가 꿈이었지만 디자이너로서 인정받지 못한 사라는 회사를 향해 복수를 하고 있었다. 결국 둘은 자기의 상처를 인정하고 그 상처를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주인공은 진짜 초록 아줌마를 만난다 할지라도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스스로 설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초등학교 때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에게 찾아가 당당히(?) 복수를 한 것이다) 아이이건 어른이건 이 사회에서 균형을 잡고 살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가슴속에 크든 작든 응어리진 상처를 갖고 있으며 그 상처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기우뚱하게 만든다.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좀 무거운 주제임에도 간결한 문체와 현실감 있는 묘사로 가독성을 갖게 해 준다. 일본 소설이지만 굳이 일본뿐만이 아니라 우리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흡사해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쿨하게 산다는 것은, 그리고 쿨하게 살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내면을 숨기고 싶은, 가면과 갖지 않을까? 그만큼 상처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
| "이젠 끝! 앞으론 스스로 하는 거야!" 초록머리와 초록 옷차림을 한 일명 초록아줌마를 만나면 모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 처음에는 노란색 비옷을 입은 사라가 불빛에 초록아줌마로 보여 "도와줘"라고 소리치는 주인공은 초등학교 때의 왕따라는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2 여학생이다. "너는 잘못이 없어. 다만 방법이 아닐 뿐이지." 왕따시킨 유카리에게 대답없는 전화를 걸었다는 '나'에게 사라가 하는 말이다. 갈등 없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 '방법'을 제대로 찾아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 싶다. '나'가 사라와의 만남을 통해 얻은 갈등을 푸는 방법. 그것이 바로 첫머리에 올린 일갈이다. 이 책의 끝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끝까지 갸우뚱하게 하는 점은 사라와 '나'의 만남의 개연성이다. 그래서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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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불균형>의 주인공은 ‘쿨’하게 사는 것을 삶의 규칙으로 삼은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다. 나의 작전은 ‘쿨’이다. 특히 학교라는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쿨한 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쿨하게 살아간다. 둘째,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왜 이렇게 결심했느냐고? 그건 초등학교 5,6학년 시절이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너무나 비참했기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주 비참하다. 이 사실을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이 상태로 그 애들이 싫증 낼 때까지 어떻게든 내버려 두려고 했다. 하지만 그 애들은 싫증 내지 않았다. 당연히, 상황이 점점 심각해졌다. 따돌림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은 주인공은 이사를 가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친구를 사귀지 않기로 결심한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 상처 입지도 않을 테니까. 이 주인공의 모습은 <새로운 엘리엇>의 엘리엇, <우주의 고아>의 요코와 아야코를 닮았다. 그리고 주인공과 같은 나이의 나를 닮았다. 관계 맺는 것의 어려움을 느끼며 거리 조절에 실패한 상처를 안고 있던 시절의 나의 모습 말이다. 그리고 역시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가 자살을 시도한 미즈에는 <평균대 비행>의 현창을 닮았다. 이유는 좀 달랐지만 삶의 균형을 잃고 추락하는 모습은 참 가슴 저리고 슬프다. 주인공은 초록아줌마 이야기를 한다. 초록아줌마는 초록색으로 물들인 머리에, 초록색 폴로셔츠와 치마를 입고, 초록색 긴 양말까지 신고 있었다고 했다.(…)이 초록아줌마에겐 언제부턴가 이런 이야기가 따라다녔다. 초록아줌마의 초록색 부분, 말하자면 머리와 옷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주인공은 사라를 초록아줌마로 착각하면서 처음 만나게 되고 사라와 친구가 된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역시 사람으로부터 치유되나 보다. 디자이너를 꿈꾸었지만 옷을 분류하고 배송하는 일을 해야만 했던 사라와 주인공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자신을 상처 입힌 사람들에 대한 비겁한 복수였다. 주인공은 자신을 괴롭혔던 유카리에게 장난 전화를 걸었고, 사라는 옷 속에 시침핀을 넣었다. 두 사람은 그런 복수가 자신의 상처를 결코 씻어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면으로 맞서고 딱 끊어내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나의 결단과 믿음, 용기만이 필요하다. 주인공이 사라로부터 선물 받은 초록색 비옷을 입고 유카리를 찾아가 ‘하지마!’라고 외쳤을 때, 그녀는 이미 스스로의 초록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더 이상 초록아줌마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다. 셔터가 내려진 낡은 빌딩 뒤에서 사람이 나왔다. 눈 앞에서 아줌마가 슥, 옆으로 지나갔다. 나는 멈춰섰다. 파마를 한 머리는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원피스도 초록색이었다. 초록색 스타킹에 초록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아줌마는 빌딩과 빌딩 사이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쫓아가자!) 순간 생각했다. 하지만 내 발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 (이젠, 끝! 앞으론 스스로 하는 거야!) 나는 걷기 시작했다. 역을 향해서 곧장 걷기 시작했다. <숨쉬어>, <우주의 고아>, <새로운 엘리엇>과 주제가 비슷하다. 함께 엮어 읽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