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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을 읽다 보면 어느 문장, 혹은 어느 구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표현이 아름답거나,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 같을 때 그러하지만, 대부분은 그렇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나친다. 그러나 어느 한 문장을 읽음으로써 많은 감정들이 연상된다면 쉽게 빠져 나오지를 못한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가슴 속에서 증폭되며, 그것이 기쁨이든, 회한이든 지나간 시간들 속으로 나 스스로를 밀어 넣기 때문이다. 70명의 시인들이 쓴 시 속에서 어느 한 문장, 혹은 어느 한 구절이 나에게 어떻게 특별한지를 생각해 본다. 책 제목 그대로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을 읊조리게 만들기 충분하다. 시인들이 쓴 시 제목과, 시의 한 구절을 연결하기 보다는 그저 그 문장에서 나만의 순간을 찾고 있다. 가을이 깊어간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가슴앓이를 한다.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었건만, 예전에 비해서 많이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또 가을이 되었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지금은 가 본지가 오래되어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진 길이지만, 은행나무로 뒤덮인 돈암동 어느 골목길에서 나는 딴청을 부린 적이 있다.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 위하여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 고독에 관한 간략한 정의 – 노혜경 노란 은행잎이 양탄자처럼 깔린 길을 걸으면서 무슨 말이든 해보라는 그(녀)에게 난 은행잎이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를 물었던 것 같다. 마음 속으로는 분명 다른 말을 하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쑥스러워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같이 있는 순간이, 그(녀)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하게 만들었던 시간이었다. 만일 네가 나의 애인 이라면 너는 참 좋을 텐데 - 시인의 사랑 – 진은영 그 때 나는 내가 그(녀)의 애인이기를 바랬다. 그(녀)가 나의 애인이기를 바랬다. 아니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좋았을 뿐이니까. 그런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그리고 난 왜 그렇게 다급해 졌을까? 길지 않은 시간을 헤어져야 했을 뿐인데, 내 입에서는 뜻하지 않은 말이 튀어 나왔다. 분명 그 시간에는 그 말이 필요 없었음에도..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 살다가 보면 – 이근배 그리고 인연이 어긋나 버렸을 때, 난 많은 거리를 걸었다. 많은 곳들을 순례하기 시작했다. 분명 예전에는 같이 걷던 길이었음에도, 많은 얘기들이 숨어있던 곳이었음에도, 처음 와보는 낯선 곳처럼 다가왔다.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고, 그(녀)에게 말을 걸지만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곳을 혼자서 헤매고 있음을 발견한다. 비로소 곁이 허전해지고, 나와 그(녀)가 다른 시간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남아도는 나를 어찌해야 할까 더 이상 너의 시간 속에 살지 않게 된 나를 - 잉여의 시간 – 나희덕 갑자기 길 가던 사람들을 보기가 민망해진다. 그들 모두가 나를 보고 웃는 것 같다.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지만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회오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는 아물지만 때로는 덧나기도 한다. 그리고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고개 숙이고 순대국밥을 먹어 본 사람은 알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 혼자라는 건 – 최영미 많은 밤들을 지새운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닿았던 것들이나, 그(녀)의 채취가 남아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본다.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고, 만져보고 또 만져보기를 반복하지만 이젠 온기도 향기도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나의 손은, 나의 마음은 이미 사라진 것들을 찾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 본적이 있다 - 바람의 지문 – 이은규 비로소 알게 된다. 우연을 가장해 인연을 만들고, 또 그런 인연을 더하여 필연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언젠가 어긋나는 것 이었음을.. 수많은 밤들을 뒤척이고, 해마다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들을 보면서 가슴은 시리었지만, 그렇게 서로가 잊혀질 수밖에 없었음을.. 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 기억하는가 – 최승자 이제는 아물었다고 생각했다. 때론 가을바람에 가슴이 시리기도 했지만 희미해진 기억 덕에 이젠 괜찮다고 믿었다. 역시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전화기너머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기에.. 하지만 잘못 걸려온 전화에서, 전화기 너머 숨결에서, 나는 익숙한 것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는 아물었다고 생각한, 희미해진 상처를 덧내고 있다. 비로소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그(녀)도 깊어지는 가을을 생각하는 것일까?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가 마음도, 몸도 움 추리게 만든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집어 든 책 한 권이 또 다시 마음의 상처를 덧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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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읊조리다>는 시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특색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림과 곁들여진 짧은 한 문장이 마음과 감응하는 순간, 시는 마음 깊이 뿌리박기 시작한다.
언젠간 그 문장이 왕벚나무처럼 환한 꽃을 피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자기 전 침대에서 한 두 문장씩 읽었다. 그리고 잠자는 동안 밤새 그 문장을 품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은 시 전문을 찾아보곤 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본 시들이 20편이 넘는다. 아마도 이런 책이 가진 최고의 미덕이 아닐까 한다. 감응한 문장을 통해 시를 찾아보게 해주는 것. 그렇게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다.
마음의 키가 얼마나 자라야 남의 몫도 울게 될까요
이 문장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렇게 만난 시가 바로 유안진의 '키'다. 키 유안진 부끄럽게도 여태껏 나는 자신만을 위하여 울어왔습니다 아직도 가장 슬픈 속 울음은 언제나 나 자신을 위하여 터져 나오니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마음은 자라고 마음의 키가 얼마나 자라야 남의 몫도 울게 될까요 삶이 아파 설운 날에도 나 외엔 볼 수 없는 눈 삶이 기뻐 웃는 때에도 내 웃음만 들리는지 내 마음 난장인줄 미처 몰랐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이 시, 알고 보니 <다보탑을 줍다>라는 시집에 수록되었다. 그 시집이라면... 엄마 돌아가시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선물해드렸던 시집이다. 이 모든 게 엄마의 선물 같다. 엄마는 유독 보라색을 좋아했는데 이 책에선 이 문장이 보라색으로 쓰여 있다. 그리고 옆의 그림도 보라색 바탕이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좋아하셨을 시다. 내가 선물한 그 시집에서 이 시를 두고두고 읽으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뭉클해진다. 내가 엄마 곁에 없을 때도 나는 그런 식으로 엄마랑 함께 했구나. 그랬구나. 그래서 내게 온 거구나. 이 시는. 엄마 돌아가신지 만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종종 막막해진다. 그런데 엄마는 순간순간 이런 방식으로 나를 찾아온다.
노트에 시를 옮겨 적는다. 엄마가 좋아했고, 나도 좋아하는 보라색 펜으로. 이 책이 아니었다면 가질 수 없었던 시간이다. 시는 이렇게 기억을 환기시킨다. 그 기억은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순간'은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만든다.
그리고 시를 쓴 종이를 돌돌 말아 통 안에다 담았다. 한동안 엄마 때문에 경황이 없었고, 엄마 돌아가신 뒤로는 망연자실해 있느라 2010년 겨울부턴 트리를 만들지 못했다. 올 겨울, 아주 오랜만에 트리를 만들고 선물을 받을 때마다 트리 옆에 쌓아 둔다. 시를 담은 통도 선물들과 함께 트리 옆에 놓아두었다. 이제부턴 좋은 시를 만날 때마다 노트에 옮겨 적은 뒤 통 안에 넣어둬야겠다. 저 통이 시로 꽉 차는 날, 엄마한테 갖다드려야지. 생전에도 시를 좋아하셨으니 분명 좋아하실 거다.
엄마, 아직도 가장 큰 울음은 언제나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고,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마음의 키를 점점 키우도록 노력할게요. 남의 몫도 울 수 있도록. 그래서 슬피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게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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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집은 멸종 위기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 조금의 여유가 생겨, 요즘 어떤 책이 좋은지 구경을 갔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베스트셀러만 둘러 보고 갔는데, 시/에세이에 관한 베스트셀러10 중 시집은 한 권 있었다. 바로 이 책, <순간을 읊조리다>. 그렇다. 요즘 사람들은 시집을 많이 읽지 않는다. 시가 어렵다는 선입견과 자신들의 시선을 더욱 포장하려는 시인들의 언어들로 독자와 시인과의 벽이 높아졌다. 또한, 요즘같이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시는 점점 버림받을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시는 음미하고, 곱씹어야 그 맛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순간을 읊조리다> 책은 시인과 독자의 벽을 허물었다. 70여명의 시인들이 짧은 시와 아름다운 그림들로 한장 한장을 채워 나갔다. 짧다고 해서 그 시들이 모두 안 좋은 것들이 아니다. 짧다고 해서 시적 표현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특히 나는 <순간을 읊조리다> 책이 좋았던 것이 시인 자신만의 시선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경험한 일상생활을 잘 표현했다는 것이다.
나는 보았다. 밥벌레들이 순대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출퇴근길, 지하철은 정말 사람이 많다. 특히 지하철은 콩나물 시루에 꽂아놓은 것마냥 사람이 많다. 최영미님의 이 시는 신도림역에서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지하철을 타는 사람이라면 밥벌레들이 순대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모습, 너무 많아서 터지는 모습들까지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한 나의 속내를 표현한 구절들도 있었다.
누구나 다르게 살아가는 거야 똑같이 보이고 싶어 하면서...
그 옆에 아파트 그림이 함께 있었는데, 짧은 두 줄인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 나의 삶들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만 있는것이 아님을,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느끼고 있음을 위로해 주었다.
거짓말로 너무 뚱뚱해진 나를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어 본래의 나 자신 말고는
가식적인 삶,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지금 살고 있지 않은가 싶다. 요즘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나도 내 자신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시를 접했다. 나는 이 구절을 보는데 서점에서 눈물을 훔칠뻔 했다.
아마 이런 것이 시의 효과이다. 독자를 호되게 혼내지 않는다. 위로하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위로받는다. 이런 시집들이 지금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니 너무 아쉽고, 또 아쉽다. 세상이 매말라가는 것이다. 매말라가는 척박한 세상에 한 줄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준 시인들의 이름을 올리며, 서평을 마치려고 한다. 시인님들 감사합니다.
권현형 금 란 김개미 김경미 김경후 김기택 김상미 김선우 김소월 김승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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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의 빼곡한 책등을 훑는다. 끌리는 제목의 시집을 꺼낸다. 어느 곳을 펼치든 은밀한 감정들이 쏟아진다. 시를 읽는 순간, 시와 하나가 된다. 숨을 들이마시는 찰나는 영원보다 길다. 그러나 예전처럼 시를 외우지 못한다. 아니 노력하지 않는다. 소녀, 청춘의 시절을 지났기 때문일까. 마르지 않을 것 같던 감정의 샘물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럼에도 꽃이 피고 바람이 불면 이은규의 시집 『다정한 호칭』이 생각난다. 비가 오는 날엔 유희경의 『오늘 아침 단어』를 뒤적여 우산에 관련된 시를 찾아 읽는다. 의도하지 않아도 시는 우리의 곁에 머문다.
시란 무엇일까. 눈물이 흐른 자리를 가만히 닦아내는 고운 이의 손수건인지도 모른다. 세계사의 『순간을 읊조리다』를 휘리릭 넘긴다. 넘길 때마다 다른 문장과 마주한다. 슬픔을 삼킨듯한 건조한 시인의 문장에 나는 울컥한다. 내게 속한 시인의 시집을 찾는다. 김혜순, 그리고 최승자를 함께 읽는다. ‘서른 살’ 대신 내 나이를 넣고 읽는다. 시는 이렇게 시를 부른다.
‘당신은 왜 나를 열어놓고 혼자 가는가’ (김혜순의 열쇠, 48~49쪽)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의 삼 십 세, 78쪽)
『순간을 읊조리다』엔 칠십 명 시인의 시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의 문장들이다. 시의 조각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할까. 어떤 문장은 일기 같고 어떤 문장은 편지 같고 어떤 문장은 절규이며 어떤 문장은 눈물이다. 누군가의 시가 아니라 모두의 시처럼 익숙한 시어들도 있고 낯선 시인의 문장도 있다. 오래된 친구처럼 반가운 시인, 더 많이 알고 싶어서 검색창에 어떤 시인의 이름을 써 넣는다.
기존의 다양한 시를 모아 엮은 시집, 시인이나 소설가가 선택한 시를 수록한 책과 달리 『순간을 읊조리다』는 시인의 노래를 일러스트레이터 봉현의 그림으로 담았다. 한 편, 한 편 정성으로 그려낸 시화전 같은 책이다. 누군가는 학창시절에 좋아하는 이에게 고백을 전하고 받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상대가 시에 담긴 은밀한 감정을 발견하는 예리한 이라면 얼마나 달콤한 고백일까.
가을이 손을 내미는 시기 박준의 문장을 가슴에 새긴다.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박준의 환절기, 199쪽) 내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시란 이렇게 위대하다. 그리고 차오르는 달을 기다리는 깊은 밤엔 이런 문장이면 충만하다. ‘밤은 네가 잠들기를 바란다 밤은 혼자 있고 싶은 것이다’ (황인숙의 밤, 170~171쪽) 이제 밤과 둘만의 시간, 밤의 진심을 듣는 시간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시집이 아니더라도, 시로 빚어진 영롱한 보석을 발견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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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뭐든지 패스트의 시대이다
그래서 패스트 푸드의 시대이고 인스턴트 푸드의 시대이다
패스트 인스턴트
그렇게 모든 것을 간편하게 계량화하여 그저 즉석에서 해치우려는 풍조가 문학인들 먹어치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소설은 경장편이라는 애매한 장르가 서서히 붐이 일고 있다
아무리 단편이 인기가 있어도 소설은 장편으로 승부를 본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경장편이라는 짧은 장편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장편으로 가기에는 힘들고 지겨우니 대강 아주 짧은 경장편으로 장편을 충족하면서 중량은 대폭 줄이자는 것이겠지
그렇게 소설이 인스턴트를 쫓아가더니 문학의 출발점인 시 역시 패스트를 외면하지 못했다
일단 수록된 시 구절들은 좋다 시라고는 할 수가 없으니
가령 예를 들자면
누구나 다르게 살아가는 거야 똑같이 보이고 싶어 하면서 (김행숙 / 72 p)
달력을 넘기다 손이 찢어졌어요 어머니가 웃으시며 붕대로 감싸주셨어요 얘야 시간은 날카롭단다 (조인선 / 118p)
이런 정교하고 절묘한 시어들이 가슴을 찌르고 뒷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까지다
거두절미하고 맥락에서 사지를 절단하고 뇌를 분리하고 살을 발라낸 이 단어들이 구절로는 합당하고 날카로운 울림이 될지는 몰라도 이 구절들은 어디까지나 시이다 적어도 이전에는 , 전체에서 떼어내어 오기 전에는 시였다
시 속의 활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야생의 들판에서 달리던 야생 동물들을 동물원에 데려다 놓고 우리 속에 가두어 전시하는 것보다도 더 못한 짓을 시집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 야수들은 몸이 온전한 채 도심의 동물원으로 압송되어 온다
그러나 이 시들 혹은 시 속의 구절들은 몸에서 떼어난 장기들이다
심장과 콩팥과 위와 간 들이 어지럽게 아무 주제와 맥락도 없이 무기적으로 그냥 한 권의 시집 속에 묶여 있다
과연 이래도 좋은 것인가
아무리 책이 안 팔리고 시가 안 읽히는 세상이지만 판매를 위해 정선집이나 엮은 책도 아니고 이젠 발췌한 엮은 책이 나올 정도까지 되어야 할까
언어의 맛을 알 수는 있겠지만 시의 모습을 볼 수가 있을까 입술만 보고 손만 보고 발만 보고 어떤 여인을 반해 쫓아 다닐 수 있겠지만 사랑은 그 여인의 얼굴과 가슴과 몸매를 다 보고 그리고 성격과 정신 기타 등등까지 다 알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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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시집을 읽는 사람은 더더욱 드문 거 같다. 시라는 것은 읽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접할 일이 드물다고 생각해서? 사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수많은 순간을 시와 함께 하고 있다. 노래가사, SNS의 좋은 글귀, 광고카피, 이런 것들이 결국 시의 한 형태가 아닐까? 생활 속에서 작은 울림과 떨림을 함께 선사해주는 시. 결코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곁에 두고 시를 가까이 하고 싶을 때 읽기 좋은 책 <순간을 읊조리다>. 무려 70명의 시인의 시를, 그 중 더 특별하고 빛나는 순간만을 모아 감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록새록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 그 어느 순간으로의 귀환. 시나 음악이 좋은 것은 읽는 순간, 나를 그 어떤 과거의 시공간으로 훌쩍 데려다주는 데 있을 것이다. 그 때 그 눈빛, 그 공기, 떨리던 목소리까지 순식간에 되살리면서 때론 기뻤던 그 순간, 또 때론 힘겨웠던 그 순간 어느 과거의 한 시점에 서 있는 나. 나는 그렇게 과거의 나를 지켜보면서 그동안 나를 지나온 것들에 대해 위로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를 살아갈 응원이 되어 돌아온다.
짧은 글, 긴 여운. 쉽게 읽어나가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함축된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고 무겁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지 않고 독자에게 여러가지 해석의 여지를 남겨주는 것, 그것이 시의 매력이 아닐까. 그래서 여러번 다시 읽게 되고, 읽을 때마다 또다른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힘. 오늘은 이 구절이 아팠었는데, 내일은 또 어떤 구절이 내 안에 깊이 와서 박힐지. 그 표현력이나 의미에 감탄하면서.
그대에게 시를 권한다. 스스로를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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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시집을 샀던 마지막이 언제였더라... 잘 기억이 나지않는다. 지금 소장하고 있는 시집들은 하나같이 다 묵은애들뿐, 새롭게 맞은 애는 하나도 없는것 같다. 한때는 나도 넘쳐나는 감성에 시집을 읽으며 눈물깨나 흘리던 소녀였었는데.. 시집 한쪽에 나뭇잎도 넣어놓고 꽃잎도 넣어놓고 네잎클로버 찾아 헤매던 나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시와는 아주 멀어진 삶을 살고 있다. 어쩌다 가끔 시집을 들춰보기는 하는데 그나마도 청소년기에 풍랑에 휩쓸리지않을까 걱정스러운 아들녀석의 마음을 알고싶은 마음으로 펼쳐드는 청소년시집일뿐, 정통시집은 가까이 한지 꽤나 먼 시간이 흐른것 같다. 며칠전이다.오락프로를 보다가 코끝이 찡해지는 경험을 하게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이는 안도현님의 [간장게장]이라는 시에, 그리고 그 마지막 싯귀에 그만 코끝이 찡해지면서 숙연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그렇게 시라는것은 문득문득 잊고있던 감성들을 일깨운다.
삶의 빈칸을 채우는 그림하나 시하나 [순간을 읊조리다]에는 70명의 시인들의 시에서 아주 특별한 문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처음에는 반가운 감정보다는 의아한 감정이 먼저 앞선것이 사실이었는데 막상 천천히 음미하며 읽다보니 이것은 이것 나름대로 또 다른 감동으로 전해지는것 같다. 이책이 다소 아쉬운 기분이 든다면 이책에 소개된 시들을 다시 찾아 감상하는것도 또다른 재미일것같다. 이근배님의 [살다가 보면]에서 발췌한 문장을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앞뒤 시는 모두다 잘라내고 단순하게 이 문장만을 보고 시의 전부를 알 수는 없겠지만 인생사 살아가는일이 우리네 뜻대로 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말하고자 하는정도는 알 수 있을것 같다. 넘어지지않을곳에서 넘어질때도 있고 사랑을 말하지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때도 있겠지만 그 모든것들이 살다가보면 생기는 일이니 그냥 그렇게 넘어가라는 뜻이 아닐까하는 내식대로의 해석. 어쩌면 시가 그래서 더 좋은것일런지도 모르겠다. 한편의 시가 모든이의 가슴에 똑같은 울림으로 다가오는것은 아닐것이다. 시를 접하는 이의 상태에 따라 시는 여러가지 천갈래 만갈래의 다름으로 다가갈런지도 모른다.어떤식의 접근도 모두다 허용될것만 같은 느낌을 전해주는것이 바로 '시'이다.
문정희님의 [공항에서 쓴 편지]는 결혼안식년 휴가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는 많은 주부들이 특히나 공감을 했을것이란 기분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여자라는 특히나 엄마라는 사람들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이 자연스럽게 학습이 된다. 누가 특별하게 이래야한다고 가르친것도 아닌데 내가 아닌 가족이 먼저가 되는것이 어느틈엔지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는것이다. 나보다는 가족이 먼저이다보니 정신을 차리고보면 나홀로 빈껍데기같은 기분이라고 할지..빈둥지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겨난것을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도 있을것이다. 시를 읽으면 공항에 있는 나이든 여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이 된다. 그 여인은 나일수도 있고 내 주위의 누구일수도 있는 아주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을것 같다. 그러나 공항에 있는 여인은 아마도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으리라..그저 그렇게 한번 모든것을 뒤로하고 떠날수도 있을것같은 기분을 느끼는것으로 만족하고 다시금 일상이 있는 가족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아마도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고 있을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나중에 언제이고 또 지금이 힘들어지면 공항으로 달려가 편지를 다시 쓰게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은규님의 [바람의 지문]에서 발췌한 문장에서 나는 과거의 기억과 만나게된다.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도 그랬던 경험이 있었다. 그렇게 그 사람의 흔적을 느껴보고싶어서 가만히 그의 손길이 닿았을 책장에 뺨을 대어보며 두근거렸던 기억이..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비슷한 모습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의 시에서 발췌한 문장들, 때로는 그것으로 충분할수 있다는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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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순간 우리는 그 상황에 맞는 말들을 누군가 해 주길 바란다. 기쁠 때는 그 기쁨을 함께 나눠 갖고 싶고, 슬플 때는 그 슬픔을 누군가 위로해 주었으면 하는 그런 맘을 갖게 된다. 물론 그런 순간마다 온전히 내 마음을 그대로 알아주고, 그래서 딱 내가 갖는 그 기분에 완벽히 맞는 말들이 아니라면 딱히 위로가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내 심정을 그대로 글로 옮긴 문장 하나, 나를 위로해 주는 싯귀 한 줄보다 더 고마운 것은 없다.
여기 바로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문장들이 있다.
나는 명언집, 하루 한장씩 읽는 명문장집 등을 좋아한다. 부담 없이 자투리 시간에 온전하게 그 속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그것은 너무도 교훈적이고, 바르기만 한 것이어서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나를 돌아보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반성하게 되고, 그래서 조금은 마음의 무거움을 느끼며 그 하루치의 책장을 닫는다.
물론 여기 옮겨진 칠십여분의 시인의 문장들도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반성하게 하지만 그래도 '아~'하는 감탄으로 끝나는 글들이 많아서 더 좋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겨서 좋다. 단순한 한 줄의 문장이어서, 그리고 굳이 그것을 설명한 문장을 읽어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서 좋고, 그런 문장을 읽기를 강요하지 않아서 좋다. 시인의 마음으로 쓴 글을 그대로 읽어내려 그것을 나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걸로 족하다. 그래서 시는 좋다. 하물며 그 시들 중 가슴에 와 닿는 그 문장들, 바로 그 순간들을 옮겨 놓은 것이니 더 좋을 수 밖에.
그리고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그 페이지 속 한 문장만을 읽어도 좋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반드시 앞에서부터 읽어가야만 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서. 그런 글들이 아니라서 더 가까이 두게 된다.
이 가을, 순간 순간 펼쳐들고 그 상황속으로 빠져들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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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짧지만 너무나도 많은 의미가 담겨져있다. 예전에 시짓기 대회를 나간적이 있었다. 하나의 주제를 주고 3일 이내에 작성하여 제출하는 방법이었다. 주제가 나오고 2일동안은 아무 생각없이 놀았다. 시는 말그대로 형식만 대충 지켜서 주제에 맞게 내는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제출하기 하루전날은 밤을 샜다. 이때 처음으로 창작의 고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것 같다. 시 한문장 한 문장속에 시인의 모든 영혼을 담아 써야된다는것을.... 이책을 처음 소개 받았을때 정말로 읽고싶었다. 시 한문장 하나하나 가슴에 담고 싶었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한문장
소중한'순간'을 선물합니다
그냥 마음 깊숙히에서 나오는 뭉클함이랄까? 형용할순 없지만 그 문장 한마디 속에서 힐링이 된 기분이었다. 소중한 순간의 시하나 그림하나는 대단했다. 거의 시전체를 담아놓지 않고 소중한 문장 하나씩만 새겨 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더많은 여운을 남긴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숨이 찬 게 아니야.
숨이차서 여기까지 왔어(아스팔트 위에 지렁이-김개미)
쓰러지지 않으면 내가 아니다.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내가 아니다.(오뚜기-한명희)
시와함께 담겨진 그림이 있지만 나는 올리지 않을것이다. 그 느낌의 맛이 없어질것 같다. 이책은 평생 두고두고 봐도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만나게 될것같다. 우리모두 칠십명의 시인의 삶을 한번 들여다 보자. 바쁜 일상속에서의 조그만한 힐링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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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문득 마주치는 그 순간. 이 책을 그 순간을 읆조린다는 제목을 달고 있다. 칠십명의 시인이 280편의 글을 싫었다. 칠십명의 시인이 싫은 글인데, 280편의 시라고 하지 않고 280편의 글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책에 실린 글들이 시라고 하기엔 너무 짧기 때문이다.
물론 드물게 10줄 가량. 제법 시처럼 보이는 글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들은 짧다. 아주 짧다. 내가 한번 헤알려 보았다. 문답 형식으로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은 19자 이루어져 있었다. 19단어가 아니라 한글 글자로 19자... 더 짧은 글은 없나... 휘리릭 책장을 넘기다 보니 13자로 이루어진 글도 있다! 아... 또 찾았다. 이 책의 62페이지에는 9자 짜리 글도 방금 찾아냈다.
내가 이렇게 이 책에 실린 글들이 짧은 편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종이값이나 책값이 아깝다거나... 이렇게 성의 없는 글들이 있나... 라고 비난을 하기 위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딱 그 반대를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짧은 글들이 주는 그 응축된 의미. 그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삶의 순간에 대한 포착의 힘! 나는 그것을 칭찬하고 싶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글들이 어두운 빛을 띄고 있다. 하긴 시라는 것들 중에 삶의 아름다움, 영롱함... 이런 것을 찬미하는 글들이 그리 많은가. 우리가 읽는 소설들 중에 행복감에 겨우하는 책들이 그리 많은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오늘 하루가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면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이 책은 삶이 그렇듯이 비루하고 지루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짧은 글들이 마음을 파고 들면서 묘한 공감을 자아내는 힘을 가진 글들이다. 한장을 넘기면 다른 시인의 글. 다른 시인의 삶의 다른 면을 이야기하는 지극히 짧은 글인데. 그 글들이 내 눈으로 들어와 내 가슴에 짖은 자국을 남긴다.
그래서 이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책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서너장을 읽고 책을 닫고, 또 서너장을 읽고 책을 닫기를 반복한다. 이 책이 가진 찐한 공감 떄문에 이 책을 멀리 내버려 둘수도 없고, 또 이 책을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휘리릭 읽어버릴 수도 없다.
약속이나 한듯이 이 책에 실린 글들 중에 멋을 부린 글은 없다. 고작 10몇 글자. 떄로는 20-30 글자. 아주 가끔은 100자를 넘는 글들. 이런 글들에서 멋을 부리면 얼마나 부릴수 있겠는가. 기교로 꾸며지지 않은 진솔한 한두 마디가 가슴을 후벼판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글들이 또 있을까.
책에 실린 내용은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책을 편집하는 과정은 참 많이 힘들었을것 같다. 몇몇 글자로만 채워진 종이의 텅빈 여백 건너 저편에는, 그 글에 알맞는 담백하고도 찐한 그림들이 꼭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기 떄문이다. 칠십명의 시인. 그리고 그림. 그리고 기획과 편집. 그런 정성들이 열매를 맺어 오늘 내 마음에 이리도 선선한 바람이 불게 만드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