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우리는 중국 고전을 읽거나, 역사서를 볼 때 시대구분에 애를 먹는다. 도대체 어느 시대 이야기인지, 그 시대가 선뜻 머릿속에 그려지지를 않기 때문이다. 이 책 또한 제목과 마찬가지로 춘추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춘추시대란 동주시대의 전반을 이야기 한다. 그러면 동주시대는? 기원전 8세기 중국 최초의 봉건국가인 주 왕조는 낙양으로 천도를 한다. 중국역사에서는 주 왕조가 낙양으로 천도하기 이전을 서주시대라 부르고, 그리고 천도 이후 진시황제가 전국을 통일할 때 까지를 동주시대라 부른다. 동주시대는 다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뉜다. 춘추시대는 흔히 춘추5패의 시대라고도 하는데, 이는 제환공, 진문공, 초장왕, 오합려, 월구천이 존왕양이를 기치로 왕도에 가까운 패권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춘추시대는 진나라가 조, 위, 한 3국으로 분열될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특히 후반기는 따로 이 책의 주된 내용이 되는 오월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晉)나라가 분열한 후 진(秦)시왕이 천하를 통일할 때 까지를 전국시대라고 하는데, 이때는 패자(覇者)의 의미가 퇴색하고 제왕의 의미가 강화되는 시기로, 여러 나라가 쟁패를 다투는데 이들을 전국7웅 이라고 하며, 연, 조, 제, 위, 진, 한, 초나라가 그들이다. 중국사상의 원류인 제자백가들이 활동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책 오월춘추는 춘추시대 말기 패권을 다툰 오월 두나라의 쟁패사이다. 후한초기 사람인 조엽이 쓴 이 책은 풍부한 사료와 전설 중에서도 가장 생동적인 얘기만을 뽑아 기록함으로써, 이 책을 삼국지연의(演義)와 같은 소설의 하나로 만들기도 했지만, 연의체사서의 효시를 이룬 역사서라 할 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월동주, 와신상담의 고사성어가 유래된 오월 두나라의 역사인지라, 이 책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고사성어를 찾아보려 하지만, 그것은 연의(演義)에서나 찾을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오사(吳史)와 월사(越史)로 나누어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오나라의 선조는 태백이라고 한다. 19대 수몽의 시대에 이르러 강성해졌으며, 초나라가 오나라를 치기 위해 군대를 보낸 수몽2년(기원전 586년) 이때부터 오나라는 비로소 중국과 교통하면서 제후들을 적으로 삼게 되었고, 칭왕, 칭패의 단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몽은 자신의 네아들중 넷째가 왕위를 이어받기를 원했으나, 넷째는 죽기로 고사하니 할 수 없이 형제가 차례대로 이어가 넷째에 이를수 있게 되기를 유언하고 죽었다. 그러나 첫째, 둘째, 셋째에 이르고, 넷째에 이르러서도 왕이 되기를 고사하니 셋째의 아들 요가 왕위에 올랐다. 이에 수몽의 장남의 아들인 태자 광이 기회를 보아 요를 죽이고 자신이 보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합려이다. 저자는 또 오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많은 페이지를 오자서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 오씨 가문은 오거-오사-오자서 3대에 걸쳐 초나라의 충신으로 활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초평왕이 비무기의 간언에 속아 태자 건과 오사를 핍박하고, 종국에는 죽이려 하자 오자서는 여러 나라를 거쳐 오 나라로 망명하고, 초평왕은 오사와 큰아들 오상을 처형한다. 오왕 합려는 오자서와 역시 초나라에서 망명해온 백비, 그리고 오자서가 천거한 손무와 함께 나라를 안정시키고 칭패의 길로 들어선다. 합려5년 오나라는 초나라 공벌을 시작하여 초나라 도성을 함락시키고 초소왕은 도주한다. 오나라를 중심으로 초나라, 월나라 등 여러 군주들간의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오자서가 버티고 있는 오나라가 그 중심에 있다. 합려가 죽고 부차가 왕위를 이어 받는다. 기원전 494년 오왕 부차는 월왕 구천에게 항복을 받는다. 오자서는 죽일 것을 극력 주장하지만, 구천에게 뇌물을 받은 백비는 살려둘 것을 간언한다. 오자서와 백비 사이에 커다란 틈이 생긴다. 오왕 부차는 오자서의 충언을 매번 거부하고, 부차13년 오왕은 백비로 하여금 제나라를 공격하게 한후 그들의 청으로 강화를 맺고, 종국에는 제나라 대신 월나라를 칠것을 주장했던 오자서를 자살하도록 만든다. 그 이듬해 오왕 부차는 태자의 간언도 무시하고 다시 제나라를 치자, 기회를 노리던 월왕 구천은 오나라 군사의 퇴로를 차단하고 오나라 도성으로 처들어 간다. 부차20년(기원전 476년) 월왕이 다시 오나라에 처 들어왔다. 오왕은 도주하였으나, 결국 고소산에서 월왕 구천에게 포로로 잡혀 구명을 요청하지만, 월왕은 범리의 간언대로 이를 외면하고, 이에 부차는 자결한다. 월나라의 선군은 무여다. 그러나 후대 군주들의 능력이 미약하여 자립하지 못하다가, 원상의 대에 이르러 흥기하여 칭패케 되었으며, 이때 오나라에서는 수몽과, 제번, 합려등이 재위하던 시기였다. 구천5년(기원전 492년), 월왕 구천이 범리와 함께 오나라로 가서 노복이 될 상황에 처한다. 오왕 부차는 월왕 구천을 죽이라는 오자서의 청을 거절하고, 구천이 수레를 몰고 말을 기르며 석실에서 지내게 한다. 오왕이 병이 들자 구천은 범리의 계책대로 문병을 가서 오왕의 똥과 오줌을 찍어 맛보고, 그가 쾌차할 것 임을 예언한다. 오왕 부차는 거듭되는 오자서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백리의 청을 받아들여 월왕 구천을 석방하고, 구천은 범리와 함께 귀국한다. 3년 만에 귀국한 구천은 백성들을 돌보고, 오나라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한다. 그렇다고 오나라에서의 굴욕을 잊은 것은 아니다. 그는 늘 고신로심(苦身勞心: 몸과 마음을 다해 일을 수행함)하여 밤낮으로 열심히 그때의 치욕을 생각했다. 졸음이 올 때는 요(蓼: 매운 맛이 나는 여뀌)를 이용해 잠을 쫒아내고, 다리가 차가울 때는 끓인 물에 발을 담가 추위를 몰아냈다. 겨울에는 늘 포빙(抱氷: 얼음을 껴 안음)하고, 여름에는 오히려 악화(握火: 불을 곁에 둠)했다. 구천은 대부 문종의 계책대로 사묘를 세우고 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좋은 목재를 찾아 오나라에 보내 그들이 궁전을 짓는데 사용토록 하고, 미녀를 보내어 오왕의 첩으로 삼게 하고, 곡식을 팔라고 청하여 그들이 기황에 처하도록 만들었다. 오자서는 월에서 물건들을 진상하고, 무엇인가를 요청할 때마다 끊임없이 불가를 진언하고, 월나라를 칠것을 주장하였으나 오왕 부차는 백비의 말을 듣고 월왕의 충성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구천15년(기원전 482년) 오자서가 자살하자, 마침내 월왕 구천은 오나라를 친다. 오나라 도성까지 처 들어가 궁을 불태우자, 황지에서 제후들과 회맹 중이던 부차는 강화를 청하고 구천은 이에 응한다. 구천19년(기원전 478년) 월나라는 다시 오나라를 치고, 오군은 월나라 군사에게 연패를 당한다. 오왕 부차는 고소산 위로 몸을 피하고, 예전 회계산에서 자신이 월왕을 살려준 것과 같이 살려달라고 간청을 한다. 월왕이 야박하게 하지 못하고 강화를 하려고 하자, 범리가 나서서 만류를 한다. 이에 오왕 부차는 자결을 한다. 이후 월은 춘추시대 최고의 패권국이 된다. 범리는 오자서와 같은꼴을 당하지 않으려고 월왕곁을 떠난다. 범리는 문종에게도 떠나기를 권하지만 문종은 사양한다. 월왕 구천은 결국 문종으로 하여금 자결케 한다. 춘추시대 오와 월의 역사이지만 소설과 같다. 오사를 읽어보고 월사를 읽으면서 시대를 꿰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다. 오사에는 춘추5패에 대한 이야기가 다 나오지만, 월사에는 오직 구천의 이야기만 나온다. 그러나 하나하나 맞추어가며 읽는 것이 역사서를 읽는 맛이기도 하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됨을 여기서도 느낀다. 오왕이 월왕을 잡았을 때 오자서는 죽이기를 청하지만 오왕은 죽이지 않는다. 월왕이 오왕을 잡았을 때 월왕은 오왕을 살려주려 하지만, 범리는 아니됨을 간한다. 오나라가 칭패했을 때, 오왕은 더 이상 충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오자서를 죽게 만든다. 월왕이 오를 멸하고 칭패했을 때, 그도 더 이상 충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에 범리는 그를 떠나고, 문종은 자결하게 된다. 토사구팽은 한고조 유방과 한신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보다 이미 200년전 춘추시대에도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오늘을 배운다. 더욱이 하수상한 시절에, 우리들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지 그것을 역사서에서 찾아본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 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