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대 꽃을 제재로한 일련의 시로 우리 시에 존재론의 문제를 끌어들임으로써 한국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시인으로 추앙받는 김춘수. 시인 김춘수님은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세계의 영향으로 소위 말하는 릴케류의 관념시를 쓴 인물이다. 특히 꽃을 소재로 하여 상징주의적 빛깔이 짙은 이데아를 추구한 것은 그 분만의 독특한 시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때 청소년들의 애송시의 선두자리를 다투던 <꽃>, 존재의 본질 인식에의 염원을 간절히 노래한 <꽃을 위한 서시>, 존재의 비밀과 경이로움을 예찬한 <능금>, 삼월의 남쪽 바다에 대한 추억을 심상화한 <처용 단장> 등은 김춘수님의 시세계를 전부다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국어시간에 지문으로 등장한 <꽃>이라는 시 하나가 나를 김춘수님의 시세계로 빠져들게하는 하나의 실오라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특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로 시작하는 <꽃>은 이성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느끼기 시작하던 나의 청소년 시절에 외우고 외워도 질리지 않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그런 시가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저 시의 노랫말이 좋아 암송했었다. 후에야 그 시는 그런 사랑의 노래라기 보다는 '존재의 본질 인식' 이라는 다분히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경향의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99년 2월, 서점에 들렀다가 문득 은은한 자주빛을 발하는 작은책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은색 빛깔의 '의자와 계단' 이라는 글씨와 작은의자와 함께 그옆을 지나고 있는 곡선의 길이 눈에 들어왔다. 김춘수님의 시집이었다. 한창 김춘수님의 시세계를 흠모하고 있던터라 시집은 당연히 그 자리에서 내손에 잡혔고 어느새 내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시에 대한 아직까지 식지않은 그분의 뜨거운 열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의자, 편안히 쉴 수 있는 안식의 자리로서의 의미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서, 다시말해 의자는 안식 그 자체로서 그 의미를 다한다고 말하는 시인. 계단 역시 오르고 오르면 결국엔 내려와야하는, 그 무엇인가를 표상하는 하나의 기호일지 모른다는 시인의 말은 이제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노(老)시인의 삶에 대한 통찰과 인식의 편린을 엿보게 해준다. <놀>이라는 시에서, 어느 여름 저녁을 떠올리며 서쪽하늘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 어머니 얘길 꺼내는건, 그리고 '그뒤로 어머니는 소식이 묘연합니다' 라고 끝맺는건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문득 자신의 어린시절 순수함과 사랑의 표상이었던, 이제는 이미 떠나버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엄습해왔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들었다. 귀뚜라미 울어대는 가을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계단>은 아직은 삶의 종반기가 먼 얘기인 내게 앞으로 20년, 아니 3,40년 후의 삶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가을 어느날 귀뚜라미는 '거기 중간쯤 어디서 부르르 수염을 떨고 있다.' 그리고 '끄트머리 계단 하나가 하늘에 가 있었다.' 문득 인생이라는 계단에서 삶의 종반을 향해가는 인생의 내리막 길은 어찌보면 '끄트머리 계단 하나' 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의 시를 통해서 나는 왠지모를 강한 생명력과 한편으로는 이제는 소멸해가는 어떤 생명의 기운을 느낄수 있었다. 매우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여든에 접어들어 노래하는 노(老)시인의 노래이기에 한편으로는 소멸해가는 생명의 기운을,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통해 생명에 대한 무언가를 역설적으로 느끼게 해준건 아닐까? 50여년전 존재의 본질 탐구에의 염원을 애태게 부르짖었던 시인의 그러한 노래들이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내게 안겨 주었다면 <의자와 계단>을 통해서는 이제는 이미 완숙의 시기를 넘어서 점점 꺼져가는 작은 촛불과 같은 시인의 삶에 대한 통찰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이라는 선(線)상의 처음과 중간을 넘어서 이제는 끝을 향해가는 노(老)시인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며 '삶' 이라는 단어에 대해 조금은 엄숙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더군다나 시를 잘쓰지도 못한다. 딴에는 시랍시고 가끔씩 몇줄의 글을 끄적거려보지만 아직은 삶의 맛을 많이 맛보지 못해서인지 다분히 치기어린 글 나부랭이가 되고만다. 그럴때면 막연히 김춘수님의 시세계를 유유히 헤엄치던 지난 시간들이 머리속에 한가득 밀려온다. 한때는 문학소년을 꿈꾸며 김춘수님이 릴케의 영향을 받았다는 소리에, 그렇다면 나도 김춘수님의 영향을 받으면 괜찮은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해본답시고 어느 가을, 바람에 마른 잎새가 떨어지는 날, 말없이 교정을 거닐던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하지만 지금 난 문학소년이 아니다. 아니 더이상 '소년' 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문학이라는 이름과 걸맞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그리고 내게 존재에 대한, 삶에 대한 그러한 고민과 번뇌의 시간들은 이미 과거 속 아련한 추억으로 잠겨 버렸지만 김춘수님의 시를 읊을때면 그 과거의 시간들과 나의 행동들 모두가 '현재 진행형' 이 된다. 그리고 다시금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나는 누구인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