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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뱅의 빈 자리, 부재에 대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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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 빈 시간, 빈 하늘, 기다리는 마음, 빈 시선. 존재는 비어 있는 무언가가 모여 이루는 것이다. 부재不在야말로 존재存在의 흔적이다. 무언가가 비어 있다는 마음이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찾아온다. 그렇게 하나의 영혼에 부재가 찾아오면, 영혼은 그 부재에 사로잡혀 그것을 향해 치닫기 마련이고, 그의 치달음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사건을 야기한다. 과거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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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 빈 시간, 빈 하늘, 기다리는 마음, 빈 시선. 존재는 비어 있는 무언가가 모여 이루는 것이다. 부재不在야말로 존재存在의 흔적이다. 무언가가 비어 있다는 마음이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찾아온다. 그렇게 하나의 영혼에 부재가 찾아오면, 영혼은 그 부재에 사로잡혀 그것을 향해 치닫기 마련이고, 그의 치달음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사건을 야기한다. 과거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미래라는 양탄자 위에 펼쳐지는 것이다. 사건의 발생은 존재를 다른 차원으로 인도한다. 그곳에서 존재는 기존의 자기를 죽이고, 새로운 자기가 된다. 거듭난 자기에게 부재는 그의 강한 흔적이다. 말하자면 존재는 부재와 부재를 메우려는 존재의 의지 간 치열한 다툼의 창끝이다.


"자기 자신과의 단절이야말로 곧 자신에게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보뱅은 쓴다. 자기와의 단절은, 부재에 대한 사유와, 사유의 끝에 맺히는 검 하나의 용기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부재는 멈춤 없이 사유되어야 한다. 부재를 충분히 사유하지 않을 때, 자기의 부재를 외면하고 기존의 자기에 머물 때, 우리는 자기 자신과 스스로 작별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재라는 영혼의 구멍은 오직 우연이 낸다. 부재는 내가 만들어낼 수 없는 한에서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물론 돈키호테는 예외다. 시오랑의 말처럼 돈키호테는 스스로 사건을 만들어내는 유형의 인물이다.), 일단 출혈이 나면 멈출 수 없다는 점에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부재는 타자가 야기한 멈추지 않는 출혈이다. 구멍난 자리에서 다채로운 색깔의 혈액이 샘솟는다. 뱃고동처럼 멀리서, 모호하게 울려 퍼지는 부재의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나도 그 흐르는 것들을 어떻게든 주워 담아보려 했다. 그러나 부질없는 손짓. 붙잡으려는 손가락 사이로 너인 무언가가 흘렀고, 나는 그저 침묵과 함께 바라보았다. 내 허물이 모두 쏟아질 때까지. 부재에는 사라져가는 무엇이 있고, 때때로의 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의지, 그리고 붙잡으려는 마음과 기다림이 동시에 있다. 부재는 고독을 낳고 침묵을 낳으며, 글쓰기를 낳고, 하늘과 기다림을 낳는다. 


"멀리서 온 이 사랑 외에 다른 사랑은 없다. 모든 이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단 하나의 법칙이 있다고 말하듯, 사랑도 단 하나뿐이다. 모든 존재의 중심에 놓인 동일한 부재(不在), 고통 속에서도, 기쁨 속에서도 동일하게 자리한 부재가 바로 그것이다."(크리스티앙 보뱅, <빈 자리>, 26)


'멀리서 온 이 사랑 외에 다른 사랑은 없다.' 부재의 뱃고동이 마음속에 울려 퍼지지 않고서 하나의 영혼은 타자를 품을 수 없다. 부재 속에서 만나는 하늘, 공기, 흙, 나무, 바다, 그리고 잎들이 그 사람의 실재를 증명한다. 그 실재의 무게로 인해, 그 사람의 이름이 존재의 피부결에 새겨진다. 네루다가 "나는 당신이 우주의 임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이유가 이 때문일까? 나는 네가 존재함으로 인해 세상의 숨통이 트였다고 확신한다. 네 눈물은 슬픔의 정령이고, 네 웃음은 새싹들이 싹트기 전 자신을 점검하기 위해 방문하는 장소다. 


"사랑은 시련이다. 이 시련은 영적인 것이다. 영적인 것은 지상에서 일어나는 가장 커다란 혼란의 원인이며, 이 혼란은 축복이다. 요컨대 행복보다 훨씬 더 충만한 축복이다. 모든 것이 당신을 도망치게 하려는 그곳에서, 당신은 머문다. 모든 것이 당신을 저주하도록 부추기는 그곳에서, 당신은 피가 빠져나간 듯한 머리로 생각에 잠긴다."(크리스티앙 보뱅, <빈 자리>, 80)


a****n 2025.04.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