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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시를 가까이 두고 싶은 날. 와락 쏟아지는 장마 같이 끈질긴 이야기가 아닌 곰곰 적은 문장으로 뚝뚝 흩어지고 싶은 날이. 아침달 시집은 작은 가방이나 큰 호주머니가 소화할만한 아담 사이즈다. 이른 더위와 잦은 비로 리듬이 깨지고 감정기복이 심하던 차에 제목부터 혹했고 연한 민트의 손짓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왠지 이 시집을 읽고 나면 별로였던 여름도 반가운 손님마냥 말티즈로 빙의해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그렇다고 여름 과일이나 풍경이 많은 건 아니다). 그리고 표지에 그려진 사과들. 나는 감기 기운이 있거나 몸이 아프기 전에 사과를 찾곤 한다. 시원한 사과를 까서 아삭아삭 씹으면 좀 살 것 같아진다. 최근에도 사과 한봉지를 사다 매일 먹었고 시집을 읽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샀다. 주머니에 한 알의 사과를 소지하면 배시시 웃을 일이 많을 텐데! 사과 타령이 당혹스러우실 수 있겠다. 다소 생뚱맞지만 오월은 붉음과 초록이 전쟁하는 시기이다. 장미가 눈길을 끌고 유독 아름다운 것은 주변의 푸른 잎사귀들 때문이 아닐까. 초록 바탕 없이 빨강 저홀로 강렬한 고혹미를 뿜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오월의 색감 이미지를 사과도 품고 있다. 초록 사과와 붉은 사과. 민구의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는 점점이 형체를 찾아가는 즉석사진 같다. 검은 바탕에 초현실적으로 사물들이 떠오르며 접속되는데 그 조합이 기괴하거나 불순하지 않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초현실성을 머금는다. 어둡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래서일까. 일어났지만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날.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도 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림을 보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참고해보지만 아무 소용없는 날. “바람 한 점 없는 숲에서 / 흔들리는 나무”(악몽) 같을 때 펼쳐 볼만한 책이다. 읽다가 눈 감으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 와인 잔이 포도밭으로, 물 한방울이 잔물결 이는 바다로 바뀌며 새삼 내 이름을 만지작거리다 새로운 힘이 생성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