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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보여주는 명쾌한 진리 입문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보여주는 명쾌한 진리 입문서" 내용보기
믿음은 실체가 없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하여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깊다거나 얕다거나, 크다거나 작다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 보이고 증명하기가 어렵다. 믿음은 그래서 어렵다. 그 어려운 믿음을 저자 피터 젠센은 서두르지 않고 하나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보여주는 명쾌한 진리 입문서"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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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실체가 없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하여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깊다거나 얕다거나, 크다거나 작다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 보이고 증명하기가 어렵다. 믿음은 그래서 어렵다. 그 어려운 믿음을 저자 피터 젠센은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조목조목 신학과 성경 말씀에 기반하여, 눈으로 읽게 하고 가슴으로 느끼게 하며,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다시 확신하게 한다.

굳이 조직신학이라는 이름을 넣지 않더라도, 평신도가 쉽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도록 1부. 창조하시는 하나님. 2부 구원하시는 하나님. 3부 주님이신 구세주 알기,라는 챕터로 나누어 하나님에 대하여, 주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예수님의 구주되심에 대하여, 그분을 믿는 믿음에 대하여 그리고 믿음의 소망과 종말과 심판에 대하여, 하나도 빠짐없이 다 설명해준다.

책 판형이 크고, 분량도 400쪽이 넘어가는 벽돌책 수준이어서, 단번에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어렵지 않다. 저자가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지만, 오랜 기간 강의한 경험이 녹여져, 글은 신학적으로 접근하면서도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알기 원하고, 믿음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하게 알기 원하는 성도라면 누구라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한 문체로 서술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보이지 않고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이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관심을 두고 계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것이 답이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취하고 있다. (20)

성경은 인간의 근본 문제는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철저하게 단절되어 어둠에 갇혀 있기 때문에 생김을 알려준다. (21)

눈에 보이지 않고,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반문하는 우리를 향하여 주저하지 않고, 장황하게 펼치지 않고, 단번에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을 가르는 것처럼, 그렇게 반듯하게 성경으로 찔러 들어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문제는 하나님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자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었던 예수가 하나님이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예수가 하나님이다. 우리에게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우리는 신성모독을 저지르는 데 동참하는 것이 된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라는 사실은 흐릿하거나 희미하지 않고 명명백백하다. 

성경은 역사적이자 종말론적이며, 인간적이자 동시에 신적이다. 진정한 비평은 이 두 가지 요소 모두에 반응해야 한다. (94)

신자가 된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경적으로 입증된 복음을 믿는 것이다. (95)

신약성경의 여러 문맥에서 삼위일체적인 공식, 즉 아버지와 아들이 성령과 함께 계시면서 아들의 신성과 성령의 구별성 두 가지 모두를 확증해 주신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4) 만약 아들이 신적 존재가 아니라면 그분의 이름이 이런 기도에 나온다는 것은 신성모독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성령이 어떤 식으로든지 구별된 존재가 아니시라면 이 대목에서 예수님, 하나님과 나란히 언급되지 않았을 것이다. (111)

저자는 말한다. 믿음이란 것은 덮어놓고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근거를 둔 확신이라고, 우리의 믿음은 확신이다. 확신이 아니면 믿음이 아니다.

하박국 선지자에게 주신 답이 성경 전체의 공통된 입장이다. 하나님은 순결하시고 권능이 있으시다. 그분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하신다. 때가 되면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하지만 이 믿음은 덮어놓고 믿는 묵인이 아니라 십자가에 근거를 둔 확신이다. (138)

세상은 점점 기독교를 비정상적인 종교로 몰고 간다. 과학은 진화론과 빅뱅이 잠식했고, 기독교의 창조론은 신화 정도로 치부한다. 진화론을 믿지 않으면 마치 이성이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이성은 우리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목적도 없이 수많은 우연의 겹침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용서는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큰 대가를 치르셨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대가를 치르신다는 것이 '법적으로 허구'일 리 없다. (235)

핵심 질문은 '언제 회심하였는가?'가 아니라 '회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이다. 즉 지금 주님과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가, 그래서 회개와 믿음을 경험하고 있는가,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가다. (284)

저자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주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선행은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 위로 걸어와서 복음을 받으라고 한다면 우리는 단 한 사람도 성공할 수 없다. 온전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을 내어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다.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믿음이 있다면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신자가 아니거나 믿음이 없는 사람일 수 있다. 믿음이 있다면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경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당신의 믿음은 진실한가?
YES마니아 : 플래티넘 i*******n 2025.10.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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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신학교에서 교리 즉 조직신학을 공부할 때 순서가 정해져 있다. 먼저 조직신학 서론을 공부하고 그 후로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의 순서로 공부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조직신학의 뿌리가 되는 성경이 어떤 책인지를 배우고, 그 다음 성경에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공부하게 된다. 인간론을 흔히 인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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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신학교에서 교리 즉 조직신학을 공부할 때 순서가 정해져 있다. 먼저 조직신학 서론을 공부하고 그 후로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의 순서로 공부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조직신학의 뿌리가 되는 성경이 어떤 책인지를 배우고, 그 다음 성경에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공부하게 된다. 인간론을 흔히 인죄론이라고도 부르는데 인간의 타락에 중심으로 두기 때문이다. 그 후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게 되고,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각 사람에게 어떻게 이루어가는지 대한 구원론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이 공동체를 이룬 교회에 대해서 배우고, 개인과 역사의 종말에 관하여 마지막으로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은 색다른 다른 관점으로 기술되어 있다. 물론 조직신학 전체의 내용을 세밀하게 다루지는 않지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부는 창조하시는 하나님 알기 2부는 구원하시는 창조주 알기 3부는 주님이신 구세주 알기로 구성되어 있다. 즉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교리를 설명하기 앞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거대한 입구를 예수 그리스도로 지칭하며 복음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어떻게 보이지 않고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을 알수 있는가? 그 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성도가 복음을 받아 믿을 때 진실하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근본 문제는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직접 사용하신 복음으로부터 기독교 교리를 시작하고 있다.

제1부 창조하시는 하나님에서는 기존 조직신학의 서론과 신론을 다루고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저자는 복음이 하나님을 아는 입구로 설명하며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룬다. 그래서 성경에 계시되고 말씀을 통해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어떤 분이시며, 우리에게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 기술하고 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하는 지식은 실천적이며 현생과 오는 세대에서 우리의 삶 전체와 엮여 있다는 점에서 관계적이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에게 믿음과 순종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제2부 구원하시는 창조주 알기에서는 내용적으로 인간론과 기독론을 다루고 있다. 구원하시는 창조주라고 표현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는 관계 특히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은 고귀하며 동시에 타락했다. 하나님은 인간이 사회적이고 미래적인 존재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성에서조차 철저히 망가진 자들이다. 인간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먼저 그분의 다스림 아래 살 민족을 만들어 내셨고, 그들에게 언약이라고 하는 구원의 형식을 제공하셨다. 그리고 미리 선택되고 언약을 받은 민족의 후손으로 구세주가 태어나셨다. 자기 백성에게 거절당하신 겸비하신 주님은 그분의 목숨을 세상을 위해 내놓으셨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높이 들리셨고 거기서 만물을 통치하신다. 높이들린 주님께서는 그분의 영을 보내셔서 우리가 그분과 연합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제3부 주님이신 구세주 알기에서는 구원론과 교회론 그리고 종말론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기존의 교회론의 내용과 형식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서의 교회를 말하고 있다. 복음의 말씀에 구원받은 자의 반응은 믿음과 회개이다. 높아지신 주께서는 오직 그분의 은혜로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신다. 구원은 주께서 택한 자를 부르셔서 이루시는 것이므로 오로지 그분에게만 속한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이 세상과 육신과 마귀 아래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서 사는 것이다. 믿음의 삶은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살 수 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하나님의 교회와 교제하는 삶이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역동적인 도움을 입어 사는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그 방향성이 사랑과 감사와 순종으로 연결된다. 만약 믿음이 순종으로까지 이끌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소망하는 삶이다. 끝으로 모든 이가 부활할 것이고, 모든 이가 심판받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것이다. 미래의 모습이 어떻든 사랑이 승리하고, 진정으로 성숙한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서 승리자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 교리를 소개하는 책으로 적당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물론 책 속에 많은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어서 초보자가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어느정도 공부를 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믿음으로 사는 삶’ 챕터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고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가장 크게 두드리고 감동을 주었던 챕터가 ‘믿음으로 사는 삶’이었다. 원저자가 책 제목을 “The LIFE of FAITH” 라고 한 것으로 보아 나와 같은 사람을 타겟으로 책을 저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존의 조직신학의 틀과 관점도 좋지만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이 복음의 관점으로 교리를 이해하는 것도 매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b*******1 2025.03.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