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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이빗 린 감독이 1984년에 만든 영화 <인도로 가는 길 A Passage to India>을 보았다. 영국이 인디아를 다스리던 때를 다룬 것으로, 이 엠 포스터의 본디 책을 바탕으로 삼아 만들었다고 한다. 영국 사람과 인디아 사람이 마음을 터놓고 지내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한 쪽은 다스리고 다른 쪽은 그들의 발 아래 있는데 마음을 같이 하기가 어려운 것은 뻔한 일이지만, 우리와 일본을 견주어 보는 느낌이어서 여러 생각이 오가는 영화였다. 아름다운 인디아의 풍경들만 봐도 돈이 아깝지 않았지만, 살갗이 다르다고 마음까지 다르게 여기는, 좁힐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2. 아델라 퀘스티드(쥬디 데이비스)는 제가 태어난 영국을 처음으로 벗어나 인디아로 간다. 사랑하는 로니(나이젤 하버스)가 그곳에서 치안판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니의 어머니인 무어 부인(페기 애쉬크로포트)과 함께 배를 타고 8,0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이들은 요즈음의 뭄바이인 봄베이에 내려서 기차로 1,600킬로미터를 달려 챈드라포에 이른다. 로니의 집에 머물면서 같은 영국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지만, 인디아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인디아 사람들을 사귀려 한다.
무어 부인이 먼저 인도 의사인 아지즈(빅터 배너지)를 알게 되고, 이어서 그곳에서 대학을 꾸려가는 영국 사람인 필딩(제임스 폭스)을 만나고, 그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인디아 사람인 가드볼리(알렉 기네스)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맺은 인연 덕분에 아지즈가 나선다. 이들을 이끌고 마라바 언덕으로 나들이를 간다. 커다란 바위로 된 이 언덕에는 굴이 몇 개 있는데 그 속을 구경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이 동굴 속에서 벌어진 뜻밖의 일 때문에 아델라는 다치고 아지즈는 잡혀간다.
3. 영화는 아델라가 로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참된 것인지 인디아에서 다시 생각하는 일과 아델라를 둘러싸고 영국 사람들과 인디아 사람들이 엮여 사이 좋게, 때로는 다투게 되는 일을 그렸다.
영화 속에서 인디아 사람들이 영국 사람들을 보는 눈길은 따뜻하지 않다. 아니 싸늘하다. 총독이 뭄바이에 들어왔을 때도 영국 사람들은 소리 높여 반기지만, 인디아 사람들은 다르다. 풍악 소리가 높은 가운데서 총독이 그 아내와 덮개가 없는 차를 타고 지나갈 때 차갑게 쳐다보기만 한다.
또 챈드라포에서 차를 타고 가는 치안판사 로니를 가리키며 인디아 사내가 말한다. "하밀둘라가 처음에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했어" 곁에 있던 아지즈가 곁들인다. "(그런데) 두 해만 지나면 다 똑같아지더군" 내친 김에 영국 아내들도 같이 나무란다. "아낙네들이 더 해. 여섯 달만 지나면 바뀌지..."
인디아 사람인 저들을 깔보고 짓밟는 일은 영국 사람이면 사내나 계집이나 다 똑같이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못마땅하다는 것. 힘이 모자라니까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들이 하는 짓은 꼴보기 싫다는 것.
인디아를 힘으로 빼앗은 영국 사람들이라 인디아 사람들을 덜 떨어진 이들로 보는 사람이 많다. 무어 부인이 "가깝게 지내는 인디아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주시죠?" 하고 말했을 때, 챈드라포의 터튼 시장(리차드 윌슨)은 떨떠름한 얼굴로 말한다. 뭘 그런 생각을 다 하느냐고 되묻는 듯. "저는 인디아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척 고결하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않거든요..."
4. 그런데 감독은 그 틈새에 서로를 나쁘게만 바라보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는 듯, 몇 사람을 끼워놓았다. 영국 사람으로는 나이가 든 무어 부인이다. 젊은이로는 아델라가 거기에 끼였다. 영국 사내로선 필딩도 한몫을 한다.
인디아 사람들을 같은 사람으로서 받아주는 영국 사람들, 이들을 맞아주는 인디아 사람은 의사인 아지즈와 철학 교수인 가드볼리다. 이들이 있어 짝을 잘 맞추는 것으로 나온다.
이들은 비록 영화 속이지만 서로 마음을 열고 다가선다. 살갗의 빛깔이 다르지만 얼마든지 같은 생각으로 사이 좋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아마도 감독이 인디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나타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잘못은 앞선 사람들이 저질렀는데 뒤에 와서 뒷사람인 감독이 그 때 잘못을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감독의 그런 애씀이 살갑게 와닿지 않고 자꾸만 멀게만 느껴졌다. 세월이 흐른 다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하면,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어쩐지 어색하게 보였다. 영국 사람들 가운데 몇이나 감독처럼 치우치지 않고 고른 생각으로 그 때의 인디아 일을 바라보고 있을까? "인디아와 세익스피어를 바꾸지 않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나 해대는 사람들이...
5. 인디아의 하늘과 달, 별, 강, 언덕이 더 눈에 들어온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인디아의 갠지스강은 보기에 좋았다. 검푸른 빛으로 보여주고 달빛과 별빛이 어우러져 멋져 보였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 나온 배우들은 그다지 당기지 않았다. 163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눈을 돌리지도 못했으면서도. 아델라를 맡은 쥬디 데이비스나 아지즈 노릇의 빅터 배너지도 매끈하게 와닿지 않았다. 세상 일과 비껴 사는 듯한 가드볼리를 맡은 알렉 기네스가 그나마 눈길을 끌어갔을 뿐.
인디아를 잘 나타내는 사람으로 가드볼리를 내세운 건 좋아 보였다. 아지즈가 경찰에 잡혀갔을 때도 담담하다. "아무리 해도 끝은 바뀌지 않아요. 이미 정해져 있는 걸요" 그냥 있을 수 있냐며 따지는 필딩한테 말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되, 그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네 삶이 힌두교의 신들이나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다는 말인지...
마라바 동굴은 어떻게 해서 만든 것일까? 영화에서는 그 까닭이 나오지 않았다. 동굴 속이 아주 길거나 넓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소리를 내면 울림이 커서 메아리가 오래 돌았다. 무어 부인이나 아델라도 그랬지만 가슴이 여린 이가 들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울지 모른다. 그 모습을 보면 바위 속에서 저절로 생긴 건 아닌 듯하고, 사람들이 그 속을 파서 만든 것으로 보였다. 짐작컨대 바위 속에 굴을 파서 그 속에서 힌두교든 불교든 믿는 이가 깨달음을 얻으려 한 것은 아닐까?
6. 그런데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몇 개 있었다. 영국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저들을 맞아주었다고 기뻐서 하는 일이라지만, 돈도 많지 않은 아지즈가 마라바 동굴을 보여주겠다고 나서는 건 아니다 싶다. 제 앞가림도 어려운데...
아지즈가 법정에 섰을 때는 치안판사인 로니가 다른 인디아 판사한테 재판을 넘겼는데, 아리송하다. 같은 영국 사람도 아니고 늘 낮춰보고 좋게 생각하지 않는 인디아 사람한테 넘길 수가 있을까? 그러다 인디아 판사가 아지즈를 풀어주는 쪽으로 손을 들어주면 어떻게 하려고?
사내와 계집이 몸으로 사랑하는 모습들을 돌로 깎아 만든 힌두교 사원을 아델라가 보는 꼭지도 마찬가지. 아델라가 인디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는 데는 그런 모습이 있어야 할지 모르지만, 아델라가 제 사랑을 그런 모습에 견주어 생각할 때는 영화와 맞아떨어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로니가 인디아 사람들을 낮춰보거나 겉치레로 아델라를 대하는 걸 보면서, 제 사랑을 다시 돌아보았을 뿐.
7. 아델라의 사랑이나 무어 부인과 아델라가 인디아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일보다는, 나한테는 인디아 사람들과 영국 사람들이 서로 맞부딪치면서 일어나는 일들에 더 눈이 갔다. 나라를 빼앗은 사람들과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을 어떻게 엮어낼지 처음부터 궁금했으므로.
데이빗 린 감독은 영화 속에서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바라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델라와 아지즈가 서로 제 마음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모습을 고르게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인디아 사람들 쪽으로 자꾸 기울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너희 영국 사람들이 옛날에 한 잘못을 이런 영화로 뉘우치는 듯 얼버무리는데, 이건 꼼수 아냐?' 그래서 볼거리가 풍성하고 짜임새가 좋도록 자르고 붙인 게 잘 된 영화이지만, 별은 넷만 준다.
만든 지 벌써 서른 해 가까이 지난 영화지만, 디뷔디 화면은 깨끗하고 좋다. 사람 말소리는 작게 들리고 곁에서 들리는 기차 소리나 악단이 울려주는 풍악 소리는 크게 들려 듣기에 좋지 않다. 다른 소리가 없을 때는 괜찮지만. 덤으로는 예고편만 있어 조금 아쉽기는 하다.
그런데 예스24에 나와 있는 상품 소개에 틀린 대목이 있다. 고쳤으면 좋겠다. 영국 사람인 무어 부인과 인도 의사인 아지즈가 사랑에 빠진 것으로 나와 있으나,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 영화는 아니다. 서로를 좋게 보았지만 그건 사내와 계집의 사랑과는 다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