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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의 시대, 32쪽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당시 범중엄이 머물던 곳으로 시사문제로서의 군략을 설명하러 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자는 군사를 말해서는 안되네. 중용이라도 읽어보게"라며 범중엄을 타일러서 학문에 뜻을 두게 하였다고 한다. 이 일화의 주인공은 바로 송학 창시자의 한 사람인 장재이다.>
위에 인용한 부분에서, 중용을 읽어보라고 권한 사람은 누구이며, 권함을 받은 사람을 누구인가, 알아보자.
"중용이라도 읽어보게"라며 범중엄을 타이른 사람은, 당연히 장재이다. 그래서 이 인용된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장재가 범중엄으로 하여금 중용을 읽는 것으로 시작해서 학문에 정진하게 했다는 말이리라.
그런데 과연 그럴까?
성호사설 제26권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사람들이 《중용(中庸)》ㆍ《대학(大學)》을 정자(程子)가 비로소 표장한 줄로 알지만 그러나 횡거(橫渠)가 명도(明道)보다 한 살이 더한데 그가 열여덟 살 때에 범 문정(范文正)이 이미 《중용》을 읽으라고 권했으니 ..]]
위의 인용문에서 횡거는 바로 장재이다.
[[장재(張載: 1020~1077)는 중국 송나라 시대의 사상가이다. 성리학의 기초를 닦았다. 자는 자후(子厚)이다.봉상미현의 횡거진(橫渠鎭) 출신이었기 때문에 횡거 선생(橫渠先生)이라고 호칭된다. 존칭하여 장자(張子)라고 불린다. ]]
즉, 다른 기록에서는 범중엄이 장재에게 중용을 읽어 학문을 닦도록 권유한 사람인데, <사대부의 시대>는 중용을 읽도록 권유함을 받은 사람이 법중엄이라 하고 있으니,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기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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