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남는 것은 크고 강한 종이 아니라 쉽게 변하는 종이다.’라는 다윈의 진화론처럼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만이 다가올 에너지 부족사태에 대한 준비가 될 수 있다. 대체에너지 개발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60년대의 개발경제를 거쳐70년대 고도경제성장 전략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중화학 공업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일쇼크이후 화석연료 의존형 에너지 정책의 한계를 절감한 정부는 고효율 저비용의 원자력발전으로 에너지 정책을 변경했고 이 정책은 우리산업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그러나 쿄토의정서의 발효와 유가의 불안정, 자원의 유한성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은 곧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또한 원자력에너지도 부안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환경문제와 안전에 대한 불신으로 수급사정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선택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는 제3에너지 이른바 ‘대체 에너지’를 적극 개발하는 길이 유일하다. “대체에너지란 과연 필요한 것인가 또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나?”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 책에 들어있다. 저자는 도시의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서 재생 가능에너지를 근간으로 하는 태양도시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세기에서 도시 문명을 지키는 유일 가능한 선택은 에너지를 적게 쓰고, 재생가능 에너지원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체제인 태양도시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태양도시는 거대 자본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거대 기술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고, 세계시장 중심에서 지역시장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해외도시의 사례와 지역도시의 노력을 소개하면서 성장만을 지향했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어떻게 태양도시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광범위한 참고문헌과 최신 자료를 통해 다소 급진적인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다양한 해외사례를 통해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상당히 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주장이 너무 이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적이라는 말은 곧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깨끗한 에너지를 쓰기위해 기꺼이 추가비용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을 것이다.’라는 주장은 몇 천원, 몇 만원이 없어 단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서민들이나, 아직까지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지적재산권 문제를 고려해 볼 때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또한 시민단체와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대체에너지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일견 일리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대체 에너지 시장이 워낙 좁은데다 초기R&D 투자비가 엄청나게 들어가는 신사업의 특성상 시장실패(Market Failure)가 쉽게 일어난다. 그렇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고 있는 대체 에너지 개발은 한국전력과 같은 자본과 기술력이 있는 공기업이 맡아야 한다. 물론 필요에 따라 선진기술을 갖고있는 기업들과 공동프로젝트를 추진하고, 태양도시 도입을 위해 지자체와의 제휴도 필요하다. 석유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경제의 원동력인 에너지 확보는 언제나 절체절명의 과제가 아닐 수 없고 그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감대 형성과 관심이다. |
| 우리는 매순간 에너지를 사용하며 살아간다. 에너지가 없다면 불편한 정도의 차원을 넘어서서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에너지가 부족해서 겪어야만 하는 일들을 상상한다면 너무 끔찍해서 오랫동안 생각하기가 무서울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원은 언젠가는 고갈되어 없어지는 자원이므로 무서운 상상을 해야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소비의 절반은 석유로서 매우 중요한 에너지원이며, 그 밖에 석탄, 원자력, 천연가스 등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자원은 정확히 97%가 수입되는 것이며, 자원의 희귀성으로 고유가가 진행된다면 에너지 부족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당장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일상생활에 필요한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도시를 상상해 보자. 이런 도시에서는 에너지 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현재 도시의 풍요를 그대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도시의 조성은 매우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적인 도시를 만드는 일에 대해 실현 가능성의 여부를 생각할 때가 아닌 시점에 우리들은 살고 있다. 왜냐 하면 고유가 현상의 진행으로 에너지 부족 문제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상이라 하더라도 이상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에너지 자급자족의 이상을 현실화하려는 도시가 바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태양도시이다. 태양도시란 태양을 에너지로 활용하는 도시를 의미한다. 태양은 사용해도 없어지지 않는 자원으로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태양도시는 재생가능에너지를 활용하는 도시를 말한다. 즉 태양도시는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의 사용을 지양하고, 자연자원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지향하는 도시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태양도시(Solar City)를 ‘에너지 위기 시대에 에너지 전환을 위해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만들어 실천하는 도시’라고 정의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에너지를 바꾸는 도시는 아니며, 도시의 삶 자체에 대한 재규정을 필요로 한다. 즉 지속가능한 태양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체계로 변화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령 자동차보다는 사람 중심의 교통 체계가 확립되어야 하며, 자전거의 이용을 활성화하는 도시설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시민정신이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것은 편리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이고 더 많은 생태적 풍요의 추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절감을 위하여 버스를 이용하자는 것은 승용차를 무조건 타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대중교통시스템을 편리하게 만들어서 승용차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줄이자는 것이다. 즉 대중교통을 승용차 이상으로 편리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는 지속가능과 지속불가능의 갈림길에 있다. 지속가능의 길은 태양도시로 가는 길이고, 지속불가능의 길은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도시로 가는 길이다. 우리가 태양도시로 향하지 않고 화석도시에 안주하고 있다면, 미래에서의 오늘날 도시는 그야말로 화석이 되고 말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태양도시로의 변화 시도에 대해 용감하게 선택하고 결정해서, 오늘날의 도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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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태양도시는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 체제를 지양하고 자연에 기반을 둔,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지향하는 도시"이다. 태양은 "태양에너지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수증기를 증발시켜 땅 밑 저장고에 빗물로 되돌려줌으로써 물을 순환시키고, 바람을 순환시켜서 소수력과 풍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체제는 두가지 면에서 한계에 도달했다. 첫째는 화석연료의 고갈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로(현재 연간 석유 사용 증가율 = 약 1.9%) 석유를 사용할 경우, 약 2040년에 지구 상의 모든 석유가 고갈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둘째는 지구온난화 문제이다. 화석연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시켜 지구의 온도를 상승시킨다. 현재와 같은 추세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경우, "2030년쯤에는 지구의 평균기온이 1.5~4.5도 상승하고 해수면도 0.6m 정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의 특종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미국 국방부의 비밀보고서는 영화 투모로우에 묘사된 장면들이 결코 과장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 이 책의 저자는 '에너지 전환'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에너지 전환'은 첫째, 절약과 효율성 향상을 통해 화석연료의 사용기간을 최대한 늘리고, 둘째,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흔히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값싸고 안전한' 원자력발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원자력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역시 언젠가는 고갈된 화석연료이며, 핵폐기물 리를 후손들에게 떠넘김으로써 경제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체르노빌사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결코 안전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왜 태양국가가 아닌 태양도시인가? 저자는 그 이유를 "도시가 가진 진보의 힘"과 세계화로 인한 "국가의 영향력 축소"에서 찾고 있다. 도시의 중요성(역할)은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규정되고 2002년 '세계지속가능발전정상회의'에서 구체화된 '지역의제 21(지속가능한 사회의 달성을 위해 지방공공단체의 참가와 협력이 절대적임을 강조)'에서도 드러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미 세계 곳곳에 '태양도시'들이 만들어 지고 있으며 이들 사이에 연대의 움직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솔라시티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태양도시의 선구라고 할 수 있는 도시들 - 태양에너지를 관광자원화한 독일의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 2050년 100% 에너지 자급자족을 꿈꾸는 스웨덴의 예테보리, '산업공생'으로 에너지를 '아나바다'하고 있는 덴마크의 칼룬보르, 회색산업에서 녹색산업의 도시로 변신한 일본의 기타큐슈, '태양광 개척자들'을 낳은 미국의 새크라멘토 등을 방문, 취재하면서 우리들에게 태양도시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으며, 또한 우리가 반드시 가야할 길임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과연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