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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사막에 세워진 바벨탑을 찾아가는 여정처럼 느껴진 작품이었다. 작가가 드론의 눈으로 작품을 쓰게 되면 독자에게는 사막을 두발로 걸어 다니면서 나스카 문양을 찾거나 밀림에서 앙코르와트 사원을 찾아야 하는 경우와도 같은 인내심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런 조건이 요구되는 작품들로, 나는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로베르토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등을 들 수 있는데, 내게는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을 읽을 때도 줄곧 그와 같은 작품들 중 하나를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그랑호텔을 둘러싼 인물들이, 애버리지니 혼혈 소녀 엘라를 대상으로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실험한 필름을 찾아 유랑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정교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이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배경에서 치밀하게 짜여 있고 역할에 어울리는 성격을 발휘하고 있다. 비록 구성이 인과의 경계선 밖에 세워져 있는 드라마적 요소로 구축되어 있어 장르작품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장르가 무너진 오늘날의 작품 환경을 고려하면 굳이 울타리를 세울 필요가 있을까 싶다. 대표적인 장면 하나만 보자.
“아이패드야. 노트북이 엉망이라며.” 산책을 갔다 오다 트로피칼 공원 근처에 있는 전자제품점에서 산 거였다. “오 마이 갓!” 데이브가 탄성을 질렀다. 신이 난 데이브는 연신 예스, 예스 예스를 외쳤다. “보여줄게 있어, 코리안.” - 222쪽.
이와 같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애버리지니 필름의 파일 확보 과정이 우연성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반전이 우연성에 의해 촉발되는 폴 오스터의 작품들을 방패로 들어 옹호할 수 있다. 작품에는 소유욕망의 궁극은 숭고를 그림자로 드리우는 영혼이라는 저자의 작품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벽돌 책 분량의 많은 언어들이 동원되고 있다. 단지 그 사실 하나를 입증하기 위해 그 많은 단어들이 동원되었다는 말인가 하고 묻는다면, 전통적 소설의 서사범주를 벗어나, 새의 비상 같은 단지 하나의 찰라, 무상 같은 관념의 한 조각, 펼쳐진 풍경의 한 단면을 그리는, 그리하여 그것의 조탁에 호출된 언어들의 풍성함이 한편으로는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하지만 그 언어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미문들로 이루어진 세상의 많은 뛰어난 작품들을 들어 역시 변호할 수 있고, 또한 그랑호텔을 둘러싼 인물들의 정교한 대화 속에 응축되어 있는 사유의 빛남이라는 점, 서사지반 위에 구축되어 있다는 점, 분열이 아니라 연대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그들 작품들의 미문과 교환가치로 사용함으로써 그들 작품에 뒤지지 않는 등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기조에서 엿볼 수 있는 작가정신을 대변하는 한 문단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면 숭고가 생기지. 삼봉이 서로 어울려 숭고를 보여 주었듯이 …….” 맞는 말 같았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평등은 숭고라는 이름에서 왔다. 그러므로 숭고는 인간 존엄에 대한 근원을 설명할 수 있는 알리바이 같은 것이기도 했다. - 742쪽.
한편, 그랑호텔이라는 물질적 구조물은 단순한 물질욕망의 은유로 세워진 듯 보이지만, 소유욕망의 궁극은 숭고로 채워진 영혼이라는 저자의 관점을 대변하는 이과수 대리인과 하정미와 이청 시인이 교환하는 의식의 섞임에서 정제되어, 사막에 세워진 바벨탑이 붕괴된 곳에서 신기루의 형상으로 드러나는 영혼의 탑이라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랑호텔이라는 물질적 구조물 내부에 다시 대리인으로 돌아온 이과수의 의지에 의해 세워지는 숭고한 영혼이라는 아우라가 반짝이는 탑의 모습.
하지만 그렇더라도, 타자의 반짝이는 아포리즘을 경험하거나, 영혼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거나, 개인적 구도를 위해서거나 하는 등의 목적으로, 개인들이 모래알처럼 변해 있는 현대의 삶이라는 사막에 세워진 바벨탑과도 같은 그랑호텔을 찾아 떠나려는 독자들에게는 비상한 용기와 인내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벅찬 작품이기는 하다는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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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호텔의투숙객들 #송복남 #시방사유 < 책 속의 말 씨앗 > 1. "영혼이 물질이기를 바라는 현대인들의 물질 만능주의가 관심사다." 2. "역사는 변하지만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 3. "영혼을 영원불멸의 대상으로 본다." 4. "사랑의 결핍이 부른 참사, 세상의 모든 불안과 욕망은 사랑의 결핍에서 온다." 5. "이 소설은 우리에게 인문적 질문이 여전히 삶의 유용한 가치임을 각성시키고 있다." 송복남 작가의 장편소설『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은 현대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의 욕망, 그리고 존재의 이중성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을 통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소설은 '그랑호텔'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호텔은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며, 이곳에 모인 투숙객들은 부의 영속성을 갈망합니다. 이들은 영혼이 물질이라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기묘한 여정을 떠나며, 각자의 욕망과 내면의 갈등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물들은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부조리를 탐구하게 됩니다. 송복남 작가는 치밀한 캐릭터 묘사와 촘촘한 서사를 통해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각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과 갈등을 통해 인간 본성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한 인물은 영혼이 물질로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해 부를 영원히 소유하려 하고, 다른 인물은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캐릭터들의 복잡한 내면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 소설은 영혼과 물질,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영혼이 물질이기를 바라는 현대인의 물질 만능주의는 결국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역사는 변하지만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인간 본성의 불변성을 강조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소설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도덕적 딜레마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도덕적 성찰을 요구합니다. 송복남 작가의 문체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요소를 포함하며, 추리와 스릴러적 요소를 결합하여 독자들에게 긴장감과 재미를 동시에 제공합니다. 또한, 인문적 사유를 통해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나가는 방식은 이 소설의 큰 매력 중 하나입니다. 작가는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현대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인문적 질문이 여전히 삶의 유용한 가치임을 각성시키며,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게 합니다. 또한, 사랑의 결핍이 어떻게 인간의 욕망과 불안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도덕적 성찰을 요구합니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은 인간의 본성과 욕망, 그리고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합니다. 철학적 질문과 치밀한 서사, 그리고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입니다. 특히, MZ세대와, 현대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필독서로 추천합니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깊은 사유와 성찰을 제공할 것입니다. #협찬도서 #서평단활동 #완독리뷰추천 #신간소개 #그랑호텔의투숙객들 #송복남 #시방사유 #소설추천 #완독리뷰추천 #베스트셀러 #북스타그램 #책속의말씨앗 #책스타그램 #책팔맞팔 #잡식성병열독서 #영혼 #소유 #돈 #인생 #사랑 #배신 #마술적리얼리즘소설 #인문학적소설 #북러버의독서노트 #선한영향력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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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은 장르 소설적 흡입력과 문학의 예술성이 적절히 섞인 작품이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애버리지니 필름’이 있다. 그랑호텔의 데이행사 때 투숙객들(정재계인들로 추정되는)에게 상영할 영상물이다. 하지만 필름을 보내주겠다던 호텔 지배인의 대학 동창 제이콥 쉬프의 배신으로 행사를 그르치게 된다. 호텔이 그에게 받은 건 애버리지니 필름의 일부, 정확하게는 필름 촬영 관계자들의 인터뷰 영상이다. 화가 난 지배인은 이과수에게 제이콥 쉬프를 만나 애버리지니 필름을 찾아오라며 뉴욕으로 보낸다. 애버리지니 필름을 중심에 두고 읽으면 이 이야기는 장르 소설이 된다. 필름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그것을 둘러싼 지배인 진영과 이과수, 하정미, 이청, 제이콥 쉬프, 자무엘, 투숙객인 양민순, 월 스트리트 등 이들의 대립 구도를 따라가다 보면 특정인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일종에 매몰이다. 그러나 즐거운 매몰이다. 나 같은 경우 지배인이 그랬다. 그에게 공감하기도 반발하기도 하면서 그가 애타는 만큼 애버리지니 필름을 원했다. 종국에 이르러 급변한 상황 속에서 그가 진정으로 원한 그만의 애버리지니 필름에 대해서도 이해했다. 그리고 그의 비루한 과거와 최후를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두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우선은 소설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동화돼 느끼는 충족감이다. 하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고 작품을 반추해 보면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걸 알게 된다. 필름의 내용은 무엇일까? 난 이 사람이 좋아, 저 사람은 싫어. 이런 단순 감상으로 끝내기에는 여전히 찝찝한 서사의 숨은 배경과 상징성을 갖는 아포리즘이 잔뜩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의 뜻, 끝까지 장막 뒤에 숨은 애버리지니 필름의 상징성, 최치영의 논지, 이청의 분노, 이과수의 춤, 하정미의 침 뱉기 그리고 대한제국의 무당과 영혼. 이것들을 한데 묶어 풀어가다 보면 형이상학적 시선이 생긴다. 비로소 추상적이었던 것들이 하나의 명징한 상징성을 갖고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진정한 카타르시스는 여기에 이르러 찾아온다. 이 소설의 주는 매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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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그랑호텔의 투숙객』(시방사유, 2025)은 선형으로 흐르는 인간 의식과 의식의 작동을 탐구하는 소설이다. 인간의 의식은 항시 다층적이자 변화하며, 계속 유입하는 외부세계의 자극에서, 자기 해석과 대응이 남긴 퇴적물로 무척이나 왁자하다. 애버리지 필름은 영혼에 대한 물질적 증명을 요구하는 인간 욕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삶은 목적 달성에 많은 한계를 경험한다. 물질세계를 유영하는 물질 육체는 자체만으로 이미 한계는 정해져 있다고 봤을 때, 이러한 실험과 호기심(욕망)은 애초에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우리는 감각적 한계에 늘 부딪히며 살고 있다. 지적 열망과 물질적인 부에 대한 갈망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 살고 있는가. 영혼은 순수하다. 이미 깨어있다. 몸이라는 영역에 잠시 갇혀 물질 세계를 경험하고 배우는 불멸의 존재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고는 세상에 집중한다. 그랑호텔이라는 가상의 세계에 투숙하는 다양한 이들은 나 혹은 우리의 반영이다. 바깥 현상은 내 의식과 밀접하다. 다른 이들의 의식과 중첩되기에 오로지 내 의식만으로 만들어진 현상이라고만 할 수 없지만 일단 관찰만으로 많은 현상들은 욕망이 일궈낸 게 많다고 여겨진다. 송복남 작가는 소설가 이전에 시인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청은 관찰과 사유의 통찰을 가진 시인으로서, 작가의 투영이리라. 시인과 작가는 대상물에 대한 응전과 상상력으로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이끌어낼 힘을 가진 이들임을 확인케 해 준다.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이점은 신세계의 발견이다. 비슷한 세계를 이미 접했으면서도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게 사람이다. 소설『그랑호텔의 투숙객』은 스스로를 비추게 만드는 거울이며 새로운 세계를 건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