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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 정말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날 자기도 모르게 눌러버린.. 옛애인의 전화번호.. |
| 봄날은 늘 꽃과 연상되어진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누군가가 생각나고, 벚꽃이 흩날리는 날에는 어느 공원 벤취에 누워 꽃피에 젖는 상상을 한다. 오래간만에 최민식을 힘들지 않은 배역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늘 그가 맡은 역할은 올드보이, 취화선, 파이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개성이 뚜렷한 역할이었다. 그의 연기를 접할 때면 숨을 멈추어야 했고, 긴 숨을 내쉬며 탄복을 했었다. 그런 그를 조금은 잔잔한 호흡으로 만날 수 있어서 편안했다. 음악대학 앞에서 커피를 마시다보면(이곳 자판기가 특별히 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늘에 있는 벤치같은 휴식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학생들의 손톱을 보고 전공을 짐작할 수 있다. 성악을 전공한 사람들은(특히나 여성은)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는 반면 기악을 전공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특히나 현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한쪽 손톱이 짧게 깎여있고, 관악 전공자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성악 전공 학생들보단 확연히 짧았다. 트럼펫 주자로 나온 최민식의 손톱을 보면서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 짧고 굵은 손가락에도 불구하고 명 기타리스트가 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악기 연주자들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조금은 짧은듯 보이는 그의 손가락에서 명 연주자를 떠오리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지 않은가. 영화는 크게 몇 개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 구성되고 있다. 먼저 시향(?) 오디션에 떨어진 그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로 한 애인을 떠나 도계중학교 임시교사로 오면서 겪는 이야기들과(최민식의 이야기) 도계중학교 관악부원이면서 지도교사가 없지만 음악적 열정이 있는 학생들이 겪는 일들(재일의 이야기), 그리고 마을의 몇몇 사람들(약국 약사인 수연과 자동차 정비공)이 전체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영화는 30분 정도 호흡의 단편으로 끊으면 참으로 단단한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전체적인 이야기는 통일성이 없이 따로 노는듯한 느낌이 든다. 최민식은 그렇게 떠날 것이면서 약사인 수연은 왜 그렇게 찾아갔었을까? 말을 나눌 다른 사람은 없었단 말인가? 그렇게 서로 친해질것만 같으면서 '왔던 철새들이 떠나가듯이' 왜 떠나갔을까? 최민식의 애인인 연희는 왜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로 했다가, 다시 안하기로 마으을 바꾸었을까? 바꾼 이유에 대한 설명이나 이유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미루어 짐직케 하려는 감독의 의도라고 해도 좋지만 최소한의 단서는 줘야 할 것이 아닌가? 바닷가에서 재일의 트럼펫 연주를 들으면서(최민식이 작곡한 곡을)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그녀의 마음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최민식을 찾아온 친구를 도계중학교 앞까지 태워주면서 그녀는 분명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다짐받는다. 그리고 최민식을 만난 친구는 도계를 떠나면서 기차 역에서 결국 그녀의 이야기를 해주고... 그렇다면 트럼펫 연주를 듣기 전에 이미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한 셈인데, 이야기의 구성이 맞지 않는듯한 느낌... 도계 중학교 관악부원들은 열심히 연습을 해서 결국 대회에 나가지만 어떠한 성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재일의 할머니가 다치거나 돌아가시는 사건도 있었고,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최민식이 캬바레에서 연주하기도 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대회에 나갔는데 왜 그 결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을까? 영화는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어우러지지 못한 채 그렇게 흘러간다. 조금 짧은 호흡으로 보면 완성도가 그렇게 떨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면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엮이지 못하고 있는 인상을 준다. 신인 류장하 감독의 데뷰작이지만 아마도 다음 작품을 만나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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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그런 나날이 있다. 도무지 헤어날 수 없는 그런.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면서 도무지 탈출구라고 보이지 않는 일상의 나날들. 미래나 희망 같은 것도 사치 같다. 한 뼘 남은 자존심이 스스로를 지탱해주는 그런 삶의 조각들.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을 훌훌 던지고서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픈 욕망이 꿈틀댄다. 그리고 새로운 봄을 꿈꾼다. 강퍅한 현실 속에서 그 무엇을 할 수 없으니까. 꿈을 꾸는 건 새 봄의 도래.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문화센터에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다. 현실은 그렇게 삶을 압박하는 마당에 노총각으로 세월을 좀 먹고 있는 그에게 어머니(윤여정)는 잔소리를 해대고 “그 땐 참 많이 사랑했던” 옛 연인 연희(김호정)의 결혼 소식도 현우를 우울하게 만든다. 앞뒤로 꽉꽉 막힌 현실에서 현우의 선택은 강원도 탄광촌 중학교의 임시 교사, 밴드부 교사다. 특별한 미화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 가을. 꿈이 낙엽처럼 떨어진다. 그 알싸한 가을 정경이나 향취를 품을 새도 없이 떨어지는 낙엽만 현우를 대변하는 것 같다. 희망만으로 건져내기에 사실 현실은 너무도 가혹한 성질의 것이다. 희망이 때론 삶을 억압한다. 그 단어에 담긴 주술과도 같은 의미가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절망이 현실과 가깝고 일상을 지배하는 단어임에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희망을 길어 올리려 한다. 그 노력이란 정말 눈물나는 일이고 때론 그걸 품고서도 불구덩이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연 없는 인생은 없다지만, 모든 사연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현우에게도 마찬가지다. <꽃피는…>은 특별한 사건이나 굴곡없이 진행된다. 대개의 삶이란 이렇지 않느냐는 듯. 꿈도, 사랑도, 인생도 뾰족한 수가 없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모든 것이 익숙한 터전에서 아무 연고나 관계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사람의 심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비참함과 슬픔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쉽게 닿을 수 없는 감정. 그러나 <꽃피는…>은 그런 현우를 마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것 또한 삶의 변화무쌍함과 예측불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예기치 않게, 의도하지 않게 찾아간 새 둥지에서 현우에게 훈훈한 봄바람을 불어넣어주는 계기가 생긴다. 광부의 아이들이 음악을 하고 싶은 뭉친 관악부. 그는 그 어설픈 음악에 꿈틀거린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삶의 불가해성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영화적 과장이나 특정 사안에 대한 미화없이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래서 힘을 얻는다. 현우는 애당초 ‘비워낸’ 혹은 ‘없는’ 사람이었기에 작은 온기에도 충전이 될 수 있었다. 그에겐 격정이란 것이 없다. 가슴 언저리를 항상 더부룩하게 만드는 사랑이 떠난다고 할 때에도 겉으론 너무도 무덤덤하다. 그것이 그의 내면에서 얼마나 소용돌이를 쳤을지 충분히 느끼게 해 주지만 말이다.
현우란 캐릭터에서 가장 애착을 느낀 순간은, 나이트클럽에서 일할 때다. 그건 위선이나 거짓이 아니다. 아니 설혹 그렇다하더라도 굳이 ‘타락’이란 단어를 붙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영화 전반부에서 그가 혐오하는 일들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그는 그것을 통해 삶의 또 다른 지표를 구한다. 자신을 좀 더 아끼게 될 것만 같은 그런 순간들. 세상은 음모와 협잡으로 가득하다. 강원도 탄광이라고 마냥 순진무구해 빠진 시골마을은 아니다. 도시만큼의 거대하고 영악해 빠진 음모와 협잡이 상대적으로 크기를 달리할 뿐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있을 법한 스토리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큰 상심을 겪었던 현우에게 내성이 어느 정도 자리한 상태에서 도계마을은 작은 공간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도시와 시골의 도식적인 구분이 드러내지 않는 것도 <꽃피는…>의 장점이다. 도계마을은 단지 한 남자의 삶이 변화를 겪는 공간일 뿐이다. 삶은 어디서든 지속되며 그 삶은 형태를 조금씩 바꿔가고 있을 뿐임을 현우는 보여준다. 그냥 무덤덤하고 높낮이가, 굴곡이 낮아도 그게 현실이고 살아간다야 한다는 것을 또한 낮게 속삭인다. 한편으로 길고 긴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이했지만 현우의 삶이 온통 봄날의 기운으로만 가득 차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또 다른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도 있고 자신과의 또 다른 싸움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오는 봄 앞에서 나무 벤치에 앉아 만면에 웃음을 띤 자신을 발견하는 때가 있을 지도 모른다.
마냥 순수하다는 건, 왠지 불안하다. 어느 순간,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충격이 가해진다면 가늠할 수 없는 오염상태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순수는 언제든 가벼운 충격에도 쉽게 깨질 수 있는 사기그릇이다. 오히려 적당히 불순한 것이 안정적이다. 조잡하고 음모와 협잡이 넘치는 세상임을 아는 것. 그것이 피해가지 않고 세상 속에서 안착하는 법이다. 또 다른 절망이 빼꼼 고개를 들고 현우를 닥칠 지도 모르지만 또 다시 고개를 넘을 땐 좀 더 유연해 질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 됐건, 직장이 됐건, 그 무엇이 됐건 말이다. <꽃피는…>은 허진호 감독의 구도와 냄새가 난다. 삶과 어떤 그 과정에 대한. 류장하 감독이 허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조감독으로 일했던 경력 때문인지, 그 그림자를 배제할 수가 없다. 특히 현우가 어머니와 있던 집에서 나와 집 풍경을 비출 때,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가 살던 집의 풍경이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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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이 최고라는 것은 아니지만 돈과 관련되지 않은일은 거의 없는데 예술이란 분야도 역시 이 돈이라는것과 때놓을수 없는곳이지만 또 역시 가장 민감한 곳이 아닌가 싶다. 영화나 미술작품 같은 분야에서 대작이 하나 나오면 예술성과 상업성을 같이 논한다. 예술성이 높으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 일단 돈이 안되니깐 또 예술성 높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고 사람들이 꺼리고 상업성이 높으면 예술성이 낮아져 욕도 먹기도 하고 저질이 될수도 있다. (주관적인 생각) 갑자기 이런말을 꺼낸 이유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최민식이 그런 고뇌를 겪어서 이런 생각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진정한 음악만, 음악을 위한 일만 하고 싶은 주인공이지만 실력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런일이 쉽게 찾아지지 않아 돈을 못벌어서 계속 엄마한테 빌붙어 살고있는 상황. 같이 음악한 친구는 음악이외의 일도 하고 밤무대에서 연주도 한다. 그것조차 맘에 안드는 주인공. 타협이라는 것을 모르는사람이다. 그러다 한지방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칠 기회가 왔다. 돈도 벌고 음악을 할수있고 또 가르친다는 보람도 있는 일이니깐. 이 지방에 가서 주인공은 깨달음을 얻는다. 음악이라는 분야, 예술이라는 분야는 배우는데는 돈이 많이 들지만 돈을 버는 사람들은 한정되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꺼려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이 가난한 마을에서도 음악하는 아이들은 딴따라라고 취급하면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마을 상황을 보며 주인공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많은 일도 겪게 되고 많은 깨달음도 얻게 된다. 주 무대가 되는 마을은 겨울이다. 꽃피는 봄이오면.. 주인공은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주인공의 마음에도 꽃피는 봄이 오게 되고.. 그런 의미로 제목이 "꽃피는 봄이오면"이 아닌가 싶다. 주인공이 가르친 아이들이 참가한 대회의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고 주인공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게 끝나지만 주인공의 마음에 분명히 봄이 찾아왔다는 느낌을 받을수 있는 마지막 장면.. 해피엔딩이겠지?!! 그런데 왜이렇게 '타협'이란 말이 떠오르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