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은 흐른다. 시간의 흐름은 이상을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해있는 숭배의 원초적 본능은 또다시 국민국가라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었다. 국민국가라고도 하고 시민사회라고도 하는 경계가 불분명한 개념에 따라 새로운 정치체는 원활한 통치를 위한 수단이 필요했다. 통치를 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들을 숙지하고 있는 시민들이 필요했다. 이에 국민국가를 통치하는데 필요한 교육이 생겨나고, 아이들과 세상 사이에 교실이라는 담을 세워놓았다. 필립 아리에스의 명저 <아동의 탄생>에서 말하듯, 과거의 아이들은 어른의 일을 도우며, 어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일을 배우고, 삶을 배워나갔다. 세상을 교실삼아 많은 사람을 만나며 몸으로 배우며 익혔다. <학교를 넘어선 학교>의 저자이자 매트스쿨의 교장인 엘리엇 래빈도 “교실과 현장학습의 인위적인 구분은 현대에 생겨난 것으로 이로 말미암은 부정적인 결과가 점차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세상 사이에 교실이라는 벽이 생긴 이후, <패다고지>에서 언급한 프레이리의 말처럼 학습자는 은행의 역할을 교사는 저축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끊임없는 지식을 학습자에게 저축하려는 교사와 끊임없는 지식을 받아들여야 하는 학습자를 만들게 되었다. 학습자는 점점 수동적이 되어가고, 세상과 담을 쌓게 되었으며, 교육의 주체는 학습자가 아니라 통치자가 되었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커리큘럼을 훌륭하게 이수한 학습자들은 나라가 필요로 하는 훌륭한 시민으로 학습되어진다. 이 커리큘럼 안에는 통치자의 이데올로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은, 아니 현실 안에 존재하는 국민국가가 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교육은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포함되어있는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교육 현실을 몬테소리는 “장애가 없는 아이들 또한 학교에 가서 별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라는 말로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너머’>의 공동대표인 고병권 씨의 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도 지적한 바이지만 근대 교육학과 정치학은 불가능한 목표에 도전하는 학문들처럼 보인다. 교육학은 아이들에게 기존의 가치들을 주입하면서 미래 사회를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치학은 억압받는 민중들을 잘 지도하고 이끌어 자율적인 존재로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다. 교육학의 목표는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희망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기존의 가치관을 심어준다는 것은 내부에 죽음을 잉태한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인생과도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교를 넘어선 학교>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학습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교육, 지역사회라는 세상과 교실의 담을 헐어버린 열린 교육, 인턴쉽이라는 체험을 통해 얻는 지적 호기심과 세상을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의 보람’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넘어선 학교>에 나오는 매트스쿨은 작은 학교를 지향한다. 공교육에서 행해지고 있는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교육을 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매트스쿨에서는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한다. 세상과 소통하는 아이들은 수동적인 아이들에서 주도적인 아이들로 바뀐다. 삶이 재미없는 아이들에서 즐거운 세상을 사는 아이들로 바뀐다. 같은 반의 친구들은 내가 밟고 넘어가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나의 성장을 도와주는 동료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교에 오는 것이 즐겁고, 기다려진다. 인턴쉽을 통한 경험은 이러한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매트스쿨을 있게 하는 중요한 기반중의 하나이다. 비영리 단체인 ‘빅피쳐 컴퍼니’가 주정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매트스쿨이 이 시대에 시사하는 점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점은 공교육이라는 제도 안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는 것이다. 대안교육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너지고 있는 공교육의 대안으로서의 교육이다. 이는 기존의 대안교육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패러다임을 깨뜨린 혁명적 학교인 것이다. 이는 기존의 공교육이나 대안학교에서 연구하며 배워야 할 점이 분명하다. 키노쿠니 어린이 학교를 설립한 ‘호리 신이치로’ 교장의 말처럼, ‘세상에 이런 학교도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러 학교들이 생겨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각과 사람들처럼 다양한 학교들이 생겨나고, 다양한 생각들이 나와서 우리 아이들이 자신에 맞는 행복한 학교생활을 해야만 한다. 세상을 배운다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내가 변화시켜야 할 세상은 어떤 것들이고,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은 어떤 것들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에게, 교사들에게 각자의 목표를 이루는 곳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행복하게 공부하는 곳이자 행복한 학습터가 되어야하고, 부모들에게는 아이들의 지적인 성장과 탐구를 함께 느끼며 즐거워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하며, 교사들에게는 지적 탐구의 즐거움 속에서 많은 아이들과 더불어 기쁨을 느끼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학습자이자 교육자인 교사 본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각자의 목표가 성취되어가면서 공동체로서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매트스쿨은 학생과 부모와 교사 모두에게 이상적이고, 행복한 장소인 것 같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매트스쿨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학교라는 확고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학교를 구성하는 학생과 부모와 교사가 함께 행복을 느낄 수 있을뿐더러 지적인 성취에서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학교의 주체는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끊임없이 학습하는 학습자로서, 또한 아이들과 함께 기쁨을 느끼는 멘토로서, 아이들의 지적인 성취를 돕는 안내자로서 나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많은 반성과 함께 즐겁게 읽은 책이었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할 수 있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