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네 개 준 것은 책에 대한 예의이자 최소한의 겸손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세 권을 다 읽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요약본으로 두 가지 판본과 안내서를 읽었다. 이 책이 세 번째가 된다. 먼저 내용상으로 완역이라는 의의가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번역이 가장 좋다. 솔출판사 열하일기를 아껴왔으나 그 보다 나은 것 같다. 고운 순우리말 번역은 또 그 중 압권이다. 술술 읽이면서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게 된다. 문장의 리듬은 음보나 자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연암 선생을 떠올리면 항상 문체반정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언젠가는 원문으로 읽어 보려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번역본이다. 아쉽지는 않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이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쉽게 떠오르는 감상은 세 가지다. 첫째, 화려한 문장(절대, 생경하지 않다. 다만, 아무래도 문체반정은 다분히 정치적 탄압같다 ㅋ ㅋ). 둘째, 뛰어난 관찰력. 셋째, 유머. 특히, 북경까지 가서 황제를 만나지 못하고 열하까지 다시 가는 여정은 요약본으로 상상하던 것보다 더 고단한 길이었는데, 연암은 여전히 촌철살인의 유머를 읽지 않는다. 번역이 좋아서 그런가, 홍대용의 '담헌연기'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읽고 있다. 번역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였다. 또, 우리말을 살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였다. 고전이 왜 고전인지도 다시 확인했다. 18세기 진보적(?) 지식인의 고민의 단면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미 다 아는 얘기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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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시선들이 맞물리는 우정(友情)의 서사 - 박지원, 『열하일기 1』, 보리, 2004
여행은 낯선 지역을 탐험하는 일이다. 낯선 지역을 탐험하는 사람은 밖을 향해 제 마음을 열어야 한다. 낯선 지역을 탐험하다 보면 당연히 낯선 사람들과 만날 수밖에 없다. 여행은 낯선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만나는 과정을 가리킨다. 박지원은 사신단을 이끄는 정사 박명원을 따라 1780년 6월 24일에 압록강을 건넜다. 압록강을 건넘으로써 그는 낯선 지역에 발을 딛는다. 자기를 고집하면 여행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자기를 내려놓는 순간 여행은 여행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자기를 내려놓는 걸 자기를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박지원은 낯선 사람들과 기꺼이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사신단보다 일찍 일어나 먼저 하루를 시작한다. 밤이 되면 그는 낯선 이들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 눈을 피해 거리로 나선다. 낮에 만난 이들과 약속이 된 경우도 있지만, 술집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 즉석에서 말을 섞는 경우도 많다. 박지원은 공식적으로 사신단을 따라나선 게 아니었다. 그는 자유로운 신분으로 사신단을 따라나섰다. 드넓은 중원을 사신 업무에 얽매이지 않고 둘러볼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대부들에게 중원을 지배하는 청나라는 오랑캐일 뿐이었다. 겉으로는 대국으로 신봉했지만, 속으로는 오랑캐라 하여 천시하였다. 이미 사라진 명나라를 따르는 사대주의는 당대 지식인들의 중국 인식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런 사대부들이 이끄는 사신단이 청나라를 객관적으로 볼 리는 없다. 그들은 청나라의 화려한 문물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청나라는 오랑캐라는 관념이 워낙 강해 청나라의 현실을 보지 않은 셈이다. 청 문물은 변방 중의 변방인 책문에서도 그 위용을 자랑한다. 박지원 스스로 “이것은 질투심이구나.”(49쪽)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청 문물은 조선과 비교할 수 없는 만큼 화려하다. 책문에서 박지원은 어느 한구석이라도 빈틈이 없이 모두가 방정하고 물건 한 개라도 허투루 굴려 놓은 것이 없는 청나라의 법식을 확인한다. “비록 소 외양간, 돼지우리까지라도 되는 대로가 아니라 일정한 법식이 있으며 심지어 거름더미 똥구덩이까지도 그림같이 정갈했다.”(57쪽) 똥구덩이까지도 정갈한 법식이 있으니 다른 것이야 말해 무엇 할까?
옳다! 이렇고 난 후에야 이용利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요, 이용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있은 후에야 그 질서를 바로잡을 것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모르고 그 생활을 넉넉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몰라 생활 자료가 근본 부족하면서 억지로 잘살겠다고만 한다면 어떻게 그 도덕과 질서를 바로잡을 것인가? (57쪽)
인용문에서 박지원은 법식이 있은 연후에야 이용이 있고, 후생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후생이 있은 후에야 질서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용(利用)은 물건을 이롭게 쓰는 것이다. 똥구덩이 하나까지도 격식에 맞추어 써야 백성들의 일상이 넉넉해진다. 백성들의 삶이 넉넉해지면 질서야 자연 잡힌다. 백성들의 일상이 궁핍하면 질서가 잡힐 리 없다. 19세기 조선 사회에는 수많은 민란이 일어났다. 먹고살기 힘든 백성들은 거듭해서 난을 일으켰다. 박지원은 변방 지역에까지 미치는 청나라의 화려한 문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변방이 이러면 과연 수도인 연경은 어떨 것인가? 사대주의라는 관념에 젖어 백성들의 현실을 무시하는 당대 사대부들을 향해 박지원은 이용후생으로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용후생의 관점에서 보면 청나라는 오랑캐가 아니라 조선이 본받아야 할 문물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소중화(小中華)라는 비좁은 의식에서 벗어나 좀 더 멀리 볼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박지원은 강조하는 것이다.
박지원의 벽돌 예찬은 바로 이 시선에서 뻗어 나온다. 청나라 집들은 어디고 벽돌을 주 재료로 하여 지어졌다. “벽돌은 길이가 한 자요, 넓이가 5촌인데 두 장을 가지런히 놓으면 네모반듯해진다. 두께는 2촌인데 한 틀에 박아서 뽑아내는 것이다.”(66쪽) 벽돌로 집을 지으면 위는 가볍고 아래는 든든하며 기둥은 담벽 속에 박혀 비바람을 겪지 않아 화재 염려가 없고 도적이 뚫을 걱정이 없으며, 새나 쥐, 뱀, 고양이의 피해가 없다고 박지원은 이야기한다. 일행인 정 진사가 성을 쌓는 제도에서 벽돌이 돌만 못하다고 말하자, 박지원은 “벽돌로 말할 것 같으면 한 틀에 뽑아내는 것인즉 만 장의 벽돌이 한 모양으로 되어, 다시 쪼고 갈고 손질할 필요가 없고, 한 가마에서 만 장 벽돌을 앉은자리에서 구워내고 보니 새로 품을 들여 운반할 필요가 없고, 가지런하고 반듯하여 힘을 덜되 보람은 곱절이요, 실어 나르기에 가볍고 쌓기 쉬운 것은 벽돌 이상 또 무엇이 있을 것인가?”(76쪽)라며 단호하게 외친다.
박지원의 시선은 언제나 조선 문물과 청나라 문물을 가로지른다. 조선 문물을 통해 청나라 문물을 보는 게 아니라 청나라 문물의 장점을 빌려 조선 문물의 문제점을 파악한다. 돌로 성을 쌓으면 벽돌에 비해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농사짓는 백성들을 빼내 성벽 공사를 할 것이므로 그만큼 백성들은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벽돌은 규격에 맞추어 찍어내므로 쌓기만 하면 되지만, 돌은 규격이 다르므로 다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래저래 들여다봐도 돌이 벽돌보다 낫다는 말은 하기 힘들다. 정 진사는 그럼 왜 돌이 벽돌보다 낫다고 말한 것일까? 청 문물보다 조선 문물이 낫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청나라를 오랑캐로 보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정 진사가 자기 고집이 서린 눈으로 청 문물을 본다면, 박지원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청 문물을 바라본다. 당연히 보이는 내용이 다르지 않을 수 없다. 똥구덩이 하나를 파는 데도 규격을 따지는 청 문물의 특성이 벽돌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있음을 박지원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낯선 지역을 대하는 박지원의 마음은 흔히 ‘호곡장론(好哭場論)’으로 알려진 글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산기슭을 벗어나자마자 펼쳐진 만주벌판의 드넓은 광경에 그만 눈앞이 아찔해진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시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가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아 제 신대로 다니게 마련임을 알았다.”(109쪽) 말을 멈춘 채 사방을 휘둘러보던 그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바탕 울 만한 자리로구나!”라고 외친다. 옆에 정 진사가 의아해서 묻는다. 이렇게 기쁜 순간에 울고 싶다니! 박지원은 천지에 비유하자면 울음은 뇌성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지극한 감정에서 나온 참소리는 천지 사이에 참고 눌리고 쌓이고 맺힌 게 터져 나올 때 일어난다. 엄마 뱃속에 있다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아기는 울음으로 자기가 살아있는 존재임을 입증한다. 박지원은 어둡고 갑갑하고 비좁은 어미 태 속에서 하루아침에 빠져나와 팔을 펴고 다리를 뻗고 정신이 툭 트이게 되는 아이 상황에 이 울고 싶은 마음을 대입한다. 조선이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요동벌이라는 드넓은 세계와 마주한 기쁨을 그는 어미 뱃속에서 나온 아이의 자유로운 비상으로 표현한 셈이다.
「일신수필(馹?隨筆)」이란 장에는 청나라를 바라보는 박지원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그는 “오랑캐로 부르는 오늘의 청조는 무엇이든지 중국의 이익이 될 말하고 그것으로써 오래 누릴 수 있는 일인 줄 알기만 할 때는 억지로 빼앗아 와서라도 이를 지켜냈고, 만약 본래부터 있던 좋은 제도가 백성에게 이롭고 국가에 유용할 때는 비록 그 법이 오랑캐로부터 나왔다손 치더라도 주저 없이 이것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227쪽)라고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이용후생이다. 이를 본받아 박지원은 깨진 기와 조각에서도, 냄새나는 똥거름에서도 장관(壯觀)을 본다. 하찮은 물건에서도 쓸모를 찾는 청인(淸人)들의 이용후생 정신을 그는 조선이 받아들여야 할 정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말똥을 줍는 자들이 오쟁이를 둘러매고 모은 똥을 청인들은 거름간에다 쌓아 두는데 그 맵시가 예사롭지 않다. 혹은 네모반듯하게, 혹은 팔모가 나게, 혹은 육모가 나게, 혹은 누각 모양으로 만든 모습에서 박지원은 천하의 문물제도가 버젓이 서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청나라가 대국으로 성장한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수레’에 대한 다음 이야기에도 이와 같은 시선이 관통하고 있다.
중국의 재물은 풍성풍성하되 한쪽에 몰려 있지를 않고 쉴새없이 흘러 퍼지고 장사를 통하여 이곳저곳 옮겨지는 것은 모두 수레를 이용하는 탓이다. 금방 한 가지 본뜰 만한 가까운 예를 들어 보더라도 우리나라 사신 일행이 도중에서 당하는 백폐를 덜어 버리고, 이녁 수레에 이녁 물건을 이녁이 싣고 곧추 연경까지 댄다면 얼마나 편리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이것을 못하는 가? (241~242쪽)
제대로 된 수레 하나 없는 조선 사회를 향해 박지원은 “이 지방에는 흔한 것이 저 지방에는 귀하고, 이름만 들었을 뿐 물건을 볼 수 없는 까닭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라고 묻는다. 수레와 이어진 질문이므로 당연히 답변 또한 수레와 연결된다. 수레가 없으니 이 지방 물건을 저 지방으로 옮기기가 힘들다. 그럼 왜 조선에는 제대로 만든 수레가 없는 걸까? “이것은 한마디로 대답한다면 모두가 선비와 벼슬아치들의 죄다.”라고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당대의 지배층인 사대부들이 관념에 빠져 현실을 보지 않는다는 말로 돌려도 된다. 사대부들은 이용후생에 관심이 없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말 순서에 나타나듯, 공인과 상인을 무시하는 그들이 현실에 필요한 기물(器物)들에 관심을 가질 리는 없다. 박지원은 다양한 차(車)들을 소개하여 조선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강조한다. “중국에서는 모든 일에 간편함을 으뜸으로 삼아 한 가지도 낭비하는 것을 볼 수 없었는데,”(249쪽)라는 말이 결코 허튼말이 아니다.
「관내정사(關內程史)」라는 장에는 잘 알려진 <호질(虎叱)>이 실려 있다. 옥전현의 한 점포 바람벽에 기록된 글을 박지원과 정 진사가 반씩 베꼈다. 박지원은 정 진사가 베낀 부분에는 빠진 글자가 많고 문리가 통하지 않는 글귀가 많아 약간의 창작을 가미하여 한 편의 글을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호랑이가 북곽 선생이라는 양반을 꾸짖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이 글을 통해 박지원은 당대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고발한 셈이다. 선비들의 존경을 받는 북곽 선생은 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밤에 동리자의 처소를 찾는다. 동리자는 열녀로 알려져 있지만, 다섯 아들의 성(姓)이 모두 다르다. 두 사람은 밤에 몰래 만났다가 다섯 아들에게 걸리는데, 도망치는 와중에 북곽 선생은 똥구덩이에 빠진다. 간신히 나오니 범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범은 똥통에서 기어 나온 북곽 선생을 보고는 “이놈의 선비, 에이, 구린 냄새야!”라고 소리친다. 북곽 선생은 살기 위해 범 앞에서 온갖 아양을 떤다. 보다 못한 범이 양반을 대표하는 북곽 선생을 향해 일장 연설을 한다.
네가 주절거려 대는 천만 마디 말이 오상五常을 떠나지 않고 남을 훈계하거나 권고할 때는 으레 삼강三綱을 둘러메고 나오지마는 사람 많이 사는 대처 바닥 거리에 돌아다니는 코 떨어진 놈, 발뒤꿈치 없는 놈, 상판에 먹침을 맞은 놈들은 죄다 무지막지한 망나니놈들로서 날마다 먹을 아무리 갈아대고 연장을 아무리 벼려대도 그놈의 나쁜 버릇들을 막아 낼 재주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범의 집안에는 이런 형벌이란 것이 본디부터 없다. 이로써 보건대 범의 성품이 역시 사람의 성품보다는 어질지 않은가! (373~374쪽)
<양반전>이라는 작품에서 박지원은 양반을 도둑놈들이라고 외친 적이 있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범의 입을 빌려 양반의 성품을 범의 성품보다도 못한 도둑놈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수많은 법으로 무뢰배들에게 이런저런 형벌을 내리지만 무뢰배들의 수는 줄지 않는다. 범의 집안에는 애초부터 형벌이란 게 없다. 이것만으로도 범이 인간보다 더 어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범은 주장한다. 양반들은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장수가 되기 위해 제 계집조차 죽인다. 삼강오륜을 얘기하는 이들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가? 사람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다. 메뚜기에게는 밥을 가로채고, 누에에게는 옷을 빼앗으며, 벌에게는 꿀을 도둑질한다.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을 인간은 하늘의 뜻이라고 말하지만, 언제 하늘이 인간에게 이런 권리를 주었단 말인가. 범의 말은 “천지만물이 살아나가는 어진 도리에서 본다면 범이나 메뚜기나 누에나 벌이나 개미나 다 사람과 함께 같이 살기 마련이지, 서로 등지고 지낼 터수가 아니렷다.”(375쪽)라는 주장에까지 이른다.
범은 배가 고픈 데도 북곽 선생을 잡아먹지 않는다. 잡아먹을 만한 가치가 없는 동물로 인간을 판단한 것이다.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린 채 북곽 선생은 그저 살려달라고만 외친다. 아무런 소리가 없어 살짝 고개를 든 북곽 선생 눈에 농사일을 하러 나온 농부가 보인다. 농부가 왜 들판을 향해 절을 하느냐고 묻자, 북곽 선생은 “내 들으매 하늘이 높다 해도 머리를 맘대로 못 들고, 땅이 두텁다 해도 밭을 맘대로 못 디딘다고 했거든!”(378쪽)이라고 조용히 읊조린다. 가관이다. 당대 양반들을 박지원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정확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범 앞에서 아첨이나 하던 북곽 선생이 농부 앞에서는 성인(聖人)인 체 연기를 한다. 범이 이 장면을 봤으면 자기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글에 대해 평하는 자리에서 박지원은 “사람의 처지에서 본다면 중국과 오랑캐는 반드시 등분이 있겠지마는 하늘이 마련한 것을 본다면 은나라의 한관이나 주나라의 면류관이나 다 각기 그 당시의 시속을 따른 것이다. 유독 오늘날 청인의 붉은 모자에만 의심을 둘 까닭이 어데 있을 것인가?”(379쪽)라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시속=현실이지 관념이 아니라는 얘기겠다.
연경에서 열하로 가는 길을 기록한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은 이 책의 제목인 ‘열하일기(熱河日記)’와 관련되어 있다. 열하는 황제의 행재소(行在所)로 강희 황제 이후 여름철 황제들의 피서지로 사용된 곳이다. 원래 열하는 사신단이 가야할 장소가 아니었지만, 마침 황제가 그곳에 있어 갑작스레 여정에 포함되었다. 연경까지 오는 길이 험난했던 차에 얼마 쉬지도 못하고는 떠나야 하는 길이기에 박지원은 잠시 갈등을 한다. 혹, 열하에서 조선으로 돌아가면 연경 구경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정사 박명원이 아무도 구경 못할 곳은 꼭 가야 한다고 설득해 그는 열하를 여행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사람들은 모두 발이 부르트고 말들도 모두 다리를 절어 열하로 가는 인원을 최소로 줄이기로 한다. 그 바람에 마두(馬頭)를 한 장복이는 남고 견마잡이인 창대만 데려가기로 한다. 두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한다. 박지원은 연경에 남는 사람들과 열하로 떠나는 사람들이 이별하는 장면을 보면서 한바탕 ‘이별론’을 펼친다. 머릿속으로 이별론을 펼치다 길을 잃을 정도였으니, 박지원의 평소 성격을 알 만하다.
벼루 물이 없으면 박지원은 술을 물로 삼아 벼루 물을 만든다. 그만큼 그는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여행하는 자에게 글은 낯선 지역을 탐구하는 수단이다. 글을 쓰면서 그는 자기가 있는 장소를 새삼 들여다보고, 그 장소를 들여다보는 사람을 다시금 들여다본다. 글쓰기를 통해 박지원은 자신이 왜 지금 이곳에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단순히 관광(觀光)에 그치는 지금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여행을 그는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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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3권 중 1권밖에 읽지를 않은 상태이니 이 책에 대한 전체적 감상을 쓰기에는 이르다. 보통은 어떤 책이 몇 권이 되었건 다 읽은 후 한번에 뭉뚱그려 소감을 정리하는 게 습관 아닌 습관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다 읽는 데 시간도 꽤 걸릴 듯 할 뿐더러, 기행문의 특성상 구체적 사안 사안에 대한 인상이나 기억이 비교적 뚜렸할 때 기록을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정확 할 것 같아 각 권 별로 기록을 남기기로 한다.
일단 드는 생각은 '역시 원전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생각은 나만 하게 되는 게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접해 본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처음 느끼게 되는 소감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국사 시간에 국어 시간에 수없이 들었던 말 그대로 우리의 고전인 '열하일기'가 과연 어떤 내용인지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느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비단 이 책만이 아니다. 또 다른 사람 얘기를 할 필요도 없다. 동서양의 고전 중 내가 원전으로 읽은 것은 과연 몇 권이나 되는지... 요즘 내가 자주 가는'딴지일보'의 연재물 중 '읽은척 메뉴얼'이라는 꼭지가 있지만, 지금까지의 독서 습관이라는 게 대개 그런 행태에서 크게 벗어 나지 못한 부분이 많은 것이다.
고전 중에는 그 내용이 쉽게 읽히지 않는 책들도 많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 '열하일기'를 두고 내용이 어렵다고 얘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잘 읽힌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 가볍게 본다는 얘기가 아님은 따로 변명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세밀한 관찰력과 끊임없는 자기 반성 같은 모습은 20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고 진솔한 설득력을 느끼게 한다. 여하튼 그 세세한 재미는 결코 다이제스트된 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진작에 이런 고전이 우리 말로 번역되었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런 작업이 더디기만한 우리의 학문적 현실이 새삼 답답하게 생각된다. 이 책 역시 근 50년전 북한에서 출간된 번역본을 재출간 한 것이라니... 쩝...
구체적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먼저, 책을 읽는 내내 과연 '사대'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모화 사상'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기억하는 실학 사상의 대가인 박지원의 글임에도, 이 책은 그 첫머리부터 명나라의 연호 표기를 둘러 싼 설명부터 이어진다. 참 지긋지긋하고 군내나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의식구조라는 한숨이 나온다. 임진왜란시 원병을 매개로 한 '재조지은'이라는 온정적 사고 방식. 국제 관계에 대한 냉철한 사고나 국가간 관계의 본질에 대한 고민 없이 명분만이 앞에 서는 사고 방식. 그마저도 과연 사상적인 측면에서라도 순수한 것이었는지, 당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정략적 계산이라는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것이었는지 다분히 의심이 가지만... 이런 답답함은 이미 200년 이상이 지난 선조들 때문이라기보다 21세기를 산다는 현재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어쩔 수 없이 되 묻게 되기 때문이다. 명을 미국으로 대체하고 '임진왜란'당시의 구원병을 6.25전쟁 시의 UN군으로 대체해 놓고 생각해 보면 아직 우리의 사고는 중세 시대의 명분론이나 온정론에서 한빨짝도 나가지 못했음이 분명해진다. 특히 정략적 필요를 위해 의도적 왜곡을 당연시하는 극단적 사고 방식들. 그런면에서 정말 제대로된 실사구시적 사고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는 시대를 넘어 여전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일단 이 책의 미덕은 기행문으로서의 구체성이다. 압록강을 거너 북경에 이르는 약 40여일 간의 여정. 그 여정 중의 풍광과 사람 살이에 대한 묘사 같은 것이 참 정밀해서 감탄스럽다. 현대의 어떤 기행문도 이런 정도의 구체성을 보여 준 예는 쉽게 찾기 힘들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읽은 한에서는... 그 묘사를 통해 내가 새삼 확인한 것은 조선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청나라 사람들에게 굽신거리거나 자세를 낮추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어찌 생각하면 조선의 사신단이야 그래도 이쪽에서는 행세 깨나 한다는 사람들이요, 사신단이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라야 중국의 변경 지역에 사는 사는 변두리 인생들이 대부분일테니-지리적, 일반론적 표현 일 뿐 가치 판단적 개념은 전혀 없는 단어 선택이다- 그들이 보인 그런 우월감이 전혀 생뚱맞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여하튼 좀 의외였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박지원의 박식함이다. 역사며 풍물에 대한 해박한 사료적 지식과 논거들. 한데 하나 안타까운 것은 그의 논거의 바탕을 이루는 거의 모든 근거며 사례가 중국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이 박지원에게서만 나타나는 일이 아님은 당연히 알고 있지만, 여하튼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다. 모든 사고의 일차적 재료가 중국의 역사며 문물이라는 시대적 한계. 지금에 와서는 쉽게 그 한계를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다해도, 과연 2009년을 사는 내 눈 앞의 꺼풀은 얼마나 벗겨져 있는지...
이런저런 의미에서, 아직 두 권의 책을 더 남겨 놓고 있지만 마음은 훌쩍 연암의 발길을 앞서 가려고 한다. 언젠가는 그가 갔던 행로를 따라 중국길을 다시 밟으면서 내 눈으로 그의 시선을 되집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