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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열하일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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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을 알고 난 다음 끊임없이 열하일기를 구해 읽으려고 노력했다. 솔에서 나온 민족문화연구회의 '열하일기'는 그야말로 너무 소략해서 맛뵈기에 지나지 않고, 그린비에서 나온 고미숙의 책은 리라이팅시리즈이기 때문에 열하일기에 대한 소개서는 될 수 있어도 열하일기의 원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민 선생이 쓴 '비슷한 것은 가짜다'는 박지원의 산문선에 해제를 붙인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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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을 알고 난 다음 끊임없이 열하일기를 구해 읽으려고 노력했다. 솔에서 나온 민족문화연구회의 '열하일기'는 그야말로 너무 소략해서 맛뵈기에 지나지 않고, 그린비에서 나온 고미숙의 책은 리라이팅시리즈이기 때문에 열하일기에 대한 소개서는 될 수 있어도 열하일기의 원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민 선생이 쓴 '비슷한 것은 가짜다'는 박지원의 산문선에 해제를 붙인 것으로 내용은 좋고 열하일기의 명문들이 두루 소개 되었으나 이 역시 열하일기의 진면목을 보여주진 못했다. 몇번이고 국역고전총서로 나온 열하일기를 구하려고 했으나 구할길은 없고 대학 도서관에서 낡고 해진 책 몇권을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이제 북한에서 옮기고 남한에서 펴낸 보리의 '열하일기'를 만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내가 읽는 것을 보고 있던 동료 선생님들은 열하일기가 원래 이렇게 두꺼웠나며 놀라신다. 꼼꼼하고 우리말의 맛을 살린 번역이 특히 좋았고 깔끔한 장정도 책꽂이를 빛낼 만하다. 보리의 겨레고전문학선집을 모두 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섬뜩하다. 값이 비싸다는 것이 흠이다. 늘 생각하지만 우리나라도 페이퍼백의 값싼 책과 하드커버를 동시에 발매해야 한다. 그래야 나처럼 책값지수가 높은 사람들도 부담없이 책을 살 수 있으니. 책값이 부담되면 상권만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상권은 1995년 번역이지만 중,하권은 1959년 번역이다. 물론 지금의 언어 감각으로 훑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가 번역이 깔끔하지만, 일기부분은 중권 초입에서 끝나고 나머지는 여행중에 겪은 일을 주제별로 정리한 것들이다.

[인상깊은구절]
도강록 중 일부분이다. 옳다! 이렇고 난 후에야 이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요, 이용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있은 후에야 그 질서를 바로잡을 것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모르고 그 생활을 넉넉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몰라 생활 자료가 근본 부족하면서 억지로 잘살겠다고만 한다면 어떻게 그 도덕과 질서를 바로 잡을 것인가?
n****2 2004.11.27. 신고 공감 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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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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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1780년 청나라 건륭황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의 정사로 중국에 가게 된 그의 팔촌 형 박명원을 아무 직책없이 수행하면서, 북경을 지나 황제의 여름피서지인 열하까지 이르게 된 여정과 여행 중 견문 사항, 그외 자신의 생각을 담은 여행기 겸 수필집이다. 2달 정도의 여정을 다룬 부분이 40% 정도이고 나머지 60%는 보고 듣고, 외국의 학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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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1780년 청나라 건륭황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의 정사로 중국에 가게 된 그의 팔촌 형 박명원을 아무 직책없이 수행하면서, 북경을 지나 황제의 여름피서지인 열하까지 이르게 된 여정과 여행 중 견문 사항, 그외 자신의 생각을 담은 여행기 겸 수필집이다. 2달 정도의 여정을 다룬 부분이 40% 정도이고 나머지 60%는 보고 듣고, 외국의 학자들과 토론한 내용을 잡다한 형태의 글로 담아 내었다. 특이하게 티벳의 活佛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상당한 분량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반선 액이덕니는 6代 빤첸라마인 Palden Yeshe(1738~1780)를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망양록이란 수필에서는 뜻밖에도 古來의 禮樂 을 심도있게 취급하고 있다. 마지막 편은 補遺로 '금료소초'란 약방문 모음집으로 방대한 저작을 마무리하였다. 하여간 이제껏 남아 있는 연암의 모든 작품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분량이고 취급한 범위도 다양하여 연암 사상의 진면목을 한눈에 볼 수 있음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나라 사상계, 문학계의 기념비적인 저작인 열하일기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 덧말을 가한다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읽기 전에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뭔가 좀 아쉬움이 남았다. 연암이 반대파로부터 혹시나 반격의 빌미를 제공할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저작을 남긴 이유는 본 작품 여기저기에 지적해 놓았듯이 '천하대세를 엿보고저 함'이다. 고루한 소중화사상을 껴안고 홀로 귀한 척 하지만, 오랑캐라고 업신여기는 청나라로부터 상당히 뒤쳐진 상태에 있었던 당시의 조선시대 사대부들을 준엄하게 힐책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하고자 하는 작은 외침이었다. 더러 박지원을 대단히 혁명적인 사상가라도 두둔하는 경우도 많지만, 나의 짧은 소견으로 보기에는 연암이 지금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날카로운 필명을 떨치는 자유로운 논객은 될 수 있을 지언정,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가는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배계급 유력 당파의 일원이었지만, 전혀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던 냉소주의자였을 뿐이다. 정조대왕 같은 혜안을 갖춘 철인왕이 통치하던 시기였지만, 왜 능력에서 전혀 뒤질 것 없는 연암 박지원이 다산 정약용만큼 쓰임을 받지 못했던가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책에 대하여 몇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이 책을 소개하는 광고문구에 '장서가라면 家寶로 보전할 만한 좋을 책'이라 하였는데, 솔직히 가보까지는 못 될 것 같다. 표지, 디자인, 제본 등등 다 훌륭했지만, 안타깝게도 종이의 지질이 너무 안좋은 것으로 책을 만들었다. 아예 북한에서 만들어 온 것인지 모르겠는데, 도대체 이정도 수준의 종이는 근자에 구경을 하지 못한 한심스러운 것이었다. 둘째, 번역자인 리상호 선생에 대하여 좀더 상세한 자료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리상호 선생의 문장은 몇해 전에 소개된 '국역삼국유사'로도 이미 우리 독자들에게 친숙한 상태인데, 도대체 뭐하는 분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이처럼 결례가 없는 듯 싶다. 특히나 열하일기 정도라면 연암의 난해한 문장을 감안할 때 국역이 거의 창작 수준이 아닐까 생각되는 바, 이처럼 훌륭한 국역문을 남겨준 학자라면 남북한을 막론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셋째, 이미 연암 박지원이나 실학사상에 대한 상당한 연구가 축적되었을 마당에, 우리 학자들에 의한 좀 쓸만한 해설문을 붙이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해설문으로 붙은 김하명의 '박지원 작품에 대하여'와 리상호의 '여명기의 거인, 박지원'은 시기적으로도 조금 낡았고, 그 사상적 편향성은 읽기가 다소 거북스러웠다. 넷째, 기왕에 지도를 붙일 것 같으면, 좀 볼만한 것을 수록했으면 좋겠다. 부록의 '열하여행지도'는 18세기의 '天下圖'라는 지도의 일부분인데, 참고적으로 이런 것도 있었다는 명목으로 보여주는 것 외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지도이다. 그렇게 여정을 里단위까지 상세하게 표시한 열하일기인데, 그에 걸맞는 현대적인 지도가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부록 중의 열하일기 원문은 띄어쓰기까지 되어 있어 정리가 잘 된 듯하다. 오는 2005년은 연암 서거 200주년이다. 우리 학자의 손으로 이룩된 제대로 된 열하일기와 연암집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YES마니아 : 로얄 k****1 2004.12.14. 신고 공감 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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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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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하 일 기      2003년 고미숙교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접하고 완역본을 읽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세월을 지냈다가 이번에 정말 큰 마음 먹고 북한학자 리상호의 <<열하일기 상,중,하>>와 고미숙의 <<세계최고의여행기 열하일기 상,하>>을 읽게 되었다. 처음엔 동시에 다른 역자의 작품을 읽는게 혼란스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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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하 일 기 

 

 

2003년 고미숙교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접하고 완역본을 읽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세월을 지냈다가 이번에 정말 큰 마음 먹고 북한학자 리상호의 <<열하일기 상,중,하>>와 고미숙의 <<세계최고의여행기 열하일기 상,하>>을 읽게 되었다. 처음엔 동시에 다른 역자의 작품을 읽는게 혼란스러울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기우에 지나지 않고 역시 같이 읽은게 휠씬 한문고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역자에 따란 고문의 해석방식이 다른면에서 참다운 열하일기를 접한것 같아 가슴한켠이 벅차오른다. 5월 한달을 매달리다 시피해서 읽고 또 읽고 옥편 동원하면서 능력도 없는 원문을 찾아보면서 역시 우리 선조들의 해박한 지식과 적재적소에 맞는 애들립구사 능력에 다시금 감탄을 금할수 밖에 없었다.

 

선말기 권세있는 집안(노론)에서 태어났지만 연암은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시쳇말로 지금의 고시인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홍대용,박제가,이덕무(일명 연암사단)과 교류를 통하여 당시 대세였던 북벌론 내지는 중화사대주의에 철저한 의구심을 가지고 실용주의 학문연구에 정진하였다. 비록 말년에 관직에 나아갔지만 그 역시 지방관직을 거치면서 민중들의 삶에 묻혀서 살아갔다. 연암의 마지막 유언인 "몸만 깨끗이 씻겨달라"는 이 한마디가 그의 생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열하일기는 어쩌면 연암을 위한 하늘이 내린 천우신조의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연암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사 이래 최고의 문장을 후세에 남기게 된다.

 

현존 하는 열하일기는 당시 연암이 집필했던 내용이 다소 누락되고 삭제된것으로 보고있다. 그도 그럴것이 정조시대에 열하일기는 문체반정의 표적 1순위 대상이었다. 사대부와 조선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문체 또한 정통성리학을 표방하던 당시의 식자들에겐 이단이나 마친가지의 충격파을 준것이다. 그래서 연암 생전은 물론 그의 손자가 영의정에 제수된 뒤에도 출판이 금지되었던 것이다. 자연 세월이 흘러 내용들의 일부가 왜곡이 되었지만 현재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시대에 우리가 봐도 상당한 충격을 추는 작품인데 그 당시의 충격은 일파만파였으리라 짐작코도 남을만 하다.

 

하일기의 매력은 제목만 보고 단순한 기행문으로 착각할 수 도 있으나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을 보면 가히 백과사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정치,경제,사회,역사,음악,종교,과학등의 탁월한 식견을 보여주고 있는 역사이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장르로 보자면 기행, 평론, 소설, 시, 르포르타주, 수필등의 다양한 형식을 넘나드면서 자유자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열하일기는 1780년(정조4년) 당시 청나라 건륭황제의 칠순을 하례하는 진하사겸 사은사의 명복으로 사행단을 구성하여 청나라에 파견단 사행단을 삼종형 정사 박명원(금성위)의 군관자제자격으로 따라가면서 시작하게 된다. 한양에서 5월 25일 출발해서 연경과 열하를 걸쳐 다시 한양으로 들어오는 10월 27일까지의 5개월에 걸친 대장정중 의주에서 요양, 심양, 산해관, 북경, 열하, 다시 북경을 거치는 과정을 편년체형식과 그때 그때의 견문 및 식자들과의 필담을 별도의 기로 기록한 방대한 작품이다

열하일기를 크게 일정별로 나누면 아래와 같다

 

원론(사행일자별 작성)

도강록(압록강에서 심양까지 6월 24일 - 7월 9일) 구요동기/요동백탑기/관제묘기/광우사기

성경잡지(요양에서 광녕까지 7월 10일 - 7월 14일) 속재필담/상루필담/고동록/성경가람기/산천기략

일신수필(광녕에서 산해관까지 7월 15일 - 7월 23일) 북진묘기/거제/점사/교량/강녀묘기/장대기/산해관기

관내정사(산해관에서 북경까지 7월 24일 - 8월 4일) 열상화보/이제묘기/난하단주기/사호석기/호질/동악묘기

막북행정록(북경에서 열하까지 8월 5일 - 8월 9일)

태학유관록(열하 태학에서 8월 9일 - 8월 14일)

환연도중록(8월 15일 - 8월 20일)

 

각론(이론/견문/필담별 묶음)

경개록(열하일기 전반에 만난 청나라의 인사의 개인이력)

황교문답/반선시말/찰십륜포(티벳불교(당시 황교)의 수장인 반선(달라이라마)과의 만남과 그에 대한 기록)

행재잡록(연해중의 청나라의 행재소의 공문)/심세편(세상사에 대한 평론으로 북학에 대한 의견 피력)

망양록(중국인사들과의 음악에 대한 기록)/곡정필담(중국학자 윤가전과의 쟁쟁한 토론)

산장잡기(열하까지의 견문기로 특히 야출고북고기와 일야구도하기가 압권이다)

환희기(북경에 체류하면서 본 요술구경)/피서록(열하 피서산장에서 주로 중국과 조선이 시문에 대한 논쟁)

구외이문(북경과 열하에서 들은 기이한 이야기)옥갑야화(옥갑에서 나눈 이야기 허생전)

황도기략(북경성과 자금성등에 대한 기록)/알성퇴술(공자묘 참배에 대한 기록)

양엽기(북경내 있는 사찰에 대한 견문기)동란섭필(수필)/보유금료소초(의학관련 지식에 대한 피력)

- 이 중 고미숙의 작품에서는 각론을 일부 편역하였음.

 

 

이렇게 목차만 보더라도 연암의 지식충족욕은 가히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진공청소기처럼눈에 띄는 모든것을 흡수해버리고 싶은 애절한 마음이 아니였을까 싶다.

 

열하일기를 읽다 보면 느끼는 점은 작가인 연암의 해박한 지식과 애리한 관찰력 그리고 모든것을 자기꺼로 만들어가는 능력이 어떤 타인에 비해서 탁월하다는것을 알 수있다. 그리고 간간히 독자들을의 지루함을 잊게 해주는 위트와 유머로서 독서의 맛을 한층 더 배려한 정말 조선이 낳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할까...

그리고 연암은 여행에서 견문한 선진문화와 선진산업 시설과 근대 과학이론을 상세히 기술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민중의 생활에 이바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1. 연암은 조선최고의 과학자였다???

 

친구인 홍대용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연암은 당시 조선으로서는 감당치 못할 과학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 학자들과의 필담을 통해서 연암의 자기의 과학관과 우주관, 그리고 생명기원에 대한 진화론까지 거침없이 일성하고 있다. 상대가 선진과 학과 문명으로 뭉쳐진 중국학자들 앞에서 그리고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등 알았다면 스승을 받을만한 이론을 전개한다.

연암은 지구가 둥글고 자전한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명쾌하게 만유인력법칙을 통해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모든 물질은 티끌에서 시작한다고 인식하여 현대과학으로 보자면 원소내지는 원자의 개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벌레의 한 종족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가히 다윈도 울고갈 진화론의 단초라고 할 수 있다.

 

2. 연암은 현실적인 거시경제학자였다???

 

연암의 생애를 통틀어 이용후생과 실천궁행 이 말을 빼면 남는게 없다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현실적인 경제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에 바로 적용될 수 있고 그리고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경제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중 중국의 수레제도, 성 쌓는법, 가루 찧는 기계, 고치실 뽑는 기계, 온돌 놓는 법, 벽돌이용법등 각양각색의 선진문화를 정말 자세히 기록하면서 조국의 낙후성과 당시 지배층의 무능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허생전을 통해 거시경제의 중요성을 강조 특히 물류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거시경제의 원할한 회전을 강조했다.

결국 만년에 들어서 부자들의 토지를 나누어주라는 부록이 게제된 과농소초라는 농서를 집필하게 된 밑그림이 되었던 것이다.

 

3. 연암은 자주주의적 역사학자였다???

 

당시의 조선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잊지않고 있으면서 청에 대한 북벌을 주장하는게 일반 사대부들의 공통된 사상이었다. 호란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임진년 명의 은혜를 잊지말자는.... 그러면서 자국이 강역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중국의 고서기록을 믿고 그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암은 이런 사류을 배척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여행중 철저하게 고구려와 조선의 강역을 중국 고서인 사기나 지리지등의 잘못된 점을 들추어서 제대로 된 강역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열하에서 만난 반선(달라이라마)과 반선에 대한 청의 태도를 오랑캐라 어쩔수 없다는 식이 아닌 청의 제국지배방식을 간파하고 조선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한다고 역설하면서 구체적으로 말의 사육에 대한 문제까지 거론한다. 당시 조선의 통치계급이나 학자들이 소위 춘추대의에 젖어 맹목적인 존화양이만 외치고 있을때 '나라에 유익하고 백성에게 유익한 일이면 비록 오랑캐에게라도 배울것은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었을까 싶다 ㅎㅎ

 

4. 연암은 인본주의자였다???

 

연암은 사행중 중국의 문물을 보면서 통탄했다. 아니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국이 처한 현실앞에 식자들의 다 스러져가는 성리학이란 학문에 매달려 민생과 후생에 대한 한치의 배려도 없는 지배층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아래 민중들에 대한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같이 호흡을 했던 것이다.  그 일면으로 산해관에서 객주에 들어 상방 정진사와 같이 배겨썼다는 호질(호랑의 꾸중)이란 작품에서 비록 배경은 중국을 그리고 있지만 어쩌면 연암의 조국 조선식자층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5. 연암은 종교학자였다???

 

연암이 열하에서 경험한것 가장 크게 충격을 준것은 티베트불교와의 만남이었다. 당시로는 정말 충격적인 해후였다. 황제의 강요에 못이겨 반선을 접견하고 반선으로 부터 불상을 하사받고 이에 대한 처리로 골몰하고 있는 삼사(정사,부사.서정관) 그 와중에 황교(티베트불교)에 대한 연암의 철저한 판단 그리고 황교를 받는 청의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인 모략을 간파하고 다시금 청나라에 대한 색다른 면을 보게 된다. 또한 북경에 있는 천주당을 견문하고 야소(예수)나 야소회에 대한 반박등 다양한 종교적인 견해

를 피력한다.

 

 

6. 연암은 베스트셀러작가였다???

 

정말 연암은 타고난 작가임에 틀림없다. 장편의 작품을 초록하면서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이렇게 깊을줄이랴... 기행문의 형식을빌려 군데 군데 자기의 철학, 정치학, 경제학, 음률학, 지리학, 역사학, 우주천문학, 지구과학등의 딱딱한 글과 시, 소설, 견문,수필, 잡기등의 쉽게 읽을거리를 적절하게 분배해서 독자의 지루함을 한번에 날려버렸다. 거기에다 간간히 들려주는 위트 내지는 유머한마디가 압권이다. 예로 북경에 도착하여 쉴려고 하는게 갑자기 황제가 열하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허둥되는 청나라과 관원을 지켜보면서 불이났냐는 말에 황제가 열하로 가서 비어있는 북경으로 몽고 기병 십만명이 처들어온다가 하여 자중을 웃긴일화가 그것이다. 또한 북경에서 잠도 자지못하고 열하까지 가는 여정중에서도 고북고성벽에 이름 세글자 세겨넣는 여유까지...

 

이렇게 대충 정리한 연암에 대한 생각들이다. 물론 내가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점인것이지 보편타당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연암의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내내 가졌던 생각은 사물을 보더라도 항상 그 이면을 봐야한다는 생각과 단순히 보고 넘기지 않고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생각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저작이다.

특히 역자가 다른 두책을 읽은것이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한작가는 북한학자이 입장에서 본 연암과 남측에서 본 연암에 대한 생각들과 해석방식 하지만 공통점은 열하일기는 조선최고의 작품이라는 점과 연암에 대한 평가는 일치한다는 것이다.

시와 공간을 넘어서 연암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가 그가 남긴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중국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장관, 무엇이 장관이라고 떠들지만 나로서는 똥거름 무더기가 장관이고, 깨어진 기와쪽과 버리는 조약돌을 이용하는 법이 장관이더라""

 

그의 생애 철저하면서 일관되게 흐르는 이용후생에 대한 신념이랄까...

l******e 2008.11.10. 신고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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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시대의 지식인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제대로 번역한 책
"진정한 시대의 지식인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제대로 번역한 책" 내용보기
이미 열하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리라이팅 클래식에서 그 일부분은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체를 다 읽어보기는 어려웠다. 이 책을 사면서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다. 상권만 살 것인지 아니면 3권 모두를 살 것인지. 그냥 읽기에는 상권만 사는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 2천 3백리가 되고 다시 연경에서 열하까지 7백리 합해서 3천리에 달하는 거
"진정한 시대의 지식인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제대로 번역한 책" 내용보기
이미 열하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리라이팅 클래식에서 그 일부분은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체를 다 읽어보기는 어려웠다. 이 책을 사면서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다. 상권만 살 것인지 아니면 3권 모두를 살 것인지. 그냥 읽기에는 상권만 사는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 2천 3백리가 되고 다시 연경에서 열하까지 7백리 합해서 3천리에 달하는 거리이다. 이런 먼 거리를 여행하면서 박지원은 공식적인 사절이 아니므로 나름대로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가끔은 밤에 아무도 모르게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과 필담을 하였고 그 내용들을 적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청나라 사람들의 이름을 빌려서 자신의 주장을 나타낸 것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귀국 후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남의 말을 빌려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상권에 있는 범의 꾸중으로 번역한 호질도 그 한 예일 것이다. 만일 들은 것이 아니라고 베낀 것이 아니라고 했다면 이런 글이 기록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대체 임금에게 잘 보이면 백성에게 인심을 잃고 백성들의 마음에 맞게 하면 임금에게 의심을 사는 법입니다(중권 431쪽)라고 곡정의 입을 빌려서 말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이순신을 생각하게 된다. 전라도에서 백성의 인심을 얻으니 임금을 미워하게 되고 만일 정유재란에 이순신이 죽지 않았다면 사형을 당하지 않았을까하는 평소의 생각이 들어맞는 것 같은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일월日月이란 글자가 명나라가 된다고 지우는 지식인인 곡정과 관련된 내용(중권 438쪽)을 읽으면서 한국의 레드 콤플렉스가 횡행하던 시절이 떠오르게 한다. 그러면서 당시 청나라 아래에서 명나라를 그리는 중국 사람들이 우리의 일제 때의 어려움을 연상하게 한다. 대관절 이것을 도중에 어느 절에라도 버려둔다면 청국을 자극할 일이 무섭고 이것을 가지고 우리나라로 들어간다면 응당 말썽이 날 터이니, 양국의 국경에서 순류로 바다로 띄워 보내는 것은 압록강만 한 데가 없을 것이다(하권 108쪽)라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그 시대의 지식인으로서의 고민을 함께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이것이라 함은 지금의 달라이라마라고 부르는 반선이 보낸 부처였던 것이다. 주자학만이 학문이고 불교는 배척당한 나라의 지식인이 겪는 어려움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옳다! 이렇고 난 후에야 이용利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요, 이용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있은 후에야 그 질서를 바로잡을 것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모르고 그 생활을 넉넉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상권 57쪽).
7*****0 2005.02.18.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 18세기 조선의 사실주의 작가, 신사상가, 계몽주의자 박지원 [열하일기 세트_3권]
"[서평] 18세기 조선의 사실주의 작가, 신사상가, 계몽주의자 박지원 [열하일기 세트_3권]" 내용보기
지난 8월 초에 공부모임에서 진행한 '열하일기' 세미나의 교재는 고미숙씨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상/하)가 아니라 이 책이었다. 가끔 독서 욕심이 분출할 때가 있는데, '열하일기' 세미나 당시에 내 마음이 그러했다. 당시 세미나 날짜에 맞추어 고미숙씨의 '열하일기'와 보리출판사의 '열하일기'를 모두 읽으려 했다. 하지만, 날짜에 맞춘 것은 고미숙씨의 책이었고 이 '열
"[서평] 18세기 조선의 사실주의 작가, 신사상가, 계몽주의자 박지원 [열하일기 세트_3권]" 내용보기
지난 8월 초에 공부모임에서 진행한 '열하일기' 세미나의 교재는 고미숙씨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상/하)가 아니라 이 책이었다.
가끔 독서 욕심이 분출할 때가 있는데, '열하일기' 세미나 당시에 내 마음이 그러했다. 당시 세미나 날짜에 맞추어 고미숙씨의 '열하일기'와 보리출판사의 '열하일기'를 모두 읽으려 했다. 하지만, 날짜에 맞춘 것은 고미숙씨의 책이었고 이 '열하일기' 세트의 경우 3권 중에서 마지막 하권을 절반 정도 밖에 읽지 못했다.
그래도 세미나는 아주 재미나고 유익하게 진행되었고 세미나를 마친 이후 여유를 가지고 세미나에서 이야기된 내용도 되새기면서 세트의 마지막 하권까지 읽었다.
 
(여기서 잠깐 나의 독서관과 독서방식에 대해 한 마디...)
아직까지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은 '정독'이 아니라 '속독'에 가깝다. '속독'이라 해도 1~2 시간에 책을 완독하는 수준은 아니다. 내가 책 읽는 것을 잠시 계산해보면 통계 상으로 보통 소설 50쪽을 읽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1시간 정도 걸린다.
따라서 수학이나 자연과학 서적, 경제경영 서적, 철학이나 인문도서 등 다른 분야의 책은 1시간 동안 집중해서 읽어도 1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기 일쑤다. 그리고 일부러 '속독'을 배우거나 빨리 읽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대신, 읽을 때 책 내용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집중하려고 애쓰면 그만큼 집중력은 높아지는 것 같다.
한 번 책을 다 읽으면 책을 덮은 후 적어도 몇 시간에서 길면 며칠 후에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책을 집어든다. 처음 읽을 때 메모해 놓거나 표시해 놓은 구절을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책을 다시 읽는다. 서문과 결론도 이 때 반드시 다시 읽으면서 전반적인 내용을 머리 속에서 정리해보고 요점과 배울점, 느낀점, 비판할 점 등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그냥 책 읽는 것을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숨 쉬고 밥 먹는 것처럼 생활화하는 것과 하루를 보내면서 애매하게 5~10분 이상의 짬이 나게되면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려는 것이 내가 노력하는 방향이다. 집이나 사무실에서는 화장실 갈 때마다 책을 들고 가기 때문에 눈치를 준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도 꽤 오래 전이다. 또한 술을 먹지 않고 불필요하게 저녁이나 주말 약속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기에 평상시의 경우 하루 중 책 읽는 시간을 제법 확보할 수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일주일에 1권 이상 읽는 것이 올해 나의 (양적)목표다.
 
[열하일기_세트]는 보리출판사의 <겨레고전문학선집> 기획의 하나라 출간된 것이다. 보리출판사는 북한의 문예출판사가 펴낸 1995년판 <조선고전문학선집>을 <겨레고전문학선집>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일부 편집, 수정하여 지난 2004년 펴낸 것이다. 출판사측은 북한에서 진행한 우리 민족의 고전문학을 소개하면서 아직 한국에서 미진한 한반도의 고전을 발굴하고 북한의 문학계와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다.
<겨레고전문학전집>은 [열하일기] 3권을 시작으로 [동명왕의 노래](이규보 작품집)부터 [숙향전](소설)에 이르기까지 30권을 출간한 상태다. [열하일기] 세트는 북한의 리상호씨가 고문을 완역한 것이다. 
 
고미숙씨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와 달리 이 책은 처음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단어 사용이 남북이 제법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흙탕물'은 '흙물'로, '방금'은 '이즈막' 등 서로 다른 표현도 많고 '가닥물' 처럼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도 가끔 들어있기 때문이다.
 
------- * 역자 리상호는 누구인가?
북에서 한 활동 일부만 알려져 있다.
1955년에 《열하일기》 국역을 마쳤고, 1959년에는 《삼국유사》를 국역했다. 북녘의 고전 출간 사업은 모든 대중이 고전을 읽도록 한다는 원칙에 따른다. 리상호의 국역은 그러한 원칙을 따라 쉬운 우리말로 번역을 한 것 위에, 토박이 우리말을 잘 살려 쓰고 운율감이 배어 있게 하여, 이 《열하일기》가 빼어난 국역 문학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였다. ---------
 
당초 박지원 선생이 쓴 [열하일기]는 26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정본 없이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오다가 1901년 김택영이 처음 간행하였다. 현대문 제목은 북한의 리상호가 번역한 것을 따랐다.
26권의 세부 제목과 내용은 아래와 같다.(목차 부분은 위키디피아에서 일부 옮겨온 것입니다...^^)
고미숙씨는 전체 26권 중에서 일부를 편집에서 제외하였고 이 책 [열하일기] 세트는 26권 전부를 완역하여 출간했다.
    1. [제1권] 압록강을 건너서 : 도강록(渡江錄) - 압록강을 건너 심양까지의 기행이다. 1780년 음력 6월 24일~음력 7월 9일
    2. [제2권] 성경의 이모저모 : 성경잡지(盛京雜誌) - 심양에서 광녕까지의 기행이다. 음력 7월 10일~음력 7월 14일
    3. [제3권] : 일신수필(馹?隨筆) - 광녕에서 산해관까지의 기행이다. 음력 7월 15일~음력 7월 23일
    4. [제4권] 관내에서 본 이야기 : 관내정사(關內程史) - 산해관에서 북경까지의 기행이다. 〈호질(虎叱)〉 수록. 음력 7월 24일~음력 8월 4일.
    5. [제5권] 북방 여행기 : 막북행정록(漠北行程論) - 북경에서 열하까지 가는 길이다. 음력 8월 5일~음력 8월 9일
    6. [제6권] 태학관에 머물면서 :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 열하에서의 일정이다. 음력 8월 9일~음력 8월 14일
    7. [제8권]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1. 열하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음력 8월 15일~음력 8월 20일.
      2. 북경에서 다시 조선 땅으로 들어오는 여정은 기록을 하지 않았다.
    1. [제7권] 구외이문(口外異聞)
    2. [제9권] 금료소초(金蓼少抄)
    3. [제10권] 옥갑야화(玉匣夜話) - 〈허생전〉 수록
    4. [제11권] 황도기략(黃圖記略)
    5. [제12권] 알성퇴술(謁聖退述)
    6. [제13권] 앙엽기(像葉記)
    7. [제14권] 경개록(傾盖錄) - 열하일기 등장인물에 대한 짧은 기록들이다.
    8. 제15권 황교문답(黃敎問答)
      1. 황교문답, 반선시말, 찰십륜포는 티벳과 달라이라마에 관해 들은 기록이다.
      2. 박지원은 황교문답에서 청나라의 이민족통치와 유학자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9. [제16권] 행재잡록(行在雜錄)
      1. 건륭제에게 바친 문서와 건륭제가 내린 칙유 등의 기록이다.
      2. 실례를 들어가며 청나라와의 외교관계에서 조선이 가진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10. [제17권] 반선시말(班禪始末)
    11. [제18권] 희본명목(戱本名目)
    12. [제19권] 찰십륜포(札什倫布)
    13. [제20권] 망양록(忘羊錄)
    14. [제21권] 심세편(審勢篇)
    15. [제22권] 곡정필담(鵠汀筆談)
    16. [제23권] 동란섭필(銅蘭涉筆)
    17. [제24권] 산장잡기(山莊雜技)
    18. [제25권] 환희기(幻戱記)
    19. [제26권] 피서록(避署錄)
작품으로서의 [열하일기]에 대한 서평은 이미 고미숙씨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에서 다루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서평은 연암 박지원 개인의 작품, 사상, 성과 등에 대해 정리했다. 이 책 [열하일기] 세트의 상(上)권의 후반부에 북한 김하명 박사의 '박지원 작품에 대하여'가 수록되어 있다.
김하명 박사의 글을 일부 인용하면서 빈약하지만 박지원 선생의 작품을 평해보고자 한다. 내가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 이외에 다른 작품, 그리고 조선 후기 학자들의 작품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기에 김하명 박사의 설명 자료를 토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김하명 박사는 작가로서 연암 박지원을 평가할 때 '18세기 조선이 낳은 저명한 사실주의 작가'라고 평가하면서 '사상가나 문학가로서 우리나라 고대 중세의 전 시기를 통하여도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봉우리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박지원의 예술 문학 작품들과 평론 저술들에는 '당시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던 심각한 사회 경제적 변동과 문화 예술 분야에서 첨예한 신구 투쟁이 반영되어 있으며 시대의 선진 사상 조류를 대표하는 작가 박지원의 사상 미학 견해와 예술 기량이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고...
김하명 박사가 인용하는 박지원의 작품은 '양반전'을 포함한 [방경각외전放?閣外傳]에 실려 있는 단편 소설, 장편 기행문 [열하일기], '좌소산인에게(贈左蘇山人)'와 같은 시 작품, '글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이다'와 같은 서문 등이다.
 
박지원의 집안은 명문 사대부였다. 그의 6대조 충익공은 임진왜란 때 공신이며, 그 후의 선조들도 대대로 정계에서 대사헌, 판서, 참판 등의 요직을 거쳤다. 그리고 그의 가문은 당시 집권파였던 서인 노론에 속했다. 그런데도 그는 과거나 벼슬을 거부하고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찾는 방향으로 나섰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김하명 박사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그가 나서 자라고 사상 문화 활동을 전개한 당시의 사회 문화적 환경이다. 두 번의 임란과 호란을 겪은 조선의 경제는 백성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점차 복구되어 갔으나 그럼에도 백성들의 생활은 점점 나빠졌다. 상인 계층은 늘어나고 빈부격차가 격화되는 가운데 양반 계급 사이에서도 빈부격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계속된 전쟁에서 자신들의 무능과 반민중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양반 통치계급의 본질이 드러나면서 봉건 사회는 점차 쇠퇴기로 접어든 것이다. 조선이 폐쇄적인 사회였음에도 청나라와의 외교관계와 상인계급의 활동, 외국인들의 표류 등으로 청나라나 서구의 사상과 문물이 조선 사회에도 점차 스며들게 된다.
둘째는 연암 박지원의 가정 환경은 양반 가문임에도 그로 하여금 새로운 문물과 사상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열려있었다. 그의 조부도 젊은 나이에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고 연암에게 서당의 글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그는 일찍 보모를 여의게 되었다.) 열여섯에 이보천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이보천 역시 일찍이 벼슬에 뜻이 없어 고향에서 농사에만 힘썼다. 그리고 실학사상을 가지고 있던 자신의 동생 이양천이 연암을 지도하도록 했다.
 
연암 박지원은 열여덟 살에 옛 하인에게서 들은 재미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처녀작 '광문자전廣文子傳'을 ?고 이 때부터 계속 쓴 '민 모인전', '김 신선전', '우상전', '역학대도전', '봉산학자전' 등 9편을 묶어 약관의 나이에 [방경각외전]을 책으로 완성했다. 연암은 이 단편 소설집을 통하여 확고히 봉건 제도의 모순을 폭로하는 자로 등장했으며 조선 문학 발전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진 작가로서 등장했다. 그 속에는 양반 사회의 도덕의 위선, 백성의 정치 도덕적 우월성, 인간 성격 형성에서 차지하는 사회적 처지의 중요성, 노동의 고귀함, 양반들의 착취구조, 애국주의, 선린 외교, 사실주의 등이 담겨 있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의 사상과 이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해 온 것을 '한 번 눈으로 증험한 것'이다. 중국에서 보고 들은 좋은 것을 조선 백성에게 알리며 그것을 실천에 옮길 것을 염원하면서 4년 동안 연암골에 박혀서 집필한 것이다.
[열하일기] 속에는 철학, 정치, 경제, 천문, 풍속, 제도, 역사, 고적, 문화 등 사회 생활 전 영역에 걸친 문제들이 취급되어 있으며 그의 세계관, 사회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견해와 민중적 임장이 명백히 반영되어 있다.
또한 그는 중국의 좋은 것과 조선에서 부족한 것을 대비하면서 그 원인이 전적으로 무위 무능한 양반 사대부들 때문임을 명확하게 주장했다. "수레는 왜 못다니는가? 이것도 한 마디로 대답한다면 모두가 선비와 벼슬아치들의 죄다."
 
그러면서 김하명 선생은 연암 박지원의 철학적, 사회정치적 식견이 과학적 세계관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과 민중을 역사와 개혁의 주체로 세우지 못하고 왕조와 사대부 체계를 인정한 것, 그리고 구체적인 조직행위와 혁명을 생각하지 못하고 '계몽'에 의지한 것 등을 박지원의 한계로 지적한다.
 
박지원은 정조 시대 말기에 다른 실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고을 현감이나 한성 부파관을 지내는 등 현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선진 사상과 문물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조선 사회의 제반 사회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주기 위하여 [과농소초] 등 정론을 많이 썼다. 또한 개인의 토지소유를 일정한 기준량으로 제한하고 그 이상의 소유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한전제'를 제안하기도 했고 화폐 정책 개혁, 신분 제도 개혁, 난민 구제책, 봉건적 도덕의 개혁 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조 사후 양반 통치계급의 반격과 반동으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낙향하여 죽었다.
 
영조,정조 시대의 조선 사회와 21세기 한국 사회...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선진 사상과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명나라 유교(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살리려고 애쓰고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만주땅(북한)을 가당치도 않은 무력으로 되찾겠다고 부르짖는 모습, 자신의 자리가 어딘지 찾지 못하고 사대부와 백성들의 생각을 아편처럼 중독시키는 불교와 유교(반공친미와 기독교), 민중들과 진보세력으로부터 분리되어 개혁주의자임을 내세웠던 임금(DJ와 노전대통령), 자신들의 기득권을 부여잡고 발악하는 양반 사대부(수구 기득권 세력), 어딘가 아직 부족하고 모자란 듯한 개혁주체들(진보세력), 자신의 삶과 권리를 주체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힘겹게 하루하루 살고 있는 백성들(민중들)....
연암 박지원과 당시 실학자들로부터 21세기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
 
[ 2011년 8월 30일 ]
c****n 2011.09.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연암 박지원" 은 누구인가?
""연암 박지원" 은 누구인가?" 내용보기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님의 추천으로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구매하여 읽어보았다.   지금의 20,30대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 지를 찾고자 한다면, 당연히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찾아서 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생각을 더듬는 데 조금의 손색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행문이라고는 하지만 작자의 사상 등이 모두
""연암 박지원" 은 누구인가?" 내용보기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님의 추천으로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구매하여 읽어보았다.

 

지금의 20,30대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 지를 찾고자 한다면,

당연히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찾아서 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생각을 더듬는 데

조금의 손색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행문이라고는 하지만

작자의 사상 등이 모두 들어있다.

 

한자를 많이 알았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을..

읽다보면 지루함도 있지만

오랜만에 옛 선비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참 괜찮았다.

 

r*******5 2010.02.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식은 기행문으로 되어 있으나...
"인식은 기행문으로 되어 있으나..." 내용보기
우선 제 상식이 좀 모자라구요... (그래야 이후 얘기가 될듯... -.-;;; )   대략 중권 반정도를 읽을 무렵까지 그냥 기행문 + 호질 같은 창작문 몇개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다 읽은 지금에서는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네요. 이 글은 그냥 기행문이 아니더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기행문으로 가장한 논설(?) 정도인거 같습니다.   상권 및 중권을 읽다보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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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 상식이 좀 모자라구요... (그래야 이후 얘기가 될듯... -.-;;; )

 

대략 중권 반정도를 읽을 무렵까지 그냥 기행문 + 호질 같은 창작문 몇개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다 읽은 지금에서는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네요. 이 글은 그냥 기행문이 아니더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기행문으로 가장한 논설(?) 정도인거 같습니다.

 

상권 및 중권을 읽다보면 '아... 그 잘났다는 연암이라는 사람도 결국 조선조에 그저 그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청국 사람들의 얘기가 진부하고 그 내용에 거부감이 들더군요.

그러다 중반쯤 가면서 (제가 좀 느립니다.... -.-;;) '이거.... 수상하다... 중간 중간 연암의 주장과 청국인과 얘기하는 폼이 서로 어긋나는게 있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대략 하권쯤에 접어들 때쯤이면 (특히 제 생각에 '곡정'이라는 사람의 대화는) 이 열하 일기에 나오는 연암과 대화하는 사람이 실제 중국에 있었던 사람인지, 아니면 연암이 중국에서 얘기했다고 주장하는 '창조된'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

 

예로 그 유명한 허생전도 이야기 상으로는 엄청 큰 상인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그렇게 큰 돈을 벌기엔 운이 따르지 않았다 할 수 없다... 하면서 그 운에 대해 설명하는게 허생전 얘기입니다. 일단 다들 허생전이 소설로 알고 있는데 기행문에 이렇게 나와 버리면.... 청국사람과 필담을 나눈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기행문에서 그 필담이 청국 사람의 실제 이야기인지 아니면 연암의 주장인지 알수 없게 교묘히(^^;) 꾸며넣은게 이 글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음... 그때문에 저같이 모자란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연암이 청국 사람의 주장에 반하여 (당시 양반/사대부들의) 이야기를 할 때는 '연암도 별볼일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도 하는데요...

 

하여튼... 이 글을 완성(이던 적절한 시점에서 붓을 놓던) 하는데 들어가 시간이 수년이 걸린걸 보면 제목은 '일기'지만 읽는 사람은 절대 일기로 봐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혹시 저처럼 학교에서 배운대로 열하 일기가 기행문인줄로만 알고 있으신 분이 있을까 싶어서 적어놓습니다.

a*****g 2005.03.30.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