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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책 <음악소설집>에서 이 작가의 글을 만났고 마침 출간된 이 책을 구입했다. 잘했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더 잘되었다. 이 작가의 책 중 <레고로 만든 집>과 <구경꾼들>을 오래 전에 읽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괜찮게 읽었다는 메시지를 새삼 보고 있으니 작가에 대한 호감을 그때부터 막연하게 갖고 있었나 보다. 확 반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지만. 이 책 속의 글 8편. 경쾌한 기분으로 쓰다듬으면서 읽은 듯하다. 문장은 톡톡 끊어지는데 문단은 드물게 구분되어 있는 글. 짧은 호흡과 긴 호흡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내 읽기 방식으로는 좀 불편하다고 여겨 왔는데 이 책에서는 흥미롭다는 느낌으로 읽고 있어 내가 도리어 낯설었다. 읽기의 범위가 넓어진 것인가? 흐뭇해진다. 책 안에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엽서가 들어 있다. 작가도 엽서에서 미리 말해 놓은 셈이지만 글의 공통 소재를 생일로 봐야겠다. 다들 생일을 기념하고들 사나? 궁금하지만 꼭 알고 싶지는 않고. 생일이면 다른 날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굳이 기념을 하면서 챙기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이 오늘과 같아도, 아니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는 나로서는 생일뿐 아니라 기념일이라는 것에 딱히 관심이 없다. 생일이라고 해도, 내 생일이든 소중한 너의 생일이든. 그래서 소설의 소재에는 집중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한걸음 떨어져서 읽고 있자니 아, 생일, 일상의 고운 반짝임 같은 것이구나, 끄덕였다. 여러 모로 좀 부족한 여건에서 살면서도 하루하루의 삶 자체에 충실하게 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꼬인 게 없는 이야기들이어서 좋았다. 사람끼리의 관계를 꼬아 놓았거나 지난 날의 기억과 지금의 시간을 꼬아 놓았거나 서로 못 잡아먹어서 서로의 삶을 정신없이 꼬아 놓은 게 아닌 무난한 이야기. 지긋지긋하고 익숙한 갈등이 아니라 갈등 같지 않아 오히려 신선한 갈등을 다룬 이야기. 오죽 바랐으면 요즘 같은 시절에 느리게 가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을까. 읽지 못한 작가의 다른 글을 찾아 곧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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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 인물과 상황과 세계에 인사를 건네고 싶다. 아주 천천히 꽤나 오래. 글의 표현은 인용하자면 애썼다고 말하며 위로하고프다. 눈물을 짓게 만드는 죽음 혹은 이별들도 피식 웃게 만드는 어리숙함도 애틋하고 아련하게 마음에 남는다. 표지만큼이나 평화롭고 나른하게 좋은 책이었다. |
| 이제는 국내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된 윤성희의 신작. 사회를 해부해내는 날카로운 시선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같은 시선도, 몰입도를 극으로 올리는 상업적 장르물도, 어떤 종류의 소설이건 나는 다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바라보는 선한 시선과 선한 주인공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만큼 감동있는 소설이 결국엔, 좋다. 그리고 그런면에서 윤성희는 정말 탁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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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오래 전부터 읽어왔는데 왠지 새롭다. 이렇게 수다스러운 스타일이었나 싶었다. 그러니까 말이 많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윤성희의 소설들의 등장인물들의 수다가 그렇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사이즈는 조금 작지만 그야말로 끊임없이 상황에서 상황으로 넘어가는 말의 성찬이 소설 내부에 있다. 「마법사들」 “... 해가 떠오를 때까지 아버지와 나는 해를 하늘로 밀어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해의 끝이 바다에서 떨어지는 순간, 해가 온전한 동그라미가 되는 순간, 뒤꿈치가 내려왔다. 내 몸의 무게가 발바닥 전체에 고스란히 느껴졌고 나는 너무 놀라 뒤로 넘어졌다.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p.35) 다리가 허공에서 떠오르는 공중 부양의 경험을 두 가지 다루고 있다. 근데 사실 이런 경험 한 두 가지는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너스레를 떨어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타임캡슐」 소설을 읽자 세상 모든 사람이 돌을 던질 때 딱 한 번 네 편이 되어 줄게, 라고 그녀에게 약속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 〈접속〉이 개봉되던 1997년도의 일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이다. 그리고 다행히 지금까지 그녀의 편이 되어줄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사실 연락을 하지 않고 너무 여러 해가 흘렀다. 「느리게 가는 마음」 재미있는 설정이다. 예를 들어 일 년 뒤에 배달하는 일종의 시간 지연형의 우편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하고 현재의 애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만 그 애인과 헤어졌고 심지어 그 애인은 현재 결혼을 하여 과거의 바로 그 주소에서 살고 있다. 소설은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나의 이모가 나와 함께 그 편지를 회수하기 위해 떠난 여행의 내용이다. 「자장가」 “그 애 꿈을 꾸고 싶어서 나는 잠을 자. 어떤 날은 종일 자기도 해. 그런데도 한 번도 꿈속에 나오질 않아. 그게 무서워.” (p.122) 딸을 잃은 엄마가 그저 잠만 자는 소설 속의 묘사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와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웃는 돌」 “... 내가 중학생 때였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봤는데 맞은편 옥상에서 빨래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 빨래는 전날에도 있었고 전전날에도 있었다. 사흘이나 걷어가지 않은 빨래라니, 갑자기 슬퍼졌다. 온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눈물이 쏟아져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용기를 내 엄마한테 말했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말할 수 없다고,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다고. 그랬더니 엄마가 말했다...” (P.164) 그러니까 엄마가 말했다. “괜찮아. 그런 날이 있지.” 「해피 버스데이」 “... 성공한 사람의 버릇을 묻는 퀴즈가 이어졌다. 페인트공이 구두를 깨끗하게 닦는 것이라고 답했다. 땡. 정답은 침대를 정리를 한다. 나는 세수를 하고 침대 정리를 한 다음, 출근을 했다.” (P.174) 나는 이 소설을 읽은 후에도 침대 정리를 하지 않고 있다. 내가 먼저 일어나고 아내가 늦게 일어나는 날에만 우리 집 침대는 정리, 된다. 「여름엔 참외」 이상하게도 소설을 읽고 나서 자꾸 엉뚱한 일만 떠오른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보았는데 (라디오에서 들었나?) 참외 씨를 다시 뿌릴 때 거기 들어 있는 참외 씨를 한꺼번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씨들을 잘 씻어서 한 개씩 따로 심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하튼 소설은 우정을 다루고 있다. 「보통의 속도」 “... 나는 페인트공이 되었다고 대답했다. 외줄에 매달려 하늘을 보면 먼 곳으로 여행을 간 기분이 든다고. 회계팀의 김차장이 보험 회사에 연락을 했냐고 물었다. 외벽 페인트공은 위험한 직업군에 속해서 직업 변경을 알리지 않으면 사고 시 보험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며. 다음 날 일을 하던 중에 갑자기 돌풍이 불었다. 로프가 크게 흔들렸고 나는 벽에 몸을 박았다. 로프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김차장의 말을 떠올렸다. 제길. 지금 죽으면 보험료도 못 받네. 간신히 지상으로 내려온 뒤 나는 괜하 장례식 탓을 했다. 위험한 일을 하니 앞으로는 예쁜 곳만 가고 예쁜 것만 보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후로 가능하면 장례식장은 가지 않고 부조금만 보냈다. 그래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날이면 다음 날 일을 쉬었다. 그런 날은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한 뒤에 집 근처 호수를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벤치에 앉아 멍하니 호수를 보면서 오후를 보냈다. 그 벤치에는 ’엉덩이가 차가워‘라는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거기 앉을 때면 나는 부러 아이고 차가워, 하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pp.235~236) 리뷰의 앞 부분에 이야기했던 끊임없이 상황에서 상황으로 넘어가는 말의 성찬, 이란 바로 이런 전개를 두고 떠올린 것이다. 윤성희 / 느리게 가는 마음 / 창비 / 264쪽 /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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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가는 마음》은 빠른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숨 고르기를 권한다. 사소한 순간의 소중함과 자기만의 속도를 찾는 법을 따뜻하게 일깨운다. 빠름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속도를 찾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행복을 되새기게 하는 따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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