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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륭과 서정인은 급이 다르다는 말이 있다. 한국의 다른 작가들이 경량급이라면 이들은 중량급이라는 의미다. '인간은 벌레다'는 식의 가볍고 쉬운 소설이 판을 치는 포스트 모던한 상황에서 그래도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는 중후한 글들로 승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메니아 층을 제외하고는 잘 안 읽힌다.
서정인의 연작소설 '모구실'. 이 작품 역시 작가의 체급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1부 모구실에서 14부 불나방까지 이어지는 14편의 이야기들은 전형적인 소설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아니, 한참 벗어난다. 그나마 1부 모구실은 작가의 난해한 사유체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최대한 무난하게 쓰여졌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서사가 이어진다. 그러나 갈 수록 등장하는 인물의 수는 줄어들고 서사가 사라진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얘기하나 싶더니, 장자로 넘어가 버리고, 맥락을 겨우 잡았나 싶으면 한국 근대사로 갔다가 다시 조선사회로 이동한다. 박상륭의 '잡설품'처럼 '모구실'도 종횡무진 인류사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가 형이상학, 철학에 집중하여 난해하다면 후자는 일반적인 담론도 끼어 있어 상대적으로 알아듣기 쉽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형식도 기존 소설과 많이 다르다. 다인행에서 3인행으로, 3인행에서 2인행으로의 변화가 이 작품의 커다란 틀이다. 앞서 언급했듯, 1부 모구실은 작품의 도입부로 여타 소설처럼 대화와 작가 서술이 확연히 구분되며 무난한 형식을 갖춘다. 그러나 3인행으로, 2인행으로 전개수록 등장인물이 줄어들고 결국 천수건과 서존만, 2명만이 남는다.
지금 글에서 계속 밝히는 바와 같이 '모구실'은 어렵다. 삶과 죽음, 정의와 불의, 진실과 모순, 자본주의가 화제로 올라왔다 사라진다. 작가 자신의 70년 고민이 이 책 한권에 들어간듯, 사유의 깊이는 한 명의 몫이라고 하기에 굉장히 깊다. 그럼에도 재밌다. 자주 등장하는 상소리와 해학, 풍자는 이기호나 박민규와 같은 젊은 작가들의 글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준다.
읽으면 읽을수록 한국에는 멋진 작가들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