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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이영민 선수는 조선 사람들의 영웅이라고 아버지가 그랬어요.
"이영민 선수는 조선 사람들의 영웅이라고 아버지가 그랬어요." 내용보기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표지는 영 마음에 안든다. 표지만을 보고서 이 책을 읽고픈 생각은 없다. 실루엣으로 표현하는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포지션이나 투수의 모습을 음영처리했다면 더 멋지고 눈길을 확 휘어잡았을텐데 라는 마음을 가졌다. 제목만 보고는 어떤 책일지조차 가늠도 안되었다. 호므랑은 홈런을 일본말로 부르는 것이었다. <이책은> 도모북스의 서평단 당첨
"이영민 선수는 조선 사람들의 영웅이라고 아버지가 그랬어요." 내용보기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표지는 영 마음에 안든다. 표지만을 보고서 이 책을 읽고픈 생각은 없다. 실루엣으로 표현하는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포지션이나 투수의 모습을 음영처리했다면 더 멋지고 눈길을 확 휘어잡았을텐데 라는 마음을 가졌다. 제목만 보고는 어떤 책일지조차 가늠도 안되었다. 호므랑은 홈런을 일본말로 부르는 것이었다.

<이책은>

도모북스의 서평단 당첨 도서.

10명 모집에 18명의 선정 기회를 주신 통큰 마음...

<저자는>

 저자 : 배상국 ---발췌하다

원년 프로야구 OB베어스의 어린이 회원을 거쳐 야구명문 충암중, 고를 나왔다, 아직도 유지현. 심재학과 같은 시기에 함께 학교를 다닌 것을 자랑하고 다닐만큼 야구를 사랑하는 남자다.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시절, 당시 최고의 하이틴 스타 전영록보다 인기가 많았던 선린상고의 박노준이 저자의 첫 번째 우상이었다. 그를 시작으로 박철순, 김우열, 윤동균, 양세종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우상을 가슴속에 품은 채 살고 있다.

첫 소설인 《미씽링크》를 쓰면서 굴곡진 현대사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면 《호므랑 이영민》을 쓰면서는 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시간을 야구와 함께 보낼 수 있었고 소중한 분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가 좋았다. 오래된 자료들을 보며 옛 추억 속에 잠길 수도 있었다. 그 행복했던 시간들과 이별을 해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여전히 저자에겐 그 옛날의 시간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궁금하다. 그래서 또 다시 그 길을 걸으려고 한다.

<책내용 맛보기>

책소개 ---발췌하다

조선의 베이브 루스 호므랑 이영민
1928년 조선, 그곳에 야구 영웅이 있었다. 조선 최초로 경성 야구장의 담장을 넘긴 타자, 일본 선수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전설의 타자.

조선의 야구 영웅, 식민지 민초들의 꿈이였던 '조선의 베이브 루스' 이영민은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식민지 조선인들의 살아있는 희망이자 꿈이였다. 우리는 1920년대 경성으로 돌아가 등장인물 중 하나가 되어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될 것이다.  

<책읽은 소감>

몇 번을 망설이다 응모한 서평 모집 이벤트였다. 장편을 선호하는 면에서는 마음이 가나, 야구를 엄청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 야구에 대해 해박한 사람들이 응모하여 당첨되는게 맞지 않나 라는 오지랖이 발동했고, 서평할 책이 이래저래 복잡한 상태였다. 따라서 응모했다가 취소하고 응원만 한다고 했다가 서평할 책이 원활하게 읽히고 써져서 다시 응모를 했다. 응모를 한다고 다 당첨되는 건 아니지만 이번 경우에는 10명 모집에 18명을 선정해 주셨으니 당근 확률도 높을터. 당첨이 되었는데 읽으면서 당첨이 안되었다면 약올라서 어쩌누! 그런 마음이 많이 자리했다. 결과적으로 잘 만나진 책으로 인해 즐겁고 행복했으며 이영민 이라는 인물과 그 외 듣기도 처음 듣는 이름들을 접한 시간이 유익했다.

 

이영민

대구의 부잣집 아들에,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 운동중에 못하는게 없는 사내.

일찌기 아버지가 엄마를 내쫓아 외로움을 가득 지닌 내면은 여린 남자. 운동을 잘하는만큼 술도 억수로 마시고 계집도 엄청 좋아함. 젊음이 무기인지라 시합 전날에도 술독에 빠져서 간신히 담날 업혀와도 조금의 시간이 흐르면 천부적인 운동 신경이 발동해 축구, 야구, 달리기 등에서 감독들이 대기해 있다가 서로 빼앗다시피 모셔감. 많은 이에게 일찌감치 인정을 받다보니 성질머리가 참을성이 없다. 젊은 패기라지만 일제강점하의 조선인은 조센징일뿐. 운동 좀 한다고 대접받는 꼴을 같은 일본인 선수가 곱게 볼 리 만무. 그렇지만 워낙 출중한 실력이다보니 드러내놓고 치받는 선수도 있고 대부분은 끼리끼리 왕따를 시킨다. 젊은 패기도 있다지만 누구 밑에 굴복한 경험이 적은 영민은 다분히 감정을 잘 제어하지 못한다. 조센징이라 무시하는 그네들의 처사에 모른체를 하지 못해 몇 번의 주먹질로 사고를 친다.

 

윤희

어릴 때부터 고마 영민 오빠의 색시가 되겠다는 비밀 고백을 할 정도로 영민을 좋아했고 영민보고는 야구가 좋다고 하니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오빠야는 야구해서 1등을 하라고 한다. 영민 역시 윤희를 좋아했다. 소작농의 자식인 윤희를 떼어놓기 위해 모조리 빼앗고 홧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죽은 윤희 아버지. 풍비박산이 난 윤희네는 흔적도 없이 동네를 떴고, 영민은 그날부로 집을 나온다. 다행히 영민의 천재적인 운동실력을 알아본 샘의 주선으로 영민은 윤희를 못찾고 운동 선수의 길이자 동경으로 떠난다. 갖은 고생을 해가며 광주학생운동의 연장선인 학생 운동에 참여도 하다가 투옥되고, 보패가 찾아와 만나고, 기주와의 우연한 만남을 갖고, 여전히 영민을 그리다, 이강훈과 함께 월북했다고 한다.

 

보패

아버지 이지성의 딸이자 이화여전의 엘리트 여성이자 한 미모에다 정구 복식조의 우승자. 어릴 때부터 영민을 사모해왔는데 조신한 여성이 아니고 활달하고 자신의 입지를 분명히 밝히는 당찬 여성. 딸이 은애하는 남자라지만 장사꾼의 기질로 성공한 이지성은 영민에게 대뜸 결혼을 제안한다. 물론 예리한 감각으로 영민의 성격을 말하는바 흠칫 놀라는 영민. 조선인으로서 일제강점기하에서 운동 선수로 대성할 길은 자신 같은 장인을 둬야 한다는 말에 반박할 수 없는 영민.  마음 속엔 윤희를 잊고 살다가 우연한 조우를 한후 오매불망 잊을 수 없음이라. 영민의 야망과 지성의 돈, 그리고 보패의 염원이 이뤄져 둘은 부부가 된다.  영민이 감정에 격해 일본인들과 사고를 칠 적마다 보패는 사고수습을 하지만 냉랭한 영민의 마음에 상처를 받는 보패.  3남 1녀를 두는 동안에 영민은 윤희를 못잊고 기생 채선에게서 거의 살다시피. 그렇게 끝까지 영민을 봐주며 고독에 몸부림치다 10여 년을 살고는 신여성답게 이혼을 한다.

 

백기주

영민이 경성으로 샘이 주선을 해주자 기꺼이 따라붙은 둘도 없는 친구. 윤희와 기주, 영민은 늘 같이 다녔는데 윤희가 늘 가운데에서 팔짱을 끼고 다녔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윤희를 가운데 두고 기주랑 영민이 좋아했는데 윤희와 영민이 어느날 둘만의 비밀 언약식을 하고 증인으로 섰던 기주는 이때부터 영민과 라이벌이 된다. 매사 자신의 그늘이고 영민은 햇볕인 삶. 그 삶에서 자신이 한번이라도 주인공이 되고자 피나는 노력을 해도 여전히 영민에게만 영예가 돌아간다. 영민은 장타를 치면서 유니폼에 흙 하나 묻히지 않는데, 기주는 늘 유니폼이 땀과 흙 투성이. 열등의식을 갖지 않으려해도 저절로 움츠러 드는 둘.

 

이길용 기자

기주처럼 작고 그닥 볼품없는 기자지만 그의 날카롭고 바른 기사에 다들 존경심을 갖게 되는 기자. 영민을 처음에는 운이 좋아 승승장구하는 사람으로 봤고 특히나 성질을 다스리지 못하는 어떤 사건을 보고는 완전히 영민에게서 돌아섰다. 그렇다해도 조선인으로서의 자긍심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영민의 진면목을 보게 된 건 기주와 영민의 대결에서 영민이 번트하는 걸 보고선 마음을 고쳐먹는다. 기주 역시 절대로 영민이 죽으면 죽었지 번트를 하리라 생각할 수 없었기에 영민이 때에 따라선 유연한 사람임을 알고는 기주는 진정으로 영민과의 화해를 한다.

 

함용화

영민보다 선배이면서 친구이고 아버지이자 형이고 엄마같은 사람. 영민의 모든걸 다 안다고 생각하는 단 한사람으로 외모가 아라비아 사람을 닮아서 분명 조선혈통임에도 난감해한다. 처음에는 영민의 그늘에만 가려져 있어 의기소침하기도. 그러나 영민과의 진정한 투수와 포수로서의 일체감을 알아갈수록 즐기는 야구를 한다. 영민과의 호흡은 한 순간에 만들어진게 아님을 용화는 안다. 영민도 안다. 실과 바늘이요 바늘과 실이다.

 

채선

식도원의 기생인데 영민을 흠모하다가 영민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부터 결혼했지만 살다시피 산다. 영민이 마음 편하게 머무는 곳은 채선의 집. 그만큼 자신의 마음을 다 줬지만 어느날 문밖에 죽다시피 쓰러져 있던 날, 자신의 품에서 윤희를 부르며 윤희를 찾다 우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 켠이 쓸쓸하다. 그럼에도 지극정성으로 영민을 위한다. 영민이 숨통을 열 수 있었던 건 채선의 도움이 컸다.

 

마쓰모토

영민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일본 선수. 고아원 출신으로 유난히 승부욕이 강했던 그. 고아원 원장이 야구단을 만들어 우승했지만 고아원 출신들을 우승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곤 고아원을 나갔다. 스스로 우뚝 선 모습으로 인정받는 선수가 되었지만 자신의 출신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올라온 자리인데 감히 조센징 때문에 자신은 뒤로 밀리나...그의 분풀이나 위협은 더 치졸해지는데 그럴수록 실력은 자꾸만 뒷걸음질친다. 이런 그가 그 사건으로 인해 친구가 되고, 진정한 야구를 하게 된다.

 

이노우에 감독

영민에게 특별대우를 하지 않지만 일본 선수보다 못한 대우도 안한다. 차별을 두지 않으면서 별 말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카리스마가 있다고 한번 내뱉으면 진가를 발휘하는 법. 영민의 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감정적으로 몇 번의 사고를 쳤는데도 관대하게 처리한다. 진정 아끼는 선수라서다. 그런 감독이 나중에 선수들에게 이실직고를 하며 자신의 욕심이 과해서 승리하고 싶어서 영민의 상태를 알고도 모른체했다며 이 경기를 끝으로 사퇴한다는 용기있는 말을 한다. 진정 사내대장부라면 이런 감독도 존경스럽다.

 

미야케 감독

이노우에 감독이 존경스럽다면 미야케 감독 같은 철저하게도 자신만 아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자신 나라의 선수만을 추켜세우고, 자신 나라의 명령을 수행하고. 영민은 절대 마운드에 서지 못하게 기회를 안준다. 자신들 일본선수로만 꾸리고 싶었던 팀. 내선일체를 부정하기도 그렇고 장사꾼 스즈끼의 농간으로 어쩔 수 없이 영민을 끼워놓고는 바보천치머저리를 만든다. 조선인의 희망인 영민을 기죽임으로써 흐뭇해 한다. 조선인은 일본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서 영민이 개명할 것을 종용하는 거다. 스즈끼의 농간임을 영민은 안다.

 

미야타케

일본 선수지만 참으로 근사한 녀석. 영민에게 난생 처음 가장 큰 호므랑을 허용하면서도 영민의 진가를 높이 사는 큰그릇이다. 그넘은 멋있었다. 자신의 빠른 공을 호므랑으로 쳐낸 위용에 감탄을 한다.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 것. 5년이 지나 재대결을 하는 위치에서도 5년전 같은 방법으로 선의의 복수를 하는데, 이상타! 영민은 분명 알고 있는데 어째 타구를 안한단 말인가. 그렇구나, 영민이 부상을 입은 게 틀림없다.

 

  영민은 배트를 집어 들었다.  조선에서 얼기설기 깎아 만든 투박한 배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매끈하고 윤기가 흘렀다.  모양과 무게가 다른 수많은 종류의 배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똑같은 배트는 세상에 없다.'는 말처럼 배트의 무게와 모양은 선수마다 다르다.  같은 무게라도 장타자는 무게 중심을 머리 쪽으로, 단타 중심의 타자들은 조금 낮게 해서 깎는다.  손잡이 부분도 장타자들은 가늘고 길게 만드는데 비해 반대인 경우는 짧고 뭉뚝하게 만든다.  똑같은 무게에 똑같은 길이라 해도 선수마다 취향과 힘이 다 달라서 똑같은 배트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에서 만드는 배트는 들쭉날쭉했다.  하물며 같은 선수도 무게와 모양이 제각각 다른 배트를 사용해야 했다.  자신의 취향이나 힘을 고려해서 배트를 고르는 선수들은 거의 없었다.  배트 한 개를 가지고 돌려쓰는 경우도 허다했다.  자신에게 딱 맞는 배트를 가진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353 페이지

 영민과 용화가 미즈노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스포츠 용품점 매장에서 가진 생각들이다. 부러움과 그네들이 얼마나 야구를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야구 좋아하니?"

  "네.  그런데 솔직히 잘 몰라요.  아직 정식으로 해 본 적은 없어요.  그래도 이다음에 꼭 야구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아이는 말을 붙여 주는 조선인 아저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대화할 상대가 없어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못해서였는지 신이 나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야구 선수가? 왜?"

  "작년에 아버지랑 야구장에 처음 가 봤어요.  경성 야구장이요.  일본에 오기 전이었거든요.  그때 한 선수를 봤어요.  키도 크고 암튼 되게 멋있었거든요.  그 선수가 호므랑을 쳤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막 눈물을 흘렸어요.  그 선수가 조선 사람이었거든요.  아버지가 그러는데 그 선수가 바로 이영민이래요."

  "뭐?"

  "이영민이요.  아저씨는 호므랑 타자 이영민을 몰라요? 아버지가 그랬어요.  이영민 선수는 조선 사람들의 영웅이라고.  그래서 조선 사람이지만 일본 사람들도 존경을 한다고.  그래서 나도 야구 선수가 될 거에요.  이영민 선수처럼 야구를 잘하면 애들이 조센징이라고 무시하지 못할 거에요."

  영민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몹시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이영민을 영웅이라고 믿고 있는 이 아이를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네가 생각하는 거처럼 이영민이란 사람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무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아이의 기대를 무참히 꺾어 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 앞에 서 있는 것조차 너무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자신이 이영민이라는 것을 못 알아보는 것이 다행이었다.

  "네 이름이 뭐니?"

  "용훈이에요.  이용훈."

  영민은 소년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꼭 그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   354~355 페이지

많은 운동을 좋아했지만 특히 야구에 꽂힌 영민. 그런 영민에게 스즈끼는 일본이름으로 개명하면 탄탄대로의 삶이 보장됨을 거래조건으로 제시한다. 속국인 식민지가 나 하나 때문에 바뀔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 않은 영민은 갈등에 싸인다. 그러던차 우연히 목격한 광경과 대화. 용훈이라는 조선인 소년은 화장실에서 찢어진 야구공으로 혼자 놀고 있었다. 조선인 어머니가 술집에서 일하는데 조센징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한다. 베이브 루스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목전에 다가왔고 자신의 미래가 보장되는 거래앞에서 영민은 속깊게 고뇌했지만 용훈과의 만남을 통해 조선인의 자긍심을 택하기로 결심하나, 용훈으로인해 또다시 사고를 친다. 처음으로 자신이 모욕을 받고 경멸을 받아서가 아닌 남을 위해, 남 때문에 주먹질을 했다. 여파는 너무나 커서 가슴이 부어오르지만 사투를 벌이며 감독에게 용서를 빌고, 건강때문에 마지막 시합을 포기하고 떠난 용화를 데려오고, 마쓰모토에게 무릎 꿇고 애원해 팀원들의 동정이자 동료애를 이끌어낸다. 진정으로 무릎을 꿇어야할 때를 알게 된 영민 앞에서 마쓰모토는 진정한 친구이자 즐기는 야구인으로 돌아선다. 마쓰모토도 스즈끼로부터 제안받은 보장받은 삶을 과감히 던져버린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일단 읽어보시라. 그냥 빠져드는 경지가 여기에 있다. 야구의 역사를 상세한 설명과 함께 탄탄하게 재미를 섞어서 풀어낸다. 주석이 많이 달리는데 그 주석이 그렇게 요긴한 거라는 걸 마치 처음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이라니. 대단한 책을 만났다. 이영민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게 참으로 감사하다. 조선의 베이브 루스라는 말이 과찬이 아님을 베이브 루스도 인정했다. 처음 들어보는 많은 이름들이 대거 등장한다. 한 시대이자 아픈 일제강점기하에서 스포츠만이 그나마 조선인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는 사실. 온 국민이 그렇게 한마음으로 악을 쓰면서 응원하면서 시름을 잊으려 했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할 역사의 한 단면이지만 그 안에 이런 엄청난 선수이자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게 부끄럽고, 이제라도 알게 된 게 참으로 기쁘다.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읽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일제 강점기하에서의 숨죽인 동포들의 삶. 조센징이라는 모멸과 경멸이 섞인 수모를 받는게 다반사였던 시절. 그나마 희망을 줬던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있어서 그 시절들이 위안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본인보다 더 나은 억눌린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그렇게 터져나오는 함성이 되었음을. 그 가운데 호므랑 이영민이 있었다. 용훈이 90대 노구를 이끌고 손자를 데리고 시구하는 첫 장면으로 시작하여 회상씬으로 가는줄도 몰랐다가 끝머리에 영민을 만나러 갈 날이 멀지 않았다며 기다린다.

k******5 2014.09.01. 신고 공감 8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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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므랑 이영민/배상국/도모북스]조선인의 희망이 된 홈런 왕 이영민!
"[호므랑 이영민/배상국/도모북스]조선인의 희망이 된 홈런 왕 이영민!" 내용보기
[호므랑 이영민/배상국/도모북스]조선인의 희망이 된 홈런 왕 이영민!   미국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는 알아도 조선 야구천재 이영민은 몰랐다. 고교 야구선수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조선의 천재타자였다는 이영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너무 늦게 알게 되어 미안함 마저 들었다.   이영민은 야구를 통해 조선인의 자존심을 세워주었고 아이들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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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므랑 이영민/배상국/도모북스]조선인의 희망이 된 홈런 왕 이영민!

 

미국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는 알아도 조선 야구천재 이영민은 몰랐다.

고교 야구선수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조선의 천재타자였다는 이영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너무 늦게 알게 되어 미안함 마저 들었다.

 

이영민은 야구를 통해 조선인의 자존심을 세워주었고 아이들에겐 꿈과 희망의 상징이 된 시대의 영웅이었는데,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이제라도 소설로 그려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영화나 드라마로도 나왔으면 좋겠다. 이영민은 시대가 원하는 선수, 시대가 찾는 영웅이니까.

 

 

100여 년 전 1904년은 한국 야구가 시작한 시기라고 한다. 지금은 프로야구 700만 관중시대다. 잠재적인 팬까지 합하면 천 만 명은 넘지 않을까.

미국에서 류현진 선수와 추신수 선수가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고, 일본에서는 이대호 선수 등이 활약하는 세상이다. 한국의 리틀 야구가 미국을 꺾고 세계를 제패하는 오늘이다. 한국 야구의 발전을 있게 한 바탕에는 한국 야구의 태동기에 초석을 다진 박현명 투수, 함용화, 백기주, 야구 천재 이영민 등이 있었다고 한다. 늦게나마 우리가 새겨야 할 이름이 아닐까. 베이브 루스처럼, 루 게릭처럼 말이다.

 

책에서는 저자의 외할아버지 이용훈 선생이 해방이전의 한국 야구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시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야구를 했던 소년 시절 이영민을 영웅으로 삼았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지배 밑에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것은 스포츠 밖에 없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억압된 세상에서 비탄과 울분에 찬 국민들의 스트레스 해소제는 스포츠였을 것이다. 그의 존재는 일제 압박에 지친 국민들의 한줄기 위안이고 희망이었으리라.

 

이영민은 축구팀, 농구팀, 야구팀, 육상 팀에서도 그를 찾았을 정도로 그는 독보적인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백기주가 단거리로 일본을 눌렀다면 이영민은 단거리로 일본을 눌렀다.

이영민은 야구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지녔고 1928년 경성의학 전문대가 주최한 야구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야구장 담장을 넘기는 홈런(호므랑)을 날렸다. 일본 스포츠 구락부의 선수들을 뛰어넘는 실력을 갖춘 선수였다.

 

나라를 잃고 빈곤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조선인들에게 내 야구를 통해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그렇게 하려 합니다. 솔직히 프로야구 선수라는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무척 힘든 링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선에 남아 조선 사람들을 위해 야구를 하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운명이라 생각합니다.(본문 중에서)

 

일본에서 이영민을 본 베이브 루스는 자신의 우상과 너무나 닮은 타자를 일본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며 이영민을 추켜세웠다. 세계적인 선수들도 알아주던 그였지만 그는 일본인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조선인으로 살았고 조선 야구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일조했다고 한다.

주권을 잃었던 일제 강점기, 암울하고 처절했던 일상을 벗어나 꿈과 희망,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만주나 연해주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열사들의 활약,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 곳곳에서 독립운동을 돕는 백성들, 일본인의 이름으로 출전했지만 마라톤으로 일본을 누른 손기정 선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무수한 스포츠 영웅들이 있었겠지.

 

총과 칼을 들지 않고도 일본을 눌렀던 천재타자 이영민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시절 동대문 운동장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책에서는 초창기 야구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조선 야구 쟁패전, 경성 실업 야구 연맹전, 경성 운동장 야구장(동대문 야구장)의 역사, 박현명 투수, 함용화, 백기주, 야구 천재 이영민 등과 조우할 수 있다.

 

'이영민 타격상'의 주인공, 한국 야구의 선구자, 조선인의 기상을 높인 조선의 베이브 루스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게 읽은 책이다. 그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그 시절 백성들의 울분이 통쾌하게 해소됨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로 나오면 좋겠다.

 

 

a******7 2014.09.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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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므랑 이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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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10월 24일 경성의 휘문 고보 운동장에서 겨성 대표와 평양 대표간의 제 1회 경평전이 벌어졌다. 그간에는 경성팀들과 평양 팀들간의 경기였지만 이번은 두 도시를 대표하는 진짜 대표 팀 간의 경기였다. ㅏㅇ연히 최고의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야 했다. 평양 팀은 축구 명문 숭실과 광성 출신들로 구성된 최정예 멤버를 이끌고 경성 원정에 나섰다. 하지만 경성 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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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10월 24일 경성의 휘문 고보 운동장에서 겨성 대표와 평양 대표간의
제 1회 경평전이 벌어졌다. 그간에는 경성팀들과 평양 팀들간의
경기였지만 이번은 두 도시를 대표하는 진짜 대표 팀 간의 경기였다.
ㅏㅇ연히 최고의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야 했다.
평양 팀은 축구 명문 숭실과 광성 출신들로 구성된 최정예 멤버를
이끌고 경성 원정에 나섰다. 하지만 경성 팀에는 조선 최고의
스트라이커 이영민이 없었다. 그리고 조선 최강 연전 선수들도
대부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평양 선수들뿐만 아니라 휘문 고보 운동장에 모인
관중들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p. 234中

프로야구의 인기가 실감나는 요즘, 이 책은 야구의 시작을 알려주는

친절하면서도 속속들이 이영민이란 야구선수, 야구행정가, 야구기술연구가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한국야구 100년을 정리한 화보집 [사진으로 본 한국야구 100년 1]과

함께 보면 호므랑 이영민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용이하게 할 수 있을것이다.

이 책이 조금 아쉬운 점은 사진으로 보여줄만한 자료사진들이 별로 없다는점이다.

물론, 글의 내용이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삽화나 자료사진이라도 있음

정말 생생한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야구계의 선구자의 역할을 했던 이영민님은 신민지 시절의 아픔과 고통을

잠시나마 잃게 해주는 희망과 용기의 아이콘이였으며, 그의 도전은 연속되었고,

늘 자신의 소신대로 뜻을 펼쳐나가는 모습이 매우 용맹스럽고, 존경스럽다.

좋아하는 야구를 주제로 출발했던 터라,
조선의 베이브루스는 과연 누구이며, 잘 모르고 출발했던 인물이라,
이명민이란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고 읽었던 것 같다.
이영민은 스포츠에 탁월한 재주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심연 깊은 곳에는 따스하고 멋스러운 감수성이 많다는것을 여러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 구수한 인간성을 느낄수 있었고, 시대적 상황이 최악인데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그누구에게도 없는 강인한 인내심과 굳건한 정신력이 그를 지켜준것 같았다.

마지막 장에 보면 베이브루스와 지미폭스와 함께한 사진이 두장 있다.

그 당시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거 자료사진이 없다는 아쉬움은

간단히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야구활동 하던 모습을 사진으로 많이 남겨놓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일본대표로 활약하던 그 당시의 사진들은 찾아보기 힘드나,

그의 강렬한 존재감과 보여준 활약상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 남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는것을 자랑스럽게 만들어준 귀감이 가는 인물이다.

앞으로도 야구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 것 같다.

h*****7 2014.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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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뭉클하게 만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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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북스]의 서평단에 당첨이 되어 선물받은 책! 받으면서..이렇게 두꺼운?? 530페이지..글자도 작은.. 그런데..의무감에 한장을 펼치고..그 다음부터는 계속 손에 놓치못하고 읽어갔다.   처세에 관한 책을 많이 보다가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보니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긴장감과 흥미로움..그리고 궁금함..너무나 재미있게 봤다.   운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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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북스]의 서평단에 당첨이 되어 선물받은 책!

받으면서..이렇게 두꺼운??

530페이지..글자도 작은..

그런데..의무감에 한장을 펼치고..그 다음부터는 계속 손에 놓치못하고 읽어갔다.

 

처세에 관한 책을 많이 보다가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보니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긴장감과 흥미로움..그리고 궁금함..너무나 재미있게 봤다.

 

운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냥 구경하는 것만 좋아하고 이슈가 되는 경기만 보고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지라..

 

그런데 보는내내 야구에 대한 흥미로움과

식민지시대의 안타까움..역사의식이 꿈틀거렸다.

 

 

박기자와 이용훈 선생의 대화

 

"실력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식민지 백성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많이 좌절하고 절망했겠습니다."

 

"하지만 절망만 하며 살 수 있나요? 그러면 그럴수록 더 오기가 생기는 법이니까.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오기.

그것이 그 시대를 살았던 영웅들의 모습이었어요."

 

만 90세가 되신 이용훈 선생의 회고로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축구, 야구, 농구, 육상의 다재다능한 인재인 이영민.

그가 일본인들 틈에서 야구의 천재가 되고

처음으로 조선의 홈런을 치고, 투수로서도 역할을 대단하고

또한 그와 함께인 기주, 용훈(포수)..

그 밖에 등장하는 일본선수들과 미국의 야구선수들..

음..운동에 관한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어떠한 인지도의 선수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읽으면서 마치 영화를 보는 장면 하나하나가 떠올랐다.

줄거리를 적기에는 직접 읽는 것이 감동이 배가 될 듯하다.

 

 

책을 보면서..소설인지 실화인지 살짝 구분이 가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물론, 작가의 말에는 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 같다.

 

하지만, 읽으면서 느낀것은

실존을 하든 안하든, 실화이든 거짓이든

충분히 흥미진진한 줄거리와 가슴뭉클하는 애국심과

식민지시대에 제대로 실력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못하는 안타까움

그리고..그리움..

 

읽는내내 나혼자만의 영화를 만들어서 상상했다.

두껍지만 두껍지않고, 읽으면서도 계속 손에서 놓기싫은 매력적인 책이다.

 

오랜만에 집중해서 본 책이다.

 

s***y 2014.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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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므랑 이영민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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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므랑 이영민』을 읽고 우선 야구라는 스포츠에 관련한 글이기에 좋았다. 내 자신 남자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야구나 스포츠 등으로 인하여 생활의 활력과 함께 자신만의 소중한 꿈을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인도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뿐 아니라 예전부터 우상적인 선수들이 존재한다. 바로 그런 우상을 모토로 자신을 부단히 단련하면서 자신의 큰 꿈을 키워나가는 수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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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므랑 이영민을 읽고

우선 야구라는 스포츠에 관련한 글이기에 좋았다. 내 자신 남자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야구나 스포츠 등으로 인하여 생활의 활력과 함께 자신만의 소중한 꿈을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인도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뿐 아니라 예전부터 우상적인 선수들이 존재한다. 바로 그런 우상을 모토로 자신을 부단히 단련하면서 자신의 큰 꿈을 키워나가는 수많은 스포츠 관련 선수는 물론이고 감독, 코치 등의 관련자 모두에게 고맙다는 큰 박수를 보낸다. 바로 이런 우상들이 존재하기에 해당 경기장의 환호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는 영상으로, 길거리에서도 얼마든지 휴대폰으로 즐길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인기 있는 스포츠 선수들은 마치 우상처럼 숭앙을 받게 된다. 물론 그 순간까지의 남다른 자신만의 끈질긴 준비와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인고의 노력 없이는 절대로 인기는 커녕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다. 물론 소설 형식이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가 되었다고 하지만 조선의 베이브 루스라 불리는 이영민의 꿈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아낸 그래서 일제 치하의 암울했던 우리나라 상황에서도 우리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해주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야구경기장에 경기를 하면서 야구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홈런을 침으로 인해서 순간 일어서면서 악을 써대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 기쁨을 알 수가 있다. 바로 그 모습을 통해서 힘들었던 울분을 터트렸으니 일제하의 우리 조선 사람들에게 대단한 힘을 갖게 해주었다. 내 자신도 시골에서 겨우 중학교까지 다니게 될 때에는 야구를 잘 알지도 못했다. 그런데 천운으로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는데 바로 우리 학교에 처음 야구부가 탄생하였고, 야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동대문 운동장 옆 야구장으로 가서 신나게 응원에 참여하게 되면서 야구에 대한 관심과 함께 소중한 팬이 되어 버렸다. 그 이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지금도 수시로 경기를 보면서 마음껏 회포를 풀고 있다. 이런 내 자신에게도 정말 힘들었던 일제 치하의 우리 모두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서 희망 같은 것을 보여 준 이영민에게 무한한 존경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특히 조선의 야구 영웅으로서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인 베이브 루스라 불리웠던 이영민의 활동으로 힘들게 생활하고 있었던 많은 식민지 민초들에게 소중한 꿈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대략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일제 치하에서의 나름대로 일본 침략자들에게 보여준 당당한 모습의 선수 및 관련자들에게 진정으로 감사의 마음을 가져본다. 심한 억압을 받으면서 기를 펴지 못했던 우리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통쾌함을 선물하면서 큰 꿈과 희망을 갖게 만들었던 진짜 야구선수로서의 이영민을 통한 그 위대함을 회고하면서 자신감을 갖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m***3 2014.08.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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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도모북스] 호므랑 이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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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프로야구가 남녀노소가 모두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잡았을 뿐만 아니라 시즌 말미에 한국시리즈를 치를때는 모두가 열광한다. 그토록 생활에 인접한 스포츠이지만 우리는 얼마나 야구에 대하여 알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본다. 미국의 유명한 타자 베이브루스는 알아도 한국의 유명한 타자 이영민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여전히 해마다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는 유명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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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프로야구가 남녀노소가 모두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잡았을 뿐만 아니라 시즌 말미에 한국시리즈를 치를때는 모두가 열광한다. 그토록 생활에 인접한 스포츠이지만 우리는 얼마나 야구에 대하여 알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본다. 미국의 유명한 타자 베이브루스는 알아도 한국의 유명한 타자 이영민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여전히 해마다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는 유명한 국내 야구 선수들이 있지만 정작 이영민에 대하여 일반인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야구를 즐기지만 나역시도 이번 기회에 이영민을 알게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일제 강점기에서도 뛰어난 재능으로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한 그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만능 스포츠맨 이영민에게 있어서 젊은 시절은 아무런 거칠것이 없는 삶이다. 축구, 야구, 농구 뿐만 아니라 심지어 육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목에서 출중한 능력을 보여주며, 지금은 사라져 버렸지만 경성야구장(동대문야구장)의 전설과도 같은 존재였다. 일제강점기에서 다양한 종목에서 일본인을 실력으로 누르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대중은 또다른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기에 안하무인한 그의 태도도 어느정도 수용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야구라는 종목이 혼자의 힘으로 해결될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함께하는 일본선수들과는 언제나 크고작은 문제를 일으키는 삶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만을 위한 야구가 아니라 동료 혹은 다른 누군가 (조선인)를 위한 스포츠임을 깨달으면서 그의 절실한 행동이 주변을 감복시켜 하나로 융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내지만, 소작농의 딸이자 첫사랑인 윤희와의 끊임없는 만나고 헤어짐은 그에게 어떤 다른 여자들이 들어올 마음의 틈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의 주변에는 많은 여자들이 있건만 외로움속에서 한평생을 보내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를 아내로써 무한애정으로 뒷바라지하지만 끝내 이혼을 하게 되는 삶을 살아간다. 특히 이영민의 죽음앞에 자신의 막내아들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 그 순간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한평생 팀원이자 훌륭한 배터리로 형이자 아버지와 같았던 함용화는 결국 병으로 그라운드를 일찍 떠나지만 그와 많은 점을 공유하고, 어릴적 그의 인생에서 영원한 경쟁자로 남게되는 기주 또한 이영민의 그늘에 가려 언제나 2인자의 삶으로 절친에서 앙숙으로 다시 친구로 변해가는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든 것이 한데 잘 어우러져 일제강점기 하에서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전반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연인앞에서 이기적인 모습과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개명까지도 하려는 이기적인 모습에서부터 조선인으로써의 긍지를 갖고 어떠한 핍박에도 굴하지 않는 의연한 모습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적인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야구 영웅으로써의 뿐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써의 삶을 동시에 재조명해주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심리 상태에 따라서 독자의 마음도 기쁘고 즐겁고 안타깝고 때로는 슬프기까지 하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끝날때 까지 결코 쉽게 손을 놓을 수 없으며, 우리의 삶을, 아니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나간 우리 선조의 삶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데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m*****9 2014.08.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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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므랑 이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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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므랑 이영민』,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과연 무슨 책인지 궁금했다. ‘호므랑’은 야구경기의 ‘홈런’의 일본식 발음이고, 이영민은 일제시대 조선을 대표하던 야구선수이다. 조선 최초의 홈런왕 이영민, 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호므랑 이영민』이다.   야구를 이야기의 소재로 하고 있지만, 단순히 스포츠만이 아닌 민족애를 건드리는 소설이다. 우리 민족 역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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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므랑 이영민』,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과연 무슨 책인지 궁금했다. ‘호므랑’은 야구경기의 ‘홈런’의 일본식 발음이고, 이영민은 일제시대 조선을 대표하던 야구선수이다. 조선 최초의 홈런왕 이영민, 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호므랑 이영민』이다.

 

야구를 이야기의 소재로 하고 있지만, 단순히 스포츠만이 아닌 민족애를 건드리는 소설이다.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암울하던 시대인 일제시대의 조선의 스포츠 영웅 이영민에 대한 이 소설은 한 마디로 재미있다.

 

하지만, 표지 디자인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디자인은 아니다. 너무 산만한 디자인은 독자들을 외면케 한다(물론, 어쩜 이토록 산만한 디자인에 손이 갈 수도 있지만). 제목 역시 눈에 들어오진 않는다. 이런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 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막상 책장을 펼치면 너무 재미있다. 두툼한 책, 500페이지가 넘는 내용이 언제 읽히는지 모르게 금세 읽혀진다.

 

저자는 불세출의 스포츠 천재 이영민과의 라이벌 관계에 있던 기주와의 갈등과 우정, 일본인과 조선인간의 갈등과 우정, 이영민의 사랑 등을 통해, 이야기를 흥미롭게 잘 풀어 나간다.

 

또한 재미와 함께 감동이 있다. 특히, 시대적 상황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IMF의 힘겨운 순간을 보낼 때, 지구 반대편에서 승전보를 올리던 박찬호와 박세리의 소식들이 우리 국민들에게 힘이 되었듯이, 이영민은 암울하던 시대, 아무런 희망이 없고, 즐거움이 없던 시대에 조선인들에게 살맛을 제공하고, 통쾌함을 주던 시대의 영웅이다. 그의 홈런, 그리고 경기를 향한 그의 투지와 열정은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에게는 답답한 세상에서의 일종의 해방구였으며, 한줄기 서광이었다. 언제나 일본의 멸시천대 아래 신음하지만, 그럼에도 그 일본의 콧대를 눌러주던 스포츠 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흐른 오늘날 우리에게도 감동을 준다.

 

야구는 또한 이영민에게 있어 민족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통해 희망을 읽어내며, 꿈을 키워가는 동포들의 모습을 발견하며, 야구를 통한, 민족 사랑을 점차 키워가는 전개 역시 감동으로 다가온다.

 

역시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가 일본의 야비함이다. 그러한 모습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또 한편 그 가운데서도 대립의 각을 세우던 일본선수와의 우정으로의 전환하는 모습들 역시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한다.

 

감동과 재미를 함께 주고 있는 『호므랑 이영민』, 야구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물론, 야구를 잘 모르는 분들 역시 읽어도 같은 감동과 재미가 있으리라 여겨진다.

 

야구를 사랑하는 작가가 두산의 팬임을 소설의 인클루지오 부분에서 알 수 있다. 작가는 두산의 현역 선수 몇 사람을 실명으로 등장시키는데, 이것 역시 소설의 소소한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작가는 이 부분에서 두산과 LG가 2014년 한국시리즈에 만나는 것으로 설정한다. 아마 두산 팬인 작가의 희망이 반영된 것이라 여겨지지만, 이 꿈은 올해엔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 다른 팀을 좋아하는 나로선 ‘어림도 없지’란 생각과 함께 또 하나의 작은 미소를 짓게 한다.

 

올 가을 야구를 보며, 조선의 베이브 루스라 불려 졌던 사나이, 이영민의 이야기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h***r 2014.09.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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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므랑 이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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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므랑? 홈런이 아니고?...현대식으로는 홈런이 되겠지만 조선 말이나 대한제국 시대에는 아마도 홈런을 일본식 발음을 따라 호므랑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한국의 프로야구가 생성하게 된 배경 속에 이야기가 소설의 주요 무대인점을살펴 볼때 역사속의 전설적인 인물 이영민에 대한 지식은 검색으로도 쉽사리만나 볼 수 없는 극히 협소한 자료만이 드러나고 있어 안타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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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므랑? 홈런이 아니고?...
현대식으로는 홈런이 되겠지만 조선 말이나 대한제국 시대에는 아마도 홈런을 
일본식 발음을 따라 호므랑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프로야구가 생성하게 된 배경 속에 이야기가 소설의 주요 무대인점을
살펴 볼때 역사속의 전설적인 인물 이영민에 대한 지식은 검색으로도 쉽사리
만나 볼 수 없는 극히 협소한 자료만이 드러나고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28년 경성의전 주최의 야구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홈런을 날려 타격왕이 
되었던 한국의 체육인 이영민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화한 이야기로 90년 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용훈의 기억과 과거의 사실들이 어제의 일처럼 주마등 같이 사실적
으로 살아남을 보여 주는 이야기는 일제 식민지 민초들에게 민족의 울분을 달랠 
수 있는 그런 존재로서의 역할이고 위안이 었지 않나 하는 숨가쁜 사실을 발견
하기도 한다.
야구뿐만이 아니라 축구에도 남다른 재능을 가진 이영민 이었기에 그에게는 
체육인이라는 호칭이 늘 훈장처럼 따라다닌다고 하겠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일본간의 운동경기라면 나라 잃은 설움을 많이 맛 보았을
시기이고 운동 경기에서 조차 승부조작과 부정한 방법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일본인들을 조선인들은 꼭 이기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 시기는 하루 종일 일해도 부족할 정도로 야구장 입장료가 비싸고 쉽게 볼 수
있는 경기가 아니 었다는 사실을 통해 볼때 그나마 식민지 민초들에게 이영민의
홈런은 희망의 메시아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된다.

KBO(한국 야구 위원회)의 탄생으로 이젠 언제나 야구를 즐기고 홈런을 맛볼 수
있는 현실을 맞이했지만 정작 이영민의 존재에 대해서는 야구를 하는 사람도
야구를 보며 즐기는 사람도 그의 존재와 역사적 가치를 올바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우리의 한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자괴감을 갖게한다.
바로 한국야구의 시작, 기원과도 같은 인물이 바로 '이영민'이기에 더더욱 그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야구사를 기리는 인물로 알려질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다.

저자 배상국 역시 충암중,고를 거쳐 원년 야구 스타들과 같은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사람이라 야구에 대한 기원적 인물의 소설을 통해 독자의 야구지식에 대한 
환기를 이끌어 내고 있어 그 역사적 가치와 이영민이라는 인물의 존재를 더욱더
절묘하게 소개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소설을 썼다고 평가 할 만하다.


n********1 2014.09.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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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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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YMCA 개척 간사로 한국에 파송된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는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를 설립했고 1905년에는 청년회 회원들에게 서양식 공놀이인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 <대한체육사> 중에서      우리 땅에 야구가 전해진 지 어느덧 100여 년이나 된다. 외국인 선교사를 통해 조선시대에 처음 시작된 야구가 이제는 여러 명의 메이저리거를 배출할 만큼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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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YMCA 개척 간사로 한국에 파송된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는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를 설립했고 1905년에는 청년회 회원들에게 서양식 공놀이인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 <대한체육사> 중에서 

 

 

우리 땅에 야구가 전해진 지 어느덧 100여 년이나 된다. 외국인 선교사를 통해 조선시대에 처음 시작된 야구가 이제는 여러 명의 메이저리거를 배출할 만큼 성장했다. 1982년 3월 27일 출범한 프로야구도 이젠 10구단 체제로 운영되며 7년 연속 500만 유료 관중을 기록할 정도로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더구나 얼마전 프로야구의 꿈나무들인 리틀야구단이 미국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미국팀을 꺾고 우승하는 낭보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제 여가 선용을 위해 사회인 야구까지 활성화되면서 야구는 가히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형세지만, 막상 그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 생소한 편이다. 그래서 도입 초창기의 조선 야구를 회고해보려고 한다.

 

 

 

조선 최초의 '뻬쓰볼팀'이었던 YMCA는 선교사들과 역사적인 첫 경기를 가졌다. YMCA의 원초적인 야구는 도쿄 유학생들과의 교류전을 통해 세련미를 더해갔다. 스타 플레이어도 나타났다. 특히 이영민을 빼놓고 조선 야구를 설명할 길이 없다. 경북 칠곡 출신인 이영민李榮敏(1905~1954년)'한국의 베이브 루스'로 불릴 만큼 한국 야구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는 대구 계성중학에 다니다 1924년에 서울 배재고보로 전학한 야구선수 '스카우트 1호'이다.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을 낳으면 한양으로 보낸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스카우트가 요즈음과 다른 점은 돈이 아닌 단지 큰 물에서 실력을 겨뤄보겠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 1928년 연희전문학교 시절 경성운동장(현,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경성의전과의 정기전에서 구장 개장 3년 만에 첫 홈런을 날리며 그의 이름 석자를 천하에 알렸다. 이때부터 장안의 호남아인 그를 보려고 수많은 여성팬이 운집했다. 현대판 '오빠부대'의 원조인 셈이다.

 

육상, 농구, 축구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뽐낸 만능 플레이어였던 그는 1926년 400m 달리기에서 신기록(55초6)을 수립했고, 1933년 경평축구정기전에선 경성축구단 감독을 맡기도 했다. 조선인으로는 유일하게 일본올스타(일본 자이언츠의 전신)로 뽑혀 일본에서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이끈 미국프로야구선발팀과의 경기에 외야수로 나섰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당시의 차별대우에 분노한 그는 이후 일본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은행원을 택했다. 식산은행 시절에는 게이오대와의 친선경기에서 일본 최고 강속구 투수 미야다케의 공을 받아쳐 초대형 장외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베이브 루스와 이영민

 

1930년대 최고의 신랑감이었던 그를 사로잡은 여자는 당시 이화여전에서 정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이보패. 그녀는 구한말 인삼 등을 취급하며 무역업으로 떼돈을 번 서대문의 알부자 이지성의 딸이다. 둘의 결혼은 당시 최고의 스포츠 커플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이영민의 여성편력 때문에 순탄치 못했다. 1941년, 두 사람은 이혼하고 만다.

 

해방 후 야구 행정가로 변신해 야구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던 그는 불행하게도 1954년 8월12일 한여름밤의 참변을 당했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로 서울 중구 필동의 집에 머물던 중 당시 20세이던 셋째 아들 이인섭이 친구들과 공모해 집을 털려다 들키자 친구가 면식범임을 우려해 총을 쏴 현장에서 즉사했음이 밝혀졌다. 

대한야구협회는 1957년 말 이사회 결의를 거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이영민 타격상'을 제정해 해마다 최고타율을 기록한 고교선수에게 시상하고 있다. 5개 이상 전국 규모 대회에 출전한 15경기, 60타석 이상의 선수 중에서 선발한다. 현 SK 와이번스 이만수 감독, 최정 선수, 두산의 김현수 선수, NC의 박민우 선수 등이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출신이다.

 

 

 

 

 

소설은 저자 배상국의 외할아버지 이용훈 옹의 회고로 시작된다. 1924년 생, 올해 만 90세인 용훈 옹은 잠실 야구장을 찾았다. 2014년 한국 시리즈에서 잠실 라이벌 두 팀이 만난 것이다. 두산베어스와 LG트윈스 간의 맞대결은 프로야구 최고의 흥행 카드인 동시에 잠실의 진정한 적자임을 드러내는 감정싸움이기도 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저자는 원년 프로야구 OB베어스의 어린이 회원을 거쳐 야구명문 충암중, 고를 나왔다, 아직도 유지현. 심재학과 같은 시기에 함께 학교를 다닌 것을 자랑하고 다닐만큼 야구를 사랑하는 남자다.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시절, 당시 최고의 하이틴 스타 전영록보다 인기가 많았던 선린상고의 박노준이 저자의 첫 번째 우상이었다. 그를 시작으로 박철순, 김우열, 윤동균, 양세종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우상을 가슴속에 품은 채 살고 있다.

 

예정 시간보다 약간 늦게 도착하자 KBO 관계자가 그를 급히 맞이한다. 용훈 옹은 오늘 시구자로 내정되어 있다. 평소 배드민튼으로 단련된 체력이라 그런지 믿기지 않을 만큼 걸음걸이가 젊은이 못지 않게 빠르다. 스포츠 춘추의 박동희 기자가 알아보고 달려와 용훈 옹에게 인사한다. 투수 출신인 용훈 옹의 악력은 아직 여전했다. 박 기자는 악수했던 손을 쥐락펴락 반복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들락날락하는 것처럼 용훈 옹에게 환영이 나타난다.

 

"나가자! 멋지게 잡는 거야!"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선명한 청년은 치열이 가지런한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흔을 넘긴 노인에게 야구공을 건네며 나가자며 손짓을 했다. 그가 쓴 흰 모자, 가슴에 P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흰 유니폼, 어쩐지 낯이 익었다. 70여 년 전, 자신이 몸담았던 배재 고보의 유니폼이었다.
"이보게 젊은이, 난 노인이야... 더 이상 자네 같은 젊은이가 아니라고..."
용훈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그 젊은이는 아랑곳없이 미소를 짓더니 이내 야구장을 향해 뛰어나갔다.

 

현장 아나운서의 소개 멘트다. "오늘 한국 시리즈 1차전의 시구는 왕년에 조선 전업의 명투수로 이름을 날리셨던 이영훈 선생께서 해 주시겠습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을 움켜쥐고 자세를 잡아 포수 양의지를 향해 힘껏 던졌지만 기대와 달리 공은 타석 중간에 떨어져 천천히 굴러갔다. 손자 헌렬이 힘차게 배팅했다. 이렇게 시구 행사를 무사히 마쳤다.

 

 

조선인의 희망, 편파 판정에도 아랑곳없이 독보적 실력 과시

난세의 영웅, 연전延專의 이영민군!

 

조선의 언론들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가며 이영민의 할약상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그는 야구, 축구, 농구, 육상, 심지어 동절기 스포츠인 스케이트까지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그는 능가하는 선수는 조선 천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축구부 감독도, 농구부 감독도, 육상부 코치도 그의 출전을 위해 호들갑을 떨어야만 했다. 그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영웅호걸이 그렇듯이 술과 여자가 늘 문제였다.

 

1928년 10월 어느날, 아라비아 상인이란 별명을 가진 함용화가 밤새 술과 여자로 고주망태가 되어 인사불성인 이영민을 업고 정신없이 뛰고있다. 경성 운동장에서 있을 각종 시합에 늦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인력거를 만나 마치 짐짝 싣듯 영민을 밀어 넣었다. 운동장에 겨우 도착하자 축구부, 농부부, 육상부 감독들이 동시에 영민을 서로 데려가겠다고 쟁탈전을 펼친다. 실랑이 끝에 순서가 결정됐다. 축구 후반전, 농구 후반전에 이어서 육상 400m 결승전 순으로 영민이를 돌려쓰기로 한 것이다.

 

축구 결승전, 후반전 종료까지 채 30분도 남지 않았다. 용산 철도국이 연희 전문에게 3대0으로 이기고 있어서 본부석의 일본 체육인들도 안정권이라 생각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연희는 선수를 교체했다. 이영민의 투입이다. 투입되어 10분을 어슬렁어슬렁 보낸 그는 종료 20분 동안 날아다녔다. 해트트릭을 기록하더니 종료 직전 극적인 헤딩골로 역전승의 마침표를 찍었다. 한마디로 이영민의 원맨쇼였다.

 

영민은 쉴 사이도 없이 농부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농구 코트에서의 영민은 백발백중 슛에다 현란한 드리블로 상대팀 기타무라 상점의 선수들이 넋 빠지게 만들었다. 한때 20점까지 앞서던 기타무라는 오히려 연희에게 역전당해 50대 42로 패하고 말았다. 술냄새를 풍기는 선수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다.

 

육상부 코치와 선수들이 농구코트로 들어왔다. 이젠 육상 400m 결승전이다. 오바이트가 나오려는지 영민은 달리는 내내 구역질을 해댔다. 포기할까 생각도 들었지만 차라리 끝까지 뛰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편이 낫다는 각오에 초인같은 힘이 솟았다. 그는 멀찌감치 다른 선수들을 따돌리고 결승전을 끊었다. 54초 6의 기록으로 조선 신기록을 수립했다. 경성 운동장 하늘에 이영민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영화감독 나운규 

 

 

종합우승 축하연 자리에서 영화감독 나운규를 만났다. 그와 영민은 연희전문 선후배 간이다. 사실은 동문관계 이전에 화류계에서 둘은 이미 인사를 튼 사이였다. 축하연에 자리한 기생 채선을 소개받은 영민은 술자리가 끝나자 다동에 위치한 채선의 집으로 가서 함께 질펀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조선 호텔로 갔다. 운규가 채선의 집으로 서신을 보냈기 때문이다. 카페에 도착했더니 인기 여배우 김연실과 <벙어리 삼룡>의 여주인공 유신방이 함께 있었다. 그곳에서 조선일보 기자 심대섭을 소개받았다. 심대섭은 나운규의 작품 <장한몽>에 대타로 기용된 인연으로 영화계에 등장했다가 이후 영화감독에 데뷔까지 했으나 흥행이 신통치 않아 심훈이란 필명으로 기자생활을 하고 있었다.

 

강남달이 밝아서 임이 놀던 곳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새울까.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자 운규를 앞세운 영민 일행은 호텔을 나와 대절 택시를 타고 장충단을 지나 두모포豆毛浦(현, 옥수동)에 도착해 나룻배를 타고 한명회의 정자 압구정으로 향했다. 아담한 정자에서 영화 <낙화유수>의 주제곡 <강남달>을 감상하면서 낮술을 기울이니 영민의 얼굴에 취기가 올랐다. 영화배우가 되기 전부터 알고 있던 연실은 단성사의 스타 변사 김학근의 여동생이다. 소녀 때부터 그녀는 오빠와 어울리는 영민을 사모했다. 그녀는 영민의 다리를 베고 누워 영민에게 추파를 보낸다. 묘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영민은 얼른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너, 야구의 꽃이 뭔 줄 알아?"
"몰라. 야구하는데 왜 꽃이 필요해?"
"그게 아니라. 야구에서 가장 멋진 것이 뭔지 아냐고..."
"몰라..."
"호므랑!"
"뭐! 호므랑? 그게 뭔데?"
"배트로 공을 쳐서 담장 밖으로 넘겨 버리는 거. 그게 진정한 야구의 꽃 호므랑이지."
"그게 뭐... 그게 그렇게 대단해?"
"그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조선 스포츠계에 이영민의 최고 라이벌이 있었다. 그는 백기주였다. 육상 100m, 200m 조선 신기록 보유자였다. 그도 영민처럼 야구, 축구, 육상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의 명성은 정반대였다. 영민은 조선 스포츠계의 대표 인물로 대접받는 반면, 기주는 키도 작고 인물이 볼품 없어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번은 암스테르담 올림픽을 앞둔 밴텀급 복싱 대표 선발전에서 조선의 이혜택 선수가 조선 예선과 일본 예선까지 압도적 실력차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일본 올림픽 위원회는 아무런 이유 없이 결승전에서 패한 일본 선수를 올림픽 대표로 선발했다. 그러자 이혜택 선수가 조선체육협회로 달려가 항의하다가 집단 린치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조선 체육인들이 대거 들고 일어섰다. 연희전문 체육부에도 시위 사실이 전달되었다. 시위에 참가하려던 용화와 기주는 영민에게 함께 가자고 했지만, 다른 일이 있어 나중에 꼭 참석하겠다며 영민은 그 자리를 피했다. 이에 기주는 "저 새끼 뭐야.." 하면서 은근히 영민을 멸시했다.

 

시위에 가담했던 조선 체육인은 모두 혼마치 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삼일 운동 이후 일제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융화책을 펼치고 있었던 터라 민족간의 갈등을 원치 않았던 조선총독부는 전원 석방을 결정했다. 영민도 멀리 용화가 보이자 한달음에 손에 두부를 들고 달려갔다. 이때 기주가 또 한마디 뼈 있는 말을 했다. "혼자 기생들과 노닥거리니 즐거웠냐?" 중간에 용화가 끼어들어 더 큰 싸움으로 비약하진 않았지만, 이후 영민은 기주를 멀리 했다.

 

이 날 실은 운규의 부탁으로 영화에 돈을 대주는 전주錢主 중 한 명이 영민의 병신춤이 장안에서 유명하다고 이를 꼭 보여달라고 졸랐기 때문에 운규가 영화 <두만강을 건너서>의 운명이 달린 일이라며 영민에게 읍소를 하자 하는 수 없이 영민은 영화사의 정릉 야유회에 참석했던 것이다.

 

 

"미야타케 사부로든 누구든 이 이영민의 상대가 되겠소? 이 자리에서 예고를 하나 하지요. 그날 여러분들께서는 조선 제1의 호므랑을 보게 될 겁니다. 진짜 호므랑을"

 

동경 6대학 야구 리그 우승 팀 게이오기주쿠 대학이 경성에 왔다. 이 팀엔 일본 대학 야구 최고의 투수 미야타케 사부로가 있었다. 기자들이 이영민에게 이 대결의 승부를 묻자 호므랑을 쳐보이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것도 예고 홈런을 말이다. 하지만 이길용 기자는 이런 영민을 못마땅해 했다.   

 

"이번 게이오 대학 대 연희 전문의 대결은 일본과 조선의 학생 야구를 대표하는 팀으로서의 대결인데 승부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일본 기자의 질문에 게이오 대학의 후지하라 감독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기자님, 농담이 심하십니다. 우린 동경 6대학 리그를 제패한 게이오 대학입니다. 일본 최고의 팀이란 말입니다. 그런 팀을 하찮은 조센징 팀과 비교하라니... 허허"
"하하하.."
기자들이 후지하라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질문을 던진 기자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따라 웃었다.
"100년 동안 일본 야구를 절대로 넘볼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이에 에이스인 미야타케경적필패輕敵必敗란 말과 함께 야구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상대 팀을 존중하지 않으면 일본 야구도 패할 수 있다는 답변을 했다. 일순간 기자 회견장에선 탄성이 퍼졌다. 반면 후지하라 감독의 미간에는 주름이 잡혔다. 연희 전문의 이영민 선수가 홈런을 예고했다는 사실을 기자들이 전하자, 그는 좋은 선수라고 들어서 알고 있다고 또한 답변했다. 이길용 기자는 이미 승부가 자명해 보였다. 두 야구 천재의 태도에서 그는 양국의 야구 수준을 느끼고 있었다.

 

경기가 종료되었다. 최종 스코어 10대 2로 게이오 대학이 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관중들의 발걸음은 의외로 가벼웠다. 이영민의 호므랑 때문이었다. 조선 최초의 진짜 호므랑, 그것도 일본 최고 투수 미야타케를 상대로 말이다. 이길용 기자는 혼란스러웠다. 이영민은 한갓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이기주의자일까? 이때 그에게 말을 걸고 다가온 이가 있었다.   

 

"야구는 팀 스포츠이죠. 누구 하나 잘했다고 이길 수 있는 그런 스포츠가 아니란 거죠."
이길용은 옆을 돌아보았다. 온통 흙투성이 범벅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기주였다.
"아홉 명이 한 팀이 되어야 하지요. 제아무리 아홉 명의 이영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팀을 위해 헌신을 하지 않으면 그 팀은 절대로 이길 수 없어요. 그게 야구죠."
"하지만 오늘만큼은 충분히 헌신적이었던 것 아닌가요?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청해서 마운드에 올랐고 침체되어 있는 팀 분위기를 쇄신시킨 것도 그 덕분이었으니까. 게다가 일본 최고의 투수를 상대로 그가 친 호므랑은 조선 사람들의 자부심을 한껏 고무해 주었으니까요.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물론 이영민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오늘 조선 야구사에 기념비적인 일이 벌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지요. 안 그런가요"
이길용의 말을 듣고 있던 기주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타올랐다.
"진 건 진 거죠."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기주의 말 속엔 영민을 향한 치열한 경쟁심이 담겨 있었다. 그날 밤, 조선 최초의 홈런을 기념하는 파티가 열렸다. 밤새도록 먹고 마시는 자리였다. 기주는 없었다.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서 기주는 수백 번의 스윙을 했다. 며칠 후 기주는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와세다 대학 야구부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조선에도 전해졌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진 서양 스포츠들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소수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당시 이류 민족이라고 멸시당하며 주눅이 들어 있던 조선인들에게 엄복동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나아가 스포츠가 민족혼과 저항 의식을 불태우는 최적의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각 종목의 실력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억압된 현실을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포츠뿐이었다. 조선인들을 경기장으로 불러 모았던 이는 조선 최초의 홈런타자 이영민이었다. 그의 야구를 보며 사람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었고, 위안을 얻었다. 그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식민지 조선인들의 살아있는 희망이자 꿈이었다.

 

 

경쾌한 타격음이 잠실 야구장에 울려 퍼졌다. 48회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출신인 김현수 선수는 홈런을 직감하며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4회에 이어 8회에도 멀티 홈런을 기록했다. 한국 시리즈 1차전의 승리를 확정짓는 의미있는 홈런이었다. 베이스를 돌고 있는 그에게 관중들은 그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용훈 옹은 눈을 살며시 감았다. 시간 여행을 떠나는 마법의 주문을 걸었다. '자, 이제 떠나 볼까?' 그는 아버지와 함께 경성 야구장을 찾았던 10살 무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거구의 사내가 힘껏 배트를 돌리자 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손을 번쩍 들고 베이스를 도는 그 사내의 이름을 관중들은 목청껏 외쳤다. 중절모의 신사도, 두루마기를 걸치고 갓을 쓴 노인도, 고물상 장수도, 흰 두건을 쓴 아녀자도, 까까머리 소년도, 한복으로 멋을 낸 기생도, 꼬마 용훈도.

 

"이영민, 이영민, 이영민"

 

이제 그를 만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를 만난다면 꼭 함께 야구를 하고 싶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 순간 주름이 가득한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가 너무도 보고 싶었다.

5****0 2014.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내용보기
<우리나라 야구>라면 1982년 프로야구의 출범 이후로만 인식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우선 신선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인 1900년대 초반에도,  지금은 역사책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짐작하는 일제 식민지하의 그 암울한 시대에도, 우리나라의 야구는 존재하고 있었다고. 누군가는 던지고, 누군가는 치고 달리고. 그렇게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다고.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내용보기

<우리나라 야구>라면 1982년 프로야구의 출범 이후로만 인식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우선 신선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인 1900년대 초반에도, 

지금은 역사책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짐작하는 일제 식민지하의 그 암울한 시대에도,

우리나라의 야구는 존재하고 있었다고.

누군가는 던지고, 누군가는 치고 달리고. 그렇게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다고.

 

놀라움으로부터 시작된 이 책은 단번에 1928년의 경성으로 시간을 건너뛴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만능 스포츠 스타이자 조선인의 희망이었던 '이영민'.

아마도 이 책에 손을 뻗은 사람이라면 이영민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고,

이영민을 알고 싶다는 건 야구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리라.

 

그런 '야구인' 이라면 - 설령 안방 야구팬일지라도 -

책 속의 매 경기 경기마다, 선수들의 플레이에 마음이 들썩이고,

관중석의 함성이 귓가에서  들려오는 착각에 빠지기 딱 좋다.

당장에라도 야구장으로 달려가고 싶을 만큼.

현재 치러지고 있는 2014년 시즌을 새삼 새롭게 지켜보고 싶을 만큼.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이야기는 촘촘하고 흡입력이 있다.

게다가 1930년대 경성의 생생한 문화, 사회, 정치적 배경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읽는 재미를 더한다.

<상록수>의 심훈이 잘생긴 영화배우였다는 건 국어 교과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주먹만 한 공 하나에 울고 웃는 게 야구라는 건 누구나 알지만

100년 전 그들도 공 하나에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알게 되니,

야구가 그저 단순한 스포츠로만 생각 되지가 않는다.

 

8888577의 오랜 팬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야구장에서 모두 맛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조선 최초의 호므랑 이영민을 알고, 1930년대 조선의 야구를 알고,

그와 함께했던 진정한 야구인들을 알게 된 지금은

야구는 진정 삶이고 우리의 인생이 녹아들었다는 말밖에.

 

5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오랜만에 책 읽기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선물해준 저자와 호므랑 이영민, 그리고 야구에 감사를 전한다.

 

 

j******i 2014.08.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