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쿨한 것이 좋다고들 한다. 그 때문인지 언제부터 쿨이란 말은 멋지다라는 말의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쿨하게 사는 것, 말처럼 쉽지는 않다. 쿨함의 필수요소는 거리두기와 내려다보기이다. 다른 이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굽어보는 시선으로 대하는 것이 쿨함의 기본이다. 그러노라면 다른 사람들과 말도 덜 해야 하고, 씩 웃는 비웃음도 지녀야 한다. 속은 끓어오르는데,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어 미치겠는데, 그 놈의 쿨함때문에 속만 썩이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도시 소년인 우리의 주인공도 그러한 쿨함, 혹은 쿨한척하려는 욕구때문에 괴로움을 당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의 주인공은 제대로된 사람들을 이웃에 두었다는 것이다. 머리를 한대 빡 소리나게 두드려 맞고 나서야 소년은 정신을 차린다. 쿨하게 사려는 것, 자신을 다른 사람을부터 거리두려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차갑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왔는지를. 물론 한 대 맞기 전에 스스로 정신을 차렸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를 온전히 낮추고 깨달음의 눈을 떴을 때만 가능한 일. 어린 소년에게 그것까지 바랄 수는 없다. 다 자란 나에게도 그건 여전히, 늘 어려운 일이므로. |
|
무엇보다도 우선, 재미가 있다. 시건방진 주인공 녀석의 심드렁한 엘리트풍 말투와 한번씩 터져주는 반전들이 책을 꽤 매력있게 만든다(처음엔 ‘쿨보이? 흥, 웃기고 있군.’ 하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책을 들었지만...) 사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장소설이야 뻔한 구조다. 집안이나 사회와 불화를 겪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이런 면에서는 ‘쿨보이’도 마찬가지이댜. 명문대를 진학하여 대기업에 취직하고 나중에는 풀장이 딸린 집을 갖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진 엘리트 중학생 호시노 유. 이후 어찌어찌 여러 사건을 겪은 후 ‘사람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주위와 화해하는 소설 구조. 하지만 이 뻔한 스타일을 어떻게 하든 뻔하지 않게 만들어 보려는 수작이 작가의 노고이고 잘된 작품의 미덕이 아닐까? 그 점에서 ‘쿨보이’는 꽤 괜찮은 평점을 받을만 하다. 작가는 ‘세상은 어쩔 수 없다’며 출세지향적인 세계관을 가진 그놈의 엘리트 의식의 논리와 허점을 빠삭하게 섭렵한 듯 하고 또한 소외된 아이들의 실질적인 고민 지점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읽으면서 감탄하고, 또 읽으면서 나의 옛 시절을 떠올려보게도 하고...어쨌든 읽어 볼 만 하다.
... 그래도 제목은 좀 심드렁하다.
[인상깊은구절] “어? 호시노라면 그 호시노야. 와, 정말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응, 10월 모의고사라면 쳤지. 우리 학원 계열이라서. 그게 왜? 결과가 어떠냐고. 왜 네게 그런 걸 말해 줘야 해? 프라이버시 침해 아냐? 너도 여기 살 때 엄청난 비밀주의자라 한 번도 네 성적 남에게 보여 준 적 없으면서. 남의 성적 신경 쓰는 녀석은 어쭙잖ㅇ느 녀석이라며 비난하더니. 그 말, 사실은 경쟁자를 밀어내기 위한 작전이었지. 적에게는 어떤 사소한 정보도 안 준다고 했잖아. 언젠가 내가 감기에 걸려 학원 빠졌을 때 공책 좀 베R자고 부탁하니까 네가 거절했잖아. 기억 안 나? 흥, 안 좋은 기억은 곧 잊어버리는구나. 성격 좋네. 인색하고 음흉하고 교활하고 약삭빠르고. 지금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난 네가 싫어. 일본에서 사라졌음 할 정도야. 앞으로 연락 하지 마.” 학원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모치즈키의 대답은 이랬다. 나도 모치즈키가 아주 싫기 때문에 이걸로 멋지게 비겼다 |
|
다 큰 어른도 그렇겠지만 때론 가족들보다 친구들이 더욱 소중한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겐 "이사"라는 단어가 늘 설레이는 단어는 아니다. 단지 집을 옮기는 것이 다가 아니라 다니는 학교까지 옮겨야하는 이사가 어쩌면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겐 황량한 사막에 홀로 버려지는 듯한 무서움을 안겨주지 않을까? 딱 어렸을 적의 내가 그랬다. 갑작스럽게 이사를 가야한다는 말을 듣고, 가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고집을 부렸다. 이사를 가는 날까지 고집을 부리고, 살던 집을 떠날 때도 표정은 그야말로 불만 투성이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간다는게 곧 지금의 친구들과 완전히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호시노 또한 생각지 못한 이사를 하게 된다. 이사를 가게 된 곳은 아버지의 고향으로 지금 사는 곳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시골인 곳이었다. 도시에 살면서 좋은 교육을 받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꿈이었던 호시노에게 시골로의 이사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해외 출장중인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했지만 아버지는 공감과 함께 이해를 부탁하셨다. 결국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간 호시노. 그곳은 버스도 해가 지기전에 끊기고, 멧돼지 경고문이 거리에 흔하게 걸려있는 그야말로 시골이었다. 가장 충격을 준 곳은 학교. 호시노가 다니게 될 학교는 그를 포함해서 반친구과 겨우 4명인 곳이었고, 반 친구란 아이들이 한 명은 말을 하지 않는 아이, 한 명은 조금 모자라 보이는 아이, 그나마 호감은 가졌던 나머지 한 명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거부하는 아이였다. 고민의 늪에 빠진 호시노. 과연 호시노는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전학의 경험이 있었던 만큼 호시노의 심정이 어느 부분에선 정말 공감이 갔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성공에 대해 목말하는 호시노의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입을 앞둔 고3 수험생도 아니고, 이제 경우 중학생인 호시노가 왜그렇게 성적이 떨어짐에 두려워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꿈꾸는지...그리고 자기보다 조금 못하다고 생각되는 친구들을 낮게 여기곤 하는 마음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에서 치매의 우려가 있는 할아버지를 대하는 모습이나 어머니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 못된 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가끔씩 남을 무시하려는 못된 경향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 친구들은 호시노를 무시하지 않는다. 되도록 그가 시골 생활에 적응하려고 돕지만 그가 반 아이들에게 못되게 굴자 결국은 갈등이 폭발하고 만다. 그 한 번의 싸움으로 호시노는 반 아이들에게 자신이 그간 숨겨왔던 비밀을 인정하게 되고, 그간 자신이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10년도 훨씬 전이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그때 생각이 나서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그런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겪게 되는 갈등들. 조금은 식상할 법도 한 소재를 가지고는 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또한 초반에 가졌던 약간의 의문점들을 한 방에 해결해주는, 그러면서도 무릎을 치게 되는 반전을 책 중반에 드러냄으로써 책을 읽는 재미를 더했다. 법적으로 정해진 나이가 되면 학교에 다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매일 매일을 12년이란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 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꿈을 꾸고, 가장 많은 경험을 하게 될 아이들이 학교라는 곳을 통해서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서 하게 되었다. |
|
| <새로운 엘리엇>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책은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6권이다. 이번에 읽은 <쿨보이>는 그 시리즈의 2권이다. ‘생각과 느낌’에서 청소년 소설 시리즈를 기획한 것 같은데 지금까지 읽은 두 편만 보아도 꽤 수준 높은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쿨보이>의 원제는 ‘낙원을 만드는 방법’이다. 도시에서 살던 중학교 2학년 ‘유’가 갑작스레 시골 할아버지 댁에 들어가 살게 되자 이런 말을 한다. “낙향이라고도 말하지. 엄마 알아?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곳을 말하는 거야. 토머스 모어라는 아저씨가 16세기 초에 쓴 소설 제목에 이 말을 사용했지만, 꿈의 낙원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상상의 산물이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아.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낙원인 거야.”(19쪽) 주인공은 시골에서 낙원처럼 살 것을 꿈꾸는 엄마에게 제법 그럴싸하게 대항한 것이다. 왜냐하면 ‘유’의 장래희망은 시골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이라기보다는 계획은 있어. 회사를 만들어 큰돈을 벌어서, 실내온천 풀장이 달린 궁전 같은 집에서 사는 거야.”(62쪽) 이것이 ‘유’의 꿈이기 때문이다. 100% 배금주의자이며 도시 소년인 ‘유’는 개성이 강한 세 명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치매 증세가 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인 토오루를 만난다. ‘유’가 그토록 싫어한 시골이지만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삶의 행복과 낙원을 경험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이 소설의 묘미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문체. 주인공의 성격이 그대로 살아있고, 제대로 꼬여 있는 말투는 종종 큰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특히 이치노세가 예뻐서 들떴던 주인공이 이치노세의 진상을 알고 절망하는 부분에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다음은 주인공인 ‘유’의 사랑스러움과 귀여움, 그리고 안쓰러움이다. 자신이 어른인 것처럼 말하는 품이 아주 귀엽다. 그리고 셋. 반전이다. 이 반전은 정말 놀랍기 때문에 이 글에서 밝힐 수는 없다. 다만 이 반전을 통해 주인공의 아픔을 이해하고 더욱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기막힌 반전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근거를 통해 ‘자기와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사는 행복, 타인의 평가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방법,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의 중요성, 세월을 두고 연결된 인관관계의 소중함, 스스로 상처를 털어내는 방법, 시시하지 않은 행복’을 이 책을 통해 얻었다. |
|
상 파울은 인생은 한권의 책과 같아서 현명한 이는 책을 읽을 때 한번에 열심히 읽는다고 했다. 인생도 단 한번만 살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 말을 책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하자면, 책을 한번 읽고 덮어 버리는게 대부분이지만 의심이 나면 한번 더 읽고 기억하고 싶으면 또 읽고 그런 식으로 책을 자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상 파울의 인생관에 비추어 한번에 최대한 열심히 책을 읽으려고 한다. 그랬기에 내가 두번 읽는 책은 드물다. 이 책을 두번 읽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장황하게 늘어 놓어 버렸는데 두번 읽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이 책에서는 존재했다. 후반부에 나타나는 반전 때문이였다. 뒷통수가 얼얼하고 모든것이 꼬여 버려 한번 더 읽었던 것인데 옮긴이도 의구심이 들었던 책 속의 메일 내용 때문에 두번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메일 내용이 나오는 부분을 집중해서 읽었는데 한번 읽다가 놓쳐 버린 세세함은 챙길 수 있었을지 몰라도 처음 읽었을 때의 스릴감은 두번째 읽기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도쿄에서 깡촌으로 전학을 가게 된 히로시 유를 통해 펼쳐지는 시골의 모습은 순간순간이 유쾌할 수 밖에 없었다. 유에게는 끔찍하겠지만 대도시에서 살다 온 시각으로 묘사되는 시골은 재미났다. 가령 도보 30분 거리의 학교가 집이랑 가까워서 좋겠다는 둥, 멧돼지 조심이라는 간판이 당연하게 보이고 6시에 버스가 끊기는 현실은 유에게 최악이였다. 그건 것들을 어쩔 수 없이 감수한다 치더라도 전학간 분교의 아이들을 만났을 때가 정말 최고였다. 예쁜 여학생에게 홀딱 반해있던 찰나, 산촌 유학생에다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유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아 킥킥대며 웃음을 참느라 혼났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유와는 달리 유쾌함으로 점철되던 책에 대한 나의 예상은 서서히 빗나가고 있었다. 외국에 계시는 아빠, 홀로 계시는 할아버지 때문에 엄마와 유는 할아버지가 계신 곳 즉, 아빠의 고향으로 이사왔지만 유는 아빠의 고향에서 적응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있는 유가 아빠의 고향에서 자연을 느끼며 지금껏 지내왔던 곳과는 다른 생활을 만끽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빠에게 보내는 메일은 여전히 적응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학교의 독특한 친구들과도 잘 지낼 의향도 없고 자신의 생각하는 엘리트 코스에서 벗어날까봐 전전긍긍 할 뿐이다. 그러다가 결국 유의 비밀이 드러내고 만다. 유도 알고 있었고 유의 학급 친구들도 알고 있었던 아빠의 죽음. 아빠가 아무리 바빠도 요즘 같은 시대에 전화 한통 없이 늦은 답장을 보낸다는 것과 차분하게 유의 마음을 간파하고 있는 내용이 의심이 들긴 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유가 스스로 보낸 대필 메일이였다. 그 사실에 멍해져 책을 두번 읽게 된 것이다. 아빠에게 쓰는 메일이라기 보다는 자신에게 쓴느 메일같은 내용에 아빠에 대한 끈적한(?) 그리움은 드물었기에 완벽하게 속은 것이다.
그랬기에 다시 한번 책을 읽어 보니 옮긴이의 말처럼 메일속의 유는 이미 아빠의 고향에 마음을 열고 있었고 친구들에게도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놓고 다니기도 싫었고 한편으로는 싹 무시할 수가 없어서 적절히 꾸민 유의 연극은 마음도 아팠고 씩씩해 보이기도 해서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생각했떤 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유만의 방식을 삶을 가꾸어가는 모습은 성장소설의 매력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한참 정체성이 혼란할때의 청소년기에 자신에게 닥친 변화는 낯설고 유쾌하진 않지만 적응해 가는 모습,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은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낙오자가 아니라는 사실,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에서 흠이 난게 아니라는 사실들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을 좀더 풍부하게 가꿀 가능성을 말이다. 더군다나 아빠의 고향에서 펼쳐진 것들이라 묘한 감흥이 일기도 했다. 유는 유지만 어린 아빠 히로시의 추억 속으로 빨려 가는 느낌이랄까. 그건 아빠가 생생히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는 잘해가고 있다. 그의 마음이 좀 더 열리길 바래본다. 유의 인생은 유의 것이므로.
|
|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찾다가 없어서 뭐 읽을 것 없나 ~~~~ 하고 있다가 눈에 띈 쿨보이.
요즘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쿨하니까'하는 말들을 많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것 같다 . 그래서 그런지 쿨보이 이 책을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에 읽게 되었다.
책도 얇고 글씨도 두꺼워서 우선을 읽을 맛이 나는 책이었다
그리고 주인공 ! 주인공의 말투를 보면 흔히 주변에서 한번쯤 건방지다고 느끼는 아이의 말투와 같은 말투 였다.
모두들 자신은 쿨하다고 하지만 내면에는 자신에 대한 나약함을 숨기려 한다는 걸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준 책 ..
이 주인공도 어떻게 보면 건방지고 어떻게 보면 쿨하게 보이지만 결국에는 아버지에 대한 것을 숨기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였을 뿐.... |
| 주인공처럼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기 시작했을 가장 큰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류대학을 가고 돈을 많이 벌거나, 외모 등으로 아이들의 눈과 마음을 속이고 있다. 쿨보이의 주인공은 최고대학에 가고 싶어하며, 성적 또한 좋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시골 학교로 전학가면서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되며, 자신이 성적을 위해서 계산적인 인간관계를 가져왔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도 얻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간판이나 외모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서로 으르렁거리며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그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목표를 갖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가르치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 모든 부모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심심치않게 좋은 대학(수도권)만을 강요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마음으로부터 좋아하는 것을 찾을 때 진정한 성공도 뒤따라오는 것이다. |